낙동강 지류인 남강 물을 마시며 탄생했던 두 대기업이 2010년 5월의 녹음을 타고 녹색경영 레이스에 들어갔다. 둘은 말할 필요 없이 삼성과 LG다. 각각 23조원과 20조원을 녹색비즈에 쏟겠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잘 달려왔지만 10년 후 먹을거리를 마땅히 찾지 못해 그동안 머리를 긁적거려 온 두 골리앗이었다.
생물이든 기업이든 멸종이나 멸망에 항상 위기감을 느낀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현재와 같은 환경 파괴가 지속될 경우 결국 동식물들이 거의 멸종하고 인간만 남게 될 것이다”라고 지난 10일 케냐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세계 생물다양성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 36년간 동식물 31%가 멸종했다. 특히 열대지방이나 청정지역에서는 절반의 생물종이 멸종됐다고 한다. 조류의 멸종비율은 경악할 정도로 빠르다. 그러면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오염이 지구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는 지금 세계 기업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인류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사업은 기업의 사명이며, 또 젊고 유능한 인재를 많이 뽑아서 실업 해소에도 노력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현 주력제품이 10년 내 사라져 태양전지 등 미래 먹을거리 선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번에 삼성은 TV, 휴대전화 등 생활밀착형 사업 중심에서 바이오제약 등 환경·건강 사업 중심으로 변신을 꾀하는 구상을 내놓았다. 그룹의 새로운 먹을거리 마련에 본격적인 시동을 건 것이다. 다른 글로벌 기업들이 머뭇거릴 때 과감하게 투자해서 기회를 선점해야 한다는 판단에서 신사업 투자 계획을 밝혔다. 삼성그룹의 움직임이 구체화되면서 LG 등 다른 대기업들도 본격적인 신시장 선점 경쟁에 들어섰다.
기존 주력 제품은 사라진다는 소극적인 관망보단 변화가 없으면 퇴출당한다는 적극적인 사고를 하게 됐다. 삼성이 내놓은 신사업 계획은 향후 10년간 친환경과 건강증진 분야에 23.3조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구체적으로는 태양전지와 자동차용 전지, LED, 바이오 제약, 의료기기 등 5개 분야다. 이들 산업에서만 2020년까지 매출 50조원, 고용 4만5000명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번의 발표는 현재 주력 제품의 생사를 알 수 없다는 위기의식도 깔려 있다. 이 회장은 3월 말 경영복귀 시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 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제품들이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건희 회장의 '질(質) 경영'은 다른 회사보다 질 좋은 제품을 빨리 만들어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 요체였다. 질이라는 것은 '제품의 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삶의 질'을 의미한다. 환경보전과 인류의 건강 및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기업의 사명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녹색성장’이 ‘질과 양’을 의미한다면 그가 의미하는 질은 바로 ‘녹색’에 해당한다.
삼성의 신사업 내용에 바이오 제약과 의료기기 분야가 포함된 점은 특이하다. 기존 사업과 연관성이 비교적 적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삼성은 바이오 제약과 의료기기 사업에 각각 2.1조원, 1.2조원을 투자해 2020년까지 총 11.8조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특히 바이오 제약 분야의 경우 삼성은 수년 내 특허가 만료되는 바이오시밀러에 투자를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삼성전자가 바이오시밀러 관련 국책과제를 수행하고 있고, 몇몇 바이오업체와의 협력도 검토해온 상태다. 단백질 치료제의 특허기간이 내년부터 속속 끝나 새로운 사업기회가 생겨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2012~2015년 만들어질 바이오시밀러 시장 규모가 약 350억 달러(약 4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의료기기 사업에선 혈액검사기 등 체외진단 분야부터 진출해 2020년에는 매출 10조원을 달성하고, 고용인원만 9500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이 체외진단 분야를 신사업으로 꼽은 것은 이 분야의 시장성이 향후 급격히 확대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현재의 의료시스템이 조기진단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만큼 삼성이 갖고 있는 정보기술(IT)과 나노기술을 이용하면 각종 난치성 질환의 조기진단에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깔려 있다.
삼성의 바이오 부문 투자계획에 대해 글로벌 제약 기업의 탄생 기대감과 함께 우려도 제기된다. 삼성이 노하우가 별로 없고 투자 규모도 다국적 제약사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서 세계 바이오시밀러 시장의 틈새를 파고들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후발주자인 삼성이 다국적 제약사와 경쟁하려면 아주 뛰어난 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신사업 영역이 경쟁사인 LG그룹이 이미 친환경 분야에 2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사업영역과 대부분 겹치는 점이 관심거리라는 것이다. 두 그룹이 대규모 투자를 통해 해당 사업을 일정 궤도에 올려놓겠다고 공언한 시한도 2020년으로 똑같다.
이에 앞서 LG는 2020년까지 '그린경영'에 20조원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LG 구본무 회장을 비롯한 최고경영진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사장단협의회를 통해 그린경영 전략인 ‘Green 2020’을 확정했다. 그린경영 투자를 바탕으로 3대 전략과제인 그린 사업장 조성, 그린 신제품 확대 및 그린 신사업 강화를 추진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우선 LG는 2020년까지 그린 신제품 개발 및 신사업 발굴 등 그린사업 R&D에 10조원, 제조공정의 그린화 및 그린 신사업 설비 구축 등 관련 설비투자에 10조원을 각각 투자키로 했다. 그린 신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2020년에는 그룹 전체 매출의 10%를 태양전지, 차세대조명, 차세대전지 등 그린 신사업 분야에서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두 그룹 간엔 우선 태양전지와 자동차용 전지에서 각축을 벌이게 된다. 태양전지에서는 LG전자가 한걸음 앞서 있다. LG전자는 구미사업장에서 연간 120MW급 결정형 태양전지라인을 구축하고 올 초부터 양산에 들어가 있다. 여기에 내년까지 2라인을 추가로 만들어 가동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결정형을 시작으로 이후 박막형 태양전지 라인을 구축한다는 계획이고, 2020년까지 6조원을 투자해 매출 10조원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LG전자도 박막형 태양전지의 파일럿라인을 가동 중으로 올해 말까지 박막형 태양전지를 양산할 구상이다.
자동차용 전지 분야의 경쟁은 더 뜨겁다. 삼성SDI와 LG화학이 두 그룹의 전담 주자이다. 삼성은 BMW와 미국 델파이 등에 납품할 계획이고, 또 독일 보쉬가 투자한 삼성계열사를 통해 남품선을 확보했다. 반면 LG화학은 제너럴모터스의 시보레 브랜드 전기차 ‘볼트’에 전지를 납품할 계획이고, 또 중국 장안기차와도 제휴관계를 맺고 중국시장 진출도 계획하고 있다.
LED조명사업에서도 LG전자와 삼성LED가 맞붙게 되고, 삼성전자와 삼성의료원이 신수종사업으로 설정해 투자할 계획인 바이오복제약과 의료기기 분야에서도 LG와의 경쟁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LG생명과학은 복제약을 포함한 신약개발의 연혁이 이미 오래됐고, 의료기기분야는 LG전자가 헬스케어 사업으로 적극적인 진출에 나서고 있다. LG전자는 원격진료와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마트 케어'의 시범사업을 위해 지난 3월 대구시와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4월에는 세브란스병원과 의료기 개발연구 등을 위해 손을 잡았다.
삼성의 지휘자가 다른 글로벌 기업들이 머뭇거릴 때 과감하게 투자해 기회를 선점하라고 주문한 이면에는 그만큼 삼성이 과감히 투자해오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배어 있었다. 삼성을 대표하는 제품이 10년 후에는 모두 사라질지 모르므로 신사업 발굴에 대한 강한의지를 드러내 보인 현상이다. 그러면서 현실성 있는 사업에서 시작할 것을 주문한다. 결국 삼성과 LG가 10년 뒤 미래 먹을거리를 놓고 대면하고 있는 셈인데 LG가‘그린 2020’ 비전으로 치고나가자 삼성이 ‘5대 신수종사업’으로 맞받은 모양새가 됐다. 사업영역이 상당부분 겹치면서 두 그룹은 10년 후를 놓고도 사업판도를 바꾸는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할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 규제, 탄소세 부과 등 환경 규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미래의 경쟁 지도가 바뀌고 있다.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기업들은 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 스마트 시티 등 친환경과 개발이익을 조화시킬 수 있는 신사업 기회도 무궁무진하다.
미국의 배터리 회사 베터플레이스는 탈착식 배터리를 개발해 ‘배터리 임차’라는 사업 모델을 도입해 전기차 가격 장벽을 해소해나가고 있다. 자동차 소유자가 배터리를 임차하고, 운행 거리에 따라 사용료를 지불하는 방식이다. 배터리를 구매하지 않고 임차하기 때문에 자동차 가격은 그만큼 낮아지게 된다.
중국은 정부 주도로 톈진에 에코시티라는 친환경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개발이익도 동시에 추구하는 사업모델에서 환경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았다. 주민의 90% 이상이 대중교통 수단에 의존하고,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하며, 마실 물도 하수를 재생하거나 바닷물을 담수화해 자급자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도시는 첨단기술을 총동원한 완벽한 환경보호 및 자원재활용 도시로 건설되며 중국은 이곳을 미래 도시 모델로 만들 계획이다.
향후 전기자동차가 상용화될 때 충전식, 혹은 탈착식 배터리 자동차 중 어느 것이 주역이 될지 지켜볼 만하다. 베터플레이스와 에코시티의 사례를 볼 때, 효과적인 녹색성장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단편적인 기술 개발이 아니라 사업모델의 근본적 혁신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종합적인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탄소세 부과 등 환경규제가 미래의 경쟁지도를 바꾸고 있다. 미국 컨설팅 회사에 따르면 미국이 이산화탄소 톤당 60달러의 탄소세를 부과할 경우 주요 전력 업체 간에 최대 90%의 원가 차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다. 영국에서는 개별 소비자 단위의 탄소배출권 규제까지 추진하고 있다.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이나 자동차회사가 아니더라도 환경 규제의 영향과 소비자 인식의 변화를 피해갈 수는 없다. 반면 신재생에너지, 스마트시티 같은 신사업 기회도 무궁무진하다. 빠른 시장 진입과 특화된 전략으로 게임의 룰을 바꿀 기회가 얼마든지 열려 있다.
포스코는 에너지 회수와 부생가스 활용 등 에너지 소비감축 공정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청정 석탄 기술은 저렴한 석탄을 원료로 합성천연가스를 만드는 기술로서 에너지 비용 절감과 신수익원 창출의 일거양득 효과를 노리고 있다. 계열사인 포스코파워는가 국내 발전용 연료전지사업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종합적 솔루션 개념의 일환이다.
정유업체들은 친환경 열풍에 가장 배타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지만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읽고 이에 적응하기 위해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화학업종은 공정상의 개선을 통한 탄소배출권거래에 매우 유리하므로 CDM 사업의 활용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전자업계에서는 그린IT 기술을 통해 소비전력을 절감하고 탄소배출을 감축할 수 있다. 완성차업계는 하이브리드, 수소연료전지 등의 개발로 시장점유율을 높이고자 노력한다. 정부의 그린정책과 기업의 기술개발이 뒷받침된다면 그린 코리아의 위상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액체 샴푸를 고체 샴푸로 바꿔 포장을 최소화하고 운송비를 1/15로 줄이는 회사도 있다. 고양꽃박람회는 지하철 이용자에게 입장료를 할인해줬다. 춤추는 사람들이 바닥을 두드리는 에너지를 이용해 전력의 60%를 공급받는 나이트클럽도 인기를 얻었다. 모두가 탄소배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게임의 룰을 바꿔나간다. 이러한 룰은 이미 우리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녹색사업은 성격상 사태 관망의 ‘규칙준수 기업’보다 게임의 룰을 바꾸는 ‘시장선도 기업’이 되겠다는 접근이 필요하다. 기존 사업과 특성이 다르다고 해서 녹색 신사업 추진을 머뭇거릴 게 아니다. 필요시 협업 추진도 검토해야 한다. 핵심 기술을 보유한 해외 업체와 제휴함으로써 연구개발비용을 절약하고 시장 적기 진출 효과를 톡톡히 누릴 뿐만 아니라 대량생산체제를 갖출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 사업모델로 수직 통합형이냐 전문 기업형의 선택과 절충은 기업 특성에 따라 선택할 문제다.
한국의 대기업은 이제 효율향상과 품질개선만으로는 성장의 한계가 있음을 깨달은 것 같다.더 독특하고 가치 있는 성장 가능성의 인식과 더불어 녹색경영을 통한 비용 절감이나 차별화, 집중화를 시도하는 것이 미래 먹을거리를 만드는 길이다. 강화될 환경 규제에 대비해 주력 사업의 경영체제를 정비하고, 기존 핵심 역량의 활용이나 협업을 통해 녹색 신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현명한 방향이다.
그린닥 johnyksu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