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동물원, 사람의 동물원
겨울이 물러간 자리, 봄이 살며시 스며들었다. 차가운 바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포근한 햇살이 거리를 감싼다. 오늘은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다. 나를 멀리서 찾아온 손님과 함께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브롱스 동물원이 생각났다. 자연의 숨결이 가득할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전철에서 내려 동물원으로 향하는 길. 제일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은 작은 폭포였다. 겨울의 침묵을 깨고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마치 봄의 전령처럼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물은 추위에 얼었던 시간을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춤추듯 내려갔다. 그 아래서 나도 모르게 숨을 고르며, 오랜만에 맞이하는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가벼운 춤을 추듯 경쾌했다. 동물원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봄날의 생기가 점점 진해졌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새들의 지저귐, 그리고 공기를 감싸는 풀내음이 도시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공기를 가볍게 흔들었다.
동물원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낙타 두 마리가 보였다. 따스한 햇살 아래, 낙타들은 한가롭게 되새김질을 하며 우리를 맞이했다. 겨울 동안 움츠렸던 몸을 풀어내는 듯, 그 모습이 평화로웠다. 한 마리가 고개를 들어 우리를 바라보는 눈빛에선 익숙한 위안이 묻어났다. 한 걸음 더 나아가니 버팔로들이 땅을 헤집고 있었다. 새로 돋아난 풀뿌리를 찾아 흙을 파헤치는 모습이 정겹고도 애틋했다. 겨울의 무게를 견딘 땅이 이제야 생명을 내어주고 있었다.
사슴들의 우리 앞에선 한 연인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호랑이 우리로 향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유리 너머로 누워 있는 호랑이는 햇살을 받으며 느긋하게 배를 드러내고 있었다. “저렇게 큰 고양이도 따스한 날씨를 좋아하는구나.” 할머니의 중얼거림에 주변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그 순간, 나는 동물원이 단지 동물을 구경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이 잠시 마주하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그 호랑이도 봄볕 아래에서는 다르지 않다는 것. 호랑이의 느긋한 태도와 사람들의 미소가 묘하게 어우러져 마음이 따뜻해졌다.
동물원 곳곳에는 봄이 피어 있었다. 앙상했던 나뭇가지에는 연초록 새싹이 돋아나고, 다양한 새들이 지저귀며 봄을 노래하고 있었다. 인간의 손길로 조성된 인공 서식지에서나마 새들은 여전히 자신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노랫소리인지, 자유를 갈망하는 울음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소리에 마음이 묘하게 아려왔다. 새장에서는 온갖 새들이 화려한 깃털을 부풀리며 노래했다. 그 소리는 마치 봄을 축복하는 합창 같았다. 하지만 우리 속에 갇힌 그들의 날갯짓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찡해졌다. 그래도 오늘만은 그들의 노래를, 봄과 함께하는 순간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북이와 오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봄을 맞아 활력을 되찾은 듯한 모습이었다. 물 위에 비친 하늘은 더욱 푸르렀고, 그들 역시 계절의 변화를 축하하는 듯했다. 동물원 안의 모든 것들이 겨우내 잠들었던 생기를 되찾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동물원은 동물을 가두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풀어주는 곳이 아닐까.
오후 네 시 반, 동물원은 문을 닫을 준비를 했다. 동물들도 하나둘씩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햇살 속에서 꿈틀거리는 생명들을 뒤로 한 채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돌아오는 길에 어디선가 앵무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다음에 또 와”라며 인사하는 듯했다.
봄날의 동물원은 단지 동물을 구경하는 곳이 아니었다.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져 서로를 느끼고, 잠시나마 도시의 무게를 내려놓는 곳이었다. 어쩌면 동물원은 사람과 동물이 서로의 자유를 꿈꾸며 마주하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겨울의 굴레를 벗어나 봄바람과 함께 흩날리는 그 생기 속에서, 나 역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봄은 모든 것을 깨운다. 동물도, 사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