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7일 만에 끝난 야권연대의 허황된 꿈
- 한EU FTA 비준처리에서 차이가 극명하게 확인되다!
허 영 구
노무현 정권 초기인 2003년부터 적극적으로 추진된 FTA는 이명박 정권 들어서도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체제를 유지하면서 지속되었다. FTA는 자유무역의 기본인 상품에 대한 관세철폐를 넘어 서비스, 투자, 정부조달, 지적재산권, 기술표준 등 분야를 대상으로 한다. 정부는 관변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을 통해 한‧미FTA를 추진하면 GDP가 6% 성장하고, 한‧EU FTA는 5.62% 성장한다고 발표했다(통계는 수시로 바뀌었기 때문에 일정하지 않음).
그러나 정부의 FTA로 인한 경제성장 예측은 생산성 증대모형을 잘못 설정했고 생산성 증대효과를 중복 추계했다. 정부 보고서 스스로 "경제모형에 기초하여 수치화된 경제적 효과분석 결과는 분석모형과 분석과정에 사용된 다양한 가정과 그것이 지니는 한계를 감안할 때 수치 자체에 의미를 두기 보다는 그 방향성과 정책 사이의 상대적 효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언급했다.
통상관련학자들이 같은 국제표준모델을 이용한 분석을 보면 예상 성장률은 한‧미FTA에서 0.08%, 한‧EUFTA에서 0.14%로 나타났다. 수십만 개 일자리가 증가한다고 했지만 이 역시 가능성이 없다. 무역흑자는 오히려 자신들의 연구결과에서도 적자로 나오자 대외비로 처리했다.
한‧EU FTA가 추진되면 관세철폐로 인한 세수는 10년 간 연평균 1.7조 원 줄어들지만 생산성 증대로 인한 세수는 3.9조 원 늘어나 2.2조 원의 세수증대효과가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GDP 5.62% 증가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0.14%증가를 가정하면 세수는 오히려 줄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TA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대세이기 때문에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노무현‧이명박 정권으로 이어지는 통상교섭본부의 강변이다.
민주당은 반MB 야4당 정책합의를 통한 후보단일화로 4.27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를 발판으로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해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역시 진보대통합을 통해 민주당과 정책연대와 선거연합을 잘하면 내년총선에서 국회의석수도 늘리고 대선에서 정권교체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그 꿈은 딱 7일 만에 끝났다. 일주일도 내다보지 못하는 정치세력이 국가권력 운운한 것 자체가 안타까울 지경이다.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야4당 대표들은 정책연대에 서명했다. 물론 철저한 재검증 없이는 한‧EU FTA를 절대로 비준하지 않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선거가 끝난 지 5일 만인 5월 2일 민주당은 한나라당, 정부 3자 밀실합의로 비준 처리키로 결정했다. 이는 당연한 결과다. 그 동안 민주당 당론은 '4월에는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면서 재‧보궐선거에 진보정당들을 철저하게 이용했다. 진보정당들의 입장에서는 철저하게 속은 셈이다.
5월 3일 국회 한미FTA전면폐지를 위한 국회의원 비상시국회의와 FTA범국민운동본부 등은 국회 본청 앞에서 규탄기자회견을 열 계획이었다. 그러나 국회는 경호권을 발동하여 기자회견장을 방해했다. 이날 저녁부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국회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민주당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5월 4일 민주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내부 논란을 거치며 부산하게 움직였다. 한나라당과의 합의를 번복하면서 본회의와 비준처리 연기를 요청했다. 한나라당은 이를 거부하고 무조건 처리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저녁이 되면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국회의원 7명이 외롭게 국회의장석을 점거했다.
저녁 9시 20분부터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들어왔다. 9시 55분 박희태 국회의장이 의장석으로 올라갔다. 그 때부터 7명의 국회의원들은 경위들에 의해 단상 밑으로 끌려 내려졌다. 이 시간에 민주당 의원들은 의원총회를 해산하고 국회를 빠져나갔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본회의장에 입장, 반대토론을 하고 퇴장 또는 표결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불참키로 했다"면서 "하지만 실력저지에 나서자는 의원은 한 명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렇게 한‧EU FTA협상과 타결 그리고 비준되었고 오는 7월 1일 잠정발효를 앞두게 됐다. 한‧EU FTA는 노무현 정권이 2007년 5월 협상을 시작하여 이명박 정권이 2009년 7월에 타결했으며 2010년 10월 공식 서명했다. 그리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합작으로 비준에 이르렀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을 배려해 '기업형 슈퍼마켓(SSM)규제법 개정안'과 'FTA 농어업인 지원특별법안'은 의결하지 않고 추후로 미뤘다. 한‧EU FTA문제는 마치 중소상인과 농업에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FTA는 신자유주의 종합판이고 따라서 모든 분야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조차도 위의 두 가지 얘기만 되풀이했다. 정당차원에서 한EU FTA 내용조차 숙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전문통상관료들의 일방적 독주를 막아낼 수 없었다.
한‧EU FTA는 한‧미 FTA보다 더 많은 독소조항을 가지고 있다. 지난 4월 7일 국회에서 열린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와 한‧미FTA전면폐기를 위한 국회의원 비상시국회의 대표단 연석회의에 제출된 <한EU FTA 10대 분야 30대 검증 쟁점>을 보면 그 피해 범위가 광범위하고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지난 4년 동안 통상관료 마음대로 만들어 온 한‧EU FTA 협정문이다. 주요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o. 통상교섭본부장과 EU집행위원회 위원으로 무역위원회를 구성하여 모든 권한 행사함으로써 국회조차 무시하는 통상교섭본부의 거대 권력기관화를 초래한다.
o. 기업형 슈퍼(SSM)를 규제하는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에 관한 법(상생법)이 무력화된다.
o. 전기담요, 전기다리미, 전선, 퓨즈 등 안전인증기관의 정기 검사 규제를 사실상 폐지함으로써 서민안전 위협한다.
o. 자동차 안전기준을 침해한다.
o. 친환경급식을 국내농산물로만 한정할 수 없게 된다.
o. 유럽산 소고기 광우병 검역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o.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위협한다.
o. 파생금융상품을 규제할 수 없다.
o. 외환위기 시 유럽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권이 약화된다. 외국인 투자는 2008년 기준으로 미국 13.2억 달러에 비해 유럽이 5배에 달하는 63.3억 달러다.
o. 기반통신시설 투자에 대한 공익성 심사권을 침해한다.
o. 우체국의 공익서비스 기능을 축소한다.
o.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 폐수배출 시설 진입규제 등이 약화된다.
o. WTO 가입 시 인정받은 농산물 관세 보호 틀이 무력화된다.
o. 특허권, 상표권, 저작권, 지적재산권 등 재산권이 과잉보호된다.
o. 화학물질 규제, 반덤핑 장벽, 관세환급, 인증수출자제도 등 EU의 일방주의 장벽을 담고 있다.
출처 : 딱 7일 만에 끝난 야권연대의 허황된 꿈 - 오마이뉴스(201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