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AC/DC's Hell’s Bells
경기는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다. 팀은 간신히 앞서있는 상황이지만 선발 투수는 6회를 마치고 대타로 교체가 되었으며 믿었던 중간 계투들은 역전 주자까지 루 상에 내보낸 상태이다. 이 때 감독이 마운드로 걸어 나오고 중간 계투에게 공을 받아 든다. 그리고 불펜에서 한 투수가 걸어 나온다. 6 피트의(180cm) 비교적 단신이지만 강인한 체격을 가졌으며 꽉 다문 턱은 어떤 결연한 의지까지 보인다. 그리고 그의 눈빛은 매우 강렬하다. 이 때 장내 아나운서가 투수를 이렇게 소개한다.
“ Hell’s bells are ringing! It’s Trevor time!!” 그 순간 AC/DC의 강력한 메탈인 Hell’s bells이 구장 내에 울려 퍼지고 San Diego 팬들은 이미 승리를 거둔 양 춤을 추며 기뻐한다.
Mr. Freezer, Trevor Hoffman의 등장은 이런 식이다. 그의 등장은 샌디에고 팬들에게는 일종의 이벤트이자 승리를 굳히는 방정식이다. 투수의 역할 분업이 이루어진 것은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다. 불과 이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투수의 역할 분담이라는 개념조차 없었으며 투수들은 선발 마무리 가릴 것이 없이 마구 나와 던지곤 하였다. 하지만 투수의 역할 분담과 선수 생명에 대한 자세한 연구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으며 무엇보다도 팀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 지면서 최근 모든 야구 경기에서는 역할 분담 투수 운용이 이루어 지고 있다.
물론 선발 투수들은 게임을 이끌어 나가야 하므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게임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중간 계투나 마무리도 역시 그 중요함에 있어 다른 의미를 갖는다. 선발은 자신의 등판일에 맞추어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중간 계투나 마무리는 언제 자신이 등판할지 모르며 따라서 162경기 내내 항상 대기 상태로 있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마무리의 경우 위기의 순간에 등판하는 경우가 많으며 우리가 다져스를 보며 언제나 안타까워 하듯이 강력한 마무리 능력을 가진 투수를 보유하고 있는 팀이 클러치 상황에서 강하다. 즉, 팀의 승리와 연결이 된다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 특히 야구는 항상 변하는 운동이다. 데이터도 변하고 타자에 따라 수비 위치도 변하고 던지는 공도 변화를 한다. 게다가 포지션에 대한 변화도 일어난다. 만일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야구였다면 우리는 현재 가장 게임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마무리 투수중의 한 명인 Trevor William Hoffman을 보지 못 했을 수도 있다.
그는 대학 시절만 하더라도 재능 있는 내야수 였다. 여기서 딱히 특정 포지션을 얘기하지 않고 내야수라고 표현한 것은 그가 특정 포지션에 얽매이지 않고 2루, 삼루, 유격수를 했기 때문이다. 타격 역시 그렇게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둔 것은 아니며 적어도 3할대 초반의 타격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89년 드래프트에서 11번째로 신시내티에 지명을 받았다. 물론 내야수로서 드래프트 되었다.
하지만 91년, 플로리다로 옮긴 호프만은 투수로서의 야구 인생을 다시 시작하였다. 그의 투수로서의 성적, 중간 계투나 혹은 간간히 마무리로 나와 던진 그의 성적이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93년 플로리다에서 정 반대면에 위치한 샌디에고로 트레이드 되고 만다. 그리고 그는 이 곳 샌디에고에서 자신을 폭발 시키고 만다.
호프만은 9 살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얘기를 들어 보면 원래부터 투수를 하려 했으나 내야수를 했던 것 같다. 리틀 리그에서는 투수를 했었는데 12살 때부터 선수의 어깨를 보호하기 위해 공을 던지지 않게 하는 팀의 규정 상 투수로서의 훈련을 중단하였다고 한다(무슨 대회만 되면 예선부터 결승까지 연투로 혹사를 당하는 우리 나라 어린 투수들이 생각이 난다 -_-)
하지만 그에 대한 파드레스 팀의 계획은 선발이었다. 하지만 호프만은 자신이 선발 체질이 아닌 것을 이미 알았던 것 같다. 그는 팀에 자신이 중간 계투로서 알맞은 선수라고 예기를 했으며 팀은 이것을 받아 들여 그를 중간 계투로 성장을 시켰다.
그의 폭발 시즌은 95년이 기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그 해 31개의 세이브를 기록하였다. 그 이듬해 그는 43개의 세이브를 기록하면서 파드레스의 세이브 기록을 갈아 치웠으며 Sporting New에 의해 National league fire man으로 선정이 되었다.
97년의 세이브 기록은 약간의 하락세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의 삼진 비율은 오히려 늘었으며 81.3이닝동안 111 삼진을 뽑아 내었다. 마찬가지로 97년 그는 파드레스가 기록한 76 승 중 43 승을 마무리로서 게임을 마무리 하였다.
그리고 98년이 되었다. 그 해는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해이며 그가 원하는 바 즉, 게임을 마무리하는 것과 적어도 게임을 리드하고 있는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임무를 충실히 이루었다. 그는 54 세이브 찬스에서 53세이브를 거두었으며 이 기록은 단일 시즌 50세이브 이상의 성적의 기록은 메이져리그 역사상 단지 5명만의 투수가 가지고 있는 기록이다. 또한 그가 거둔 53세이브는 역사상 2번째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98시즌 잦은 등판(66회)에도 불구하고 그의 방어율은 단지 1.48에 불과했으며 더군다나 97년 9월부터 98년 7월까지 41세이브 연속 성공의 기록을 달성했다. 그리고 그는 이해 팀을 월드 시리즈까지 이끌었다. 또한 호프만 그의 개인적인 성적으로도 Tom Glavine에 이어 Cy Young award에 2위의 득표를 얻었으며 MVP 투표에서도 7위에 해당하는 득표를 했다.
그의 통산 세이브 율인 .870 (188 saves / 216 save opportunities)은 역대 최고의 성적이다. 물론 타이 성적이기는(Tom Henke) 하지만 .870의 save conversion rate 는 대단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엄청난 성적을 거두게 한 그의 공은 우리가 흔히 면도날 패스트볼이라고 부르는 90마일 중반대의 패스트볼이 있으며 그 유명한 deadly drop change up이 있다. 이 두 가지 공의 조합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위력적인 투구를 할 수 있으며 게다가 이따금씩 던지는 날카로운 슬라이더는 타자의 계산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호프만의 투구에 있어 또 한가지 특징적인 것은 그의 뚝 떨어지는 첸졉과 더불어 홈 플레이트의 바깥쪽을 잘 이용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상대 타자로 하여금 히팅 존을 좁히는 효과를 가져오게 할 수도 있지만 호프만의 영리한 투구는 다시 안쪽을 찌름으로 타자가 히팅 존을 좁히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의 바깥쪽 투구는 적어도 큰 것을 맞아 대량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지는 않으며 또한 위력적인 투구이기 때문에 안쪽을 노려 공을 때려 낸다고 하더라도 단지 내야볼에 불과한 히팅을 유도하는 능력이 있다.
더욱 그가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근거로는 그가 후반기 성적이 전반기 성적보다 좋다는 것이다. 이 의미는 어떻게 보면 슬로우 스타터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나 전반기 성적 자체로만은 적어도 그가 슬로우 스타터라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2점대 초반 방어율을 기록하는 슬로우 스타터를 보았는가? 1할대 후반부의 피안타율을 기록하는 슬로우 스타터를 보았는가?-_-) 그렇다면 그 의미는 그가 후반부 위기의 상황에 매우 집중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98 시즌의 성적을 보면 그가 후반부 30 세이브를 거둔 경기에서 그의 피안타율은 단지 .076에 불과 했으며 9 이닝 동안 11개의 SO를 잡을 수 있는 성적을 기록하였다. 99시즌 역시 후반부 경기의 피안타율은 단지 .129에 불과했다. 이러한 후반부 팀의 위기 상황에 빛을 발하는 투구는 그의 가치를 더욱 올려 놓을 뿐만 아니라 선발 투수로 하여금 편안하게 경기를 이끌어 나가게 할 수 있는 뒷받침이 된다. 타자들 물론 어느 정도 점수를 뽑으면 뒷문 단속을 맡아서 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집중력은 95년 이후 현재 01시즌까지 연속으로 30세이브 이상을 기록할 수 있는 원천이 되고 있다.(94년 20세이브)
53세이브를 기록한 98년 그는 중견수 스티브 핀리(아리조나), 우익수 토니 그윈(샌디에고, 은퇴예정), 3루수 켄 케미니티(아틀란타), 마크 스위니(캔자스), 존 반더 발(샌프란시스코), 그렉 본(템파)의 야수진과 케빈 브라운(엘에이), 스털링 히치콕(뉴욕), 앤디 애쉬비(엘에이)의 투수진을 이끌고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게 된다. 당시 NLDS에서는 휴스턴과 샌디에고가 맞붙었으며 1,3,4 차전에서는 1점차의 리드를 지켜내는 세이브를 거두고 NLCS에 오르게 된다. 이 경기에서 그는 한 점도 내주지 않는 철벽 마무리로서의 위용을 자랑한다. 그리고 케빈 브라운은 랜지 존슨과 마이크 햄튼을 상대로 단 한 점만을 내주는 피칭을 해 내었다. NLCS의 상대는 아틀란타였는데 많은 이의 예상을 뒤집고 애쉬비와 브라운이 스몰츠와 당시 Cy Young awardee였던 글래빈을 제압한다. 일 차전 한 점차의 상황에 호프만은 다시 등장하여 팀을 지켜 내었다. 케빈 브라운은 톰 글래빈을 상대로 한점도 내주지 않고 완봉을 해 버리는 기염을 토해 내었다. 3차전은 손에 담을 쥐게 하는 경기 였는데 한 점 뒤지고 있던 샌디에고가 중반부에 매덕스를 상대로 2점을 뽑아서 리드를 잡았으나 8회에 이사 후 주자 만루 상황의 위기를 맞게 된다. 그리고 이 순간 호프만은 다시 등장하여 타자인 하비 로페즈를 삼진으로 돌려 세우고 경기를 마무리 하게 된다. 그리고 아틀란타는 맥 없이 무너지며 샌디에고가 월드 시리즈로 올라가는 징검 다리 역할을 해준다.
너무나도 쉽게 올라간 월드 시리즈의 상대는 포스트 시즌 무적 양키스였다. 샌디에고 타선도 데이빗 웰스와 엘 듀케를 상대로 선전을 했지만 중간 계투진이 무너지면서 리드를 유지지 못 하고 1,2차전을 내주게 된다. 그리고 운명의 3차전 장소는 샌디에고의 홈인 Qualcomm stadium으로 장소를 옮겼다. 선발은 양키스의 데이빗 콘과 샌디에고의 스컬링 히치콕, 투수전의 양상을 띠며 경기가 흘러가던 중 샌디에고 타선이 폭발하며 6회에 대거 3점을 먼저 뽑는다. 하지만 7회에 샌디에고 중간 계투진은 다시 2점을 내주게 되고 한 점차 리드를 한 채로 8회를 맞게 된다. 다시 한 번 2명의 주자를 내보내게 되고 타석에는 스캇 브로셔스가 등장하였다. 이 순간 퀄컴 스태디움에서는 Hell’s Bells가 울려 퍼지게 되고 샌디에고 팬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하는 듯 환호성과 춤과 함께 호프만의 등장을 환영했다. 하지만 호프만은 그 누구도 생각하지도 못 했던 역전 스리런 홈런을 브로셔스에게 맞게 되고 라미로 멘도자, 마리아노 리베라에 막힌 타선은 그대로 경기를 내어 주게 되었다. 4차전 역시 마찬가지 상황으로 중간 계투진이 무너진 샌디에고는 제프 낼슨, 마리아노 리베라에게 막혀 경기를 헌납하고 4-0 스윕으로 월드 시리즈를 양키스에게 내어 주었다.
시즌과 포스트 시즌을 마친 후 샌디에고는 그들의 중심 선수들을 모두 내어 팔았다(앞서 소개한 선수들을 모두 팔았다. 스털링 히치콕은 부상으로 빼고). 하지만 두 선수만은 내어 팔지 않았는데 한 명은 타격 신 토니 그윈이며 또 다른 한 명은 불펜의 든든한 기둥 호프만이었다. 샌디에고는 그들의 투수진이 강해지기를 원했고 호프만이 그 자리를 지켜 주기를 바랬으며 호프만이 팀이 원할 떄 언제든지 등판해 주기를 바랬다. 그리고 트레버 호프만은 2003년까지 연간 800만 달러에 4년간 계약을 연장 하였다. 이 것은 그 당시 중간 계투 요원이나 마무리 투수로서는 최고의 연봉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연장이 그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만은 아니다. 우선은 샌디에고의 마무리 투수 운용은 호프만에게 혹사를 강요했다. 따라서 그는 8회부터 나와 던질 때도 있으며 심지어 50여개 가까운 공을 던지기도 했다. 이것은 그에게 비교적 큰 데미지를 안겨 주었는데 불규칙적인 등판은 그의 부상 확률이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가 납득이 가는 이유는 그의 성적이 00년 성적이 99년 성적에 비해 비교적 떨어진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혹시 그에게 부상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또한 그의 성적이 지난 년도에 비해 오른 수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그래도 역시 dominating closer다 -_-; 01년 성적은 2점대 후반의 방어율에 43개 세이브, 2할 못 미치는 피안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99년 그의 신장 이상에 따른 수술로(하나의 신장을 절개) 인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본인은 아무런 지장이 없이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개인이 아니라 운동을 하는 선수이기에 그러한 수술은 그의 성적에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도, 그리고 앞으로 그가 FA로 풀리는 2003년까지도 그가 리그를 대표하는 마무리로서 손색이 없다고 확신을 하는 이유는 그의 mental ability에 있다. 물론 mental ability를 수치를 나타낼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 보면 그의 건전한 정신과 희생 정신 그리고 이겨야 하겠다는 투지를 읽을 수 있다. 몇 가지 인터뷰를 소개를 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 날 어떤 타자에게 어떤 공을 던질 것인지를 미리 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게임 중에 그의 약점을 파악하고 그가 오늘 가지고 있는 약점을 주로 공략한다. 또한 나의 투구도 마찬가지여서 딱히 어떤 공을 던지겠다고 고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 손에 가장 잘 잡히는 공을 승부구로 삼는다”
“나는 항상 지난 번 대결에서 어떤 타자에게 어떤 공을 공략했는지를 기록하고 기억한다. 따라서 타자가 나오는 경우 그것을 항상 되떠올리며 승부를 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나의 95마일짜리 패스트볼을 기대하지만 투구에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location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며 또한 어려운 코스로 넣기 위해 노력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모든 경기에 집중을 하여 꾸준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내가 50개 가까운 공을 던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케빈 브라운의 투구에 비하면 아주 미약한 것이다. 따라서 나는 그를 존경한다. 연투를 하든 혹은 나의 투구수가 많던 나는 나의 일에 충실할 뿐이다.”
“나는 우리 팀에서의 나의 역할을 생각해 본다면 큰 배의 단지 지나가는 미풍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내가 바라는 바는 이 미풍을 받아 우리 배가 조금이라도 나갈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8월에 호프만은 300세이브 클럽에 가입을 하였다. 300 세이브 이상의 기록을 거둔 선수들은 다음과 같다.
name | saves |
Lee Smith | 478 |
John Franco | 422 |
Dennis Eckersly | 390 |
Jeff Reardon | 367 |
Randy Myers | 347 |
Rollie Fingers | 341 |
John Wettland | 340 |
Ricky Aguilera | 318 |
Tom Henke | 311 |
Rich Gossage | 310 |
Jeff Montgomery | 304 |
Doug Jones | 303 |
Trevor Hoffman | 300 |
Bruce Sutter | 300 |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그의 세이브 기록은 적어도 400개 정도는 할 수있지 않을까 한다. 그가 경신해야 할 세이브 기록들이다.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며 그에 관해 잡다한 것을 밝힌다. 그는 99년 신장 적출 이후 세이브 한 개를 거둘 때마다 200dollar씩을 The National Kidney Foundation of Southern California에 기부를 하고 있다. 또한 그는 샌디에고 지역의 어린이들을 위한 신장 기금의 대변인 역을 맡고 있다.
“나는 내가 얼마나 행운을 가졌는가에 대해 언제나 생각을 한다. 비록 나는 단 한 개만의 신장을 가졌지만 여전히 운동을 하고 있으며 경기에 출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좋은 의사와 병원을 만나 어려운 수술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내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한까지,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다른 사람들을 항상 생각하겠다.”
그리고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이며 그도 역시 그의 등장할 때 스이는 Hell's bells는 사실 그가 고른 것은 아니다^^그리고 사진은 지역 사회에 많은 활동을 학 있는 Dave Winfield이다. 그가 명예 전당 헌액 기념 연설을 컬퀌 스태디움에서 하고 있다.
글을 마치며 잠깐 횡수를 하겠다.^^박찬호 선수가 드디어 언론의 구설수에 올랐다. 개인적으로 박찬호 선수가 욕을 했던 혹은 기자가 박찬호 선수를 기분 나쁘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신문에 밝힐 수 없는 사람에 대해 불공정한 마녀 사냥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문 기자들이야 마음만 먹으면 누구의 얘기라도 신문에 올릴 수 있지만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밝히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가? 우리가 누구를 욕하기 전에 이런 불공정한 싸움을 별로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마저 그에 대해 등을 돌린다면 수많은 미국인들 사이의 박찬호 선수가 누구에게 의지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내가 얘기하는 우리에는 박찬호 선수를 사랑하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박찬호 선수에 대해 보도하는 언론도 포함되어 있는 넓은 의미이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박찬호 선수에 대해 애정을 주어야 하고 격려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엘에이 지역 언론들이 박찬호 선수의 몸 값을 깍아 보려고 안달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 우리마저 동조를 해야 하는가?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 누구도 잘못했다고 정죄할 수 있는 권리는 아무도 가지지 못한다. 단지 이해가 안타깝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것은 우리는 언론의 너무나 속이 뻔히 보이는 술수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 언론은 이번 사건이 커지고 많은 사람들이 이번 헤프닝에 관심을 보여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이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고 있을 테니까. 헤프닝은 헤프닝이다. 박찬호 선수도 자기의 입을 가지고 욕 할 수 있다. 박찬호 선수도 화장실 가고 밥 먹고 트림도 한다. 언론의 너무나도 뻔히 보이는 술수도 속셈은 너무나도 비겁하고 졸렬하다.
따라서 우리는 언론이 무엇이고 하든 흔들리지 않고 박찬호 선수와 야구에 대한 사랑을 과시해야 할 것이다. 특히 사람들의 말초를 자극하여 수입을 올리는 신문들이야 말로 그 동안의 행태는 “그랬다더라!!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를 하는데 항상 사실,FACT만을 말해야 하는 언론이 이런 식의 얘기를 하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횡수가 더 길어진 것 같은데^^ 우리의 변치 않는 애정을 ,야구에 대한 박찬호 선수에 대한, 과시하며 이국 땅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한국 청년에게 힘을 더해 주자. 우리만이라도 그를 보듬어 안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