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복과 나비」 - 장 도미니크 보비
<부제 : 나비의 날개짓 >
-김여정
나라는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을 너무도 절실하게 느끼게 했던
「잠수복과 나비」는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내안에 꿈틀댄다.
『 저명한 저널리스트이며 자상한 아버지, 멋진 생활을 사랑했으며,
똑똑한 대식가, 좋은 말 을 골라 쓰는 유머러스한 멋진 남자,
앞서가는 정신의 소유자로서 누구보다도 자유를 구가하던 그는,
1995년 12월 8일 금요일 오후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3주 후.
의식을 회복했으나,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왼쪽 눈꺼풀뿐.
그로부터 그의 또 다 른 인생, 비록 15개월 남짓에 불과한 ‘새로운’ 인생이 시작 되었다. 』
그의 프로필을 보기 전부터 그의 글체에 남아있는 여운들을 통해 세련된 남자를 떠올렸다.
약하지 않고 투박하지 않은 도시 남자의 섬세한 세련됨..
로크드 인 신드롬(locked-in syndrome)이라는 불치병으로 잠수복에 갇혀 버린 남자,
유일하게 왼쪽 눈꺼풀로 의사소통하며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기 전까지 한권의 책을 써서 세상에 남기고 갔다.
깊은 바닷속, 꼭 옥죄는 잠수복을 입고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겼지만
그는 결코 현실 앞에 비굴하지도 절망스럽지도 않다.
죽음과 같은 상황 속에서 초연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이 아닐까..
병원 측에서 권유한 물리치료에 편한 펑퍼짐한 트레이닝복을 거절하고
굳이 캐시미어 조끼를 고집하면서 꺼낸 삶의 상징이며 “나” 이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그의 말에서
느껴지는 자존감과 삶에 대한 뜨거운 고백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나”이지 않고서는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다라는 고집은 그를 식물인간쯤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도 고귀한
인간, 여전히 꿈꾸고 소망하는 한 인격체로서 깊이 존중하게 만든다.
그에게 의사소통 체계를 마련해 준 상드린느가 아니였다면 왼쪽 눈꺼풀로 쏟아 낸 이 많은 이야기들은
그냥 바닷속 깊이 가라 앉았을테고 그가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시간들도 알지 못했을 지 모른다.
사람이 사람 일 수 있는 그 어떤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것 그렇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으며 살아 간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나의 진로의 방향성조차 너무도 분명하게 발견하게 된다.
웬일인지 아빠가 아빠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확인 시키는 그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상징적인 하루들에 기념일적인 그의 태도는 너무도 마음 아프다.
아무런 반응 없는 아빠의 육체 앞에 조잘대는 아이들을 보고 있는 그의 마음은 또 무너지고 무너지는 것 같다.
무덤덤하게 써내려가는 그의 필력이 얼마나 그 슬픔을 절제하는지 그는 기어이 침대 맡으로 돌아간 그 시간
한없이 오열했을 것이다.
그의 마음에 동화 되는지 새삼 지루한 엄마의 한평생 이야기가 듣고 싶어지고 아빠 습관적으로 뱉는 가래 끊는 소리도
귀에 쟁쟁하다. 스쳐 지나는 이 봄기운의 생명력이 반갑고 사람들 사이에 끼여 있는 나의 존재가 그들과 닮아 있다는 것이
만족스럽다.
평소 아프게 파고들던 삶의 편린들이 그리 뾰족한 것 같지 않다는 기분마저 든다.
한 없이 사랑하고 한 없이 품을 수 있을 것 같은 이 여유가 얄팍한 감정은 아니기를...
죽음을 앞에 두고서 생각해 보는 나의 삶의 모든 것은 숭고함으로 가득하다.
아니 더 없이 비굴해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그의 삶에 대한 초연함은 멋지다.
지금 현재로서 끊임없이 입속에 과다하게 고이다 못해 입 밖으로 흘러내리는 침을
정상적으로 삼킬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기분일 것 같다 는 고백처럼
사소한 일상 속에서 행복이란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해 본다.
삶을 갈무리 해가는 그 세련됨은 그의 오랜 습관으로 다져진 그만의 느낌일 것이다.
그는 단지 그의 말처럼 나쁜 번호를 잘못 뽑았을 뿐 장애자가 아닌 단지 돌연변이 일 뿐이다.
특별히 나비가 되기 위해 잠수복이라는 불편한 번데기 과정을 거쳐야 했던 그는 그냥 특별한 사람일 뿐이다.
그는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 갔지만 그 날개짓은 결코 하나의 작은 움직임에 불과하지 않는다.
나의 가슴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고 또 어느 누군가에게 그리 했을 것이며
세상을 통째로 삼켜버릴 어느곳에서 태풍이 되는데 한몫 하고 있을지도...
「모자라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나만 제외되고. 나는 거기에 없고 다른 곳에 있었다.....
이 낯익은 풍경을 대하며, 나는 막막한 심정이 되어 생각에 잠긴다.
열쇠로 가득 찬 이 세상에 내 잠수복을 열어 줄 열쇠는 없는 것일까?
종점 없는 지하철 노선은 없는 것일까? 나의 자유를 되찾아 줄 만큼 막강한 화폐는 없을까?
다른 곳에서 구해 보아야겠다. 나는 그곳으로 간다. 」
그는 차갑고 무덤덤하게 책을 내놓은 듯 보이지만 글을 대하는 나의 가슴은 한없이 무너지고 타오른다.
삶에 대한 애착과 죽음 앞에서의 겸손함, 사소한 일상의 행복과 나의 삶의 의미와 목적들..
오늘 갑작스럽게 죽더라도 부끄럽지도 후회하지도 않을 그런 일을 하다 죽을 준비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 라는 사람의 인생이 몽땅 보이는 그런 삶의 조각 조각들은 얼마나 소중하고 싱싱한지..
일 분 일 초, 하루 한 달도 1년들이 모아져 평생이라는 말로 귀결될 나의 삶 전체를 두고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잠수복과 나비”는 그렇게 슬며시 나에게 날아들어 긴 여운을 남기고 깊이 가라 앉는다.
다시 날아 오를 때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