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공생 정치가 불러온 김진태 강원지사의 ‘레고랜드 사태’>
‘레고랜드 사태’는 사업자인 강원도 산하 강원중도개발공사가 자금 조달을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에서 발행한 2,050억 원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지난 9월 말 만기가 돌아왔지만 연장되지 않고 지난 6일 부도 처리된 것을 말합니다. 강원도가 이 채권을 발행할 때 지급 보증을 섰지만 갚는 것 대신에 ‘법원에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 신청을 내겠다’라고 발표한 것이 채권시장의 ‘신뢰 위기’를 불러온 것입니다.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한 채권마저 안전하지 않다면 어느 투자자가 각종 채권을 사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니 채권 금리는 치솟고 자금 흐름이 막히는 일종의 ‘돈맥경화’가 벌어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김진태가 쏘아 올린 ‘레고랜드 사태’라고 부르는데, 한마디로 ‘금융시장의 자금경색 심화’입니다.
저는 강원도가 걱정입니다. 김 지사가 말을 뒤집긴 했지만, 앞으로 강원도는 각종 투자 사업에 쓸 재원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게 생겼습니다. 게다가 재원 조달을 위한 비용도 각종 보증 등으로 인해 추가로 발생할 것입니다. 이는 전국의 모든 지자체에 악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큽니다. 이 때문에 초래된 모든 위험·손실과 추가적 비용 부담은 결국 강원도민과 국민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강원도가 채무이행을 할 수 있음에도 미이행 발표로 불신을 키운 건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한다’라며 김진태 강원지사를 비판했습니다. 언론에 의하면, 국회 정무위 소속의 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진태 지사가 정말 큰 사고를 쳤다’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다른 정무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도 ‘과거 이재명 성남시장이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해서 전임 시장의 문제점을 부각시켰던 것을 김 지사가 따라 하려 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는데, 우리는 이 발언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이 여기에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경알못' 김진태 강원지사가 친 대형 사고는 본질적으로 여야 정치세력 간의 적대적 공생 정치가 불러온 참화입니다. 일반적으로 전임 지사·시장의 성과는 계승하고 잘못은 차분하게 바로 잡아나가면 됩니다. 강원도의 레고랜드 사업은 한때 강원도의 희망이자 큰 기대였습니다. 그런데 투자 사업에서 예기치 못한 손실이 발생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부정해버리거나 채무 지급 보증조차 불이행하겠다는 것은 반시장적인 행태일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정치적인 행동입니다. 바로 ‘전임자 부정하기’ 정치 프레임이 작동한 것인데, 이는 양극적 정치 질서, 즉 적대적 공생 정치 탓입니다.
‘경알못’ 정치인의 자기 지지 세력을 향한 편협한 인기영합주의적 심성이 전임 권력과 차별화를 하도록 이끈 것이고, 이런 진영주의 기반의 적대적 공생 정치가 결국 경제적 대형 사고를 불러온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를 향해 하는 것처럼, 김진태 지사도 전임 지사와 차별화를 하려다가 대형 사고를 친 것으로 보입니다. 한심하지만 이것이 우리나라 정당정치의 현재 수준입니다. 더 참담한 것은 양당의 적대적 공생 정치가 강화될수록 경쟁적 하향평준화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이번 사태의 본질이 드러났으니, 우리는 우리나라 정당정치의 진영주의와 적대적 공생 질서를 극복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보통 사람들이 행복한 나라, 보편적 복지국가를 경쟁적으로 추구하는 보수와 진보의 여러 정치 세력들로 구성된 새로운 정치 질서를 희망합니다. 이것은 북유럽 등 행복 수준이 높은 복지국가들에서 볼 수 있는 ‘꽃보다 아름다운 정치’ 질서입니다. 우리도 그 길로 가야 살길이 열립니다. 그래야 경제-복지 체제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고, 후배 세대의 불안과 불행도 덜어줄 수 있습니다. 우리 손에 달렸습니다. 여러분의 심사숙고를 부탁드립니다.
글. 이상이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