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족보서(李氏族譜序) - 이유원(李裕元)
족보는 친족들을 위하여 만들었다. 모든 일족을 망라하여 만든 것을 대보(大譜)라 하고, 일족을 나누어 만드는 것을 파보(派譜)라 하니 모두 친한이를 친하게 여기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씨족을 숭상하여 세상에 유명하다. 진나라의 왕씨와 사씨, 당나라의 최씨와 노씨도 그 큼을 비유하기에 부족하다.
혁거세(赫居世)는 한(漢)나라 지절(地節: 기원전91-기원전48년)연간과 동시대에 신인(神人)이 표암(瓠巖) 아래로 내려왔으니 급량대인(及梁大人)이라고 하는데, 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이천년 동안 본파와 지파가 널리 번지어 퍼져서 마침내 나라의 안에서 대성(大姓)이 되었다.
대보는 세대에 따라서 여러 번 변하여 통일을 이루지 못하였다. 지나간 해에 가오실(嘉梧室)에서 《백사공파보(白沙公派譜)》를 완성하였고, 초평(草坪)에서《벽오공파보(碧梧公派譜)》를 완성하였는데, 각각 그 조상을 존경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그 간편함에 자리 잡게 하기 위함이다.
지금《통진공보(通津公譜)》와《보덕공보(輔德公譜)》를 화산(花山)에서 합쳐서 완성하였다. 통진공은 백사공에게 종증조(從曾祖)가 되시며, 보덕공은 백사의 백부(伯父)이다.
아! 우리나라 산천의 신령스러운 기운이 지파와 줄기에서 생겨나는데, 씨족의 적통(嫡統)도 이에 따라서 한미해졌다. 우리 종족의 장파(長派)는 비록 한미하여 현달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여러 대를 두고 행세(行世)를 하며 잘 살아온 집안으로서의 풍격을 잃지 않았다.
백년동안 운회(運回)하여 장차 백사공과 벽오공파와 함께 우열을 가리려고 한다. 그리고 통진공파 역시 장차 그에 필적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대족(大族)은 다만 연원(淵源)을 볼 뿐이요, 그 성쇠는 반드시 논할 필요는 없다.《전(傳)》에서는“세대로 드러나지 않음이 없다. ”라고 하였다.
두 파의 먼 후손들이 제각기 스스로 애써 노력(努力)하여 그 세상에 다시 떨쳐 일어난다면 어찌 오직 우리 종족만의 영광이겠는가!
성대하게 밝은 정치를 크게 꾸밀 수 있다. 족보가 완성되어서 이것을 적어서 돌려주었다.
《가오고략(嘉梧藁略)》 책(册) 십이(十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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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李氏族譜序。
譜爲親作也。 擧宗而作曰大譜, 分族而作曰派譜, 皆所以重親親之義也。 東國尙氏族, 鳴於一世。 晉之王、謝, 唐之崔、盧, 不足喩其大也。 粤赫居世, 與漢地節同時, 有神人降瓠巖下, 曰及梁大人, 爲李氏祖。 垂二千禩, 本支蔓延, 遂爲國中大姓。 大譜隨世屢變, 未能裒成一統。 往年, 成白沙公派譜於嘉梧室, 碧梧公派譜於草坪, 非各尊其祖, 爲正其謬而居其簡也。 今通津公、輔德公譜, 合成於花山。 通津於白沙爲從曾祖, 輔德白沙之伯父也。 花山之竭誠修譜, 卽油然之心。 某敢不以一言弁之乎! 噫! 我東山川靈氣, 多毓於支幹, 氏族嫡統, 亦從而微。 吾宗長派, 雖微而未顯, 不失故家風。 百年運回, 將與白沙公、碧梧公派同軒輊。 而通津公派, 亦將匹休。 然則大族只觀淵源, 其興替不必論也。 傳曰“不顯亦世。” 兩派雲仍, 各自淬厲, 復振厥世, 豈惟吾宗之光! 可以賁餙晠明之治也。 譜成, 書以歸之。
嘉梧藁略册十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