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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비단산(錦山 701m)을 가다
글 쓴 이 都 寅 高 枓 永
2月 26日 임진년(壬辰年)을 맞이한지도 벌써 2개월 째다.
엊 그제 까지만 해도 포근하던 날씨가 오늘따라 몹시도 쌀쌀하다! 봄을 시샘이라도 하시는가! 배낭을 꾸려 출발지에 도착해서 잠시 기다리니 금부총무께서 준비물을 차로 운반해 오신다. 하산주(下山酒)와 기타 준비물이 엄청나다. 밤새 잠을 설치며 준비하셨다니 감사하고도 송구스럽슴니다.
오늘은 시산제(始山祭)를 겸한 산행이라 정회원님들의 참석이 많으실것으로 알았는데... 일반회원님들이 더 많으시다.(35명)
아쉬운 마음으로 상념(想念)에 잠겼는데... 차는 어느덧 대도심(大都心)을 벗어난다! 퍅퍅하고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대자연(大自然)의 품으로 달리는 기분이 다시없는 즐거움이라!
길지도 않은 인생사(人生事)에서... 옳고 그름이 무슨 의미(意味)가 있겠는가...! 공자(孔子)께서는 “옳다고 하는것도 없고, 옳지 않다고 하는것도 없다.(無可無不可)”라고 하지 않으셨던가!
영산휴게소(靈山休憩所)에서 간단히 조반을 들고는 남해 금산을 향하여 신나게 달린다. 차내는 ‘진도(珍島)’에서 왔다는 홍보대사(弘報大使) “빡빡이 아저씨(본인자칭)”께서 “홍주”를 PR 하느라 떠들썩하고, 창밖의 다가오는 대자연은 아직도 겨울잠에서 쉬고 있도다!
차는 어느덧 사천시(泗川市)로 접어들어 옛 삼천포항 부근에서 창선대교(昌善大橋)로 달린다. 육지와 섬을 잇는 거대한 인공구조물(人工構造物) 다리가 5섯개의 섬(모개도, 초양섬, 늑도, 창선도, 남해도)과 연결됀 모습이 참으로 장관이다!
마치 힘센 황소가 “코뚜레”에 잡혀 꼼짝할 수 없듯이... 당췌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수려(秀麗)한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점점이 떠 있는 평화로운 섬들이 거대한 ‘철코뚜레’로 꽉 잡혀 있어 운신(運身)할 순 없겠지만, 그 지가(地價)는 10배(倍)도 더 올라 평당 100만원을 호가(呼價)하고 있다니... ‘상전벽해(桑田碧海)’로 소이다!
30여 분을 달려 창선면과 남해군 사이 지족리(知足里) 부근 바다에는 “죽방렴(竹防簾:대나무로 발을 엮어 원시적인 고기잡이 도구)”이 여러곳에 설치되어 전통적인 고기잡이 방법으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명물이라 한다.
두 지족마을(창선면 지족리와 삼동면 지족리) 사이의 바다는 물살이 빠른 좁은 물목이어서 ‘죽방렴’ 설치에 알맞은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이렇게 잡힌 고기들은 주로 멸치가 잡히며, 꽁치, 갈치, 병어, 보리새우, 감성돔 등도 잡혀서 강제로 그물로 잡혀오는 고기보다 가격도 훨씬 비싸다고 하니... 선인(先人)들의 지혜가 참으로 놀랍슴니다 그려!
얼마를 더 달려 상주면(尙州面) 출발기점에 도착하니 시계는 10시40분을 조금 지나있고, 좁은 주차장에는 선착(先着)한 등산객들로 붐벼서 그야말로 인산인해(人山人海)다!
별다른 준비운동 없이 준비해 온 제물(祭物)들을 골고루 나누어 짊어지고는 일렬로 오름니다. 정회원님들의 숫자로는 부족해서 일반회원님들도 제물 운반에 동참해 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리오!
올 한해를 시작하는 시산제(始山祭)인데... 어찌 소홀히 하리오! 등산로는 잘 다듬어져서 불편함이 없고, 가파르고 험한곳에는 나무계단을 시설해 놓아서 산행이 한결 수월하다. 게다가 등산로 중간 중간에는 쉼터도 마련하여서 편히 쉬어갈 수 있으니, 당국의 배려가 그저 고맙게 느껴짐니다.
절기(節氣)는 우수(雨水)가 지나고 경칩(驚蟄)이 가까워 오건마는 지난 겨울가뭄이 심해서인지 개울물은 말라있고, 나목(裸木)들은 아직도 겨울잠을 자고 있는지 싹눈이 단단하며, 봄기운을 전혀 느끼지 못하겠도다!
회원님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30여 분을 올랐을까...? 옹달샘의 급수대(給水臺)는 임시 폐쇄되어 물이 말라있고, 두 마리 거북이는 코만 빠끔하게 보인다. 예술성보다는 귀엽고 앙증스럽게 보인다.
오르다 쉬고 쉬다 오르면서 돼지머리를 운반하시는 김광남님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연신 수건으로 닦으시니... 뒤이어 오르시던 박현숙 회장님(두류도서관 한묵회장)께서 함께들고 오르신다. 그 외에도 김해진님, 김창수님께서도 제물 운반에 적극 협조해 주시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오를수록 시야(視野)는 더욱 넓어져서 뒤로는 남해바다가 나목(裸木)들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고, 전방(前方)으로는 사선대, 농주암 일대의 아름다운 봉우리들이 서서히 그 자태를 드러내는데... 모두들 탄성을 지르며 사진촬영에 여념이 없으시다!
김창수님께서 팟시루떡을 들고 가시다 가쁜숨을 몰아쉬며 잠시 쉬면서 땀을 닦고 계신다. 고맙고 미안하기도 하여서 필자가 들고 20여 분을 오르다 쌍홍문 부근에서 잠시 쉬고 있으니, 처음오신 홍환표님께서 들고 가겠다고 하신다.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면서... 눈앞에 펼쳐지는 사선대, 장군암, 쌍홍문 등의 절경들을 디카에 담는다.
쌍홍문(雙紅門)은 금산(錦山)의 대장(대장봉)이 쌍안경을 쓰고 남해바다의 풍광(風光)들을 감상이나 하고 있듯이... 온세상을 꿰뚫어 보는 것 같슴니다! 일설에는 옛날 부처님이 돌배를 만들어 타고 쌍홍문의 오른쪽 굴로 나가면서, 멀리 앞바다에 있는 세존도(世尊島)의 한복판을 뚫고 나갔다고 한다.
머무르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한채 시산제를 모신후에 골고루 답사하기로 하고, 서둘러 쌍홍문을 통과하여 좌측 단군전 방향으로 오름니다. 능선에 올라 단군전(檀君殿)과 화엄봉(華嚴峰) 중간쯤에서 아늑하고 평평한 텃밭이 있어, 그 곳에 하늘방향(乾方)으로 자리를 정해서 제물을 진설하고 시산제를 모심니다.
제물 진설(陳設)에는 구윤서님, 최영수님, 윤진석님, 박총무님, 금부총무님 등의 협조로 준비하여 황회장님을 비롯하여 모든회원님들이 정성을 다해 모셨슴니다. 남산의 무궁한 발전과 회원님들의 친목과 건강을 발원하였으며, 시방세계(十方世界) 산행에 무사안녕(無事安寧)을 기원하였슴니다!
시산제를 마치니 12시 45분을 조금 지나있어, 점심을 겸해서 제물들을 골고루 나누어 드심니다. 시장끼도 더해서인지 팟시루떡의 인기는 놀랄정도이고, 과일이며 돼지고기를 안주삼아 밥반찬과 더불어 드시니... 구름사이로 햇님도 따스하게 내밀어 남산님들을 축복해 주심니다 그려!
점심후 정상(망대:봉수대)은 나중에 가기로 하고, 먼저 보리암(菩提菴)으로 가서 대장봉(관음봉)을 중심으로 좌우에 펼쳐진 아름다운 봉우리들을 감상하기로 하여 중간 중간 기념촬영을 해가며 진행합니다.
화엄봉(華嚴峰)은 화(華)자의 글자 모양과 닮았다하여 부쳐진 이름이라 하며, 그 옆에 바위에서 내려다보는 보리암의 절경은 실로 아찔하다! 일시에 가슴이 쾅 열리고 온몸에 전율이 일어난다!
비단산(錦山)이라 부르는데는 또 신비한 전설이 있으니... 본래는 보광산이었는데, 이태조(이성계)께서 등극하기전에 백두산에 들어갔는데 산신이 이를 받아주지 않았으며, 두 번째로 지리산에 들어갔으나 역시 산신이 받아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해섬 보광산에 와서 백일기도를 올리고서야 조선(왕조) 창업의 뜻을 이룰 수 있었다.
등극한 이후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비단으로 산을 감싸려고 하니,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아 신하의 주청으로 비단 금(錦)자를 붙여 “금산(錦山)”으로 하였다고 한다. 몇몇 회원님들에게 보리암과 남해바다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해수관음보살상(海水觀音菩薩像)’이 있는 곳으로 나려갑니다.
“관음보살상”이 계시는 곳은 인산인해(人山人海)다! 예나 지금이나 인기는 여전하여서 독경하시는 스님을 비롯하여 참배객들이 줄을 서 있고, 대장봉(관음봉)과 보리암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에 모두들 분주하시다!
우리 남산님들에게도 간단한 기념촬영을 해 드리니, 우리 님들보다 다른님들이 더 많으시다! 간단한 참배를 마치고 주위를 잠시 둘러 봅니다.
안내판에 보리암(菩提庵)은 원효대사가 창건 하였다고 전하며, 창건당시 이름은 보광사였다고 하는데, 조선 현종 원년(1660)에 절을 왕실 원당(願堂)으로 삼고 보리암으로 바꿨다고 한다.
역사와 전통에 비해 특별한 문화재는 없으며, 다만 절아래쪽 탑대(塔臺)에 고려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경남 유형문화재 제74호)이 있고, 1970년에 조성됀 “해수관음보살상”이 있다.
아울러 이곳은 영험한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 관음보살상, 강화도 보문사 관음보살상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수관음보살상’으로 손꼽혀 참배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경내(境內)의 전각(殿閣)들은 벼랑 끝에 돌축대를 쌓아서 마치 “제비집”처럼 앉아있고, 주봉인 대장봉(관음봉)과 바로 아래 형리암이 바다로 기어드는 ‘거북이형상’인데 그 기운이 단단하고도 웅장하며, 연하여 안산(案山)격으로 남해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은 풍수적으로 금성(金星:노적가리와 같음)의 형국으로 푸른바다와 어우러지니... 물질도 풍요롭고 인걸(人傑) 또한 배출될 자리로다! 가히 천하 절경이요! 도인(道人)이 수도를 할만한 곳이로다!
아련히 피어 오르는 물안개가 천지를 감싸고 도니
선계(仙界)가 어디메뇨! 불계(佛界)가 여기로다!
아옹 다옹 세속(世俗)의 인연들을 다 놓아 뿌리고
훗날 인연이 닿는다면 한생을 여기서 살고 싶구나!
극락전 아래쪽 대나무 숲길을 따라 가파른 계단길을 내려가니, 삼불암(三佛岩) 아래쪽에는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한뒤 등극했다는 전설이 깃든 “이태조기단”이 있다. 벼랑 끝에 그 기운이 단단히 뭉쳐있는 자리에 ‘선은전(璿恩殿)’이 세워져있다.
오늘따라 약간 흐린날씨로 먼 바다를 볼 수 없슴이 아쉬우며, 호젓한 길을 따라 나 홀로 정상(망대:봉수대)으로 향합니다.
10여 분을 걸어 정상(봉수대:망대)에 이르니 망대는 말끔히 단장되어 경남기념물 제87호로 지정되어 있고, 그 앞에는 명승 제39호로 지정된 “남해금산”의 빗돌이 세워져 있으며, 주위를 둘러봐도 남산님들은 보이지 않는다.
금산 봉수대(망대)는 고려 명종때 남해안에 침입하는 왜구를 막기위해 축조되었다 하며, 또 이곳 봉수대는 동래 노선에 속하여 사천, 진주, 단성, 합천, 영동, 옥천, 청주, 충주, 죽산, 용인을 거쳐 서울 남산(목멱산)에 닿았다고 한다.
특히 맑은날에는 북으로는 지리산, 동으로는 사천, 남으로는 상주면쪽 남해바다, 서쪽으로는 여수까지 사방을 조망(眺望)할 수 있다고 하나 다 볼 수 없슴이 아쉬우며 간단한 기념촬영을 마치고, 주위를 둘러보니 왼편으로 우람하고도 아름다운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바위 가운데는 “유홍문 상금산(由虹門 上錦山: 홍문이 있어 금산에 오르다.)”이라고 새겨진 글자가 있는데, 자세히 보니 조선 중종때 학자인 주세붕 선생이 쓴 글이라고 새겨져 있으며, 이로 말미암아 ‘문장암(文章岩)’이라 불리운다.
이외에도 남해도는 크고작은 섬 68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주도, 거제도, 진도, 강화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다. 또 1973년에 개통된 남해대교는 두 노량리(하동 금남면 노량리와 남해 설천면 노량리)를 잇는 다리로서 남해도의 관문 역할을 해 왔으며, 특히 노량 앞 바다에는 임진란 당시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충무공의 유적지와 설흘산 아래 가천의 ‘암수바위’, 앵강만의 ‘노도(櫓島)’는 소설 ‘구운몽’의 저자 서포 김만중(西浦 金萬重 1637~1692)이 유배생활을 하던 곳이며, 또 인근에 아름다운 ‘상주리 해수욕장’ 물건리 ‘방조어부림(防潮魚府林:천연기념물 제150호)’이 있어 답사코스로도 각광을 받고 있으니... 어찌 천혜(天惠)의 섬이 아니겠는가!
인하여 옛 선인(先人)들은 남해도를 ‘일점선도(一點仙島)’라 했으며,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비단산(錦山)’이라 이름하였으니...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그려! 아울러 ‘관동 8경’이라 든가, ‘금강산 8폭(瀑)8담(潭)’은 있으나, 금산(비단산)은 한술 더 뜨서 ‘38경’이라 하니... 잠시 옮겨봅니다.
비단산(錦山 701m)은 제1경 망대(봉수대)를 비롯하여, 2 문장암, 3 대장봉, 4 형리암, 5 탑대, 6 천주암, 7 이태조기단, 8 가사굴, 9 삼불봉, 10 천계암, 11 천마암, 12 만장대, 13 음성굴, 14 용굴, 15 쌍홍문, 16 사선대, 17 백명굴, 18 천구봉, 19 제석봉, 20 좌선대, 21 삼사기단, 22 저두암, 23 촉대봉, 24 향로봉, 25 사자암, 26 팔선대, 27 상사암, 28 구정암, 29 감로수, 30 농주암, 31 화엄봉, 32 일월봉, 33 요암, 34 부소암, 35 상주리 석각, 36 세존도(世尊島), 37 노인성(老人星), 38 일출경(日出景) 등이 있으니... 이나라 금수강산(錦繡江山)의 대명사가 아닌가!
아둔한 내 필력(筆力)으로는 더는 서술치 못하겠고, 그저 좋다! 좋다!를 연발하면서... 쌍홍문(雙虹門) 밖으로 나와 장군봉 아래서 잠시 쉬면서 몇 몇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림니다. 비단산 38경을 오늘 하루 다 볼 수 없으니 훗날을 기약하면서... 아쉬운 발걸음으로 물러남니다!
금강(金剛), 설악(雪嶽)의 비경을 다 옮겨 놓은 듯...
곤륜산의 정기와 천지의 기운이 함께 어우러지니
아름답고도 장엄한 금산이여! 영겁토록 찬란하소서!
단기 4345년(서기 2012년) 2월 26일
남해 비단산(錦山 701m)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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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차일 피일 산행후기가 많이 늦었습니다. 특히 사진 자료를 제공해 주신 황회장님과 취산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졸문에다 지면에 한계가 있어 모든 회원님들을 다 올리지 못함에 양해를 구하는 바입이다. 아울러 '죽방렴' 사진이나, '창선대교'로 건너가는 '삼천포대교' 자료들은 다른 답사때 찍은것을 올렸사오니, 이점 양지해 주시길 바람니다.
금산의 역사를 알고나니 귀한곳을 다녀 왔네요.
그저 산이 있어서 올랐지...깊은 역사가 많은 금산을 산행후기로 알고서
느끼는 바가 많슴니다.
항상 바뿐중에도 후기를 올려 주시니 감사 함니다.
남산산악회의 발전을 위해서 늘 수고하시는 황회장님께 감사드리며, 장문의 후기를 보시느라 애쓰셨슴니다. 부족한 글에 관심 가져 주셔서 고마우며, 더 좋은 글 되도록 노력하겠슴니다.
산행후기 올려주신 고고문님 감사합니다.
남산에는 고문님 역할이 중요합니다.
황회장님의 불철 노고에 서로 합심하여 남산을 사랑하는 모든 회원님께도
한해의 안녕을 빌며 서로 화합된 모습으로 발전해 갔으면 좋겠습니다.
벽송님이 오셨군요! 졸문 읽으시느라 애 많이 쓰셨슴다. 제가 할 역할이 있겠슴니까, 현 황회장님을 비롯하여 임원진에서 잘 하고 계시지 않슴니까! 열심히 불평없이 묵묵히 참석하는것이 임원진들을 돕는것이라 생각합니다. 벽송님이야 말로 앞으로 남산을 위해서 큰 일을 좀 해 주십시요! 감사합니다.
고선생님 덕분에 항상 좋은글을 접하게 됩니다~가볍게 산행을하고 나서 고선생님 후기글을 보고 다시 산행지에 갓다 온 것같은 처럼 확실하고 차분하게 생각을 하곤합니다~금산의 역사를 잘 익히고 갑니다~한번더 수고 하심에 감사 드립니다^^*
박회장님이 오셨군요! 그간 편안 하신지요? 변변찮은 장문의 글을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슴다. 자연을 사랑하는 병이 깊어서, 산행후 자신을 되돌아보고 점검하는 계기가 반복되는가 봅니다. 박회장님의 협조에 늘 감사드리며, 언제 한번 시간되면 회장님의 소속 산악회도 동참하겠슴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