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초고] 촛불행동과 병행할 '시민광장'(가칭)이 필요하다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시민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
광장이 남긴 질문
우리는 지난 수년간 광장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장면들을 썼다. 2021년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을 공론화하며 출발한 촛불행동은 시민의 열망을 하나로 모았고, 2024년 12·3 비상계엄이라는 헌정 위기 앞에서는 수많은 시민사회 단체와 함께 위기를 막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적대적 국면에서 대열을 지키고 권력의 폭주를 막아선 공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국면이 바뀌었다. 검찰 조직 개편과 수사권 재편, 선거제도와 언론질서에 관한 논의가 실제 정책 과제로 떠오른 지금, 우리는 스스로에게 서늘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가 끌어내린 권력 뒤에 들어설 새로운 사회의 지도와 규칙은, 누구의 손으로 그리고 있는가."
왜 대열은 자꾸 단일해지는가
사회운동이 청산과 단일 대오에 몰입하면 두 가지 일이 생긴다. 다음 단계의 제도 설계를 두고 벌이는 토론이 전열을 흔드는 분열로 치부되고, 공론장이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다투는 자리가 아니라 동참을 호소하는 자리로 좁아진다.
다만 이것을 누군가의 고집 탓으로 돌리면 진단을 잘못하는 것이다.
한 선거구에서 한 명만 뽑는 제도에서는 중간을 넓게 설득하는 것보다 확실한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편이 계산에 맞는다. 40퍼센트의 확고한 지지가 60퍼센트의 미지근한 호감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유인은 정당에만 작동하지 않는다. 결집이 곧 영향력이 되는 구조에서는 운동에도 똑같이 작동한다.
단일 대오는 누가 원해서가 아니라 그 판에서 합리적이기 때문에 생긴다. 그러므로 청산이 끝난 뒤에 개혁을 논하자는 논리는 위기 국면에서는 힘을 얻지만, 개혁의 적기를 놓치게 만드는 함정이 된다. 청산과 개혁은 순차적 과제가 아니라 바퀴의 양축처럼 함께 굴러가야 한다.
기승전결의 분업
촛불행동이 전투의 광장이었다면, 이제 우리에게는 제도와 대안을 만드는 시민광장이 필요하다. 이것은 촛불행동을 대체하거나 약화시키자는 뜻이 아니다.
두 광장은 서로 다른 단계를 맡는다.
일을 이루는 데는 기승전결의 네 단계가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드러내 의제로 세우는 기(起), 그것을 넓혀 공론으로 만드는 승(承), 대안을 좁혀 설계하는 전(轉), 그리고 결단하고 실행하는 결(結)이다.
촛불행동은 기를 세웠다. 검찰과 언론의 문제를 국민의 의제로 올렸고, 계엄의 밤에 그것이 헌정의 문제임을 드러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지금도 필요한 일이다.
시민광장은 승과 전을 맡는다. 그 의제를 넓게 공론화하고 구체적 대안으로 좁히는 일이다.
둘은 위아래가 아니다. 기가 없으면 설계할 것이 없고, 전이 없으면 제기한 문제가 결론에 닿지 못한다.
무엇을 다룰 것인가
시민광장이 우선 다뤄야 할 과제는 셋이다.
첫째, 권력의 뿌리를 바꾸는 선거제도 개혁이다. 우리는 두 차례 광장에서 대통령을 끌어내렸지만, 그 권력을 낳는 게임의 규칙은 바꾸지 못했다. 앞서 말한 결집의 유인도 여기서 나온다. 나머지 모든 과제가 이 하나에 걸려 있다. 그런데 그 규칙을 현직 정치인들이 정한다. 시민이 직접 개혁안을 만들어 공론의 압력을 보내야 하는 이유다.
선거제도개혁은 개헌만큼이나 중요한 의제다. 게다가 일반입법으로 가능한 부문이므로 우리가 집중하면 바꿀 수 있다.
둘째, 언론에 시민의 판단을 더하는 일이다. 우리는 언론에 보도할 자유를 인정했지, 누군가에게 낙인을 찍을 권력을 위임한 적이 없다. 그런데 그 권력에는 선거도 임기도 심급도 없다. 잘못된 기사 한 줄이 한 사람의 삶을 무너뜨려도, 정정은 작게 나가거나 끝내 나가지 않는다. 언론중재위원회가 유일한 창구인데 그 안에 주권자의 자리는 한 석도 없다. 이것은 언론을 규제하자는 말이 아니라, 위임받지 않은 권력에 위임의 경로를 만들자는 말이다.
셋째, 시민이 정책과 사법에 직접 개입하는 통로를 넓히는 일이다. 국민발안과 국민투표를 정비하고, 사법 영역에서도 시민이 심사하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원전처럼 전문성과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일수록 그렇다. 사고의 위험과 핵폐기물을 대대로 떠안을 사람들이 그 결정에서 빠져 있다면, 그것을 주권이라 부르기 어렵다.
결론이 나갈 길을 먼저 정해두자
시민광장이 또 하나의 구호로 끝나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정해둘 것이 있다.
숙의의 결과가 어디로 가는가이다.
며칠을 비우고 자료를 읽고 토론했는데 그 결과가 어디에도 닿지 않는다면, 두 번째부터는 아무도 모이지 않는다. 결정권 없는 숙의는 오래가지 못한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와 아일랜드의 시민의회가 작동한 것은 숙의가 훌륭해서만이 아니다. 그 결론이 주민투표나 국회 심의로 이어지는 경로가 미리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길이 있다. 결론을 국민동의청원으로 올리는 것, 받아줄 의원을 미리 확보하는 것, 그리고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왜 받아들이지 않는지를 밝히게 하는 것이다. 적어도 답변을 의무화하는 데서는 시작할 수 있다.
우리에게도 적용해야 한다
한 가지를 더 말해두고 싶다.
구양수는 뜻으로 묶이면 붕(朋)이고 이익으로 묶이면 당(黨)이라 했다. 그런데 붕도 당이 될 수 있다.
시민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뜻으로 모였어도 자리가 생기면 자리로 묶이고, 평판이 쌓이면 입장을 바꾸기 어려워지며, 이견이 분열로 규정되기 시작한다. 우리가 지금 지적하는 바로 그 구조가 우리 안에서 재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갱신 장치를 넣어야 한다. 참여자의 임기와 순환, 소수 의견의 기록, 그리고 한 번 낸 결론도 다시 고칠 수 있는 절차. 회수할 수 없는 권한은 어디에 있든 결국 같은 길을 간다.
대만이 주는 시사점
대만은 2017년 국민투표법을 고쳐 발의와 서명 요건을 크게 낮추고 투표 연령도 내렸다. 2023년부터는 추첨된 시민이 직업법관과 함께 재판에 참여하는 국민법관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길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2018년에 안건이 한꺼번에 몰려 혼란이 있었고, 그래서 2019년에 제도를 다시 손봤다. 2021년에는 부쳐진 안건이 모두 투표율 미달로 부결됐다.
이것을 실패로 볼 일이 아니다. 물꼬를 텄기에 고쳐갈 수 있었던 것이다. 완성된 제도를 기다리다 시작하지 못하는 것보다, 시작해놓고 고치는 편이 낫다.
행동과 숙의가 함께 갈 때
새 정부 아래에서 시민사회의 역할은 두 갈래여야 한다. 개혁에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그 개혁이 기득권의 저항이나 정치적 계산 앞에서 후퇴할 때 독립적으로 비판하고 견인해야 한다. 비판 없는 운동은 집권 세력의 지지 기반으로 전락하거나, 반대로 영원한 반대파로 고립된다.
촛불행동이 기득권과 맞서는 힘이라면, 시민광장(가칭)은 그다음 사회의 규칙을 설계하는 자리다.
두 번의 광장이 증명한 것을 세 번째 광장으로 다시 증명할 필요는 없다. 거리에 서지 않아도 물을 수 있는 자리, 그것이 두 번의 광장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다.
거리에 섰던 주권자들이여, 이제 새로운 사회의 제도와 규칙을 직접 만드는 시민광장으로도 모이자.
마침 다음주 10월 23일(금)오후에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삼각지역)에서 선거제도개혁 시민대토론회가 열린다. 일반참가자가 토론할 시간도 80분이나 마련해두었다. 함께 토론해서 방향을 잡자.
첫댓글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9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