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일자: 2011-09- 23
고성서 서해까지'
정찬열의 최전방 지역 도보횡단
<3> 백담사
“만해 정신 숨 쉬는 곳, 전두환은 어떤 생각을...”
빛깔 고운 옥수수로 만든 생동동주 맛이 일품
백담사를 방문할 차례다. 백담사 입구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버스 정류소에 수학여행 온 여중생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정류소 마당에 가득하다. 쇠똥 구르는 모습에도 웃는 나이라 했던가.
시골에서 단체 여행을 오신 분들이 차에 오르고 있다. 함께 버스를 탔다. 버스 요금이 편도에 성인 2천원, 학생 천원이다. 옆자리에 앉은 분에게 물어보니, 충남 천안시 입장면에서 농사를 짓는데 모처럼 어르신들 모시고 백담사 나들이를 왔다고 했다.
백담사 가는 길이 절벽을 따라 구불구불 험하다. 자동차 한 대가 비켜가지 못할 만큼 길이 좁다. 좀 넓은 모퉁이 길에서 기다렸다가 서로 비켜간다. 저 아래 골짜기를 내려다보니 아득하다.
30분 정도 걸렸을까. 백담사 입구에 도착했다. 백담사(百潭寺). 서기 647년에 지은, 내설악에 있는 대표적인 절이다. 만해 한용운이 일제에 항거하여 독립운동을 했던 유적지로 유명하다. 설악산 대청봉에서 절까지 작은 담(潭)이 백 개가 있는 지점에 사찰을 세운 데서 백담사라는 이름이 유래 되었다고 한다.
넓은 냇가를 건너 산 밑에 백담사가 있다. 다리를 건너간다. 수심교(修心橋)다. 다리를 건너며 마음을 닦으라는 의미인가 싶다. 다리 난간 위 양쪽에 걸린 색색의 연등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길이가 백 미터쯤 되어 보인다. 늙은 어머니를 부축하여 모시고 가는 덜 늙은 며느리의 모습이 아름답다.
맑은 물이 흐른다. 넓은 냇가에 물에 씻긴 돌이 가득하다. 곳곳에 돌맹이를 쌓아 작은 탑들을 만들어 놓았다. 무엇을 빌면서 돌탑을 쌓았을까. 비가 내리면 다 쓸려가 버릴 것 들이다. 헛되고 헛된 짓인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저렇게 탑을 쌓는다. 보이는 곳이건 보이지 않는 곳이건 높디 높은 탑을 짓는다. 절 문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을 향해 돌탑들이 화두를 건네주고 있다. 물이 흘러오는 쪽을 바라보니 첩첩이 산이다.
경내에 들어갔다. 여학생들이 몰려다니며 재잘거린다. 녀석들이 만드는 웃음꽃으로 절이 환하다. 만해 기념관 앞에 동상이 서있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는 말이 동판에 새겨져있다. 기념관 앞에 심어진 잘 생긴 목백일홍 한 그루, 새가 내려앉아도 보이지 않을 만큼 이파리가 제법 어우러졌다.
만해 기념관 벽 여기저기 시가 걸려있다. 잘 알려진 시. “님은 갔습니다. 아아, 나의 사랑하는 님은 갔습니다.....”로 시작하는 ‘님의 침묵’이 큰 액자에 걸려있다. ‘조선 청년에게’ 라는 글도 보이고, “보석을 요구하지 마라, 사식을 취하지 마라, 변호사를 대지 마라”는 옥중 투쟁 3대원칙도 벽에 걸려있다.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일 더러운 것을 똥이라고 하겠지요. 그런데 똥보다 더 더러운 것은 무엇일까요? 나의 경험으로는 송장 썩는 것이 똥보다 더 더럽더군요. 왜 그러냐 하면 똥 옆에서는 음식을 먹을 수가 있어도 송장 썩는 옆에서는 역하여 차마 먹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송장보다 더 더러운 것이 있으니 그것이 무엇인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그건 삼십일 본산 주지 바로 네놈들이다.” 한국 불교를 일본에 예속시키려는 총독부의 방침에 따라 개최된 31본사 주지회의에서 한용운 선사가 한 연설문, 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통쾌하다. “삼십일 본산 주지 바로 네놈들이다!” 라는 마지막 호통에 혼비백산 했을 살진 주지들의 모습이 눈에 삼삼하다.
전두환이 유배되어 살다 나온 집에 산돼지 한 마리가 진을 치고 살고 있다, 는 말을 백담사 입구에서 어떤 분으로부터 들었다. 전 주인을 대신하여 산 돼지가 집을 차지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곳 심산유곡에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백담 계곡 물소리와 달빛 내려앉은 수심교를 보면서, 그리고 만해선생을 매일 만나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냇가를 따라 절 여기저기에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다. “무작정 / 앞만 보고 가지 마라 / 절벽에 막힌 강물은 / 뒤로 돌아 전진한다 / 조급히 서두르지 마라 / 폭포 속의 격류도 / 소(沼)에선 쉴 줄을 안다 / 무심한 강물이 영원에 / 이른다 / 텅빈 마음이 충만에 / 이른다” 오세영 시인의 ‘강물’ 이라는 시다. “나 죽어 /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 저 물 속에는 / 산 그림자 여전히 / 혼자 뜰 것이다” 이성선 시인의 ‘나 없는 세상’ 이다. 최근에 세워진 듯한 고은 시인이 쓴 ‘그 꽃’ 이라는 시도 보인다. “내려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보지 못한 / 그 꽃”
날렵하게 치켜 올라간 절 집 처마 끝에 작은 종이 달려있다. 풍경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댕그렁, 댕그렁’ 소리를 낸다. 풍경은 어느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인가를 시비하지 않는다. 바람을 받아 온 몸으로 소리를 낼 뿐이다. 온 힘을 다 해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들으면서, 나도 온 몸을 열어 소리를 받는다. 풍경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다.
경내 선물 판매점에 들어갔다. ‘마음 다스리는 글’이 인쇄 되어있는 무명 수건이 눈에 띈다. “복은 검소함에서 생기고, 덕은 겸양에서 생기며, 지혜는 고요히 생각하는데서 생기느니라. 근심은 애욕에서 생기고, 재앙은 물욕에서 생기며, 허물은 경망에서 생기고, 죄는 참지 못하는 데서 생기느니라. 눈을 조심하여 남의 그릇됨을 보지 말고, 맑고 아름다움을 볼 것이며, 입을 조심하여 실없는 말을 하지 말고, 착한 말, 부드럽고 고운 말을 언제나 할 것이며, 몸을 조심하여 나쁜 친구를 사귀지 말고, 어질고 착한 이를 가까이 하라. 어른을 공경하고, 덕 있는 이를 받들며 지혜로운 이를 따르고, 모르는 이를 너그럽게 용서하라. 오는 것을 거절 말고, 가는 것을 잡지 말고, 내 몸 대우 없음에 바라지 말며, 일이 지나갔음에 원망하지 말라. 남을 해하면 마침내 그것이 자기에게 돌아오고, 세력을 의지하면 도리어 재화가 따르느니라. - 백담사-. 구절구절 고개가 끄덕여지는 얘기다. 나에게 하는 말인 듯싶다.
바로 옆에 걸려있는 얘기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자기가 아는 대로 진실만을 말하여, 주고받는 말마다 악을 막아 듣는 이에게 편함과 기쁨을 주어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지나치게 인색하지 말고, 이기심을 채우고자 정의를 등지지 말고, 원망을 원망으로 갚지 말라. 위험에 직면하여 두려워 말고, 이익을 위해 남을 모함하지 말라. 객기를 부려 만용하지 말고, 허약하여 비겁하지 말며, 사나우면 남들이 꺼려하고 나약하면 남이 업신여기나니, 사나움과 나약함을 버려 지혜롭게 중도를 지켜라.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역경을 참아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 때와 처지를 살필 줄 알고, 부귀와 쇠망이 교차함을 알라. - 설악산 백담사 -. ‘지혜로운 삶’이라는 제목의 말이다. 마음에 와 닿는 얘기다. 허지만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돼지 앞에 진주일 뿐이다.
전화벨이 울렸다. 이경진 씨로부터 온 전화다. 서둘러 백담사를 나왔다. 나오는 길에 다시 보아도 참 험한 골짜기다.
정류소에 내리니 이경진씨가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이메일과 전화로 얘기를 나누었지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키가 훤칠한 신사다.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강원도 농정국장에서 은퇴하여 지금은 인제군 농촌개발 정책관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함께 나온 박유도씨와 자리를 같이했다. 인제군 테마농촌개발담당이다. 황태국, 황태구이, 두릅 등, 봄나물과 지역 특산물이 한 상 가득이다. 옥수수로 만든 생 동동주가 반주로 나왔다. 빛깔이 노랗다. 한 잔씩 돌아가는데 맛이 일품이다. 원래 이 지역이 감자나 옥수수로 연명하던 곳이었는데 80년대 와서 본격적으로 황태를 개발하여 상전벽해가 된 셈이라고 한다. 명태가 바람과 눈을 맞아 부석부석하고 누렇게 변한 것이 황태인데 해독과 숙취해소에 그만이라며 막걸리 한 잔을 또 따른다. 일본이나 미국에는 없는 우리 음식문화라고 덧붙인다.
이곳 인제군을 한자로 쓸 때 기린 린(麟)을 쓴다고 했다. 지금이야 호적등본을 컴퓨터로 발급하지만 예전엔 손으로 일일이 써서 발급했었다. 그럴 때 이 한자 쓰기가 너무 어려워 면서기를 그만 두었다는 일화가 있다고 한다. 웃자고 지어낸 말이겠지만, 그 말을 들으면서 어릴 적 면사무소 직원들이 묵지를 깔고 호적초본을 베끼던 풍경이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일쯤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휴전선이 생기면서 강원도 일부가 이북에 속하게 되었다. 솔잎흑파리 병을 공동구제하는 일을 비롯, 강원도끼리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오래전부터 모색해오고 있다고 한다. 이 일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거라며 생명평화동단 정성헌 이사장을 만나보라고 소개해 준다. 전화를 걸어 놓겠다며 마침 걸어가는 길목이니 들러서 자고 가라며 오늘저녁 숙소까지 마련해 주신다.
가까운 기린면에 방태산이 있는데 노아의 방주 같은 곳이란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수화풍(水火風) 3재가 없는 현대판 피난지라는 이야기다. 꼭 한 번 들려볼만한 곳이니, 다시 오게 되면 연락하시란다. 이경진씨가 책 한 권을 건넨다. 본인이 쓴, ‘어느 시골 면장의 세상 이야기’다.
점심 대접을 넘치게 받았다. 다시 걷기 시작한다. 부지런히 걸어야 해 떨어지기 전에 평화동산까지 걸어갈 수 있겠다.
냇물 따라 길도 흘러간다. 냇물 건너편 쪽에 ‘백담사 만해마을’이 세워져 있다. 4층 아파트처럼 보인다. 저 건물은 문인들의 집필활동을 위한 건물인데 문예진흥원에서 숙식비 전액을 지급한다고 들었다. 최장 4개월 동안 머물 수 있다고 한다.
아스팔트 위에 황태 한 마리가 떨어져있다. 재미있다. 지난 종단 때 땅끝마을을 지나면서 들은 얘기지만 전남 완도군 청산도는 “겨울이면 개도 돈을 입에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다. 김양식과 해산물 채집으로 길바닥에 돈이 굴러다닐 만큼 생활이 풍족하다는 얘기를 빗대어 하는 얘기다. 그런데 이 지역은 황태가 땅에 떨어져 있다. 황태 산지인지 말 안 해도 알겠다.
자전거를 타고 서울에서 속초까지 간다는 젊은이를 만났다. 10여분 후 자전거 국토여행을 한다는 두 젊은 대학생을 만났다. 신문선, 소지훈이라 했다.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길이 잘 닦아지면서 자전거타기가 새로운 레포츠로 자리잡아 가는가 보다. 저렇게 국토의 속살을 누비는 젊은이들을 보면 뿌듯하고 든든하다.
“ (국제결혼 대표 브렌드 기업) 하나로 ‘국제결혼’ 간판 -서울보증보험증권가입업체- 국제결혼 소비자 인지도 1위, 창사 15년 전통-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키리키즈스탄, 중국, 베트남, 필립핀, 캄보디아 -naver 하나로 검색- 전화 000-0000- 장소 kt 건물 2층.” 저 작은 간판에 있어야 할 정보는 다 들어있다.
길가에 통나무 베어 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산이 깊으니 나무도 많겠다.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보니 아슬하다.
용대터널을 지난다. 터널이 두 개다. 하나는 953미터 하나는 654미터. 터널을 지나는 동안 자동차가 만드는 먼지와 소음으로 목이 컬컬하고 귀가 멍하다. 터널 안에 비상전화도 있고 비상구도 있다. 멀더라도 구 도로를 따라 걸어갈 걸 그랬다.
터널이 끝나고 구 도로에 들어섰다. 한적하다. 바둑판을 만드는 집이 있어 잠시 쉴 겸 들렀다. 가만히 지켜보니 주인이 바둑판 다루는 솜씨가 그만이다. 70이 넘어보이는데 평생 같은 일을 하면 저렇게 도의 경지에 오르는 모양이다. 주인에게 용 모양을 조각해 놓은 바둑판 값을 물어보니, “바둑 둘 줄 아는 사람은 이런 거 안사요, 바둑도 모르는 사람이 괜히 폼 잡으려고 이런 비싼 거 사가요” 퉁명스럽게 한마디 하신다.
원통에 도착했다. 할머니 한 분이 길가에 자리를 펴고 나물을 삶아서 말리고 계신다. 무슨 나물이냐고 물었더니, 망칫대 나물이란다. 망칫대 나물? 잘 모르겠다.
성당 건물이 보인다. 천주교 춘천교구 원통성당인데 ‘한국순교자성당’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다. 미국에서 내가 다니는 성당 이름과 똑같다. 안에 들어가 조배를 하고 나왔다. 다리가 뻐근하다.
원통.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군인 간 남정네들이 흔히들 얘기하던, 바로 그곳이다. 행적구역은 인제군 북면 원통리다. 인제군은 전국 기초단체 중에서 두 번째로 큰 면적을 가지고 있다. 제주도 면적과 비슷할 정도로 광활하다. 휴전선에 인접해 있어 군부대가 많은 곳이다. 대한민국 남자 30% 이상이 인제군에서 병영생활을 경험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인제는 시인 박인환, 소설가 한수산, 그리고 이외수 시인이 초중고를 졸업한 곳이다. 한수산은 “해빙기의 아침”과 “부초”를 쓴 소설가다. 이외수 시인은 현재 화천군 감성마을에 살고 있다. 화천을 올라가면서 그를 만나 보았으니 따로 언급하기로 한다.
박인환을 기억하는 분이 많을 것이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는 못할지라도 그 유명한 “세월이 가면”이라는 노래는 웬만한 사람이면 기억에 남아있을 성 싶다. 노래를 모두 기억하지 못하더라고 한 소절쯤은 귓전에 남아 따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2,30대 청춘시절, 나는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 술이라도 한 잔 들어가면 감상에 잠겨 부르곤 했다. 느리게, 천천히 불러야 제 맛이 나는 노래다.
“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 그의 눈동자 입술은 / 내 가슴에 있네 // 바람이 불고 / 비가 올 때도 / 나는 저 유리창 밖 /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네 // 사랑은 가고 / 과거는 남는 것 / 여름날의 호숫가 / 가을의 공원 / 그 벤치 위에 / 나뭇잎은 떨어지고 / 나뭇잎은 흙이 되고 / 나뭇잎에 덮여 / 우리의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 그의 눈동자 입술은 / 내 가슴에 있네 /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
박인환 시인은 이 노래를 1956년에 지었다. 강계순의 박인환 평전에 의하면 그 해 이른 봄 저녁 명동에 있는 ‘은성’ 이라는 술집에서 박인환, 이진섭, 송지영, 영화배우 나애심이 모여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은성은 배우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술집이었다. 술이 몇 차례 돌아가자 그들은 나애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졸랐지만 그녀는 좀체 부르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박인환이 즉석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 시를 넘겨다보고 있던 이진섭이 즉석에서 작곡을 하고 나애심은 흥얼흥얼 콧노래로 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 두 시간 후 나애심과 송지영은 돌아가고 임만섭, 이봉구 등이 합석을 했다. 테너 임만섭이 그 우렁찬 성량과 미성으로 이 노래를 다듬어서 불러, 길가는 행인들이 모두 유리창이 깨진 목로주점과 같은 초라한 이 술집 문 앞으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이 시를 쓰기 전날 박인환은 그의 첫사랑 애인이 묻혀있는 망우리 공동묘지에 다녀왔다고 한다. 그의 가슴에 남아있던 애인의 모습과 아름다운 추억을 노래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시는 전쟁이 휩쓸고 간 도시의 황폐함과 상실의 아픔, 그리고 따뜻한 인간애와 사랑에 대한 추억과 목마름을 담고 있다. 그는 서른한 살에 요절했다.
해가 저물어 가는데 더 이상 걷는 게 무리가 될 성 싶다. 이경진씨가 소개한 천도리 장근세 이장께 전화를 걸었다. 고맙게도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와 주겠단다. 함께 한국DMZ평화생명동산까지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