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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듀이 마크햄 주니어 (Dewey Markham Jr.)
출처: 쿠켄 2008년 2월호
프랑스 와인산업의 주춧돌이 되는 것은 '테루아-Terroir'라고 하는 개념이다. 포도의 품종 이름이나 원산지 이름의 영역을 넘어서서,이외의 모든 요인을 뭉뚱그려 설명하는 개념으로서 와인 메이커들이 가장 자주 언급하는 것이다.
테루아는 와인 생산과정에 있어서 가장 오해가 많은 부분이기도 한데,프랑스 사람들은 거의 신비하게 느낄 정도로 이 테루아라는 주제 전체를 교묘하게 감출 뿐,이것을 명확히 하고자 하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테루아라는 개념은 아주 직선적인 것이며,접촉 가능한 물리적인 환경 속에 잘 정의되어 있다.
우선 테루아라는 개념을 포도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토양과 별 차이 없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비록 토양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테루아라는 개념에는 훨씬 더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사실 토양의 밑, 위 그리고 주변의 모든 것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테루아를 정의하는 세 가지
테루아를 정의하는 것은 세 가지, 즉 기술적으로 토양학적인 측면, 지질학적인 측면, 그리고 그 토양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다. 이 세 가지가 도대체 무엇이고, 이것들이 각각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순서대로 살펴보기로 하자.
토양은 아마 가장 이해하기 쉬운 것일 텐데 흙 자체를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 한 가지의 흙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포도밭의 전범위에 걸쳐 분포한 다양한 토양 그리고 그 각기 다른 타입의 토양이 어떻게 서로 작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토양이라고 하는 부분은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별로 좀더 복합적인 지역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는 곳이 있다.
예를 들면,보르도나 랑그독 같은 지역에서는 한 포도밭의 면적이 상당히 클 수 있다(이 경우 한 포도밭은 AOC상의 한 단위가 될 수도 있고 혹은 개별 포도밭이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생산자는 여러 타입의 토양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은 포도밭에서도 전체 포도밭을 몇 개의 밭으로 나누고,각각의 개별 밭은 그에 가장 적합한 포도의 품종 접목에 쓰이는 대목(臺木), 같은 품종 내에서도 또 세분화된 클론, 수령(樹齡)을 선택해 재배하게 된다. 이러한 각각의 변수는 포도밭 전체의 토양에 존재하는 상이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부르고뉴에서는 한 특정 AOC내에서 한 생산자가 소유하고 있는 포도밭의 크기는 훨씬 작을 수 있다. 예컨대 베르트랑 암브루아즈(Bertrand Ambroise) 같은 와인 메이커가 클로부조(Clos Vougeot AOC)에서 소유하고 있는 밭은 겨우 몇 고랑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한 와인의 테루아를 결정하는데 토양 타입의 차이에 기인하는 부분은 훨씬 작다.
테루아의 두 번째 요소는 지질학적인 것인데 흙보다는 오히려 흙 밑의 모든 것을 가리킨다. 많은 와인 메이커들은 최근에 와서야 이 부분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는데, 한 가지 이상의 포도품종을 재배하는 지역에서는 역사적으로도 포도밭 토양 표면의 조건에 따라 가장 적합한 품종을 재배하고자 대단한 공을 들여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공들인 만큼 기대 수준을 따라잡는 뛰어난 품질의 포도를 항상 수확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포도원의 특정 밭은 표면상으로 볼 때 특정 타입의 토양이 집중되어 있다. 때문에 와인 메이커는 그 밭에 특정 포도품종을 재배하는데,실상 그 포도나무의 뿌리는 매우 다른 형태의 하층토까지 내려간다.
지상에 자란 포도나무의 1.5배 정도의 길이까지 뻗어 나가는 뿌리는 실제로 땅과 직접 접촉하기 때문에,최종 산물인 와인의 특성에 명백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은 샤토네프 뒤 파프(Chateauneuf-du-Pape)에서 볼 수 있다 이 지역 토양의 표면은 바위로 구성되어 유명한데,그 밑의 지하에는 석회석,이회토(泥灰土), 마알(marl - 석회와 진흙으로 구성된 토양의 한 종류),침니(沈泥),실트(silt - 모래보다 곱고 진흙보다 거친 침적토) 등과 같은 거의 12가지에 달하는 상이한 하층토로 구성되어 있다.
테루아의 이러한 측면을 좀더 잘 이해하게 되면서, 와인 메이커들은 그들의 전 포도밭에 걸쳐 지하까지 구멍을 뚫어 땅 밑에 과연 무엇이 있는지 활발히 조사하게 되었다. 그들의 땅이 정확하게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이런 경우 통상 수 미터까지 파고 들어간다. 이러한 활동은 보통 그들의 포도밭의 특정 부분이 휴경기에 들어가서 포도나무를 다시 심을 때에 이루어진다. 그때가 땅밑까지 파고 들어가기가 쉬울뿐더러,그 밭에 포도나무를 다시 심을 때 즉각 그 조사 결과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필요한 경우에는 포도밭의 크기나 포도품종까지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의욕적인 와인 메이커들은 포도나무를 다시 심어야 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어린 나무든 오래된 나무든 샘플을 채취하여 품질을 향상시킬 필요성이 있으면 지체하지 않고 새로 심은 밭의 포도나무까지 갈아 엎기도 한다.
테루아의 세 번째 부분은 주변 환경인데,이것은 전통적으로 토양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일반 와인 애호가들의 이해가 가장 부족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것은 테루아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중 가장 복잡한 부분이기도 한데,그 이유는 너무 많은 요소들이 여기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포도밭의 경사도,태양광에 대한 노출 정도,빗물이 얼마나 빨리 흘러내려가는지,혹은 그것을 빨아들이는지 등등이 그것이다. 심지어 포도밭 외부에서 기인하는 요인들도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포도밭 주변에 큰 나무들이 서 있으면 그 지역의 바람 흐름을 막아 이른 봄철에 포도나무들이 얼어붙게 할 위험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찬바람이라도 포도밭 위로 움직이는 바람보다 정지되어 있는 찬 공기가 부드러운 포도나무의 새순을 더 쉽게 동결시킨다),
테루아의 이 세 요소들은 상호 결합하여 테루아의 제2단계 특성을 결정짓는다. 지질학적인 측면과 토양학적인 측면은 상호 결합하여 토양 기후(피도클라이멋,pedoclimate)를 만들어 포도나무의 뿌리 시스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토양학적인 측면과 주위의 환경은 상호 결합하여 포도나무의 땅 위에 나와 있는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중기후대(메소클라이멋, Mesoclimate)를 구성한다.
마지막으로 토양 기후와 중기후대는 함께 작용하여 기본적인 테루아 자체를 규정짓는다. 그러나 또 하나 네번째 요소가 있는데,그것은 바로 와인 메이커다. 이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테루아의 마지막 요소,와인 메이커
같은 포도원이라 하더라도 와인 메이커가 다르면 와인의 스타일도 달라질 수 있다. 생테밀리옹의 샤토 파비(Chateau Pavie)가 그 좋은 예다. 이 샤토의 제라르 퍼스(Gerard Perse)는 몇 안 되는 빈티지를 생산하는 동안에(퍼스는 1998년부터 오너가 되었다),이 와인의 스타일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러한 스타일상의 변화는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대단한 논란거리가 되었다. 샤토 파비의 전통적인 스타일에서 그렇게 근본적으로 벗어나는 것을 일종의 배반이라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와인 메이커의 노력이 테루아의 한 부분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인다면,스타일상의 차이라는 것은 테루아의 기본적인 부분의 하나가 바뀌었다는 사실이 반영된 데 불과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한 테루아라는 개념은 프랑스의 와인 메이커들에게 분명 득이 되는 점도 있지만 동시에 불리한 점도 있다. 호주, 칠레,캘리포니아의 경쟁자들이 등장하면서 프랑스의 와인 메이커들은 자신들의 와인이 특별한 것이라고 강조할 때에 이 테루아라는 개념을 사용해 왔다.
뉴월드의 와인 메이커들은 라벨에 포도품종을 명시하여 자신들의 와인을 구분하지만, 프랑스의 와인법은 전통적으로 이러한 관습이 없다. 품종을 표시하지 않는 관습의 배후에는 누구든 샤르도네 와인을 만들 수는 있지만, 뫼르소(Meursault) 와인은 뫼르소의 테루아에서만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각의 AOC가 이러한 방법으로 와인을 표시하면 각각의 와인을 특히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다.
프랑스인들의 테루아에 대한 믿음
문제는 과거 수십 년간,와인 애호가들이 와인을 살 때 일반적으로 테루아보다는 품종을 근거로 와인을 구매해 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의 와인 메이커들이 지나치게 테루아에 집착하는 것이 오히려 프랑스 와인의 상업성을 떨어뜨렸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루아에 대한 믿음은 너무도 굳건하여 앞으로도 많은 생산지들은 그들의 와인을 판촉할 때에 계속하여 중요한 부분으로 부각시킬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와인 애호가들이 좀더 흥미를 가지고 있는 다른 요소들은 배제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프랑스 와인 메이커들에게 있어서 테루아는 곧 와인인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내용들은 사실이지만 테루아는 프랑스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또한 강조하고 싶다. 마찬가지 원칙이 다른 모든 포도원에도 적용되는 것이고 그 포도밭의 테루아를 결정짓는 각각 상이한 조건들이야말로 와인 애호가들이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종류의 와인 스타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어떤 타입의 포도나무를 심을 것인가
테루아의 영향이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은 주어진 AOC에 어떤 품종의 포도나무를 심을 것인가, 하는 재배자의 선택이다. 이는 한 가지 종류의 포도나무만으로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에 있어서도 중요한 것인데, 프랑스에 있어서 이러한 선택을 위한 논리는 상대적으로 직설적이다.
프랑스 전체를 네 개의 기본적인 구역으로 나누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는 대서양에 가까운 서쪽의 해양성 기후 지역으로부터 동쪽 내륙지방의 대륙성 기후 지역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넓고 다양하다는 점에서 와인생산국중에서는 실제적으로 유일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루아르강 북쪽의 추운 날씨는 남부 지방의 온화한 기후 지역과는 확실히 다르다.
남서쪽의 덥고 건조한 조건은 카라냥(Carignan)과 그르나슈(Grenache) 같은 품종들에 이상적인데 이 품종들은 전통적으로 미디(Midi) 지방에서 재배된다. 비록 리슬링은 건조한 기후를 좋아하지만,남쪽으로 내려가서 온도가 올라가면 북쪽에서만큼 잘 자라지 못한다.
프랑스의 남서부는 대서양의 영향을 많이 받아 비가 자주 내리는데 이곳에서는 또 다른 종류의 포도품종들이 지배적이다. 예를 들면 말벡, 메를로, 퍼세르바두(Ferservadou) 같은 품종들이다 (말벡과 메를로는 다른 지역에서도 재배조건이 비슷한 경우에는 쉽사리 적응하는데 퍼세르바두, 그리고 그 밖의 남서부에서 재배하는 많은 다른 품종들은 그 지역의 환경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서 매우 한정적으로 재배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북서부의 서늘하고 습기가 많은 조건하에서는 슈냉블랑(Chenin Blan)과 뮈스카데(Muscadet)가 잘 맞아서 이 지역의 전통적인 와인의 가장 중요한 품종이 되고 있다.
샤르도네는 지중해를 따라 남서부의 포도밭에서 인기가 높다 (남서부는 덥고 습해서 북동부의 줍고 건조한 기후조건과 정반대다). 샤르도네는 품종 자체가 인기 있기 때문에,더운 지역에서 재배된 샤르도네로 만든 와인도 품질보다는 품종을 우선하는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몇몇 예외들이 있다고 해서 여러 세대에 걸쳐 발달해 온 포도품종의 재배 패턴을 결정짓는 기본적인 논리에는 변함이 없다(프랑스만이 전국에 걸쳐 다양한 기후가 존재하는 유일한 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또 한번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도 다양한 기후가 존재한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뚜렷하게 다른 세계적인 수준의 와인이 가장 넓게 분포되어 있다).
같은 지역의 와인과 음식의 매칭
와인은 음식과 어울리기 마련인데 상이한 지역에 상이한 와인 스타일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 지역은 와인과 함께 즐기는 음식도 각기 상이하다. 프랑스의 음식과 와인을 잘 조합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마실 와인과 같은 지역의 음식을 고르는 것이라고 흔히 말한다 (혹은 음식을 기준으로 한다면,그 음식과 같은 지역의 와인을 마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음식과 그 레시피는 종종 그 자체가 와인과 마찬가지로 테루아의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해 왔다. 프랑스의 전통적 인식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전통적인 요리스타일은 ‘테루아의 요리(Cuisine du Terroir)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레시피에서는 종종 와인도 요리의 일부분으로 취급되는데,여기서 말하는 와인이라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인 것이다. 이러한 사례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뵈프 부르기뇽(Boeuf Bourguignon - 부르고뉴스타일의 쇠고기 요리라는 뜻)인데,이것은 부르고뉴 지방의 쇠고기(샤롤레 – Charolais)를 부르고뉴 와인으로 조리한 것이다.
프랑스 음식을 프랑스 와인과 조합하는 방식은 프랑스의 치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프랑스는 365가지의 치즈를 생산하는 나라로 유명하고(이러한 내용은 샤를 드골 대통령에 의해 유명해졌다). 동시에 약 400가지의 와인 AOC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에 잘 맞는 그 지역의 치즈를 찾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이러한 예의 가장 고전적인 것은 상세르(Sancerre) 와인과 크로탱 드 샤비뇰(Crottin de Chavignol) 치즈,그리고 부르고뉴 와인과 에푸아스(Epoisses) 치즈를 조합하는 것이다 (물론 프랑스 와인과 관련된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것들은 단지 하나의 가이드라인이고 엄격한 룰은 아니다. 어떤 지역의 치즈가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과 아주 잘 맞는 조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보르도는 전 지역을 통틀어 보아도 생산하고 있는 고유의 치즈가 없기 때문에 치즈와 와인을 조화시키려면 멀리 다른 지방의 것을 찾아 보아야 한다).
와인이든 음식이든,다시 말하면 포도의 품종이든 요리 재료든,프랑스 사람들이 테루아를 강조하는 것은 잘 살펴보면 정말로 합리적인 논리가 있다. 이러한 요소를 잘 이해하면 프랑스의 와인과 그것을 생산하는 사람들을 좀더 잘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