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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회 백두대간 생태탐방 보고서
박지윤 / 율곡중학교 3학년
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동쪽 해안선을 끼고 남으로 맥을 뻗어 내리다가 태백산을 거쳐 남서쪽의 지리산에 이르는 국토의 큰 줄기를 이루는 산맥이다.
2006년 8월 1일 (강릉-환선굴-자암재 : 5km)
첫 날부터 지각을 하게 생겼다. 집결시간이 10시라고 알고 있었는데 좀 이상하다 싶어서 다시 한 번 책자를 뒤적거렸던 것이 다행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좀 늦은 감이 있어서 동생과 내가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많은 아이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얼른 그 곳에 껴있어야 되겠다는 마음에 조용히 한 쪽 구석에 콕 박혔다. 조금 쭈그려 앉아있자 손수건과 물통이 전달되었다. 그때서야 여자아이들과 조금 말을 텄던 것 같다. 지금이야 왕 수다쟁이들이 되었지만. 발대식을 마치고 버스에 탔다. 어쩌다 보니 동생과 떨어지게 되었는데, 그 덕에 내 옆자리에는 숲 해설가이신 윤지숙 선생님께서 앉으시게 되었다. 차를 타고 환선굴까지 가는 도중에는 잠이 들어서 많이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선생님께서 준비해 오신 듯 한 쪽지들을 보니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에서 내려 풀밭에 앉아 챙겨온 점심을 먹고 환선굴까지 올라가는 길에는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밥은 먹었는데 소화는 안되지, 햇볕은 내리 쬐지, 아무리 올라도 끝은 보이지 않지, 얼굴이며 등, 다리에도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환선굴에 도착했을 땐 엄청나게 시원했었다. 마치 머리를 감고 나서 선풍기 앞에 선 느낌이랄까? 환선굴 안에는 정말 신기한 모양의 돌들이 많았다. 물방울들이 타고 흘러 만들어진 오묘한 모양 중에는 거북이도 있고, 성모마리아상도 있었다. 예전에도 환선굴에 갔던 적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 기억엔 별로 남아있는 것이 없다. 그렇지만 이제는 환선굴이라 하면 힘들게 도착했던 기억과 함께 아주 잘 생각날 것 같다.
환선굴을 둘러보고 나와서 환선굴 앞 그늘에서 15분가량 쉬었다가 다시 출발했다. 환선굴까지 오던 길을 통해서 내려가는 듯 싶더니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가 있던 조는 7조 였는데 맨 앞쪽에 서서 갔었다. 가끔씩 뒤쪽에 있는 아이들을 돌아보니 지치지도 않는 것 같아 괜히 더 힘들었다. 날이 점점 저물어 간다는 것이 느껴질 때 쯤 우리는 자암재에 도착해 윤지숙 선생님의 숲 해설을 들었다. 선생님께서는 앉아서 쉬는 도중에 가장 많이 보이던 신갈나무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는데, 이 신갈나무는 옛날 사람들이 신고 다니던 짚신의 밑바닥이 헤지면 이 나무의 잎을 깔아 사용했다는 데에서 신갈나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말씀해주셨다. 또 떡갈나무는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떡을 싸서 보관했다는 것과 갈참나무는 골이 깊게 패이고, 화전민들이 지붕으로 사용했다는 것 등,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셨다. 선생님의 이야기가 끝나자 다시 가방을 메고 걸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우리가 묵을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모두 같이 텐트도 치고 밥도 하면서 서로 많이 친해진 것 같다고 느꼈다. 밥도 다 먹고 설거지도 다 하자 아이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나뭇가지를 주워 모으는 아이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그 곳에 불을 지피고 둘러앉아 산 노래를 배우고 생일을 맞은 오빠가 있어서 축하도 해 주었다. 그 날 밤은 주변에 불빛이 없어 유난히도 별이 잘 보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2006년 8월 2일 (자암재-덕항산-구부시령-건의령 : 13km)
새벽 6시에 아침을 맞았다. 평소 같았으면 푹 퍼져 자고 있을 시간에 일어나 밥을 먹고, 오늘 하루를 위해 한숨을 쉬고 있는 나를 보니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텐트를 빠르게 접어 넣고 오늘 지고 다녀야 할 짐과 트럭에 실어야 할 짐을 이리 저리 옮겨 놓으며 산에 오를 준비를 했다. 어제 내려올 땐 내리막 길 이어서 잘 몰랐는데, 오늘엔 반대로 오르막 길로 오르니까 숨이 조금씩 가빠졌다. 나는 최근에 숨이 가빠지는 게 아주 오래전 일처럼 느껴질 정도로 운동을 안 해왔다. 그래서 스스로에게도 계속 ‘운동을 안 해왔으니까 당연한 거야.’라고는 말했지만,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지칠 때면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돌아가며 산 노래도 불러주고, 산악회 아저씨들이 뒤에서 “힘내자!”라고 큰 소리로 말 해주셨던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점심에는 아침에 싸온 주먹밥을 먹었는데 그때에는 내가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입맛이 없었던 것 같다. 우리 조 대학생 선생님이 먹기 싫어도 먹으라고 하셔서 점심시간 내내 꾸역꾸역 한 개를 먹었다. 나예언니와 별이도 하나씩 먹었던 것 같다. 혼자서 조용히 두 개를 먹은 유경이가 놀라웠다. 소리 없이 강하다.
점심을 먹고 많이 쉬었다가 출발했는데도 나는 잘 걷지 못했다. 가면 갈 수 록 속은 울렁거리고 땀은 비 오듯이 흘렀다. 또, 쉴 땐 물을 병째 들이켰다. 마시고 걷고 마시고 걷고를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물 때문에 배가 출렁거려서 힘들었다. 나중엔 물을 조금씩 먹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평지를 걸을 땐 속도 많이 좋아지고 숨도 덜 차서 좋았던 것 같다. 오르막이나 내리막길을 걷게 되면 다시 힘들었지만. 윤지숙 선생님께서 숲 해설을 해주실 땐 참 좋았다. 숲 해설을 빌미로 많이 쉬었다 가는 것도 좋았지만, 예전에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 날은 숲의 천이와 살림욕에 대해 들었는데 둘 다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막연하게 몸에 좋다고만 알고 있던 살림욕에 대해 잘 설명해주셔서 감사했다. 특히, 피톤치드라는 물질을 배운 것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오늘이 가장 긴 코스인 13km라고 들었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끝없이 반복했다. 나중에 거의 다 와서는 소나무가 참 많이 보였는데, 소나무에 대해서도 선생님께 숲 해설을 들었다. 나도 선생님의 말처럼 소나무가 우리 민족을 나타내는 참 멋진 나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나에게는 개인적으로도 소나무가 인상 깊은 나무이기도 하다. 어렸을 적, 자전거를 배우다가 넘어져 무릎에 크게 상처가 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할머니께서 소나무에서 나오는 송진을 발라주셨던 기억이 있다. 좀 많이 끈적이긴 했지만 효과는 매우 좋았었다. 그러고 보면 소나무는 사람이 사는데 참 유익한 나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재선충이나 솔잎흑파리 때문에 병들어 가는 소나무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산을 내려와 트럭이 있는 곳까지 가는 길엔 너무 힘들었다. 하루 종일을 걸었는데, 고작 요만큼 더 걷는 것이 이렇게나 힘들다니. 게다가 내리막길이었는데 말이다. 그날 자게 된 곳은 분교였는데, 분교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그나마 수돗가가 있어서 씻기도 편하고 개울에서는 샤워도 해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유경이와 별이 그리고 나는 다 늦은 저녁에 라면을 끓여 먹었다. 정말 꿀맛이었다.
그날 밤 우리 조 텐트에서는 4명이 아닌 5명이서 자게 되었는데, 그 다섯 번째 인물은 5조에 심영은 선생님이시다. 넷이서 자다가 다섯이 되니까 따뜻했다...면 거짓말이고, 좀 좁아진 느낌을 받긴 했지만 불편하진 않았다. 그리고 화장실의 암모니아 냄새는 정말로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2006년 8월 3일 (건의령-피재-금대봉-싸리재 : 10km)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6시에 일어나는 것이 적응된 마냥 눈이 번쩍 떠졌다. 눈만 멀뚱히 뜨곤 두리번두리번 거리다 선생님께서 “기상!”이라고 크게 외치실 때가 되서야 이불을 개어놓고 나왔다. 일찍 일어나도 소용이 없다. 꿈지럭꿈지럭. 정신은 멀쩡한데 몸이 말을 안 듣는다니까.
그 날은 조금 억울한 날이었다. 우리는 차에 일찍 타야만 한다는 일념 하에 (늦게 정리하면 걸어가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흑흑) 열심히 아주 열심히 치우고 일등이라는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차에 낼름 올라탔다. 그런데 이게 왠 날벼락? 첫 번째 차에 타게 된 우리는 걸어가야 했고, 두 번째 차에 탄 아이들은 차를 타고 갔다. 이유인즉슨 속도를 맞춰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 땐 정말로 울 뻔 했다.
아침에 산에 접어들었을 땐 야트막한 산길로 꼬불꼬불 가길래 별로 안 힘들 줄 알았는데, 진정 내 머리는 금붕어의 기억력보다 못하단 말인가. 오늘의 하이라이트! 배추밭을 지나가야한다는 사실을 깜빡 해버렸다. 얼마나 갔을까? 숲 속의 나뭇가지 사이로 조금씩 햇빛이 스며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끝도 없을 것만 같은 배추밭이 드러났다. 돌덩이들 사이로 큼지막하게 자라난 배추가 신기했다. 약 한 시간 반 가량 배추밭을 걸어간다는 것이 조금 막막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배추밭을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참을 만하네. 조금만 더 걸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점점 더 힘들어 졌다. 별이와 내가 자꾸 처지자, 나중엔 우리 조장 선생님께서 배낭을 대신 메 주시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배낭을 벗으니 어찌나 홀가분하던지. 날아갈 것만 같았다. 내 배낭을 대신 매주신 선생님께서는 내가 얄미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 배낭을 메고 땡볕이 내리 쬐는 배추밭을 걸어주신 선생님이 너무너무 고마웠다.
뜨끈뜨끈 달구어진 포장도로를 걷다가 숲에 들어오니 정말 상쾌하고 시원했다. 숲 속에 들어오자마자 쉬고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7조 앞으로!”란 말과 동시에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힘들지만 산에 오르는 것이 뜨거운 포장도로 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열심히 걸었다. 그리고 산에서 들려주는 선의의 거짓말은 즘말 느무느무 무서웠다. 5분이 3분도 채 되지 않게 줄어드는 효과랄까. 인상 깊었던 일 중에서도 몇 안 되는 정말 훈훈했던 장면이었던 것 같다.
배추밭 걷기를 포함한 긴 산행을 마치고, 트럭 뒤에 패잔병마냥 실려 잘 곳에 도착했다. 이제는 모 방송국, 유아 프로그램 이름처럼 혼자서도 잘했던 것 같다. 텐트치고. 서리 맞지 않도록 짐도 미리미리 옮겨놓고. 저녁에는 삼겹살을 구워먹었는데, 오랜만에 고기를 먹으니 맛이 끝내줬다. 저녁을 먹을 때 까지만 해도 괜찮은 것 같던 날씨가 잘 때는 바람이 막 불어대고, 장난이 아니었다. 난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네 집이 날아가는 것처럼 우리 조 텐트, 정말 날아가는 줄 알았다. 텐트 걱정 하느라 밤새 10번도 더 넘게 깨어났던 것 같다.
2006년 8월 4일 (싸리재-함백산-만항재-화방재 : 11.7km)
넷째 날은 왠지 모르게 눈이 피곤한 아침이었다. 첫 번째 트럭에 타고 등산로 입구에 가서 기다리는 일은 왠지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기다리는 일마저 휴식으로 생각했던 것 일까? 하아. 지금 생각해보니 좀 처량했던 것 같기도 하다.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되자 어제 산행의 여파로 무릎이 살짝 아파오는 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코를 찌르는 파스 냄새가 별로 달갑지 않아서 그냥 참았다. 처음 오르막 길에서 땀을 몇 방울 흘리고 나니, 많이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뭐, 어제 고랭지 배추밭을 걸었던 것도 함께 위안을 받으며.
점심은 다른 날 보다 유난히도 짠 라면을 먹었던 것 같다. 그리고 라면을 다 먹은 뒤에는 선생님이 주시는 해장 커피도 먹어 봤는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맛이 좋았다. 원래 커피를 잘 마시지는 않았지만 애들이 다 한 모금씩 먹길래 나도 먹고 싶어져서 얻어먹었다.
그리고 이 날은 특히나 숲 해설이 재미있었는데, 특이하게도 만들기가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산죽으로 배를 만드는 것과 질경이로 제기를 만들었던 것 모두 내게는 생소한 일이었다. 질경이를 조금 분질러 줄기를 벗기면 나오는 섬유질은 매우 신기했다. 그렇게 해서 나오는 섬유질을 여러 개 잡고 흔드니까 제기가 되었던 것도. 그렇지만, 둘 다 조금씩 아쉬움이 남는 만들기였던 것 같다. 배는 만들었는데, 띄어 볼 개울이나 냇가가 없었고. 제기도 만들었는데, 잘 차질 못한다.
천의봉에서 내려오던 길에는 주목이란 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었다. 살아서1000년, 죽어서 1000년이라니. 참 신기한 나무라고 생각했다. 아, 비닐봉지로 나무가 숨을 쉬는가 안 쉬는가에 대해서도 실험 해보았는데 실험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초 간단! 일단 준비물은 비닐봉지랑 고무줄. (선생님이 고무줄을 찾으셨는데 결국 고무줄은 없어서 한 선생님의 희생(?)으로 대체되었다.) 가지 하나를 선택해서 봉지로 감싸고 고무줄로 봉지의 입구를 묶는 것이다. 그 상태로 몇 분 있다가 봉지 안쪽을 확인한다. 선생님께선 비닐봉지 안에 축축하게 습기가 찬다고 하셨다. 나도 비닐봉지 안에 손을 넣어보고 싶었는데, 거리가 좀 멀어서 넣어보진 못했다. 많이 아쉬웠다.
산을 다 내려와 트럭을 기다리고 있을 땐 후드득 소리를 내며 비도 왔었다. 어느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했는데, 그 땐 비가 많이 올까봐 걱정도 했었던 것 같다. 다행히 소나기여서 그랬는지 컨테이너 박스 앞에 도착 할 무렵엔 비가 그쳤다. 20분 만에 샤워를 끝내라는 선생님의 말에 급하게 씻느라 머리는 미처 감지 못해서 수돗가에서 감았다. 아! 그 날 무엇보다도 좋았던 점은 텐트를 안쳐도 된다는 것이었다. 방에서 꾸리꾸리한 냄새가 나기는 했지만 뭐 어떠랴. 텐트를 안친 것이 마냥 좋았다.
저녁밥을 먹고 나서는 빈 공터에 동그랗게 둘러 앉아 369와 쥐를 잡자 게임을 했다. 게임 도중에 내 옆에는 기평이라는 남자애가 앉게 되었는데 순간 흠짓 했다. 왜냐하면, 다른 아이가 벌칙을 받는데, 기평이라는 애가 너무 세게 때리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중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날 세게 때리지 않아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 전, 머리맡에서는 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날 새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떠들었다. 어쩌다 한번은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조용히 하라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갑자기 선생님이 들어오셨을 땐 맴매퍼레이드라도 들어가는 줄 알고 별이와 함께 깜짝 놀라기도 했다.
2006년 8월 5일 (화방재-유일사-태백산-백단사-대관령자연휴양림 : 8.3km)
이 날에는 태백산에 갔던 날이다. 아침부터 몸이 좋지 않아서 하루 종일 힘들었다. 처음부터 최대의 난코스 급경사를 만났다. 정말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다. 급경사를 한번 지나고 나자 그 다음부터의 길은 조금 수월해졌지만, 반대로 배가 더 아파져서 이러나저러나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리고 숲 해설 시간에는 음나무라는 나무에 대해 배웠는데, 선생님께서는 귀신이 음나무 가지의 가시에 걸려 집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고 하셨다. 자세히 생각나지는 않지만, 지금 사는 집이 아닌 예전에 살던 집에는 문 위에 음나무 가지가 걸려있었던 것 같다. 뾰족한 가시가 여러 개 돋아 흉측하게 생긴 모양이 지금까지도 생각난다.
태백산으로 가는 길에 휴식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어떤 산악회 아저씨께서 노래를 부르셨는데 정말 잘 부르셨다. 또, 그와는 대조된 노래를 불러 준 대학생 선생님도 잘 부르셨다. 그때 들었던 중화반점 노래는 너무 재미있어서 동생과 집에 와서도 한동안 흥얼거렸다.
태백산에 올랐을 때는 배가 너무 아파서 경치 구경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태백산을 내려 올 때는 비탈길이어서 그렇게 힘들었던 것 같지는 않다. 다 내려와서는 비탈길에 앉아 점심을 먹었고, 차를 타고 가는 길에는 꾸벅꾸벅 졸았다. 차에서는 정말 황당한 일이 있었다. 피곤해서 의자를 뒤로 젖히려고 했는데 아무리 스틱을 당겨도 의자가 넘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고장 난 줄 알고 그 상태로 한참을 있다가 내 왼쪽을 보니 다른 스틱이 있어서 당겨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쑥 하고 의자가 넘어갔다. 너무 허탈했다. 하아.
버스에서 내려 대관령자연휴양림에 가는 길엔 조금 웃었던 것 같다. 나는 분명 선생님들이 1Km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는데, 뒤에서 온 별이는 그것 듣지 못한 것인지, 6Km를 더 갈지도 모른다고 하셨을 때 놀라는 모습이란. 큭큭. 대관령자연휴양림은 우리가 지내왔던 곳 중에서 가장 샤워시설이 좋았던 곳이다. 이제는 물 차가운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모두 다 잘 씻는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장기자랑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 조원들은 모두 다 하나씩 문화상품권을 받게 되었다. 무려 5천원이나 받았다. 장기자랑이 끝나고는 맛있는 피자도 먹고, 마지막 날 밤이어서 그런지 잠도 잘 오지 않아서 밤새도록 수다를 떨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2006년 8월 6일 (대관령자연휴양림 산책)
평소대로 일어나 코펠에 밥을 하고 텐트를 접었다. 이제야 조금씩 적응이 되가는 것 같은데 벌써 마지막 날이라니. 아쉬웠다. 그 날의 숲 해설은 윤지숙 선생님이 아닌 새로운 선생님의 해설을 듣게 되었다. 버스에 있는 곳까지 가는 길에는 해설도 듣고, 게임도 했는데 단순하고 쉬운 게임이었다. 자신이 뽑은 카드 모양과 비슷한 잎을 찾아오는 것이었는데 정말로 똑같은 모양의 잎을 찾아온 아이도 있고, 전혀 엉뚱한 모양의 잎을 찾아온 아이도 있었다.
강릉에 도착했을 땐 너무 어수선 했던 것 같다. 집에 가서 씻고 편하게 누워있는 것은 생각만 해도 좋았지만, 한편으론 며칠 동안 같이 동고동락했던 유경이 별이 그리고 나예언니와 헤어지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별이랑 유경이와는 내년에 또 오기로 약속을 했다. 힘들었던 6일이었지만 그만큼 값진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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