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산법어 교훈편 53장> 대산 종사 말씀하시기를「정진 적공이란 하루 세 끼 밥 먹듯 오늘도 내일도, 이달도 내달도, 금년도 내년도 한결같이 공을 들이는 것이라, 공들이지 않고 속히 이루려는 마음은 도가의 모리배와 같으니라.」
|
반갑습니다.
6월 하순에 들어서서 참 세상은 급변하는 것 같습니다.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이 풀리고 북미가 풀려 나가고 이제 러시아 중국까지 세상이 그 동안 하나의 이념, 이데올로기로 살았다가 그런 것들이 다 터지고 벽이 무너지고 그런 시기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정치계도 간첩단 사건을 만든다거나 반공을 위주로 해서 악용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알고 보니 간첩단 사건은 거의 조작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밝아져서 정치가 군림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국민들에게 서비스 할 것이냐-기업하는 사람은 기업을 잘 하게 해주고 사업하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장사를 잘 하게 해주고 자기의 일생에 있어 소중한 삶을 행복하게 살게 도와줄 것이냐-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 정치다 하는 것들을 서서히 확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스포츠라는 것이 매개체가 되지요.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전환점이 되고 옛날 중국과 미국이 풀려나갔던 것도 핑퐁 외교라고 해서 탁구를 통해 만남의 계기를 삼았습니다. 참 스포츠, 문화라는 것이 굉장한 위력이 있다, 한편으로 그런 생각이 듭니다.
교도 강연 및 예비교무 감상담 강평
은서교도님이 솔성요론 8조로 강연을 해주시고 두 분 예비교무가 감상담을 해 주셨습니다.
잘 들으셨지요? 우리 은서교우는 PPT까지 만들며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서 준비를 잘 했지요. 여러분에게도 그렇지만 사실은 본인에게 은혜가 많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기회에 뒤져보지 언제 그렇게 뒤져봅니까, 솔직히? 그렇죠? 수고 하셨고요. 앞으로 은서교우가 큰 회상에 주인 될 수 있도록 박수한 번 쳐줍시다.
그리고 우리 고일곤 예비 교무님이 복지관 실습을 하실 겸 교화도 배울 겸 왔는데요. 아까 얘기 들으셨죠? 다음 주부터 (수요공부방에서) 염불법을 공부하는데 저 사람은 망념이 들고 망상이 들고 다른 마음이 들 때마다 나무아미타불...(염불을 하였다고 합니다) 나무아미타불이 뭐죠? 귀의한다, 아미타 부처님에게. 내 참 마음자리 자성불(自性佛)에 들어가겠다, 하는 것이 나무아미타불 염불이거든요. 온갖 생각을 자성자리에 되돌리는 것을 실제 경계에서 6개월, 1년을 해보면서 본인이 스스로 변화를 겪은 것을 얘기해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 공부법이 말이에요. 어떤 분은 서원을 대조해서, 신심을 대조해서, 어떤 분은 교법을 대조해서, 어떤 분은 단전주(丹田住)를 해서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어요. 그러나 상황 따라서는 경계가 많을 때는, 자기 체질에 번뇌가 많이 드는 사람은 염불법이 좋습니다. 효과를 봤다니까 참 좋습니다.
저도 원불교 학과 다닐 때 염불은 매일 20분씩 했었습니다. 저는 5년간 매일 저녁마다 염불을 20분씩 했었습니다. 아침에 선도 했었지 만요. 염불을 처음 할 때는 잘 몰라요. 계속 하다보면 대종사님께서 왜 염불과 좌선의 공덕이 같다고 하셨는지 확인하실 수 있어요.
그리고 우리 박여주 교무님. 머리 올린 거 처음 보셨죠? 3월 달에 관례식 하고 왔는데 어떤 사람은 몰라봤다고 하대? 여주 교무님은 참 너무 기특한 것이 많아요. 크게 사심이 없어. 그리고 저 사람은 사실은 집안에 남매인데 오빠는 일찍부터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살다시피 합니다.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집안을 건사해야 하는데 연봉을 상당히 많이 받는 회사생활을 접고 여자의 몸으로 출가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지요. 보통 큰 마음을 먹지 않으면 할 수 없어요. 간사를 살고 영산대에서 학교를 마치고 준비를 하는데 보니까 갈수록 성장한다고 할까 발전한다고 할까, 법력이 향상됨을 느끼면서 저도 마음이 흐뭇하고 좋습니다.
솔성요론 8조
<솔성요론 8조> 일일시시(日日時時)로 자기가 자기를 가르칠 것이요.
|
오늘 솔성요론 8조인데요. 솔성요론을 보시면 은서교우가 설명을 잘 해주었는데 삼학공부 중 취사 중 ‘취(取)’에 해당 되어요. 권장 16개 조목 중 8번째에 해당 합니다.
솔성요론은 맨 처음 신(信)- 믿음에 대한 것, 그 다음에 배움에 대한 것, 그 다음은 심법을 어떻게 쓸 것이냐. 즉 믿음, 연구적 솔성(배움), 수양적 솔성(심법) 이렇게 되어 있고 그 다음 8, 9조가 대단히 중요한, 한마디로 말하자면 대적공입니다. 8조를 교법 다른 데서 찾아낸다면 상시응용주의사항입니다. 어떻게 보면 삼학의 핵심이 이 8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례를 할 때 사은에 대한 신앙의 종목을 풀기도 하지만 특이 이것을 강조 많이 합니다, 제가.
솔성요론 8조- 자타력 병진을 통해 귀의하다; 특신급
먼저, 우리가 모르잖아요? 타력을 입잖아요. 스승, 교법, 훈련, 동지들의 타력을 먼저 입게 됩니다. 그러면서 ‘아, 이런 세계가 있구나, 나도 저렇게 해볼까?’ 하는 거예요. 법문을 배워서 ‘야 좋다.’(합니다). 이 타력을 입는 기회가 뭐냐, 교당에서 법회를 보는 것, 정기훈련을 나는 것 교무님과 상담을 한다든가, 법 높은 스승님을 접하는 것이 타력이고, 특히 경전을 본인이 계속 공부하고 읽거나 쓰는 것이 중요한 타력이지요. 그런데 그 타력은 뭐냐 하면 자기- 부처님도 마지막에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 그러셨듯이 자기가 어떻게 내 안에 있는 부처의 불을 밝힐 것인가, 이거예요. 그러므로 타력을 통해서 자력의 세계로 가라. 그런데 자력으로 하려 했더니 타력을 통해서 가고. 그 자력은 다시 타력으로 가고.
순환을 통해 자타력 병진을 하라고 했거든요. 우리 원불교 교화가 미적이는 부분도 있거든요. 정기훈련을 (할 때) 교당내왕 시 주의사항이 제대로 되었는가. 더 중요한 것은 실생활, 상시에서 과연 마음공부를 챙겨서 하고 있느냐.
왜냐, 훈련 하나만 나도, 정기훈련 하나만 나도 좋아서 환장합니다. 교당 법회 제대로 봐 봐요. 얼마나 좋은데. 그리고 실지 경계에서 내가 마음을 정말 멈추고 또 생각해보고 그리고 돌려서 정당함을 취하는 취사를 제대로 하느냐. 경계에 한번 써 먹어 보세요. 한번 써먹어 보면 은서 교우가 말했듯이 자기가 예뻐요. ‘야, 이거 되네? 이렇게 하니 되는구나. 과거에는 애가 이렇게 했을 것 같은데.’ 자존심 때문에 감정 때문에, 습관 때문에, 또는 업력에 의해서 이렇게 했을 것 같은데 내가 이렇게 하니까 되는구나 하나씩 확인해가면서 ‘야, 이거 내가 범부가 부처로 변할 수 있다는데 나도 가능하구나. 가능하구나.’
그래서 중간에 특신급(特信級)이 되면서 세운 서원, ‘그래, 나도 부처가 되어 보자, 성불제중 해보자, 제생의세 해보자, 영생의 행복자가 되어보자.’는 그 서원을 믿음과 함께 반복할 때 스스로 확인하는 과정이 되는 거예요. ‘아, 이거 가능하구나?’
그런데 그렇게 쉽게 되나요. 처음에 원불교에 들어와서, (그것도) 인연이 되어야 들어오지. 처음에 들어와서 사라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특신이 되기 전까지는 사라지는 사람이 많아요. 그냥 인연만 있는 거예요. (특신이 되면) 안착이 되는 거예요. 귀의라고 했어요. 돌아가 의지하는 것. ‘이법 정말 좋구나, 대종사님 부처님이시구나. 내가 이 법으로 하면 정말로 이 생에 내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있구나. 내가 저 나이 먹고 탁한 노인 같은 삶이 아니라 저렇게 바뀔 수 있고 스승님의 모습과 기운으로 노년에 보낼 수 있겠구나. 맑은 삶을 보낼 수 있겠구나.’ 하고 확실한 믿음이 서고 마음이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바로 특신급입니다. 그래서 신앙이나 생각이나 사상이 속세에 흐르지 않는 것. 그러니 오직 먹고 집장만, 차장만하고 놀러 다니고 이게 관심이 되었다가 특신이 되는 순간 탁 바뀌어요. 신앙이나 생각이나 사상이나 ‘그게 다가 아니었구나, 큰 일 날 뻔 했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솔성요론 8조- 이기느냐, 지느냐의 확률게임; 법마상전급
그런데 설사 그 (특신의) 마음을 냈다고 해도 어떻게 내가 닦아온 습관이 사라지며 욕심이 한 방에 사라집니까. 수많은 업력의 힘을 어떻게 쉽게 물리칠 수 있겠느냐. 그래서 심신이 설사 거기에 안착을 했더라도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욕심과 자존심, 상대심, 중생심이 올라올 때 괴롭기 시작하는 거예요. 즐거웠다 괴로운 것이 과정이에요. 처음에는 얼마나 좋아요? ‘야 이거 좋다! 내가 어쩌다 이런 법을 만나고 스승님을 만났나.’ 얼마나 우리 법이 합리적이에요?
그런데 다시 한 마음일 뿐이요, 실지 경계에 있어서는 안 없어진단 말이에요.
우리가 (저쪽으로) 이렇게 살다가 (이쪽으로)고개만 돌린 거예요. 몸은 뒤쪽으로 하고 고개만 돌리는 게 아니라 몸도 이쪽으로 돌리는 과정, 이게 바로 법마상전급(法魔相戰級)의 과정이에요. 법과 마가, 몸과 마음이 계속 싸우는 거예요. 도심의 자기가 비양심의 자기를 가르치기도 하지만 정신이, 마음이 몸을 이기는 과정도 되는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마음이 몸을 가르칩니까? 몸은 본연대로 쾌락적으로 나갑니다. 양심의 나, 성품의 나, 신심의 나, 서원의 나가 이기느냐 지느냐의 확률의 게임이 시작되는 거예요. 이때 이제 속 깊은 공부가 되는 거예요.
법마상전 때 대개 많이 멈춰요. 겨우 법호 타고 죽던가. 항마까지 못 올라가는 이유가 많아요. 그 이유가 뭐냐. 첫째, 스승에 대한 신이 없고 법에 대한 신이 없는 것. 두 번째, 서원의 힘이 약한 것. 내가 이 법을 통해서 영생을 통해서 부처 같은 성자의 삶을 내가 살아보겠다(고 하는 서원). 왜? 성자의 삶이 가장 복과 혜가 족족한 삶이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성자되자는 것이 자랑하자고 성자가 되는 거예요? 이 세상에 성자보다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아무리 갑부여도 행복하지 않아요. 감정 올라와 봐. 접시 날아다니고 이혼한다고 난리잖아요. 성자가 되고 나면 그 경계 경계에서 은혜로 만들고 복록을 장만하는데 (힘쓰며) 스스로가 예쁘고 좋아. 이것만 보고 살다가 세상을 넓게 보는 안목이 생긴다는 말이지요. 경계 경계에서 법으로 해 나갈 때 괴로움도 있지만 그 괴로움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괴로움이 정당한 괴로움이구나. 즐겁게 받아버리자.’ 이렇게 달라진다는 거예요.
그런데 과거에 업이 두꺼운 사람들은요 정말 힘들어요. 그래서 제가 횟수로 제안합니다. 삼학, 멈추고 생각하고 그리고 취사하는 이 단련을 십만 번을 해야 하는 거예요. 따라서 해 보세요. 십만 번. 자, 수학적으로 계산해볼까? 일 년은 며칠이에요? 십년은? 백년은? 백년이 겨우 3650일이네. 백년을 넘게 살 사람 자신 있게 손 한번 들어봐요. 희망사항은 있겠지만 자신은 없지요? 백 년 동안 하루에 한번 씩 멈추고 생각해서 취사하면, 태어날 때부터 시작했다 해도 백년을 해봤자 3천 번 밖에 안 돼. 그럼 하루에 몇 번을 해야겠어요? 또 할매 되었을 때 얼마나 멈추고 할 일이 있어요? 곧 죽겠는데. 젊을 때, 쌈박하게, 뜨겁게, 용광로에 잡철을 털듯이 집중 적공이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정기훈련으로 적공하고, 교당에서 가정과 직장에서 동정(動靜) 간에 자타력병진(自他力竝進)으로 해 나가라는 거예요. 그래서 십만 번 해보라는 거예요. 그러면 네가 안다. 너의 주위에서 안다.
이 양반들은 본인들이 알 거야. 이게 어떤 거냐면 법마상전해서 계속 놓지 않고 신심과 서원을 놓지 않고 법으로 대조하는 나가는 거예요. 따라서 해요, 법으로! 법으로!!
내 감정으로, 내 습관으로, 내 생각으로, 내 업력에 의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법으로 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속 깊이 귀신도 모르게 하는 거예요. 심리(心裏)공부. 마음 속 깊은 공부. 이 때 법문에서는 귀신도 모르게 하라(하셨어요). 누가 알 것이에요? 수많은 경계 경계를 내가 배웠지만 결국 처리는 내가 하는 거예요. 소를 냇가에 가져다 놔도 자기가 안 먹으려면 안 먹는 거예요. 스승님들이 다 알려줬어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그래도 자기가 먹는 거예요.
그래서 자타력 병진이거든. 타력으로 계속 해도 서원이 약하고 신이 약하면 교무 눈치나 보고... 나 죽겠어요. (교도님들이) 내 눈치를 봐요. 나는 따뜻한 눈으로 보고 싶은데. 내가 출가해서 째려보려고 일주일간 밥 먹고 살겠어요? 어떻게든 품어주려고 하는데 알아서 도망가.
솔성요론 8조-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
사실은 마음속에 있잖아? 뭐가 있어요? ‘에이씨 나도 한번 멋진 인생 살고 싶다. 나도 정말 심법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도 복을 잘 지어서 정말 복된 인생 살고 싶다. 세상을 위해 나도 역할을 하며 살고 싶다.’ 이 마음이 왜 없냐는 말이에요. 그런데 알량한 나의 자존심, 습관, 욕심, 몸뚱아리는 ‘야, 그런 거 하지 마 힘들잖아, 돈 나가잖아? 편한 게 좋아!’ 하며 계속 나를 유혹하는 거예요. 이 싸움은 이제 승률 싸움이에요. 열 번 할 때 열 번 다 져버리다가 이제 한 번씩 이겨 나가는 거예요. 아홉 번 지고 한 번 이기고, 여덟 번 지고 두 번 이기고, 일곱 번 지고 세 번 이기고, 여섯 번 지고 네 번 이기고, 다섯 번 지고 다섯 번 이기고... 그러다가 승률이 반을 넘어갈 때가 있어요. 한번 씩 이길 때 마다 얼마나 내가 예쁜지 몰라. 주변에서도 ‘저 사람 달라진 것 같네.’ 그래요. 세상에 누가 누구를 사랑할 거예요? 남자 분들, 사랑하라고 말하라 하니까 마지못해서 했죠? 몇 번이나 했어? 심산님은 몇 번 했어요? 서로 알아요?
(심산님; 서로 말 안해도 알아요.)
말은 형식이야? 그 속에 또 마음이 들어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진짜 사랑이라는 것은 뭘까. 첫째 사랑과 둘째 사랑이 있어. 아까 흔히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은 내 옆에 고마운 사람을 사랑하는 거예요. 일체 생령 사랑도 사랑이에요.
그런데 내가 힘이 없어, 내가 미워, 내가 아파. 내가 괴로워. 뭔 사랑이 개뿔이나. 내가 죽겠는데.
진짜 사랑은 자기를 사랑할 때 사랑이다. 우리 청년 중 하나가 저번에 법회 끝나고서 ‘교무님 저는 매년 생일 기도를 해왔어요.’ 그러는 거예요. 24살 먹었는데. 생일기도를 교당 와서 한다는 거예요. 어릴 때는 자기 부모님이 해주셨대요. 오늘 아침 8시 10분에 기도하고 갔어요.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부모님은 다른 교당 다니세요. 내가 그랬어요. 처음에는 타력에 의해서 네가 기도를 했다. 지금은 네가 자력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기도를 보자. 처음에 기도한 것은 이차적 사랑과 같이 우주만유의 무형의 자산인 법신불 사은에게 기도를 한다. 엄청난 위력, 기운에다가 기도를 한다. 그래서 동기상응(同氣相應), 기운에 의해 기도의 위력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진짜 기도는 어디에 하는 것이냐. 참 네 마음에 기도를 하는 것이다.
스승에 대한 신과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밖으로 스승을 존경하고 신(信)을 낸다고 하지만 더 들어가서는 내 양심에(믿음을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스승이야. 참 나. 그것이 내 참 스승이야. 양심의 자기. 결국은 우리가 신심을 낸다고 할 때 밖으로 먼저 타력의 신심을 낸다고 생각 하지만 더 들어가면 내 안에 참 자기에게 신심을 내는 것이에요. 무슨 소리인 줄 알겠어요? 이런 거 그냥 알려주면 안 되는데, 아깝네요. 내 말 이해 못 하겠다? 손 들어봐요. 없어요? 아는 척 하는 거예요?
원불교 신앙이라는 것이 참 대단한 거예요. 이 앞의 일원상 법신불도 있지만 내 안에 일원상 법신불도 법신불이에요. 이걸 알려주는 곳이 어디 있어요. 어떻게 알아. 원불교 만났으니 이런 소리를 듣지, 참말로.
솔성요론 8조- 누구와 싸울 것인가.
우리가 싸움을 많이 해 가만히 보면. 남자들은 성질나면 뭐라고 하고 때리고...나는 여자들은 싸움을 안 하는 줄 알았어. 다 예쁘고 착해서. 그런데 보이지 않는 싸움이 참 많더라고. 그런데 그런 싸움 말고, 내 안에서 일어나는 마구니와의 싸움, 이걸 이겨내야 한다니까요. 그 싸움을 잘 해야 해요. 밖으로 누구 꼴 보기 싫어서 하는 그 싸움 이겨봤자 이긴 것이 진 거예요. 이긴 것이 이긴 것이 있어요. 내 안에서의 싸움은 이긴 것이 이긴 것이에요. 마구니가 나올 때 마다 이것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아까 신호등 얘기를 했는데, (무단횡단으로 길을 건널 때) 아무도 없네? 그럼 속으로 그러죠? ‘그냥 가버려.’ 그럼 또 안에서 ‘아니지.’ 하지요. 그 때 주위를 왜 쳐다봐? 그냥 가면 되는 것을. 양심의 자기가 쳐다보게 만드는 것이지요. 그것이 힘이 있어야 하는데 참.
우리 교도님들 교당 앞길에서 예전에 많이 걸렸네, 무단횡단으로. (지금 신호등은) 시청에 얘기해서 만든 거예요. 또 신설동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면 지금은 두 차선인데 예전에는 한 차선 밖에 없었어요. 그것도 내가 전화해서 말했어요. 교당에서 교무만 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거예요. 그래서 옛날에 경찰들이 재미를 많이 봤네.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신호등을 하는 게 맞았어요.
또 김남천 선진님 있잖아요. ‘한 잔 하고 가라. 냄새도 좋잖아. 한 잔만 해.’, ‘아닌데? 안 되는데?’, ‘한 잔만 해.’ 타협이 들어와. 한잔! 그 한 잔이 아까 성성이 법문같이 성성이가 생각할 때는 ‘먹으면 안 되는데, 수상한데.’ 하다가 ‘ 에잇, 한잔 만.’(하고 유혹에 넘어가지요). 한 잔이 한 잔이어야 말이지. 하나가 절대 하나가 아니야! 그 하나가 하나가 아니다. 그 틈이 벌어지면 무서운 거예요. 댐도 작은 틈으로 무너져 버리는 거거든요. 겨울에 창호 조그만 구멍만 있어 봐요. 얼마나 찬바람 들어오는지. 그 하나. 아이고.
그래서 성격이 무난한 양반들 있지? 좋은 게 좋은 거다. 하는 양반들. 누가 도와달라고 하면 잘 도와주는 성격 좋은 양반들. 이런 사람들이 약한 게 뭐냐면 안에서 자기 관리예요. 성질 더러운 사람들 있잖아요? 고집스러운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탁 마음먹으면 자기 관리 잘 합니다. 그런데 성격좋은 사람들은 세월이 가면 발전이 안 되는 거예요. 좋은 게 발전이야. 외유내강이라고 하잖아요. 밖으로는 부드럽되 안으로도 부드러우면 안 되는 거예요. ‘에잇, 자버리자, 또 지각하면 어때? 좀 빠지면 어때? 다음에, 다음에. 그럴 수 있지!’ 외유내강이 아니고 외유내유? 다 부드러워 버려요. 밖으로 대승, 안으로 소승 그래야 하는데 밖으로도 대승, 안으로도 대승 그러는 거예요. 이 세상은 음양의 이치이기 때문에 부드러울 자리에 부드럽고 또 견고할 자리에 견고하고 밝을 자리에 밝고 어두울 자리에 어둡고 강할 자리에 강하고 약할 자리에 약하고 클 자리에 크고 작을 자리에 작고 능소능대(能小能大)하고 능선능악(能善能惡)하고. 이 마음의 원리를 잘 관리할 것 같으면 상황에 따라 중도를 행할 수 있는데 이 마음의 힘이 없으니 경계만 오면 예전의 내가 쏘옥 나와서 타협해 버리고.
그래서 이것을 잡는 것이, 자력으로 하려면 타력이 있어야 해요. 법의 타력, 스승의 타력, 신심의 타력. 그렇게 하다가 법과 마가 싸우고 몸과 마음이 싸우다가 승률이 올라가면서 재미가 붙으면서 체험이 있어요. 기도 잘 안하던 사람이 기도하게 되고 좌선 안하던 사람이 좌선 하게 되고 경전 안 보던 사람이 경전 보게 되고 경계에 습관 못 고치던 사람이 습관을 고쳐나가고 냉랭하던 사람이 살살 부드러워지기도 하고. 그러면 누구의 칭찬을 떠나서 내 스스로 내가 여자들은 공주병, 남자들은 왕자병에 걸리지. 한번 씩 보면서 ‘야, 과거의 내가 아니야.’ 저는 방에서 혼자 나는 문 딱 잠가놓고 미친놈 같은 짓을 많이 했어요. 한번 씩 경계가 올 때 부글부글 끓다가도 딱 한 마음 멈춰서 서원으로 돌리거나 자성자리에 회광반조를 하다보면 어느새 도망가. 경전을 보다보면 옛날에 느끼지 못했던 것이 (느껴지고) ‘아, 이 말 이구나.’ 탁 밝아지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혼자 눈물도 흘렸다가 노래도 했다가 춤도 췄다가 했었지요.
그 재미를 누가 빼앗아 갈 수 있으리요. 빼앗길래야 빼앗길 수 가 없는 이 복의 즐거움을 대종사님은 아시고 얼마나 좋았겠냐는 말이에요.
솔성요론 8조- 정성으로 대정진 대적공
그래서 제일 쉬운 것이 제일 어렵다는 거예요. 그게 뭐에요? 계속 하는 것. 지금 하는 것을 계속 하는 것. 정성 말입니다. 정성이라는 것이 제일 쉬운 거 같은데 제일 어려운 것이 정성이더라는 말입니다. 오죽했으면 성즉성(誠卽聖)이라고 했을까요. 성자는 정성스러운 양반이 성자라는 거예요.
내가 엊그저께 비행기 타고 어디를 갔다 왔는데 옆에 앉은 양반이 조선일보를 보고 있어. 호날두에 대한 얘기가 있어요. 내가 좀 소개를 해드릴까 싶어.
그는 포르투칼 출신인데 33살 먹고 스페인의 레알마드리드에서 뛰고 있어요. 이번 월드컵에서 두 번 게임 출전했는데 첫 게임에 세 골을 넣었습니다. 헤트트릭을 했어요. 첫 게임에는 오른발로 두골 왼발로 한 골 그리고 두 번째 게임에는 헤딩으로 한 골. 포르투갈이 총 네 골을 넣었는데 이 사람이 네 골을 넣은 거예요. 이 사람이 포르투칼이 수도에서 1000여km 떨어진 섬 출신이야. 아주 가난한 섬이래. 가난한 섬 중에서도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났어. 이 호날두가. 그래가지고 거기가 ‘마데이라’라는 섬인데 아버지는 알콜중독, 형은 마약중독, 엄마는 청소부. 식구는 총 여섯 명 엄마가 청소해가지고 식구들이 먹고 사는 거예요. 얘가 어릴 적에 작았어요. 그래서 축구를 일곱 살부터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중간에 심장이 하도 막 뛰니까 수술도 한 거예요. 그리고 11살에 구단에 들어간 거예요. 2003년도에 퍼거슨 감독을 만나요. 그러면서 이 사람이 성장하기 시작한 거예요. 이 사람이 한 달에 얼마 받는 줄 아세요? 한 달에 백 억 받습니다. 일 년에 천 이백 억을 받습니다. 우리나라 프로 축구선수들 연봉 다 합쳐도 이 한사람에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놀란 것이 있었어요, 제가. 술과 담배 탄산음료를 일체 안 먹어요. 문신도 하지 않아. 왜? 일 년에 두 번씩 헌혈해. 그리고 동료 아들이 백혈병을 앓으니까 골수도 기증해. 소말리아의 희소병 아이들에게 333억 정도를 기부했어요. 그리고 네팔 지진 때 90억 원을 냈어요. 현재 칠레에 아동병원을 짓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축구를 하고 샤워를 하러 가잖아요? 샤워를 갈 때 물통을 들고 가. 걸어가는 그 순간에 운동을 하는 거예요. 팔굽혀 펴기를 몇 번 하느냐, 하루에 천 번. 윗몸일으키기를 삼천 번. 지금까지 안 쉬고 하고 있대요. 자기는 41살까지 선수생활 하겠대요. 그리고 가족들을 다 살렸어. 형이랑 아빠랑 제정신 차리게 만들고 자기 도와줬던 누나는 가게를 차려주고, 작은누나는 가수하게 도와주고. 이 집안에 이 정도 환경이면, 가난한 집안에 알콜중독 아버지, 마약중독 형, 청소부 어머니의 자식으로 나와 살 때 보통사람 같으면 원망할 수 있고 자기도 그 물이 들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은 축구라는 것을 통해(극복해 냈습니다.).
그냥 재주로 하는 건가요? 저는 안타까운 것이 하나 있는데 가난한 사람들 특징이 있더만. 무지 중의 무진데, ‘저 사람은 아버지를 잘 만나서, 신체조건이 좋아서, 좋은 대학 나와서...(잘 사는 거야)’ 하고 착각하는 멍청이들이 많더라고. 대종사님은 그러셨잖아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 동등하다, 성품은. 그 사람이 했던 노력을 인정하지 않고 특별히 나와 다른 좋은 점이 있어서 그 사람은 그랬다, 하고 다르다고 쉽게 생각하더라는 말이지. 그런데 어떤 성자도 도인도 끊임없는 적공 없이 성자된 사람 없고 축구선수도 얼마나 많은 노력 속에 이런 선수가 되었겠는가. 호날두라고 특별했겠는가 말이에요. 어릴 때 조그맣고 심장수술도 한 사람이고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야. 그런데 자기관리를 했잖아요. 자 우리 축구선수들을 보면 가끔 중간에 외국 나가서 술퍼먹고 그래서 징계 받고 그러잖아요. 뒤로 돈 받아서 게임 조작하고. 이 사람들과 호날두와의 차이가 뭐냐는 말이에요. 호날두는 일곱 살 때부터 공을 보듬고 잤다는 거예요. 자기의 원력이죠. 그 꿈을 놓지 않고 사는 거예요. 그 꿈을 향해 계속 가는 거예요.
제가 볼 때 호날두가 대단하지만 축구선수로서 입니다. 복을 지은 거야. 그런데 인과 이치로 놓고 볼 때 영생을 놓고 볼 때, 그것은 성자의 세계는 아니다. 성자가 된다는 것은 더 큰 욕심이 있는 거예요. 불보살이 된다는 것은 더 미래, 더 큰 복과 미래를 얻겠다는 서원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정말 꿈이 있다면 효자가 되고 영생의 내가 만난 기회에 건지고 싶다면 다시 한 번 대정진 대적공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호날두는 정진 적공이에요. 우리는 대정진 대적공
호날두는 대 자리를 몰라요. 그냥 정진 적공이에요. 대정진 대적공은 성리에 근간한 정진 적공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훨씬 더 위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솔성요론 8조를 통해서 경계 경계에 마구니에 속거나 마구니에 지지 않는, 다시 일어나는 멋진 수행자이자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 드리며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오타와 오류 지적은 언제나 환영!!!
호날두 관련 기사는 여기에서..: http://srchdb1.chosun.com/pdf/i_archive/read_body.jsp?ID=2018062600127
어머!! 친절한 (호기심많은) 인명존자님. 감사합니다.ㅎㅎㅎ
무챠스 그라시아스 인명교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