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그동안 회초리질을 많이도 당했습니다.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는 것이
그동안 그 당연한 것들도 모르고 살았느냐는 꾸지람이라는 것,
그 말이 내 무지에 대한 회초리질이라는 것을 확인하던
수많은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하상수 선생의 이 책을 집어들 때에도
그런 회초리를 많이 맞을 것이라는 설렘이 있었습니다.
일반인은 화학이 ‘어떤 학문’인지는 알 수 있을지 몰라도
화학 자체를 알 수는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실 화학이 어떤 학문인지도 제대로 모르면서도
호기심에 기웃거리는 수준이지만
아무튼 회초리를 맞을 때는 통쾌하고 상큼한 기쁨,
그리고 그것이 내 무지를 씻어내는
하나의 통과의례와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얼굴을 내미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실 내 관심의 중심에는 언제나
‘생명, 사람, 사회’라고 하는 것이 숙제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생명을 가진 존재로 이 사회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 것이
최근 몇 년 동안 내 물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 중에
‘엔트로피와 네겐트로피’라는 말이 나올 때
눈이 번쩍 열리는 듯했고,
뒤 이어 그동안 몰라서 늘 궁금하고 답답하기만 하던 것들이
하나의 그림이 되어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언제나 무질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자연세계를 말하는 엔트로피와
그 엔트로피의 지향을 거슬러
조직적이고 합리적인 질서를 만들어 가는 생명현상으로서의 네겐트로피,
이 두 생각이 내 안에 와서 겹치는 순간
먼저 읽었던 『카오스』에서 본 ‘쪽거리’ 개념이 떠올랐고
그래서 ‘무질서(엔트로피)’ 속에 있는 질서의 모습이
생명현상의 배후에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
그 화학적 진화의 과정으로부터 시작된 생명 세계와
생명세계가 펼쳐낸 생물학적 진화의 길고 긴 역사,
하지만 생물학적 진화가 언제나 모든 것의 통합이나 종합이 아니었고
끊임없는 취사선택의 과정이었으며
거기에는 부작용도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당연한 사실들,
그리하여 모든 존재의 실상 안에 있는 ‘엉성함’이
무리를 이루었을 때 불합리, 부조화, 비대칭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내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또한
거의 질서를 중심으로 한 존재인 인간의 집합이지만
부조화와 불합리, 비대칭성으로 대표되는 혼란으로 보인다는 점까지가
책을 읽고 정리하는 동안 내 앞에 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제 조금 더 신나게 책을 읽고
정리하는 손끝도 그만큼 빨라질 것 같습니다.
이번 책에서 정리한 것 가운데는
미생물과 인간의 관계를 말하는 ‘미생물과 질병’은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사실 읽고 추려내는 동안에는 이 부분은 생략하고 싶었습니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 안에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질병을 극복한 역사가 위대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인간은 미생물을 이긴다는 생각도 하면 안 되는 것이 존재의 진실입니다.
우리는 모두 미생물의 토대 위에 서 있으니
그 미생물의 세계야말로 모든 식물과 동물의 아득한 어머니라고 보는데
자칫 여기서 말하는 ‘미생물과 질병’에서는
그것을 극복한 것이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듯이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파스퇴르라든가 코흐와 같은 이들이
인류의 삶의 내용을 바꾼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어
정리를 하면서 이것도 포함시키기로 했습니다.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한 번 흐뭇했고,
그래서 다가온 행복은 오래도록 내 안에서 숨을 쉴 것 같습니다.
날마다 좋은 날!!!
키작은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