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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설교(99)
나는 세상의 빛이니
본문 : 요8:12
오늘은 그리스도의 7대 선언 중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예수께서
생명의 떡이심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에고 에이미’는 우리말의 ‘나는 ~이다’,
영어로는 ‘I am’에 해당되는 헬라어입니다.
이 ‘에고 에이미’는 오직 요한복음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표현 방식인데요,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사용하신 ‘자기 선언’입니다.
요한복음에는 모두 일곱 개의
‘에고 에이미’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6:35),
-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8:12),
- ‘나는 양의 문이다’(요10:7),
- ‘나는 선한 목자다’(요10:11),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11:25),
-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14:6),
- ‘나는 참 포도나무다’(요15:1)).
오늘은 두 번째 선언인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8:12)라는 말씀을
함께 상고해 보려고 합니다.
12절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배경 이해>.....
이 말씀이 나오게 된 배경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항상 그 문맥의 전후사정을
잘 살펴보아야 그 진의를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늘 분문의 바로 앞의 말씀은
음행 중에 잡혀온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 여인이 간음하다가
현행범으로 잡혀왔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일부로 예수님 앞에 그 여인을 세우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4절-5절 읽어라>
4절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절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예수님은 앉으셔서 땅에
무언가를 쓰셨습니다.
그들의 재촉에 일어서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7절).
그리고는 다시 몸을 굽히시고
땅에 무언가를 쓰셨습니다.
그 사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그 자리를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이 땅에 무엇을 쓰셨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 현장에 있던 자들의 죄의 목록을
적으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은 ......
예수님이 이미 그들의 죄를
명확히 보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결국 모두 떠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던 여자만 남았습니다.
주님께서 그 여인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10절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중요한 말씀은 11절입니다.
11절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그 여인이 “주여, 없나이다”라고 대답하니..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주님께서 죄를 헤아리신다면
누가 감히 주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정죄를 피할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감사하게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정죄’하고 ‘심판’하지 위함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리장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셔서 그를 회개시키시고 ...
이렇게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정의하셨습니다.
눅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정죄하고 심판하여 죽이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
말씀과 사랑으로 변화시켜(회개시켜)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8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롬8:1-2 읽어라>
1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렇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받은 가장 큰 은혜는 ‘정죄’를 받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죄로 인해 받을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옛 이야기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부자 집에 3대 독자가 있었습니다.
부모한테 사랑과 귀여움을 독차지했습니다.
이 아이가 어느 날 팽이 놀이를 하다가
그만 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도자기를 깼습니다.
순간적으로 겁이 나서 깨진 것을
뒤 뜰에 묻었습니다.
도자기가 없어진 것을 안 아버지는
포도청에 범인을 잡아달라고
신고까지 하였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킬 즈음에
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집에서 일하던 머슴이
“도련님이 도자기를 깨고 뒤뜰에 묻은 것을 다 안다”고
하면서 협박을 합니다.
그를 종처럼 부립니다.
신분이 역전되었습니다.
맛있는 것이 있으면
“너만 먹냐?” 하면서 뺏어 먹습니다.
주인의 눈치를 살살 살피면서
온갖 심부름을 다 시킵니다.
싫다고 거절하면
'너, 그러면 아버지한테 이른다!...며
협박을 합니다.
귀한 집 3대 독자가 ....
머슴의 종노릇을 합니다.
이게 얼마나 비참한 모습입니까?
어쩌면 이게 모든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존귀한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서도,
마귀한테 약점 잡혀서 종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머슴의 협박을 견디다 못해
결단을 내렸습니다.
아버지에게 자신이 도자기를 깨뜨렸고
뒤뜰에 묻었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엄청나게 혼이 날 줄 알고 있었는데 ....
아버지는 “네가 깬 것을 다 알고 있었지만
네가 말 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단다.
걱정하지 마라. 나는 네가 이렇게
고백해 주어서 기쁘단다” 하시면서
용서를 해 주셨습니다.
이를 알지 못한 머슴은 또 자신의 일을
떠맡기려 하였습니다.
안 한다고 하니 이르겠다며 협박을 합니다.
그러자 이 아들은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일러라! 겁날 것이 없다!” 고백했고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 성도들은 더 이상 율법의 정죄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더 이상 죄로 인해 받을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귀의 종노릇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거기에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씀하십니다.
11절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는
말씀에서 끝이 나면 안 됩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말씀까지 나가야 합니다.
더 귀하고 소중한 말씀입니다.
용서를 용서되게 하고,
자비가 자비되게 하기 위해서는
응답의 삶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 우리의 고민이 있습니다.
살아 있는 인간이 다시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지금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인간에게 억지로
요구하시는 것입니까?
여기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말씀의 의미를 잘 해석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인간이 결심하면
죄를 짓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결심하면 거룩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인간의 육체는 너무나 부패했기 때문에
용서를 받았지만 또 죄를 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저와 성도님들이
날마다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까?......
조금 전까지 죄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던 여인이......
음행의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이
새로운 마음을 먹고 결심한다고.....
다시 죄 짓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주님이 더 잘 알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결심한다고 해서
새로워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거룩해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말씀에 이어 오늘 말씀을 해 주신 것입니다.
12절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시면서...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덧붙여서
말씀하십니다.
오직 빛만이 어둠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오직 빛 되신 주님만이....
어둠의 세력, 곧 죄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빛을 따라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구원받은 것으로
(예수 믿고 정죄 받지 않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빛 되신 주님의 뒤를 적극적으로 따라야 합니다.
식물 중에 ‘해바라기’가 있습니다.
항상 해를 바라보기 위해 방향을
돌리는 식물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빛’이십니다.
우리는 ‘주바라기’입니다.
빛 되신 주님을 항상 바라보아야만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빛의 역할>
사랑하는 성도님들 !
여기서 다시 빛의 역할을 생각해 보면...
먼저 빛은 모든 것을 바로
분별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잠16:25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내 판단에는 옳고 바른 길 같지만
필경 사망에 이르는 길일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따먹은 하와가 볼 때.....
그 열매는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기 그지없었지만”,......
그 열매의 본질은 사망이었습니다.
삼손이 기생 들릴라와 함께 누워있을 때
황홀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황홀의 본질은 파멸이었습니다.
아버지 다윗을 몰아내고........,
절대 권력을 장악한 압살롬이 팡파르와 함께 ....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길은
탄탄대로처럼 보였지만
그 길의 끝은 비참한 죽음이었습니다.
오직 빛 속에서만 모든 것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듯이.....
우리는 오직 주님의 말씀을 따를 때에만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이성과 판단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빛 되신 주님을 따를 때 ....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이룰 수 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활동하는 단체에서
발행하는 Decision이라는 잡지에 실린 실화입니다.
캘리포니아의 '벤추라'라는 작은 마을에
새로 이사 온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 가정에는 자녀가 둘이 있었는데,
둘 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낯선 곳에 이사를 왔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길을 가르쳐주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
매일 아침마다 두 아이를 데리고
학교로 가는 길을 따라가면서
일일이 설명해주었습니다.
"애야. 여기는 철조망이 있단다.
조심해야 돼.
이쪽에서는 길이 굽어져 있어....
여기는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는데
오른쪽은 차들이 다니는 도로니까
조심해야 돼." ...
이렇게 하면서 며칠 동안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얼마 후에 어머니가 따라가지 않아도
학교에 갈 수 있는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렴풋하게 앞을 볼 수 있었던
아들 다니엘은 조금이라도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어머니가 가르쳐주는 것을
소홀하게 생각하고 앞서갔습니다.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게일이라는 딸은 .....
어머니의 말을 마음 깊이 새기고
어머니가 가르쳐 준대로 걸어갔습니다.
얼마동안은 두 아이는 학교에
무사히 잘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짙은 안개가 끼게 되었습니다.
약간의 시력을 의지하면서 자신만만하게 걸어가던
다니엘은 안개 때문에 도저히 앞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보도블록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담장에 부딪힐 때마다 비명을 지르다가 ...
나중에는 누나의 손을 꼭 잡고 따라 갑니다.
그러나 전혀 못 보는 게일은 안개가 끼었든
햋빛이 나든 아마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가르쳐 준 대로만
발을 옮겨 놓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안개가 끼었지만 게일에게는
길이 환히 열려 있었습니다.
눈은 감았지만 게일의 마음은
활짝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니엘처럼 조금이라도 앞을 본다는
사실 때문에 엉뚱한 자신감으로
길을 걸어갑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조금만 똑똑하다 싶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러다가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갑자기 폭풍이 몰아치고 안개가 덮여서
어디로 가야 될지 모르는 상황이 되면
속수무책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즉 예수님을 나의 ‘주(主)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
‘나는 주님의 종’이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가라’ 그러면 가고....,
‘서라’ 그러면 서는 겁니다.
거기에 설명도 필요 없고,
이유도 필요 없습니다.
명령에 순종하며 따르는 사람이 종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성도님들이 오직 주님의 말씀만을
빛으로 삼고 그 뒤만 따라 사시기를 바랍니다.
빛의 역할을 생각해 보면...
먼저 빛은 모든 것을 바로 분별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둘째, 빛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빛이 없으면 에너지도 없습니다.
결국 생명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12절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 빛이 없으면 생명도 없습니다.
빛이 생명의 근원이듯....,
빛 되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영생의
근원이십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님들 !
‘신앙생활’을 다른 말로 바꾸면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빛 되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따라가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주님이 생각하신 대로 생각하고,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말하고,
주님이 행동하신 대로 행동하고,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서 걷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거기에 올바른 분별력이 있고,
참된 생명이 있습니다.
저와 성도님들이 !
빛 되신 우리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온전히 순종하여 참된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