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에세이】
합죽선(合竹扇)을 펼치면 그리운 얼굴이 떠올라
― 형님이 ‘생일 선물’로 주신 ‘합죽선 사연’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매년 생일이 다가오면 셋째 형님이 그립습니다. 제게 ‘합죽선’을 생일 선물로 주신 형님입니다. 해경 함장으로 근무했던 형님은 제게 잊지 못할 사랑을 많이 주고 떠났습니다.
합죽선을 꺼내 들면, 돌아가신 형님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카카오스토리에서는 어찌하여 올해도 어김없이 《지난 추억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과거 사연을 다시 올려 저를 울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잊고 지냈던 형님 사랑을 합죽선과 함께 다시금 되새김해 보라는 뜻일까요? 매년 저의 생일이 다가오면 부모님 못지않게 그리운 얼굴이 돌아가신 형님입니다.
2023. 6. 13.
생일에 합죽선을 다시 꺼내 들며
윤승원 추억 되새김 記
【카카오스토리에서 띄워준 추억】
■ 윤승원 님의 지난 추억 이야기(출처 : 카카오스토리 화면 캡처)
이 합죽선은 제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합죽선을 제게 선물한 분은 셋째 형님(전 제주해경 함장)입니다. 늘 가슴으로 느껴지는 형님의 사랑이 고맙고, 하얀 합죽선에 정성껏 그림을 그려준 둘째 아들(서양화가)에게도 고마운 생각이 듭니다.
생일에 받은 선물인 데다가 가족의 따뜻한 사랑과 정이 담긴 물건이라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평소에는 거실 진열장에 보관하고, 여름에만 꺼내어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 합죽선에 새긴 글씨 :
안분지족(安分知足), 지족상락(知足常樂) / 화향천리 문향만리(花香千里 文香萬里)
※ 자세한 사연은 필자의 일간지 칼럼 『합죽선』에 담겨 있습니다.
【윤승원의 세상풍정】
합죽선(合竹扇)
윤승원 논설위원
병원은 생로병사의 철학을 가슴으로 체득하는 인생종합대학이다. 환자나 보호자나 병원에 가면 자신의 삶을 한 번쯤 돌아보게 된다. 지난 어버이날, 병원에 예약된 검사를 받으러 가는데, 둘째 아들이 따라나섰다. 어버이날이니, 모시고 가겠다는 것이다.
기특하고 고마운 일이지만, 운전을 하지 못할 정도로 몸이 불편한 것도 아닌데, 굳이 바쁜 아들이 동행할 필요가 있느냐고 했더니, 아내가 한 마디 거든다.
“자식이 효심을 발휘하여 모시고 가겠다고 하는데, 그냥 못 이기는 척하고 다녀오시구려. 나이가 들면 자식이 보호자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죠.”
이런 연유로 뜻하지 않게 아들이 운전하는 승용차에 몸을 싣고 병원에 갔다. 검사를 받는 동안 아들은 대기실에서 무려 3시간 넘게 기다려줬다. 아들은 아버지의 검사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동안, 병실 복도를 지나는 수많은 입원환자를 보았다고 한다.
그중에서 어느 젊은 자식을 간호하는 70대 노모의 수심 가득한 얼굴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자식이 부모님 은혜에 감사하면서 효도해야 하는 어버이날, 거꾸로 병석에 누운 자식을 보살펴야 하는 한 노모의 시름 깊은 얼굴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던 모양이다.
나의 검사결과는 다행히 크게 걱정할 상태는 아니어서 약을 처방받아 나오는데, 아들의 이마에선 땀이 흐른다. 이제 갓 입하(立夏)가 지났는데, 이상기온 탓인지 삼복 날씨처럼 찐득하고 후텁지근했다. 찜통 같은 차에 오르니, 아들의 목 줄기에서 땀이 흐른다.
그렇다고 아들은 에어컨을 틀지 않았다. 알레르기 때문에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는 아버지를 위한 배려였다. 운전을 아들에게 맡기고 옆자리에 편안히 앉아가는 나는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합죽선을 꺼냈다. 아들에게 부쳐 주니, 빙긋 웃는다.
운전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신호대기에 정차해 있을 때도 부채를 부쳐주었다. 선풍기가 없었던 그 옛날, 어머니가 날 키울 때도 부채를 부쳐 주셨다. 부채는 바람의 용도로만 쓰이진 않았다. 잠든 아기에게 달려드는 파리나 모기 등 해충을 쫓는 기구로도 사용되었다.
신호대기에 잠깐 머무는 동안, 옆에서 부쳐주는 합죽선 바람이 그다지 시원할리 없지만, 아들은 “흐른 땀이 싹 가시네요!”라면서 조금은 과장되게 아비의 성의에 고마움을 표해 주었다.
이 합죽선은 셋째 형님이 내게 생일선물로 준 것이다.
형님은 내게 이것을 선물하면서 “우리나라 전통공예품인데, 일부러 그림이 안 들어간 걸 골랐어. 아들이 미술작가이니 그려 넣도록 해”라고 당부했다.
그 후 아들은 이 합죽선에 묵향 그윽한 사군자를 그려 주었고, 나는 세필(細筆)로 ‘安分知足(안분지족), 知足常樂(지족상락)’이라 써넣었다.
형님의 따뜻한 사랑에다 아들의 정성 어린 그림까지 보탰으니, 가보나 다름없는 귀한 물건이 됐다. 또한 이 부채를 부칠 때마다 극진한 사랑으로 나를 키워주신 어머니를 생각하게 되니, ‘사모선(思母扇)’이라 이름 붙여도 좋겠다.
▲ 사랑과 정성이 깃든 합죽선 - 형님의 따뜻한 사랑에다 아들의 정성 어린 그림까지 보탰으니, 이 부채는 가보나 다름없는 귀한 물건이 됐다. 또한 이 부채를 부칠 때마다 극진한 사랑으로 키워주신 어머니를 생각하게 되니, ‘사모선(思母扇)’이라 이름 붙여도 좋겠다. 대나무 그림이 들어간 합죽선엔 ‘安分知足(안분지족), 知足常樂(지족상락)’이란 글귀를, 매화가 들어간 작은 합죽선엔 평소 좋아하는 문구인 ‘花香千里 文香萬里(화향천리 문향만리)’ 를 써넣었다.
▲ 손자에게 합죽선 바람을 - 땀 흘리고 자는 손자에겐 선풍기보다 부채가 나을 때가 있다. 팔이 좀 아프긴 하지만... 손자에게 부채를 부쳐주는 순간만큼은 ‘그 옛날 어머니도 나를 이렇게 키우셨지...’하는 생각에 잠기게 된다.
옛 선비들에게 합죽선은 멋스러운 소지품이었다. 외관을 갖추고 가장 마지막에 부채를 들어야 비로소 외출할 수 있었다. 이 부채를 제작한 ‘전주 특산품사업협동조합’의 자료에 의하면 ‘한국전통 합죽선’은 고려시대부터 우수한 제작기술이 인정되어 중국과 일본에도 수출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도 한지의 질이 가장 우수한 전주감영에 접는 부채를 전문으로 만드는 선자장(扇子匠)을 두었고, 매년 단오절에는 ‘단오선(端午扇)’이라 하여 임금이 신하에게 부채를 하사하는 풍습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예(禮)를 중시했던 옛사람들은 부채를 장신구처럼 꼭 소지하고 다니면서, 남의 집을 방문할 때는 얼굴을 가리고 주인을 청해 자칫 벗고 지내는 여름철에 실례를 범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또 거북한 상대라도 부딪칠 때는 외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부채로 가렸고, 사랑하는 연인과의 만남에서도 합죽선으로 얼굴을 살짝 가리는 겸손의 미를 보였다니, 얼마나 멋스러운가.
첨단 기계 문명에 밀려 합죽선의 실용적인 가치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아쉬운 일이긴 하나, 실용적인 가치보다 전통과 예술적인 진가를 따진다면, 합죽선의 바람이야말로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과는 차원이 다르다.
바라건대,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하는 정치도, 인간의 삶의 가치를 아름답게 승화하는 문학도, 합죽선의 멋과 풍류를 닮았으면 좋겠다. 나의 부족한 삶도 사군자 묵향 그윽한 합죽선의 건강한 바람으로 채워준다면 올여름 찐득한 더위와 일상의 스트레스도 시원스레 날아가리라. (2012.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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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생일》의 의미란 자신을 낳아 주신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미역국을 먹는 날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내가 축하받을 일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부모님 은혜에 감사하는 날입니다.
나를 사랑해 주시는 형님, 누님, 그리고 아내, 자식과 며느리, 손자에게 감사합니다.
행복한 생일 아침입니다.
2023. 6. 14.(음력 4월 26일) 윤승원 記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 카페에서
▲ 답글 / 낙암 정구복(역사가,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3.6.1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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