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그 축복의 비결은 기쁨과 감사
반드시 심은 대로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는 믿음대로 축복의 길을 여시고 친히 인도해 주셨습니다.
- 허 정 장로 (광주만민교회, 신한생명 서울중앙인슈(주) 광주 지사장)
내가 광주만민교회에 온 것은 1997년 9월 7일, 부흥성회 전단지를 통해서였다. ‘365일 기도하는 교회’ 매일 밤 기도 모임이 있다는 문구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바로 서울 본교회와 화상으로 함께하는 다니엘철야이다. 그 뒤, 나는 날마다 기도하며 예배를 통해 말씀을 들으면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아 행복한 신앙생활을 했다.
잉어 빵 장사를 해도 믿음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러던 1998년 어느 날, 2년 전부터 두 차례 보증을 선 것이 잘못되어 월급 차압을 당했던 나는 그나마 다니던 회사를 무일푼으로 퇴직해야 했다. 리어카에서 잉어 빵을 만들어 팔게 되었지만 마음만은 즐거웠다. 매일 밤 다니엘철야에 나가 기도할 때 ‘보증서지 말라’(잠 22:26)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을 뉘우치며 하나님 사랑에 오히려 감사했다.
비록 이 교회로 인도받기 전에 하나님 말씀을 잘 몰라 한 일이지만 하나님께 너무 민망하고 죄송했다. 전기 요금을 못내 전기가 끊기고, 기름 값을 아끼느라 한겨울에 찬물로 목욕을 해야 할 때도 처량하다든가 신세한탄은 없었다. 오히려 찬송이 흘러나왔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니 누가 나의 이 기쁨을 빼앗을 수 있으랴. 근심 걱정할 일이 없었다.
하나님께 심고 이웃을 섬기니
2003년 2월, 교회에서 성전 건축을 한다고 했다. 쪼들리는 살림이었지만 나도 힘껏 헌금하리라 마음먹었다. “가난을 면하려면 어려울 때 믿음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고 말하자 아내도 흔쾌히 동의했다. 아내가 참으로 사랑스럽고 고마웠다.
하루는 꿈에 당회장님께서 ‘비용을 절감하고, 서로 사랑하라’고 하시며 축복받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근검절약하면서 가족끼리 오붓하게 서로 사랑하면서 산다면 얼마나 좋은가.
우리 가족은 신앙으로 똘똘 뭉쳤다. 다소 불편해도 감사하고 어찌하든 서로 힘과 용기를 주려고 힘썼다. 그리고 주변에 어려운 분들에게 작은 액수지만 보탬을 드렸다. 그분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기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축복의 길로 인도받아
나는 잉어 빵 장사를 그만둔 뒤에도 아파트 계단 청소 등을 하며 번듯한 일자리를 찾아 헤맸다. 절박한 심정으로 21일 작정기도를 여러 차례 하며 하나님께 매달렸다.
“하나님, 저도 축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마음껏 축복하실 수 있는 깨끗한 마음으로 그릇 준비하길 원합니다.”
2006년, 어느 분이 수입이 괜찮다고 넌지시 말을 건네 보험설계사로 발을 내디뎠지만 보험은 문외한이라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한 달 남짓 쩔쩔 매다가 접고 말았다. 그런데 당회장님께서는 뵐 때마다 “거기 잘 다니고 있죠?” 하고 물으셨다. 이것이 두 세 차례 반복되자 당회장님이 모르셔서 그런 것이 아니라 분명히 무슨 뜻이 있으시겠구나 하는 마음에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보험을 통해 축복받아 간증하는 성도들을 볼 때마다 ‘나도 잘 적응했어야 했는데….’ 하는 자책과 함께 더 좋은 기회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신한생명 서울중앙인슈(주)에서 광주에 지사를 개설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무작정 사장님을 만났다. 지사 개설을 요청했는데 쾌히 승낙해 주셨다. 마침내 2007년 3월 15일, 나를 포함한 직원 3명이 광주 지사를 개설했다.
영육간에 풍성해져
직원들은 서로 배려하고 희생할 뿐 아니라 자신의 보험 노하우를 가르쳐 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또한 한 달에 한 번씩 본사와 광주 지사에서 드리는 정기예배를 통해 믿음으로 하나 되었다. 그 결과 직원이 19명으로 급성장했고, 나는 지사장이 되어 넘치는 축복을 받고 있다.
일가친척이 복음화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부부는 남·여선교회 회장 등 귀한 직분도 받았다. 역경에서도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