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4
올해는 이상 기후로 봄과 가을이 실종되었다고 난리입니다.
겨울이 갔나 싶더니 갑자기 여름이 되고.여름이 끝났나 싶더니 금새 겨울 추위가 매섭게 몰아쳤습니다.
우리 학교도 예외가 아니어서 10월 초에 벌써 추워 죽겠다고 가스난로 켜 달라고 과장과 협박을 곁들인 건의가 학생들과 학부모님들로부터 쏟아졌습니다.
교실 출입문에도 문을 꼭 닫고 다니자는 글들이 붙었습니다.
"문 안 닫으면 죽어 !!! * 똥침 100대 !!"
라는 2학년 4반의 글은 고전적인 표현이고,
"여기는 린느반 ! 린느 ! 문 좀 닫아줘 !"
라는 2학년 3반의 표현은 숨 넘어갈 듯 절박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2학년 2반의 출입문에 붙어 있는 글은 문과반답게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을 변용하여 볼만 합니다.
- 님은 갔습니다. 아아, 문을 열어 놓고 갔습니다.
칙칙한 문을 열어 제끼고 황량한 시베리아 복도를 걸어서 - - - 차마 열어 제끼고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재채기의 추억은 나의 콧물만 남겨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바람을 쓸데 없는 콧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문을 닫지 않은 것이기 때문임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콧물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쓰레기통에 들어 부었습니다.
아아, 바람은 갔지마는 감기는 가지 아니하였습니다.
추위는 우리의 코 끝을 휩싸고 돕니다.
어떻습니까 ? 정말 우리의 마음을 옮겨 놓은 표현이지요?
그러나 2학년 15반의 출입문에는 누가 봐도 아, 이과반이구나 !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글이 붙어 있습니다.
- 문 안 닫으면,
대기의 대류에 의해 차가운 공기가 우리의 피부를 압박하여 세포의 성장이 저해되고 근육이 수축하여 어깨결림이 나타나며 심장 박동이 원활하지 못하여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이과 15반)
아니, 같은 또래인데도 이렇게 성향이 다를 수가 있나요 ?
바야흐로 지금은 개성시대,
아무리 춥더라도 이까짓 추위 쯤이야 거뜬히 물리치는 나만의 슬기를 찾아볼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