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절 “이를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주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과 모든 성도들을 향한 그들의 사랑에 관하여 들었습니다.
16절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에베소 교회에 대한 감사함을 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마다 에베소 교회를 언급합니다.
바울은 교회를 향한 참사도임을 보여 줍니다(롬1:9, 살전1:2, 몬1:4)
17절은 에베소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내용입니다.
교회의 공중기도의 제목이 이 정도는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얼굴이 뜨거울 정도의 기도제목으로 슬로건이나
구호를 외치듯 소리치고 있으니 그걸 기도라고 말하기에는 정말 한심합니다.
성막의 예를 들어봐도 지성소까지 들어가는 과정에 축복해 달라고 하는
내용이나 소원을 비는 내용은 없습니다. 오로지 번제단을 통과하면서
죄 사함에 대해서 그리고 금등대의 불빛으로 진설병의 떡을 먹고는
향단에서 향을 피워 올리는 과정을 지나 지성소 안 은혜의 보좌로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으로 죄 사함을 받아
영생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므로 아버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게 됨을 감사하며 그 앞에
더 가까기 나아가는 내용이어야 할 것이며 축복은 그와 같은 영적인
비밀을 가진 자로서 다른 사람을 향해 복을 비는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누가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는가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가 주십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누구에게 주십니까?
너희 곧 에베소의 교회이며 에베소서의 수신자들이 된 우리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기도를 통해 무엇을 얻습니까?
지혜(깨달음)와 계시(빛)의 영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이 둘을 같이 주십니다.
에베소 교회는 믿음도 있고 성도를 사랑하는 사랑도 있지만 아직 이것이 없습니다.
왜 지혜와 계시의 영이 필요한가요?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계시 곧 영의 눈을 가지도록 이를 위해 바울은 기도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실상으로 보는 눈이 됩니다(히11:1)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이와 같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 본문을 두고 백번 기도를 했다는 말을 합니다.
18절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마음의 눈은 모든 것을 환하게 밝혀 주시는 눈입니다. 그 눈으로
먼저 그의 부르심의 소망을 봅니다. 그리스도 안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바람이 어떤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정말 대단한 비전이며 산 소망입니다.
결코 그리스도인들이 그럭저럭 이 땅에서 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성도 안에 있는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가 알게 됩니다.
성도 안에 주어진 영적인 자산의 총액의 가치와 존귀함을 알게 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우리의 상속재산의 귀중함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교회가 세속이니 어쩌니 하는 것은 성도 안에 주어진 그 영광과 존귀에
대한 프라이드가 없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성령세례에 잠김이 없기 때문입니다.
19절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신
하나님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입니다. 그걸 실감하도록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신기한 능력으로 아담 안에 죄로 죽었던 나를 다시
살려 의롭게 하여 그 영광에 나아가도록 하신 그 능력을 마땅히 찬양해야만 합니다.
20절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그 능력을 설명합니다. 우리를 장악하고 있는 하나님의 힘이십니다. 지금
우리를 붙잡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그 능력은 1)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예수의 무덤에서 다시
사심과 아담 안에서 죽었던 우리가 함께 다시 산 것을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이의 영이 나의 죽을 몸도
살리시는 체험을 현재부터 장래에 이르기까지 계속하게 될 겁니다(롬8:10)
2) 하나님의 능력은 주님을 하늘 안에서 자기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주님과 더불어 우리도 그 자리에 앉히셨습니다.(엡2:6) 사로잡힌 겁니다(엡4:8)
그리고
21절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3) 그리스도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가는 세상
오는 세상을 통틀어 모든 유명한 자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뛰어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을 따르기만 하면 그분께 참여한 자가 됩니다(히3:14)
22절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4)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5) 그리스도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습니다.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로 옷 입고 그를 먹고 그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이 거하실 집으로 지어져 가는 것은 교회의 위대한 비밀입니다.
23절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교회에 대한 설명입니다.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고 충만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충만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와 같은
교회의 특별한 기능을 파악하고 그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는 교회가 얼마나 될까요?
우리는 에베소서가 말씀하는 성경의 원형교회를 구현하는 사명에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세전에 예정되신 계획을 다 이루셨습니다.
만약 우리의 구원이 누가 공교하게 짠 각본대로라면 성경이란 원고를 먼저 쓰고
주께서 그대로 연기를 하여 우리에게 증명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들로 말미암아 이미 다 이루시고 나서 성경을 주시고 성령을 통해 교회에 알리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과 이미 완성하신 구원의 비밀을 알게 하는 어머니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성령과 동역을 하는 교회지도자가 필수적인 겁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대인의 믿음이나 지성적인 경건을 가르치는 지도자들이 기독교를
장악하고 있으니 그게 바로 뱀의 입의 물을 땅이 흠뻑 들이마신 꼴입니다(계12:16)
칼빈이 교회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으면 아버지를 모른다고 말을 했답니다.
사실 하늘의 예루살렘은 우리의 어머니입니다(갈4:26) 새 예루살렘입니다.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이신 그리스도의 충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누룩과 같은 성격으로 우리 안에서 우리를 충만하게 하십니다.
이미 하늘의 교회는 꽉 찼습니다. 그래서 천상교회는 완전하다고 말합니다.
이제 지상교회도 성령과 진리로 번성하고 충만해 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반드시 충만해야 합니다(요1:14,18) 그리스도의
피로 속량(구속) 받았음을 아는 것 곧 죄 사함을 받은 것도 귀합니다.
복음을 듣고 믿어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것은 세대마다 귀한 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그 분과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 또한 매우 귀중합니다.
그러나 이건 겨우 시작일 뿐입니다. 그건 신앙의 본 게임의 첫걸음입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나 에베소서의 독자들인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과 영광스러움에 다 참예하기를 원하여 이와 같은 기도를 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이 바울의 기도를 따라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개인의
신앙의 성숙과 교회의 영적인 풍성함과 충만함을 위해 꼭 필요한 겁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께 찬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