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1장29-36절 무화과나무의 비유 260325 원주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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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의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아멘.
1.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세 가지 나무 무화과 올리브 포도나무
이 말씀의 축복과 권면을 삶 속에서 이루어 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세 개의 큰 나무가 있습니다. 하나는 무화과나무, 또 하나는 종려나무와 올리브나무(감람나무), 세 번째는 포도나무입니다. 이 세 가지는 특징이 다 다릅니다. 무화과(無花果)나무는 말 그대로 꽃이 없이 열매를 맺는다 하여 무화과입니다. 두 번째 올리브나무는 여러분도 잘 아시는 올리브 기름을 냅니다. 기름에도 등급이 있어서 엑스트라 버진이 있고 중급이 있고 끝물이 있는데, 그중 최상급 올리브 기름으로 성전의 등불을 켤 기름을 만듭니다. 하나님의 향기로 드려지는 기도의 향품 재료이기에 매우 귀하게 여깁니다. 세 번째 포도나무는 겉모습이 참 볼품없습니다. 나무 자체로 가구를 만들 수도 없고, 땔감으로 쓰기에도 양이 적습니다. 하지만 그 열매는 굉장히 귀합니다.
이 나무들은 성도의 삶을 상징합니다. 세상이 보기에는 꽃이 피지 않는 무화과처럼 보일지라도 조용히 열매를 맺어야 하며, 포도나무처럼 겉은 초라해도 내실 있는 열매를 맺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성전 기둥으로 쓰이는 웅장한 백향목도 있지만, 법궤를 만드는 데 쓰인 '싯딤 나무(조각목)'는 광야의 보잘것없는 아카시아 종류입니다. 하나님은 똑똑하고 잘난 사람만 쓰시는 게 아닙니다. 베드로처럼 수산대학교 근처에도 못 가본 어부들, 세상 눈에는 어리숙해 보이는 이들을 제자 삼아 하나님의 종으로 길러 쓰십니다. 싯딤 나무는 바로 우리 성도들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2. 이스라엘의 멸망사와 회복
본문에서 주님은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안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봄철이라 밖을 나가보면 달래와 쑥이 쑥쑥 올라오는 것을 보며 계절을 알 수 있듯이, 이스라엘의 무화과나무에 물이 오르고 잎이 나면 여름이 온 것을 알게 됩니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은 AD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면서 멸망했습니다. 당시 유대교 안에는 온건파와 강경파가 있었는데, 온건파 랍비들은 "정치 체제는 상관없으니 성경만 읽게 해달라"며 투항하여 살아남았습니다. 반면 강경파는 마사다 요새에서 결사항전하다가 노예가 되는 치욕 대신 자결을 택하며 비극적인 종말을 맞았습니다. 이때 예루살렘을 탈출한 그리스도인들은 '익투스(물고기)' 문양을 암호 삼아 가정 교회로 흩어졌고, 이들이 전 세계로 복음을 확산시키는 부흥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2천 년 동안 나라 없이 흩어져 살던 이들이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겪은 뒤, 다시 팔레스타인 땅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땅값을 잘 쳐주며 땅을 사기 시작했으나, 점점 세력이 커지며 이스라엘 국가가 세워졌습니다. 이것이 성경 예언의 성취라는 기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무장 투쟁과 중동 전쟁이라는 비극의 시작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중동의 위기들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 있습니다.
3. 마지막 때가 되었습니다.
주님은 무화과나무에 싹이 나는 것을 보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의 하나님 나라는 우리 마음속 평안을 넘어 주님의 '재림'을 의미합니다. 지금은 말세의 끝자락인 '말세지말(末世之末)'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복음의 촛대를 옮기신다면, 그 대상은 대한민국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이미 복음이 많이 희석되었습니다. 어쩌면 중앙아시아, 동남아, 혹은 아프리카의 뜨거운 나라들을 들어 쓰실지도 모릅니다.
주님은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고 하셨습니다. 1945년 독립 세대를 한 세대(70~80년)로 본다면, 이미 그 시간은 꽉 찼거나 넘어가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이 정말 가까운 시대입니다. 주님은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당신의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고 도장을 쾅 찍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예언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4. 마음을 둔하게 만드는 세 가지 유혹 방탕 술취함 염려
주님은 우리에게 강력한 경고를 주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리라." 방탕함과 술 취함은 세상 문화와 쾌락에 취해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지금은 자본주의가 극에 달해 돈이 최고인 시대입니다. 주님은 재물(맘몬)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으며,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셨습니다. 돈보다 귀한 가치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잊고 세상에 취해있는 것이 바로 위기입니다.
세 번째는 '생활의 염려'입니다.
"이렇게 살다가 굶어 죽지 않겠나?", "누가 알아주나?" 하는 염려가 스멀스멀 찾아오면 영적인 감각이 무뎌집니다. 저도 목회를 하면서 열매가 보이지 않거나 성도에게 상처를 받을 때, 혹은 개척 교회 지하에서 자녀 교육 문제로 갈등할 때 "그냥 알바나 하러 갈까?" 하는 유혹과 염려가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주님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은혜의 물샘을 열어주셨고, 한 고비씩 넘기게 하셨습니다. 염려에 사로잡히면 마음이 둔해져서 주님이 오시는 날이 축복이 아닌 '덫'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마음이 둔해진 상태에서의 종말은 비극입니다.
중국의 한 고사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노인이 젊은 첩을 두었는데, 제정신일 때는 "내가 죽으면 저 아이를 친정으로 보내 재혼하게 해주라"고 유언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임종 직전 마귀에게 마음을 뺏기자 "내가 죽을 때 저 아이도 같이 묻어달라"며 악다구리를 썼습니다. 다행히 큰아들이 아버지의 '맑은 정신' 때 유언을 따라 여인을 살려 보내주었고, 훗날 그 여인의 아버지가 풀을 묶어 적의 말 발굽을 걸리게 함으로써 아들을 구했다는 '결초보은(結草報恩)'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사람의 마음은 이처럼 환경과 영적 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지금 어떻습니까? 방탕함과 술 취함, 생활의 염려로 둔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의 이름으로 이 모든 것을 잡아매시길 축복합니다. 마음이 깨어 있는 사람에게 주님 오시는 날은 덫이 아니라 신랑을 만나는 축복의 날이며 환희의 날입니다. 어느 목사님은 임종 전 "내 영정 사진 주위에 검은 띠 두르지 말고 유채꽃밭에서 웃는 사진을 걸어두라, 내가 천국 가는 것을 기쁘게 보이게 하라"고 하셨답니다. 우리도 그런 영광의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역사의 마지막 고비를 넘어가는 이 시대에 우리가 복음의 사람으로 살아남게 하옵소서. 세계 전쟁의 위기 속에서 한반도를 지켜주시고, 북한과 주변국들이 오판하지 않도록 막아주시옵소서. 이 민족이 역사의 변곡점에서 복의 통로로 쓰임 받게 하시고, 우리에게 늘 깨어 있는 마음을 주셔서 오늘 하루도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