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0장 말씀하신 대로 행하신 하나님
유도순 목사
3 여호와께서 그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
40-44장은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유다에 남아 있는 자들의 행적입니다.
이들의 행적은 이미 24:8에서 말씀한 대로 “악하여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와 같은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시는 의도가 무엇일까요?
인간이 얼마나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17:9)한 가를 우리 눈앞에 드러내어 똑똑히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말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이를 통하여 첫째는 자력구원의 불가능성을 보여주고,
둘째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40장은 예루살렘이 함락 당한 후의 이야기입니다.
바벨론 왕은 그다랴를 총독으로 세워서 남아있는 자들을 관할하게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바벨론으로 내려가지 않고 본토에 남아있게 되었고, 패주(敗走)했던 군대장관들과, 난을 피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던 백성들도 속속 돌아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 평온일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멸망당한 유다에 아직도 깨어지지 아니한 무엇이 남아 있단 말인가?
이를 두 단원으로 나누어 상고하겠습니다.
첫째 단원(1-6) 백성 중에 거하는 예레미야
둘째 단원(7-16) 총독으로 세움 받은 그다랴
첫째 단원(1-6) 백성 중에 거하는 예레미야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과 유다 포로를 바벨론으로 옮기는 중에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라마에서 해방된 후에 말씀이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1).
40장은 예루살렘이 멸망당한(39장) 후로 처음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이 심판을 받게 된데 대한 어떤 언급이 있음직하지 않습니까?
첫 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합니다.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은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하는 말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곳에 이 재앙을 선포하시더니”(2),
② “여호와께서 그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3상),
③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3하)합니다. 이는 비록 이방인의 입을 통하여 듣게 되는 말이지만 그 내용으로 볼 때,
그를 통해서 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멸망의 원인을
㉠ 여호와께 범죄하고,
㉡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라고 정의합니다.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는 예레미야서 전체로 보더라도 중심적인 경계이기도 합니다.
④ 청종치 아니함은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 열조가 어렸을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음이니라”(3:25)고, 조상 대대로 청종치 아니하였음을 말씀합니다(참고 7:25).
⑤ 그들을 가리켜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국민”(7:28)이라고 말씀합니다.
⑥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22 :21)하십니다.
⑦ “그런즉 너희는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고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26:13) 하고 권면하셨습니다.
⑧ 예레미야 선지자는 시드기야 왕에게 “원하옵나니 내가 왕에게 고한바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소서 그리하면 왕이 복을 받아 생명을 보존하시리이다”(38:20)고 호소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청종하지 않다가 심판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이 일(예루살렘의 멸망)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라”(40:3)고 한 말은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⑨ 그렇다면 이제부터 청종 해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유다에 남은 자들은 예루살렘이 멸망당하는 심판을 받고도 여전히 청종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청종”은 40-44장을 해석하는 열쇠가 되는 키워드입니다.
⑩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으로 내려가면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4)는 느부사라단의 제의를 거절하고 “그다랴에게로 나아가서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 중에서 그와 함께 거하니라”(6)는 말씀은 마치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한”(히 11:25) 그런 결단으로 여겨집니다. 그는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들을 버리고 자신의 안일을 위하여 바벨론으로 내려갈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둘째 단원(7-16) 총독으로 세움 받은 그다랴
“들에 있는 군대 장관들과 그들의 사람이 바벨론 왕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이 땅 총독으로 세우고 남녀와 유아와 바벨론으로 옮기지 아니한 빈민을 그에게 위임하였다 함을 듣고”(7).
① 바벨론 왕은 그다랴를 총독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다랴는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5)입니다. 조부 사반은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 때 공헌(왕하 22:8)한 서기관이요, 부친 아히감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죽음의 위기에서 보호한(26:24) 충신입니다.
② 패잔(敗殘)한 군대장관들이 그다랴에게 모여왔는데 그 중에 “이스마엘과, 요하난”(8)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암몬에서 돌아온 이스마엘은 그다랴가 총독이 된 것을 시기하여 그를 암살하려는 음모(14)를 품고 온 자입니다. 왜냐하면 왕족(왕하 25:25)인 자신이 그다랴 보다 총독 감이라고 생각한 교만 때문입니다.
③ “모압, 암몬, 에돔과 모든 북방에 있는(피난 갔던) 유다인도, 쫓겨났던 각처에서 돌아와”(11-12) 그다랴에게 모여들었습니다.
④ “그다랴에게 이르러 포도주와 여름 실과를 심히 많이 모으니라”(12하)는 묘사는 엄청난 충격에서 벗어나 평온을 되찾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⑤ 요하난은 이스마엘의 암살음모를 총독 그다랴에게 고하였으나 선하기만 한 그다랴는 “너의 이스마엘에 대한 말이 진정이 아니니라”(16)고 묵살해 버립니다. 다음 장에서 새로운 재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는 한마디로 징벌을 당한 후에도 여전히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3) 임하게 된 재앙인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하신 대로 행하신 하나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