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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종면 멘트 :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18년 철권통치를 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이른바 박정희 후광에 힘입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많은 이들이 했던 말이지만, 그의 딸이 취임 후 아버지 집권 시절을 연상케 하는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탄식처럼 반복돼 나오는 말이기도 합니다.”
주진우 : 2014년 4월 우리는 끔찍했던 과거를 되풀이하고 말았습니다. 피우지 못한 꽃들이 차디찬 바다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세월호 참사입니다. 41년 전에 일어났던 참사가 2014년에도 반복됐다는 사실은 국가라는 시스템이 여전히 1970년대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돈이 먼저이고 사람이 뒷전입니다. 그런 세상이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사건 발생일과 여객선 이름만 다를 뿐 소름끼치도록 닮은 두 사건, 비교해 보겠습니다.
#2.
아줌마 A : 아이고 장흥댁, 빨랑 와부러... 이러다 배 놓치것다고...
아줌마 B : 아이고 성님, 설날이 코앞이라 뭍에서 사갈 물건이 많지라잉.
아줌마 A : 자네는 시아주버님 상도 치른다고?
아줌마 B : 글쎄 말이어요. 일곱 형제셨대요. 제사 한 번 치르면 허리가 휜당께요.
주진우 : 지금은 1973년 1월 25일 오후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진도역 조도 앞바다. 조류가 드센 장죽수도가 흐르는 곳입니다. 조도와 목포를 잇는 68t급 여객선이 있었습니다. 그 배가 바로 한성호입니다.
#2.
해설 : 그날 한성호는 설 연휴를 앞두고 목포를 떠나 조도로 향했다. 진도군 지산면 심동리 세포부락을 500m 앞둔 지점에서 세찬 파도가 한성호를 덮쳤다.
선장 : 어, 어, 왜 이러는겨, 어, 배 중심을 잡을 수가 없구먼.
항해사 : 서, 서, 선장님, 파...파도가 장난이 아니구만요. 어어어... 으악!
선장 : 으악!
해설 : 109명의 승선자와 한성호가 그렇게 침몰했다. 이 사고로 죽거나 사라진 희생자가 모두 61명이다. 대부분 명절을 쇠러 진도로 돌아오던 관매도, 대마도 등 조도면 주민이다. 두 섬에서만 30여명의 희생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희생자의 상당수는 관매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다.
#3.
해설 : 1973년. 대마도 살던 청년들은 그때 마을 식수난 해결한다고 우물을 팠다.
청년1 : 성님! 성님, 지.. 지금 배.. 배가 침몰해 부렀어요! 조도 가는 배가 말이어요!
청년2 : 뭣이여? 배가 가라앉아?
청년3 : 아니, 문제없이 잘 오고 가던 배가 와 그랬댜? 어디여? 어디서 벌어진 일이여?
청년1: 글씨, 성님, 성님 장인 또 처조카가 그 배에 탔다 하지 않았어요?
청년2: 뭣이여? 내 장인께서! 빨리, 빨리 가보자고!
청년3 : 아니, 저기 말하는 거여? 육지 근처 아니여?
청년1: 아이고, 빨리, 빨리 가보자니께요!
#4.
해설 : 사고가 난 1973년, 김유기 이장은 스물여덟의 청년이었다. 평생을 대마도에서 살아온 그한테 한성호 사고는 “운명을 완전히 바까놓은”, 잊을래야 잊혀지지 않는 참사다.
김유기 이장(청년2, 지금은 노인) : 그때도 과적이여 과적! 아주 똑같아, 이번 사고랑. 그때 나는 우리 대마도 청년회랑 우물을 파다가 그 소식을 들었잖여. 곧바로 곡괭이고 삽이고 다 처박고 완전히 실신이 돼갖고 달려갔지. 우리 쬐깐한 대마도 부락에서 사람이 23명이나 수몰돼버렸응께 오죽하겄어.
주진우 : 육지 바로 앞에 두고 배가 가라앉았습니다. 아무리 1973년이라고 해도 초동 대처만 잘했으면 희생자 수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도 그랬습니다. 사고 원인을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과적이었습니다.
선사 관계자: 아이고 이틀만에 출항하는구만. 손해가 막심혀. 명절이 코앞인디.
선장 : 싣고 갈 화물이 많어요?
선사 관계자 : 어마어마하지. 몇 개로 나눠 실어야 할지 모르것어. 이거봐. 이거.
선장 : 으메 으메 이게 뭐여 이게... 아이고 소주가 125상자, 보리가 50가마, 공사용 목재, 시멘트... 아따 이거, 아 이거 6톤이 넘어불것는디?.
선사 관계자 : 목포에서 조도까진디.
선장 : 승객도 많을 것이여. 무리일 것 같은디...
선사 관계자 : 왜 이렇개 새가슴이 됐어야? 엉?
선장 : 아 이저, 바다 좀 보시여. 파도가 심상치 않단 말이여...
선사 관계자 : 안 돼야! 오늘도 출항 못하면 큰일나. 오늘은 무리혀서라도 나가야 혀!
#5.
주진우 : 선박회사 이름은 ‘한일기선’. 출항 전 관리·감독기관인 목포지방해운국에 승선자를 66명이라고 신고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136명이 탔습니다. 한성호의 정원은 86명이었습니다. 당시 구조자들은 한성호가 운항 내내 무게중심을 잡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주진우 : 두 번째 문제는 사고가 터졌을 때 수습 과정이었습니다.
승객 1 : 아이고, 이거 왜 이려? 문이 왜 안 열려불어? 이거 이거...
승객 2 : 갑판 나가는 문이 왜 잠겼대?
승객 3 : 아이구! 딴 문 없는겨? 딴 탈출구 없냔 말이여?
해설 : 선박회사는 파도가 들이치는 갑판 위로 승객이 올라오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선실문을 밖에서 잠갔고, 구명장비를 벽장에 넣고 자물쇠를 채웠다. 선장은 어디 갔을까?
선장 : 아니 뭐 저, 어쩔 도리가 없었슈. 배에 물이 차는디... 나야 뭐 바로 탈출해부렀지.
유족 : (아줌마) 야 이 새끼야! 배질도 못하는 넘들이 선장질을 왜 혀서 사람을 죽여부냐고! 배가 침몰당해불면 사람을 먼저 내보내야 살긴데, 아이고 요번맹키로 문을 잠가부냐? 그랑께 그 안에 갇혀 다 죽어버렸제! 아이고 우리 새끼도... 흑흑흑
선장 : 이것봐요, 아줌씨, 만약 문을 열어줘봐요. 다 죽는겨 다!
유족 : 뭣이여?
주진우 : 1973년에도 이준석 선장이 여기 있었습니다. 참, 실종자 수색에서는 성과가 있었을까요?
김유기 이장 : 한 사람도 못 찾았어. 43명, 아직도 실종자여. 사망자가 아니라 실종자라고.
#6.
해설 : 한성호 사고 이후 정부는 배를 운항한 선장 김씨와, 과하게 표를 팔아 정원이 넘게 배에 타도록 한 혐의로 매표원 이모씨, 배를 관리감독해야 할 목포해운국 소속 임검관 조모씨 등 7명을 구속했다. 모두 선박회사 쪽 관계자이거나 하급 공무원이다. 결국 책임은 그들이 다 지게 됐다.
주진우 :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사과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해설 : 사건 직후 제작된 대한 뉴스 어디에도 한성호 소식은 없는데.. 한성호 소식을 대신해서 채운 뉴스는..
(대한뉴스)
앵커 :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김영호 대한 적십자사 총재에게 적십자 회비를 전달하고 적십자 활동에 대한 전 군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습니다. 올해 첫 번째 수출 진흥 확대회의가 중앙청에서 박정희 대통령 주제로 열렸습니다. 박 대통령께서는 이날 시월유신의 중간 목표는 80년대 초에 수출 100억 달러, 일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를 달성하는데 있다고 밝히고, 박 대통령께서는 이날 회의를 마치고 중앙청 안에 전시된 수출 상품을 둘러보았습니다.
보다 잘살기 위한 새마을 운동은 이제 전 국토를 작업장화하고 일손의 생산화와 농민의 기술자화를 위해 각 도에서는 새마을 운동 촉진대회가 열려 소득증대를 다짐하고 있습니다. 12년에 걸린 월남전쟁이 휴전됨에 따라 주월국군의 선발대가 1월 30일 수원 공군기지에 도착 개선했습니다. 가족들의 뜨거운 환영속에 개선한 이들 장병들은 월남에 뿌린 피와 땀이 헛되지 않고 참된 밑거름으로 커갈 것을 확신하고 돌아온 우리들은 이제 국토방위에 역군이 되고 시월유신의 역군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주진우 : 박정희 대통령이 사과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7.
주진우 : 어디서 많이 본 사건 같지 않습니까? 어떤 지점에서는 아예 한성호와 판박이인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바로 세월호 사건입니다. 무엇이 닮았을까요? 국민TV 보도를 잠깐 들어보시겠습니다.
(국민TV 보도)
여 : 두 사건에서 닮은 점은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우선 침몰 장소가 둘다 진도 앞바다입니다.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 관매도와 병풍도 사이에서 침몰했고, 한성호 침몰 장소는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18Km 떨어진 곳입니다. 침몰 직후에 현장에 도착한 구조선의 역할도 비슷했습니다. 한성호때도 구조선은 스스로 탈출해 갑판위로 올라왔거나 바다로 뛰어든 승객들만 구조했을 뿐 배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사망・실종자 대부분은 선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승객들이였습니다.
세월호 때는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했고 한성호 때도 학생들이 배안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해 선실문을 밖에서 닫아 걸었습니다. 선장을 비롯한 상당수 선원들이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것도 같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순간 선장이 아닌 입사 4개월 된 3등 항해사가 키를 잡았던 것처럼 한성호 침몰 당시에도 선장이 아닌 무자격 갑판원이 파도속에서 배를 몰았습니다. 침몰 직후 구조당국의 구조실패 역시 판박이였습니다. 한성호 사건 당시 신문들은 현장이 조류가 세고 수심이 깊어 구조와 수색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보도하면서 정부의 부실대응을 지적했습니다.
주진우 :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먼저 한성호 사건의 문제점을 언급하고, 이걸 그대로 세월호 사건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첫번째, 정원과 적재량 초과입니다. 세월호는 어땠을까요? 똑같았습니다.
(뉴스)
남 : 세월호 참사의 원인 규명을 위해 지난 5월부터 현장 감사를 벌여온 감사원이 이번 참사가 인재였음을 재확인했습니다. 세월호가 정원과 화물 적재 중량을 부당하게 늘려도 눈을 감았고...
주진우 : 두번째, 기상 악화에도 기상통보를 무시한 운항입니다. 세월호도 그랬습니다.
(뉴스)
남 : 들뜬 마음으로 어제 오후 4시 30분쯤 안산을 출발해 오후 8시 30분쯤 인천여객터미널에서 제주로 가는 세월호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기상 악화로 출항 시간이 지연 된데다 제주도착 예정 시간도 2시간 가량 늦어지는 등 출발부터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주진우 : 세번째, 무자격 승조원의 조타, 선장이 직접 운항하지 않았습니다. 세월호는 안 그랬나요?
(뉴스)
남1 : 세월호 침몰 당시 조타실에서 키를 잡았던 책임자는 운항 경력이 1년 남짓한 3등 항해사였던 것으로 들어났습니다.
여 : 예, 짙은 안개속에서 조타 미숙도 하나의 사고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남2 : 사고 당시 배를 책임졌던 이준석 선장은 휴가중인 주선장 대신 대체 투입됐습니다. 같은 항로만 8년째 운항한 배테랑이였지만 2급 항해사 자격증 소지자라는 점에서 일각에선 국내 최대 규모 여객선을 몰기에 부적격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주진우 : 네번째, 당국의 감독소홀이었습니다. 세월호, 다르지 않습니다.
(뉴스)
정길영 감사원 제2 사무처장 : 세월호의 도임, 선박검사, 운항관리 규정 심사, 출항 전 점검 및 복원성 검사 등 여객선의 안전운항을 위한 일련의 규정과 절차들이 제대로 준수・작성되지 않았고, 그 결과 결국 침몰 사고에 이르게 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주진우 : 승선자들을 가둬놓았다는 점입니다. 세월호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뉴스)
여 : 사고 직후에 승객들이 들었던 선내 방송은 그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는 것이였습니다.
학생 : 짐들 같은 것도 다 이렇게 쏟아지고 그랬어요. 그런데 뭐지, 뭐지 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으라고 그냥, 그 자리에 있으라고 그래서 그냥 계속 있었는데...
주진우 : 여섯번째, 인원 파악 조차 못했다는 점입니다. 세월호 사건 초기 기억하시죠?
(뉴스)
여 : 이런 가운데 범정부 사고대책 본부는 사고발생 22일째인 어제 저녁 구조자와 실종자의 수를 또다시 수정했습니다. 이로써 대책본부가 세월호 탑승자와 구조자의 수를 번복한게 이번까지 모두 7번째인데요.
남 : 또 지금의 탑승자와 실종자 수는 여전히 잠정적인 수치이며 무임승차자가 추가로 나올 가능성이 남아있는 만큼 앞으로도 인원수는 변경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주진우 : 일곱번째, 아무도 구조하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사건에서도 그랬습니다.
(뉴스)
남 : 범정부 사고대책본부가 확인한 세월호 탑승 인원은 모두 476명입니다. 세월호가 침몰한지 한달이 지난 오늘까지 이 476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284명이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왔습니다. 침몰이후 구조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희생자의 80% 이상은 꽃다운 나이인 단원고 학생들입니다.
주진우 : 마지막 여덟 번째. 두 사건 모두 국가는, 정부는 없었습니다.
(뉴스)
여 : 국회의 세월호 국조특위 의원들은...
남1 : 그 보고는 10시에 했습니다. 1시간 8분 지났습니다. 첫 지시는 10시 15분, 1시간 23분 지나서. 그리고 비서실장 주제하는 수석 비서관 회의가 7시간 18분만에 이루어 졌습니다. 이것이 잘한 대응입니까?
남2 : 사고 초기에 가능한 방법을 실질적으로 유력하게 동원했다면 또는 ‘대부분의 학생들을 구할 수 있었다’라는 말에 동의하십니까?
남3 : 동의합니다.
남2 : 단 한명도 구하지 못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여 :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고 대통령이 구조하는 사람도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남3 : 현장에서 구조하는 분이 가장 효과적으로 해야됩니다. 해경이 들어가서 깨고 들어가서 학생들 나가라 하고 이렇게 해야지 대통령이 구조를 하는 분은 아니지 않습니까?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다 이렇게 지휘하지 않느냐 하는 뜻에서 그런 말씀이 나온 걸로 봅니다만은 구체적으로 법상으로 보면은 그 재난의 종류에 따라서 다릅니다.
(국민TV 뉴스)
여 : 공교롭게도 한성호 참사 당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행적도 의문입니다. 대통령 기록관에는 1973년 1월 25일 박정희대통령이 베트남 종전 기본대비책 보고를 받았다는 단 하나의 일정만 기록되어 있고 한성호 관련 보도에서도 박정희대통령은 찾을 수 없습니다.
주진우 : 한성호. 세월호. 여객선 이름은 달랐으나 이배에 탑승한 승객들의 운명은 같았습니다. 두 사건 모두 무리한 출항과 과적, 그리고 초기 구조실패 등이 참사의 원인 이였습니다. 구조적인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비극은 되풀이 되었습니다. 1973년과 2014년. 41년이라는 세월동안 우리는 달라졌어야만 했습니다. 정부는 제2의 한성호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안전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었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못했기에 한성호 사건은 세월호 참사로 반복된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우리 국민모두를 슬픔에 잠기게 한 사건입니다. 세월호와 함께 정부에 대한 믿음도, 국민안전에 대한 확신도 깊고 어두운 물속으로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뉴스)
여 : 하.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건 현장에서는 단 한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한 긴박한 사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짙은 어둠속에서도 군과 해경은 조명탄과 서치라이트를 밝히고 야간 수색작업을 벌였습니다.
남 : 야! 이 xxx아. 거짓말하지 마.
여 : 해경은 해경 특공대와 잠수정...
남 : 야!!
여 : ..등을 침몰선 내부로 투입...
남 : 거짓말하지마! 거짓말하지 말라고 xxx아..
여 : 수색작업을 벌였으며 선채 내무 수색에 필요한 중앙 산소 공급 장치 등을 갖춘 청해진함과 평택함이 사고지점에 도착해 구조활동에 착수..
남 : 야!
여 : 했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저체온 증이나 산소 고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고 일부 실종자 가족들은 당국의 보다 신속한 대응을 요구하며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남 : xxx아..
여 : 구조자들이 도착할 이곳 진도....
주진우 : 반성하고 참회하고 눈물 흘렸던 지난 4개월간의 시간들이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이제 우리는 냉정해져야 합니다. 재발 방지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제2의 세월호 사건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에 직면한 박근혜 정부는,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기만 하는가 하면, 정치공방으로 몰고 가고만 있습니다. 사건의 진상규명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습니다. 세월호와 함께 잠긴 아이들의 이름처럼 대통령이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한 가지는 분명해집니다. 제2의 세월호 참사가 또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반복되고 비극은 되풀이 됩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변해야 합니다. 그 변화의 시작은 바로 진상규명입니다.
(방송)
유가족 : 어! 괜찮아. 아빤 괜찮아! 거짓말 아냐. 흐 흐흥.. 니가 너무 추울까봐 걱정이야. 니가 너무 무서울 것 같아서 걱정이고, 니가 너무 외로울 것 같아서 그래서 걱정이야..... 버스가 왔네. 한 대, 두 대, 세대. 구조된 아이들이 내렸고, 근데 더 이상 안와.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어떻게 된 겁니까? 애들이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죠?
또 한 시간, 또 두 시간, 또 세 시간... 왜 아무 소식이 없습니까? 애들 모두 구조한 거 맞아요? 해군 어정, 항공기, 민간어선 그런거 말구요, 그러니까 몇 명이요? 몇 명을 구조 했냐니까요? 왜 아직도 애들이 안 옵니까? 예? 저렇게 배가 다 잠겨버렸는데?...
기도했다. 신은 없다고 생각했던 아빠가 교회 한번 가본적 없는 아빠가 기도했어! 하나님 살려주세요. 부처님 살려주세요. 용왕님 살려주세요. 우리아이들 좀 살려주세요. 당신이 누구든지요! 당신이 뭐든지 좋으니까요 제발! 데려가지 말아요. 우리딸 데려가지 말아요. 아빠 그렇게 기도했어! 아빠가 그것밖에 할 수 있는게 없어서......
미안하다. 니 핸드폰 진즉에 바꿔줄 걸. 뉴발란스 운동화 그것도 안 사줬네. 미안하다. 화장하고 다니지 말라고 혼내서 미안하고, 비 오는데 혼자 학교 보내서 미안하다. 아침마다 무섭게 깨워서 미안하다. 빨리 하라고, 어서 하라고 자꾸만 재촉해서 그래서 미안하다. 아빠 담배냄새 나서 미안하고, 아빠 면도 자주 안해서 미안해. 니가 보는 앞에서 엄마랑 자주 다퉈서 그래서 미안하다. 어린이날 니가 어린이라고 놀려서 미안하다.
그놈의 니가 줬던 카네이션들, 편지들 그게 다 어디 있는지 아무리 찾아도 모르겠어. 미안하다. 여기저기 자꾸 이사 다녀서 미안하고, 그때마다 니 물건들 버려서 미안하다. 부자 아빠가 아니라서 미안하다. 강남사는 아빠가 아니라서 미안하다. 험한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많이 사랑해 줬어야 했는데, 많이 외롭게 해서 미안해.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주진우 : 지금까지 주진우의 현대사 1화 ‘세월호는 한성호의 미래였다’였습니다.
원문
http://news.kukmin.tv/news/articleView.html?idxno=6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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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973년 한성호.........
찾아봐야겠네요.
ㅜㅜ
지금 국가도
쩐전인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