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때 경주고산악부OB들의 방문을 받은 자리에서 우연히 약속하게된 인수봉 등정으로, 우리들은 10.12일 밤 서울 수유리에서 모두 집결했다. 당시 약속했던 사람들은 모두 9명이었는데 개인 사정으로 불참한 사람들 빼고 5명이 모였다. 아침부터 고현무(건국대졸,바이엘크롭사이언스 근무)와 같이 경주에서 차를 몰고 서울로 올라가 한국외대에서 최성호(경희대산악부,매킨리 등정,히말라야 스판틱봉 등정)와 박진우(고려대,중국 장안대 유학)를 만나 장비를 챙기고 수유리로 가서 방을 잡았다. 톱크라이머가 되기로 했던 김동영(한양대OB,신성건설 근무,트랑고타워 등정)은 회사 행사 때문에 불참을 하게 되었지만 13일 새벽 4시에 밤샘 근무를 하고 모텔방으로 찾아온 신동섬(한국외대산악부,힐링코리아 근무,히말라야 칸첸충카 등정)과 같이 우리는 인수봉 등정에 나섰다. 내가 처음 시작했던 경주고등학교산악부, 이제 그 학생들이 커서 세계적인 산악인들과 어깨를 겨루는 거인들로 자라났으니, 그들은 늘 나에게는 가슴 뿌듯한 제자들이다.
인수봉! 한국 암벽 활동의 메카인 인수봉, 이 곳은 모든 산악인들이 꿈에 그리는 꿈의 벽이요, 성역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곳에 왔다. 제자들은 나를 인수봉으로 안내하기 위해 오랜 세월동안 이날을 별러 왔던 것이다. 우연인지 나 외에 참석한 4명은 모두 경주고산악부 2기생들이다. 물론 그들은 경주고산악부 초창기에 바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친구들이다.
우리는 새벽에 우이동으로 올라 깔딱재라고 불리는 하루재에서 드디어 어둠 속의 인수봉을 만난다. 오늘 우리는 저 봉우리를 오를 것이다. 긴장은 되지만 우리는 가능한 등반을 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인수대피소를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길을 꺾어 대슬랩으로 오른다. 대슬랩에서 오른쪽으로 돌아들면서 인수봉을 바라다 보았다. 여기서 얼마나 많은 악우들이 죽어갔던가? 한국 산악문화의 선각자들이 무수히 이곳에서 자취를 남기고 사라져 갔다. 이 옆에도 벌써 먼저 간 악우들의 추모동판들이 여기저기 붙어있다. 하긴 나도 경주 함월산에 악우의 동판을 하나 달아놓았다.
드디어 우리가 선택한 고독의길 코스의 첫번째 피치이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첫 두 스텝 뒤에 홀더가 쉽지 않다. 또 암벽화가 골동품이라 너무 미끄럽지만 발끝의 힘으로 발란스를 잡고 쉽게 오른다.
두번째 피치는 길이가 길다. 그중 어렵다지만 나에게는 쉬웠다. 상단부의 사진인데 왼쪽에 언더크랙이 있어 발을 집어 넣어 틀어서 제동을 하고 올랐다. 쉽다고 말은 하지만 오르고 보니 왼무릎이 벌써 까져 피가 흐른다. 오늘 얼마나 많이 살을 까내야 할까? 영광의 상처일 뿐이겠지!
세번째 피치를 오르는 박진우,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인수봉 아미동코스를 오른 바 있다. 그는 가벼운 몸과 날렵한 운동신경으로 일찌기 가장 뛰어난 재능을 선 보였지만 고려대 사학과 진학 후 역사공부에 빠져 산에는 뜸한 편이다. 이 피치는 크게 벌어진 언더크랙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앞으로 당기고 발은 밀면서 발란스를 잡고 올라야 한다.
4번째 크랙을 오르는 선등자 최성호, 그는 대기만성형이다. 고교시절 아주 약해 보이던 그는 꾸준한 대학산악부 활동으로 가장 강한 사나이가 되었다. 그는 히말라야 산군 파키스탄 스판틱봉에 올랐고 북미 최고봉 매킨리에도 거벽등반을 하였다. 그는 늘 말한다. 선생님 덕분에 새로운 인생을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이 피치는 서로 다른 두 크랙이 있는데 우측 정상 크랙으로 발가락을 집어넣어 틀어 홀더를 만들고, 왼편 언더크랙에는 크랙 속으로 발가락을 잘 사용해야 쉽게 오를 수 있다.
4피치에서 서브빌레이를 봐 주고 있는 신동섬, 멋쟁이 신동섬은 한국외대산악부 등반대장으로 일찌기 세계적인 산악인 엄홍길과 히말라야 칸첸충카의 얄륭캉의 정상 공격조로 활동한 바 있다. 그는 다른 경주고산악부오비들에게 큰 자극과 영감을 준 사나이다. 그 옆은 박진우와 나(강대춘).
4피치를 오르는 나, 제자들이 생각보다 무척 잘 오른다고 한다. 실제로 나는 한번도 줄에 실리지 않았다. 스스로 크라이밍을 다 해냈다. 2일의 포항 행사 때 다친 오른발 관절과 과로로 지쳐 몸살이 나 있었지만.....큰 딸이 지어준 약은 유효했다. 내가 인수봉에 간다니 두딸이 얼마나 걱정을 하는지.....친구들 말대로 나는 딸들을 잘 두었다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이제 가장 고도감이 있는 5피치, 위에 보이는 날개가 유명한 인수봉의 귀바위. 박진우는 확보없이 혼자 올라갔다가 발 하나만 헛 디디면 추락해 버리는 고도감에 난감해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보고는 확보한 뒤에 올라오라고 손사래를 친다. ㅋㅋㅋ....
첨예하게 삐져나온 귀바위. 그 바위 아래 면에 볼트들이 박혀있어 산사나이들의 모험주의는 극에 달한 느낌이다. 그것은 손가락만으로 온 몸을 지탱하는 고난도의 인공 클라이밍인 것이다. 그야말로 목숨을 걸었다.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 같이 말이다.
평소 안경을 쓰지 못하고 독서 안경을 쓰고 등반하니 불편함이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차피 시작했는데 방법이 없다. 손가락은 테이핑하고 난 뒤에는 쓰라림이 덜 하다. 이제 곧 귀바위에 오르겠지.
귀바위 옆으로 올랐다. 저 뒤편은 인수봉 전면, 천길 낭떠러지이다. 누가 저리로 하강하자는 말도 나온다. 하강이야 어디든 어떠랴? 자일에 매달려 내려가는데.....
드디어 6피치를 오른다. 이건 확보가 되어도 떨어지면 왼편 바위에 몸을 쳐 박을 수 밖에 없어 조심 조심이다. 오르면서 경사가 있어 왼편 바위를 이용하여 침니스타일로 올라야 한다.
마지막 피치인 7피치의 유명한 영자크랙이다. 00크랙인데 부르기가 상스러워 영자크랙으로 한 모양이다. 가장 어려운 코스이다. 한줄로 늘어선 크고 작은 구멍들에 발가락을 왼쪽, 오른쪽으로 적절하게 넣어서 홀더를 하고 손가락을 구명에 넣어서 좌우로 벌리면서 올라야한다. 몸무게가 있어 저 작은 구멍에 손과 발을 조금씩 넣고 그 힘으로 오르려니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도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상단에서 오른쪽 발의 홀더가 없어 왼편 바위에 몸을 힘들여 밀어대다가 끝내 왼팔 팔꿈치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만다. 영광의 상처는 오늘 두번째이다.
드디어 인수봉 정상이다. 북한산은 이 근처의 백운대, 망경대, 인수봉 하여 삼각산이라고도 부른다. 꿈에도 그리던 인수봉에 드디어 올랐다. 생각보다는 오늘 컨디션이 좋다. 잠을 안 자서 그런가? 고현무와 박진우, 신동섬도 함께 있다. 인수봉 만세! 경고산악부 만세!
인수봉의 나, 이제는 나이도 먹고 살도 쪘지만 나의 모험주의도 보통사람들 보다는 강한 모양이다. 왜냐면 나의 친구들이 나의 모험주의에 놀라니까....인수봉 등정 뒤의 나는 또 무엇을 꿈꿀까? 기대하시라.
인수봉에서 바라다본 백운대. 사실상의 북한산 정상이지만 이 인수봉과 몇 미터 차이 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 있고 우리가 오늘 처음으로 인수봉에 오르자 멀리서 환호를 보낸다. 인수봉에 오른 자체가 이미 스타가 되는 것인가? 아마 내일 일요일은 백운대가 인산인해가 될 것이다.
아쉬움에 인수봉에서 다시 한 커트. 잘 나오는 사진이 있으면 확대해서 집에다 걸어놓을텐데....
이제 하강을 시작한다. 안전을 위해서 신동섬과 러브하강을 한다. 사진으로 보기는 저렇지만 높이는 대단하다. 바위는 2단으로 되어 있는데 중간에 오버행이 있어 조금 곤란하다.
하강 중에 신동섬이가 옆에서 촬영해준 커트. 천길 절벽에 매달려서도 여유는 있다. 하강 중 8자 하강기를 잡아보니 자일과의 마찰로 불덩어리이다.
드디어 마지막 하강 피치. 거의 다 내려왔다. 이제 대단원의 막이 내리려는 순간이다.
운 좋게도 하강 중에 세계적인 산악인 오은선씨를 만났다. 그녀는 수원대산악부오비로 히말라야 14좌에 도전하고 있는 세계적인 산악인이다. 아마 조만간에 지현옥 이후, 아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산악인이 될 것이다. 그녀와 같이 기념촬영....그녀는 나의 제자들에게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고등학생 때 명산을 접하고 이제 지도교사가 서울까지 와서 등반을 같이 하니 그런 기회를 가지는 학생들은 드물다고......ㅋㅋ 그런가?
아디오스! 인수봉! 떠나면서 아쉬워 다시 돌아다 본다. 우측에 우리가 오른 귀바위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떠나는 우리들에게 귀를 쫑긋하는 것 같다.
우이동 도선사에 도달한다. 이제 수유리에 가서 김동영과 내딸 강민희, 크로니의 악우 박인록, 환일중 교사 김용국과 함께 라스팅을 벌일 것이다. 아듀! 인수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