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역경에 부딪히면 ‘운명의 탓’으로 돌리고 체념한다. 그러나 운명은 바꿀 수 있다. 운명을 바꾸는 것을 개운(開運)이라 하며, 개운(開運)은 자신의 노력만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운명을 바꾸는 몇 가지 비결(秘訣)을 알아본다.<편집자주>
글_박순욱 / CEO Report(www.ceoreport.co.kr) 경영사례분석가
얼마 전 ‘미래를 내다보는 기계를 발명하였으나 그 결과가 인류의 멸망이라는 참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고는 발명가가 그 기계를 다시 파괴한다’는 내용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는 미래를 본 주인공이 우연곡절 끝에 기계를 파괴하여 인류멸망이라는 참화는 피하지만 자신은 미리 본 로또복권을 이용하여 거액의 당첨금을 손에 쥐는 것으로 끝난다.
인류가 불을 사용하는 대가는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의 지불로 충분하였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대가는 영화에서처럼 인류 전체가 책임을 져야하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처럼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이 바람직한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성패(成敗)를 미리 알아 취길피흉(取吉避兇, 길함은 취하고 흉함은 피함) 하기를 원한다. 이런 점은 성인(聖人)이라도 별 다르지 않았던지 공자와 얽힌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있다.
하루는 자로가 공자에게 “성인도 점을 칩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열 번을 쳐서 일곱 번이 맞는다면 이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답하고 이렇게 말한다. “점을 치는 사람은 세 부류가 있다. 하나는 무(巫)요, 하나는 사(史)요, 하나는 나와 같은 부류이다. 무는 점에서 단지 길흉을 보고, 사는 그 속에 숨긴 이치를 찾으며, 나와 같은 사람은 덕(德)을 본다.”
점을 자주 치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자로에게 공자는 ‘점에서 덕을 본다’고 질문을 받아 넘긴다. ‘점에서 덕을 본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짐작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 하여도 점을 치는 것이 미래를 내다보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임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성인이 이러하거늘 우리네 범인들이야 자신의 운명을 알고 싶어하는 것이 당연하리라. 하여 세시에 붐비는 곳 중의 하나가 철학관이나 점집이요, 바쁜 사람 중의 하나가 운명가이다. 운명을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연말연시가 되면 지난 한해보다 다가오는 한해가 좋아 질 것을 기대한다. 물론 한 해를 점치러 들른 운명가에게서 좋은 말을 듣고는 한 해의 운수를 기대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듣지 않음만 못한 말을 듣고 오기도 한다.
개운(開運)
필자는 운명의 존재를 믿는다. 철학자 세네카는 “운명은 순응하는 자는 태우고 가고, 거역하는 자는 끌고 간다”고 말했다. 필자도 이에 동의하지만 운명은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운명의 존재를 믿으면서 한편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하면 모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의 생각은 이러하다. 운명을 믿는다는 면에서 말하자면 걸인의 운명을 타고 난 사람이 노력을 한다고 해서 영웅의 명으로 바뀌지 않고, 영웅의 명을 타고 난 사람이 걸인의 삶을 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운명의 존재를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균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동일한 사주팔자를 타고 난 사람, 즉 생년, 월, 일, 시가 동일한 5명의 여자가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자료를 가지고 있다.
한 명은 미국 유학을 마친 후 남편과의 사이에 자식을 두고 치과의사를 하고 있으며, 한 명은 대학원에서 MIS를 전공하고 모 기업 전산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물론 결혼을 하고 자식도 있다. 다른 한 명은 전업주부로 남편과의 사이에 자식을 두고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또 다른 한 명은 미혼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나머지 한 명은 술집에서 호스티스로 일하고 있다. 동일한 사주팔자를 타고 난 사람이 극단적으로 한 명은 대학교수이며, 다른 한 명은 술집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서양이든 동양이든 운명학은 태어난 시를 기준으로 한 사람의 운명을 판단한다. 즉 동일한 시간대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동일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믿는다. 그러나 위의 예와 같은 경우는 종종 생기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동일한 사주를 타고 난 사람이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가? 그것이 운명학이 가지는 한계이다. 그러나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운명학이 무용한 학문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운명에 미치는 또 다른 요인들이 존재하고 그 요인들에 의해 한 인간의 운명이 달라지는 것이다.
운명을 결정짓는 요소
한 인간의 생애를 결정짓는 요인은 크게 5가지로 분류된다. 첫째가 문(門), 둘째가 택(宅), 셋째가 명(命), 넷째가 용(容), 다섯째가 수(修)이다.
▶ 문(門) : 타고 난 가문을 말한다. 단순히 재력가의 집안이냐, 권력가의 집안이냐의 문제를 떠나 그 사람이 타고 난 유전적 형질을 말한다.
▶ 택(宅) :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의미하나 넓게는 지역, 국가를 의미한다. 동일한 시간대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아프리카의 빈민국에 태어난 사람과 유럽의 부국에 태어난 사람의 생애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 명(命) : 태어난 시간에 따라 타고나는 운명, 사주팔자로 지칭되는 것으로 이에는 운명을 해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정보가 있어 현실적으로 한 사람의 생애를 예측하는데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다.
▶ 용(容) : 타고 난 신체조건이나 용모를 말한다. 명이 태어난 시간에 따른 정보라면 용은 겉으로 드러난 정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수(修) : 교육, 수양, 적선 등에 의해 형성되는 후천적 요소이다.
한 사람의 생애에 영향을 미치는 위의 다섯 가지 요소에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요소도 있고 선택할 수 없는 요소도 있다.
▶ 문(門) :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태어날 때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요, 우수한 유전인자를 선택하여 태어나 것도 아니다.
▶ 택(宅) : 지역적 요인이야 선택할 수 없지만 생활하는 환경은 선택할 수 있다. 풍수지리학은 사람의 생애에 영향을 미치는 택(宅)의 요소를 고려하는 학문으로 자신에게 미치는 생활환경을 가급적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다.
▶ 명(命) : 출생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요즘에는 운명학에 관심을 가진 부모들이 자식이 태어난 시간을 선택하여 수술 등을 통해 자식을 낳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무용한 짓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한 인간의 생애가 단순히 명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용(容) : 링컨은 “남자 나이 40이면 자신의 용모에 대해 책임을 져야 된다”고 말하였다. 타고 난 신체조건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자신의 분위기나 이미지는 관리하기 나름으로 충분히 바꿀 수 있다.
▶ 수(修) : 한 인간이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요소이다. 평생을 두고 끊임없이 자신을 수련하고 덕을 쌓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생애는 필연코 다를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타고 난 사주팔자’ 운운 할 때의 운명은 위에서 말한 세 번째 명(命)을 말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생애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서 명(命)은 순위로 볼 때도 단지 세 번째에 불과하다. 또한 명(命), 문(門)의 경우 외 세 가지 요소는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
택(宅)과 용(容)과 수(修)
자신에게 미치는 운명의 힘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흔히 사용하던 방법이 택(宅)이었고, 이를 연구하는 학문이 풍수(風水)이다. 택의 경우 과거에는 주로 음택(陰宅)을 의미하였으나 요즘에는 양택(陽宅)에도 폭넓게 활용되며, 특히 양택풍수의 경우 근래 서구에서는 펭슈이 사이언스(fengshui science)로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각광받고 있다.
필자는 음택(陰宅)의 경우는 전혀 믿을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기(地氣)를 빌어 자신의 운명을 바꾼다는 것도 믿음이 가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식을 위해 한평생 희생하다 이승을 떠난 부모님이 잠드신 유택(幽宅)을 자신의 발복을 위해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는 것도 참으로 하지 못할 불효라 생각한다.
양택(陽宅)의 경우 이상한 이론들이 들어와 사람을 현혹시키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신빙성은 있다고 믿는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밝고 깨끗한 주변 환경이 양택풍수의 요점이라 생각한다. 물론 여유가 된다면 보다 좋은 지기를 띄고 있다는 지역을 선택하여 주택을 마련하고, 실내 인테리어도 풍수적 요소를 고려하여 배치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택(宅)이외 개운술(開運術)으로는 용(容)과 수(修)를 들 수 있다.
특히 용(容)과 수(修)의 경우는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명(命)을 변화시킬 수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시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생애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특히 수(修)는 한 인간이 평생을 통해 유념해야할 요소이다. 수(修)에도 여러 가지가 있으나 특히 적선(積善)과 독서(讀書)는 중요한 요소이다.
적선지가(積善之家)는 필유여경(必有餘慶)이요, 적불선지가(積不善之家)는 필유여앙(必有餘殃)이라. 선을 쌓는 집은 반드시 경사가 있을 것이오, 불선을 쌓는 집은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것이다. 남을 해하고 이익을 얻는 자가 오랫동안 영화를 누리는 법이 없었고, 남을 돕는 자는 언젠가는 반드시 그 보답을 받는 것이 인간세상의 인과응보이다. 적선과 더불어 자신의 분야에서 끊임없는 독서를 통해 실력을 쌓아나가는 것 또한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요소이다.
이 경우의 독서란 가벼운 읽을거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관심분야, 혹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의 전문서적을 매일 읽고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매일 시간을 정해두고 하루 한 시간이라도 자신의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의 결과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물론 자신의 발전을 도모한다하여 독서가 자신의 관심분야에 한정되어서는 곤란하다.
폭넓은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관심 분야 외의 독서 또한 필요하다. 흔히 “강한 날은 경서를 읽고, 부드러운 날에는 사서를 읽는다(剛日讀經, 柔日讀史)”고 말한다. 이는 자신을 연마하는 독서가 필요함은 물론 폭넓은 교양인으로서 독서도 또한 필요함을 말한다.
수(修)가 내면의 수양을 통한 운명의 변화라면 용(容)은 수(修)를 통한 외면의 변화이다. 인간의 내면은 외면으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인간의 외모는 내면의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타인은 그 사람의 외모를 보고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기 마련이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타인에게 호감을 주는 외모를 타고나는 사람도 있다.
이외에도 이미지 개선을 위해 자세교정, 언변술등을 강의하는 학원도 있으며, 자신의 외모를 바꾸는 사람들로 성형외과가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으로 듣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내면이 외모를 따르지 못하는 경우라면 그 자신의 본모습은 곧 드러나기 마련이다. 결국 용(容)은 수(修)와 더불어 변화시킬 때 그 효력이 배가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벗어나기가 참으로 힘들다고 생각하고 자포자기하거나 순응하는 자세를 보이는 경우가 흔하지만 평균적인 삶을 사는 우리네 범인의 운명은 단지 자신의 마음자세와 노력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 그 결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끊임없는 자기수양과 노력만이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CR) |
첫댓글 자명입니다 죄송했읍니다 상관에기질인가요 토에기질인가요 답답하니 선생님힘들고 짜증나게했나보네요 죄송죄송 알고싶은것많고 하고싶은것많다보니 실수도많네요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저에게도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셔서 많은 힘든사람들에게 좋은업 지으시기를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