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 스님의 승만경 강화] 39. 신행의 시작은 ‘귀명’에서…
39. 예경문
〈원문〉
“여래의 미묘하신 몸은 세상에서 짝할 수 없는 것. 견줄 바 없이 불가사의하니 그러므로 지금 공경히 예배드리나이다. 여래의 몸은 다함이 없고 지혜도 또한 그러해 일체의 모든 법에 항상 머무시니 그러므로 제가 지금 귀의하나이다. 마음으로 지은 허물인 악업과 몸으로 짓는 네 가지 악업도 이미 다 조복하신 경지에 이르렀으니 법왕께 절하옵니다. 일체의 알아야 할 바를 모두 아시며 지혜의 몸이 자유자재하시며 일체의 법을 모두 지니셨으니 지금 공경히 예배하나이다. 부처님의 크신 공덕 헤아릴 수 없음에 예배하며 비유할 수 없음에 예배하며 가없는 법문에 예배하며 불가사의함에 예배하나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저를 보호해 주시고 법의 종자가 자라나게 하소서. 금생에도 다음 생에도 원하옵나니, 부처님 언제나 거두어 주소서. 부처님! ‘내 이제 너를 편안케 하여 전세에 이미 깨달음을 얻게 하였고 이제 다시 너를 거두어 주노니 미래의 생에도 그러하리라’ 하소서. 저는 이미 공덕을 지었으니 현재에도 또 다음 생에도 이와 같은 온갖 선근으로 원하옵나니, 거두어 주실 것을 보여 주소서.”
〈강설〉 <승만경>의 제1장인 ‘여래진실공덕장’에는 승만 부인의 예경문이라 할 수 있는 글이 나와 있다. 지극한 정성으로 부처님을 찬탄하면서 예배드리는 내용이다. 부처님의 공덕, 지혜 그리고 불가사의함을 생각하며 몸과 마음을 다 바친다는 귀명문(歸命文)이기도 하다. 종교적 신앙생활은 예경(禮敬)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를 달리 귀명례(歸命禮)라고도 하는데 정성을 다하여 귀의하고 예배하는 것을 말한다. <석문의법(釋門儀範)>에는 의례 때 지송(持誦)하는 귀명게(歸命偈)가 나와 있다. “시방세계의 부처님께 모두 귀의하오니 죄를 멸하고 청정한 믿음을 내어 연화장세계와 극락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옵니다(十方盡歸命 滅罪生淨信 願生華藏界 極樂淨土中)”, 예불문의 칠정례(七頂禮)도 ‘귀심귀명례’로 시작되는데 귀명(歸命)이란 말이 귀투신명(歸投身命)의 줄인 말로 몸과 목숨을 던져 돌아가 의탁한다는 말이다. 또 귀순교명(歸順敎命)의 뜻이 있어 부처님의 교명(敎命)을 따른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환귀본명(還歸本命)이라 하여 명근(命根)을 그 근본에 돌려보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중생의 육근(六根)이 일심에서 일어난 것인데 스스로 그 근원을 등지고 수많은 외부 경계에 끌려가 허덕이게 된다. 그래서 모든 감관을 거두어들여 근원인 일심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귀명이란 말에 이와 같은 세 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다. 범어를 음사(音寫)해 쓰는 나무(南無: namas)라는 말도 귀명의 뜻이다.
불교의 신행 자세 혹은 신앙 정서는 귀명에서 시작하여 찬탄하고 참회하며 발원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대승경전에서는 거의 공통으로 귀의, 찬탄, 참회, 발원의 네 가지 요소가 다 설해져 있다. 승만 부인의 예경문 안에도 이 네 가지 요소가 다 들어 있다. 금생에도 다음 생에도 거두어 달라는 간절한 청을 부처님께 드리고 있는 것이 지극히 감동스럽다.
대승기신론 서두에도 저자 마명보살이 삼보에 귀의하며 논을 짓는 뜻을 밝힌 귀명게가 있다. “언제 어디서나 온 시방에서 가장 훌륭한 일을 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며, 색신이 걸림 없이 자유자재하여 세상을 구원하는 대비하신 분과 그리고 그 몸의 본체와 나타나는 모습이신 법성 진여 바다의 한량없는 공덕의 창고와 여실히 수행하는 이들에게 몸과 마음을 바쳐 돌아가 의지하나이다.” 삼보에 귀의하는 말을 이렇게 설해 놓았다. 또 부처님께 예배하는 예법을 정례(頂禮)라고 하는데 원래 이 말은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고 예를 올리며 하는 말이다. 이는 자신의 신체에서 가장 높은 부위인 이마를 부처님의 가장 낮은 발에 예를 올리는 것으로 공경의 극치를 나타내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