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4> 관불삼매 염불법에서는 ‘눈을 감은 듯이 뜨고, 뜬 듯이 감아라’라고 했습니다. 정토선 할 때는 눈을 떠야 하는 지 감아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답> 눈을 감는 정도로 눈을 떠라. 눈을 감을 때는 잠이 든다. 눈을 거의 감을 정도로 뜨고 관하면 된다. 눈이 코를 보고 코가 마음을 보는 상태가 좋다.
<문 5> 선정을 닦아 무상정을 이루어도 마음에 번뇌가 끊어지지 않고, 더 닦아 멸진정까지 닦아야 한다고 합니다. 정토선 일념 무념은 멸진정의 경계와 같은 것입니까?
<답> 수련과정에서 정성이 필요하다. 1 . 2 . 3 . 4선천을 거쳐 멸진정 경지에 이루는 것과 같은 경계를 얻을 수 있다.
<문 6> 정토선을 하면서 어지러운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경지에 다다르면 멸진정과 같은 경계와 같습니다.
<답> 번뇌를 없애주는 것은 같다. 그러나 속도의 문제이다. 정토선은 비행기를 타는 것과 같다.
<문 7> 금년 3월 4일 약수암에서 큰 스님께서 영가를 천도 했는데, 그 때 중국에서는 법답게 천도를 하면 영가가 연화를 타고 가는 것을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데 어떻게 하는 것이 법답게 하는 것입니까? 스님이 그때 싱가포르에서 찍은 사진도 보여 주셨습니다.
<답> 이것은 사실이다. 나도 직접 보았고 많은 사람들이 본 것이다. 사진도 있다. 이것은 특별한 영험에서 나타난 것이다.
<문 8> 영주 약수암에서 천도할 때 죽은 사람이 글을 남기고 떠나갔는데, 상연화대, 상도솔천, 상법천이라는 글을 남기고 갔다고 하는데, 한 장소에서 똑같이 천도했는데, 어떻게 해서 가는 곳이 다릅니까?
<답> 함께 천도를 했어도 천도 받는 사람의 업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문 9> 「정토선정의」에 나오는 일정표 가운데 8개월 이후부터 ‘매번 1시간 매번 1시간’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답> ‘날마다 4시간 한 번에 1시간’의 잘못이다. 매일 4시간씩 하되 한 번 할 때 한 시간씩 하라는 것이다. 너무 빨리하지도 말고 너무 늦게 하지도 말고 꾸준히 해야 한다. 염불도 기타처럼 너무 팽팽하면 안 되고 느슨해도 안 된다. 천천히 정확하게 해야 한다. 중단하지 말고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1년에서 5년 내지 7년까지 하면 반드시 견성 성불한다. 매일 3~4번씩 한 번에 1~2시간씩 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공부하면 자성염불 자체가 없어지며 무념이 되면 깨닫는다. 그러면 연화에 화개견불(花開見佛)한다.
<문 10> 자성염불이 되면 아미타불 수인을 하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답> 코를 보고, 왼쪽 손에 오른손을 얹고 호흡을 단전까지 다다르게 길게 하라. 이때부터 영혼을 보면 헛것이 보인다. 염불을 성실하게 하라. 한국에서 수백 명 수 천 명이 법문을 들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깨달았다.
이때 통역은 화교인 류건민 거사가 했는데 질문에 전문적인 수행용어가 많이 나와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았다. 몇몇 질문은 질문 자체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은 것 같고, 대답도 관정 스님은 꽤 길게 했는데 한 줄로 번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아쉬움을 남겼다. 질문이 끝나고 이어서 스님과 신도들에게 마정수기를 해주었다. 한편 당시 관정 스님이 중국 복건성 선유현 미륵동굴 부근에 한국 사찰을 건립하신다고 해서 기금으로 500만원 보시하였다.
1996년 3월 15일부터 1999년 3월 15일 회향할 때까지 3년 기도에 들어갔는데, 바로 이때 관정 스님이 한국을 방문하셨다. 3년 기도하는 동안 나는 산문 밖을 딱 1번 나갔는데, 관정스님께서 여러 곳에서 설법하시고 중국으로 돌아가신다고 하여 동대구역에 배웅하러 다녀오셨을 때이다.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나가겠다고 결심한 일인데 관정스님은 다시 뵙지 못할까봐 안타까운 마음에 다녀왔다고 한다.
3) 법장 스님의 정토선 수행
앞에서 보았지만 법장 스님은 3월 4일 약수암에서 관정 스님으로부터 정토선과 ‘나무아미타불’에 리듬을 넣어 반복하는 2회 염불법을 배운 뒤 4월부터 바로 지금까지의 염불법을 바꾸어 정토선 염불법을 익혀 수행했다. 그리고 9월 7일 법회를 열 때 그 동안 수행과정에서 가졌던 의문점을 집중적으로 질문을 하였다. 법회 때 뿐 아니라 자기 절에 머무시는 동안 많은 질문을 하였다. 이는 실제 정토선 수행을 해본 사람만이 하는 수준 높은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마음의 안락을 얻게 된다. 「법보신문」 인터뷰에 법장 스님의 정토선 염불수행에 대해 이렇게 나왔다.
법장스님은 관정법사로부터 정토선과 ‘나무아미타불’에 리듬을 넣어 반복하는 2회 염불법을 익혀 수행했다. 스님은 밝은 목소리로 천천히 염불하며 귀로 들으려 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몸 안에서 저절로 염불함이 느껴졌다. 또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이 염불함에 귀 기울이되 소리를 내지 않았고 그 다음부터는 행 . 주 . 좌 . 와에 항상 귀를 귀우려 염불소리를 들으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동으로 염불이 됐고 그에 따라 모든 생각은 ‘나무아미타불’ 일념에 귀착 되었다. 비로소 스님은 번민의 껍질을 다 벗어버리고 그윽 미묘한 안락의 상태에 들 수 있었다.
이런 경계는 바로 「정토선정의」에 나오는 다음 설명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염불이 익숙해져서 마음속에서 스스로 염불하게 될 때 몸 안에서 자동적으로 염불을 외우게 됩니다. 이것이 오래되면 마음 속 잡념, 망상을 흡수하고 점령하고, 개조하고, 세척하고, 정화되고, 통일되게 합니다. ‘나무아미타불’이 한 마디의 부처님 명호가 마음 속 만병을 치료하고, 모든 망상과 업장, 시비, 허망한 것들을 한 순간에 쓸어 버려 법신으로 변화시키게 됩니다.”
그 때 스님은 하루 두 끼 공양만 하시고, 법당에서 2시간씩 하루 3번 정근을 하시고, 108배와 발원문을 꼭 외우셨으며, 방에 돌아와서 다시 2시간 좌선염불을 하셨는데, 한번 정한 규칙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키며 수행하셨다. 그 뒤 관정스님께서 몇 차례 더 오실 때마다 많이 여쭤 보시고 그대로 수행하시면서 신도들에게도 설법하시며 정토선을 펴기 위해 애쓰셨다.
4) 법장 스님의 정토선 포교
법회를 마치고 법장 스님은 바로 정토선을 보급하는 일에 나섰다. 먼저 그날 설법하실 때 관정 스님께서 직접하신 염불소리를 2가지 테이프로 제작하였다. 하나는 한번하고 쉬면서 따라할 수 있게 하였고, 또 하나는 염불 소리가 계속 이어지게 하였다. 또 「정토선 정의」 300부를 제작하여 비구니 선방 27개소와 승가대학, 거사림회, 사찰 등 10여 곳에 법보시하였고, 그때부터 미타사에서는 법당이나 방에 정토선 염불 테이프를 종일 틀어 놓고 대중들이 수시로 따라하게 되었다.
법장스님은 제주도에서 연평도까지 전국을 다니시면서 포교를 시작하셨다. 1986년 부산일보 강당 초청법문을 시작으로 육 . 해 . 공군 사관학교와 군법당, 거사림회, 승가대학과 120여 곳의 사찰을 다니시면서 법문을 하셨다. 대구 법왕사에서 백고좌가 열릴 때마다(1992~2005) 3년 정진기도 때를 제외하고는 빠지지 않고 가셔서 오로지 정토법을 설하셨다. 스님의 법문 가운데 아주 특이한 것은 신도들에게 정토와 인연을 맺어 주기 위해 법문 끝에 꼭 5분쯤 염불을 시키신다는 것이다. 특히 1997년 관정 스님으로부터 정토선 염불을 전수받은 뒤부터는 스님이 먼저 선창하시고 수강생들이 따라서 하는 정토선 염불을 시켰다. 다른 염불과 달리 정토선 염불은 앞에서 선창을 해주기 때문에 처음 하는 사람들도 쉽게 따라서 할 수 있고, 소리가 음악적이라 많은 사람이 합창 하면 매우 아름답고 웅장하여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게 된다.
이처럼 20년을 포교하시면서 법문을 청하는 곳은 어디든지 아무리 먼 곳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가셨으며, 또 일부러 불청우를 자청하여 청하지 않은 곳도 가서 법문을 해 주신 곳도 많다. 바로 「화엄경」에 “보살은 청하지 않아도 찾아가 벗이 되어 중생을 돕는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시면서 선근을 심어주시려는 자비심이었다. 2005년 이후부터는 연로하시고 몸이 많이 쇠약해 지셔서 외부 법문을 마감 하셨다. 우연이지만 관정 스님과 똑같이 같은 해에 그만 두신 것이다. 근년에는 경주 성불사에서 편안한 말년을 보내시고 계신다.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마지막 업을 다하시느라 대부분 옛일을 기억하지 못하시고 언어가 불통인 상황에서도 정토선 염불만은 놓지 않고 뜨문뜨문 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법장스님은 일찍부터 윤회하는 사바세계를 싫어하여 모든 수행을 위해 생기는 음식, 잠, 추위, 더위, 등의 고통은 당연한 듯 달게 받고 견디며 이겨내셨다. 하루 8시간을 한 결 같이 정진하시면서 또 법문이 있는 날이면 2시간 이상을 준비하였고 수만 명에게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도록 하여 보살도를 실천하려 하였다. 한사람의 내생을 잘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경전에서도 “내생에 너의 모습을 알고 싶으냐? 현생에 네가 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니라.” 하였듯이 법장스님은 반드시 ‘결정왕생 극락세계 발원’의 원력으로 생을 마치면 서방정토 극락세계 상품에 왕생하여 그토록 그리던 아미타불님을 친견하고 마정수기를 받고 보살이 되어 중생제도의 원력을 실현하실 것이라고 믿는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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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무량공덕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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