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립서경도서관(浦項市立曙耕圖書舘)
조유현
며칠 전 도서관을 방문하였다. 옛 시청사를 도서관으로 꾸며 개관하였다는 말은 들었지만 가보지 못했는데, 잠시 들릴 일이 생긴 것이었다. 그런데 문득 포항시립서경도서관이 생각이 나 소식을 알고자 전화번호부를 찾아보았다. 번호가 보이지 않았다. 포은도서관에 문의하였더니 폐관되었다고 한다. 개관일자 등을 물으니 1964년에 개관한 것 이외는 다른 자료는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고 약운 박일천 선생이 편찬한 포항지역 향토사 ‘일월향지(日月鄕誌)’를 찾아보았다.
“포항에 도서관 건립을 희구함은 30여 성상[…]”으로 시작되는 포항시립서경도서관을 소개한 글에 “[…] 건립을 목표로 서둘러보았으나 그 근원 출발점을 삼을 수 있는 재원이 없어 가망이 없더니 1962년 초 독지가 오실광이 자진하여 7,600 불을 쾌척 하므로[…]” 근원이 마련되었다. 미제44공병대에서 시멘트 1,900 포대, 포항시가 200만 원을 보태어 1963년 3월에 착공하였고, 그 해 8월 15일에 준공식을 거행하였으며, 도서관의 이름은 오실광이 재원을 쾌척한 당일에 그 당시 포항시장 김철순이 오실광의 호를 따 포항서경도서관(浦項曙耕圖書舘)이라 명명한 사실들을 알았다.
1960년대 우리는 지금 젊은이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가난했다. ‘보리고개’로 상징되는 극심한 가난으로 국민 대부분이 풀죽으로 겨우 연명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도서관을 세우려 했다니!
그 당시 우리나라에 도서관이 과연 몇 개나 있었을까? 인근 도시의 시립도서관 역사를 찾아보았다. 대구와 부산의 시립도서관은 일제 시대에 도청 등의 공간에 세워졌고, 그 후 대구는 1972년에 구 초등학교를 개축하여 독립하였고, 부산은 1963년 8월에 신축하였다. 경주시는 1953년에 읍립도서관을 개관하였으나 1976년에 중앙일보가 창립 11주년 기념사업으로 신축하여 기증하므로 독립 건물에 들어갈 수 있었다.
60년대 포항은 한산한 작은 어촌도시였다. 거기서 도서관을 건립한 것은 대단한 사건이요,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하여도 좋을 사업이다. 그런데 문화의 불모지라 말이 있었다. 그런 말이 어째서 나왔을까? 그것은 “갯가 사람은……” 하던 예전의 사고를 가진 사람들 중에 포항에 대해서 아주 무지하거나 성찰적인 사고가 부족하여 포항을 비하하고 싶어 그랬을 것 같다.
포항시립도서관 이름에 ‘서경’이라는 말을 살려둘 수 없었을까? 새 도서관을 포항시립포은도서관이라 하였는데, 정몽주 선생을 기리는 뜻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선생은 동방 18현 중의 한 분으로 조선 5백여 년 동안 선비들의 숭앙을 받아 전국 서원은 물론 종묘에도 배향되었고, 교과서에도 실려 국민들 중에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러나 선생은 영일 정 씨 이외에 이 지역을 위하여 특별히 한 일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의 출생지가 포항이라는 주장을 제기하더니 그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서경은 포항을 위하여 도서관만 세운 것이 아니다. POSCO가 포항에 건설된 데에도 건립추진위원장을 맡아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포항지역의 향토사의 기반이 된 ‘일월향지(日月鄕誌)’ 발간(포항 로타리가 주관하였음)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포항의 발전과 문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그를 우리는 잊었고, 홀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찬 후손이 없어서인가? 앞으로 포항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것이다.
기억해야 할 또 한 분의 미담이 생각난다. 포항고등학교 운동장을 기부했던 김춘생 씨이다. 이사하기 전 대신동의 학교부지로 당시의 시가는 ‘일월향지’에 “8천 불 상당”으로 기록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그 고마움을 학생들이 알고 계승하도록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아름답게 성장할 기부문화의 뿌리가 우리에게 있었다. 너무 오래 방치하여 자라지 못하고 고사 직전에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최근에 지방 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아 소개합니다.
첫댓글 전~~포항이 살수록 조금씩 더~~좋아지고 있어요.. 역시 엣말이 다 맞아요.. 정붙이고 살면 고향이고... 이젠 포항 자랑을 들으면 기분이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올라가고요.. 오늘,, 또기분이 마구 좋아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