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운사의 인생만유기]<36>주제가
| ||
'누가 이사람…' 들을 때마다 가슴 메여 | ||
|
“선생님, 저 며칠 전에 미국에서 돌아왔어요. 지금 KBS 보세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가 나가고 있어요. 소름이 쫙 끼쳐요. 보세요! 다 끝나면 전화 다시 걸게요.”
나는 KBS TV를 틀었다. 눈을 스르르 감고 부르고 있다. 내가 쓴 ‘남과 북’의 주제가다. 박춘석 작곡, 곽순옥 노래였다. 40년 전의 이야기다. 나도 들을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
남과 북 문제는 건드리지 말라고 엄한 정보부 눈초리가 쏘아보고 있었는데 나는 그때 무슨 용기로 그 벽을 뚫고 나갔을까. 사연도 많았다. 영화가 대히트를 쳤다. 1965년도 대종상, 청룡상을 휩쓸었다.
극동영화사의 차태진이 제작, 김기덕 감독. 주연은 신영균, 최무룡, 남궁원, 엄앵란. 어떤 애송이 영화평론가는 이것을 ‘러브 이즈 베스트’를 내세운 유치한 것이라고 혹평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한국 비극 묘사의 극치라고 칭찬을 해 주었다.
“다 들으셨어요?” 하고 또 전화다.
“감회가 어떠세요?”
“뭐 맨날 그렇지.”
“KBS 옥상에서 패티김이 부를 때 얼마나들 울었는지 아세요?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자기들 이야기라고 징징 울면서 다녔어요. 그때 이산가족들이 얼마나 많이 만났어요.”
두번째 영화는 정소영 제작, 김기남 감독이었던가. TBC TV가 최상현 연출로 연속방영, 한참 뒤엔 MBC TV가 고석만 연출로 제작 방영했다.
서울예전에선 뮤지컬로 예술의 전당에서 상연, 사람들은 ‘남과 북’ 비극의 고전이라고까지 평가해 주었다.
‘빨간 마후라’가 있다. 신상옥 감독의 영화인데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구름 따라 흐른다 나도 흐른다
아가씨야 내 마음 믿지 말아라, 번개처럼 지나가는 청춘이란다.’
이 노래는 황문평 작곡인데, 공군가가 되다시피 했다. 라디오, 드라마 때는 ‘강릉아가씨’로 갔고, 지금 강릉 공군기지엔 시비까지 세워져 있다.
국군의 날이나 무슨 큰 행사가 있을 때 공군 군악대가 이 곡을 연주하며 지나갈 때는 사람들이 우레같은 박수를 보내주었단다.
이 영화는 대만에서 사가서 동남아 일대에서 흥행에 대성공, 나중엔 일본에도 가서 호평을 받았단다. 그때까지 육사가 최고 인기였는데, 이 영화 이후 공군사관학교가 그 자리를 차지했단다. TV 같은 데 가족 단위로 나와서 부르는 노래가 되기도 했단다.
‘눈이 내리는데’라는 것이 있다. 1959년 KBS 라디오에서 나간 ‘어느 하늘 아래서’의 주제가다. 홍성기 감독이 원주 벌판에 가서 영화를 찍는데, 그의 아내인 김지미가 상대 주연 최무룡과 폴 인 러브, 빼앗기고 말았다는 작품이다.
겨울에 흰 눈발이 날리면 방송은 으레 이 곡을 내보냈다. 특히 여대생들간에 널리 애창되었다고 들었다. 이 작품은 나의 예과 때 동기동창 함흥근 교수를 모델로 한 것인데, 손석우씨 작곡이었다. 최양숙이 부르다가 나중엔 한명숙이 불렀다.
‘서울이여 안녕’이 있다. ‘동백아가씨’를 작곡한 백영호 작곡, 이미자 노래로 지금까지도 자주 불려진다. 한일간을 접근시켜 보려고 한 멜로물이라 일본에서도 알려진 노래라고 한다.
문리대 학생 유광현이 부른 ‘가슴을 펴라’가 있다. 술 한잔 마시고 길을 걸을 땐 나는 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버릇이 있다. 전문적인 작사가도 아닌데 내 드라마의 주제가는 내가 써 주었다.
사실은 내가 가장 보람을 느끼고 있는 노래는 박정희 시대의 ‘잘살아 보세’다. 한국의 운명 전체를 하나의 드라마로 보고, 그 시대에 호소한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다. 박정희라는 의지에 찬 사람을 주역으로 써먹었다는 자부심을 버릴 수가 없다.
아, 세월은 잘 간다. 잘도 간다.
출처: 세계일보(http://www.segye.com)
남과 북 (1965, 김기덕 감독, 신영균, 엄앵란, 남궁원, 황정순 주연)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 박춘석 작곡, 곽순옥 노래
‘서울이여 안녕’ - 백영호 작곡, 이미자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