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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회장을 맡으며
반갑습니다.
흘러간 물이 물레방아를 돌릴 수 있을까요?
친구에게 물었더니 요사이는 모다를 돌려서 흘러간 물을 위로 끌어올려서 다시 내려 보낸다 네요. 그리고 요사이 물레방아로 방아 찍는 데가 있냐. 정미소에서 다하지. 생각을 바꾸라고 하네요.
2010년 원기95년에서 2012년까지 3년간 신촌교당 교도회장을 맡았다가 그 짐을 벗고 유산회장이 맡아주고, 인산 회장이 뒤이어 맡아 잘 해주셔서 편하게 교당을 다닌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촌교당 회장 자리가 마음에 부담이 되는 자리지만 이를 극복하고 나면 많이 성장을 할 수 있는데 영산 회장이 중간에 그만 둔 것은 참 애석하기도 합니다. 어느 교당을 다니던 마음공부 잘 해서 진급하시길 바랍니다.
새로 오신 인산 교감님께서 교도회장도 없이 애쓰시는 모습을 뵐 때마다 송구스러웠고 내생에는 교무 안하고 교도회장이 되겠다고 하실 때는 부끄러웠습니다. 누가 회장을 자원해 주면 좋겠는데 전부 사양한다고 하고 내가 젊고 능력이 되면 나서겠는데 그렇지도 못해서 그대로 있었는데 교감님은 저보고 3년만 맡아달라고 하시니 계속 거절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맡기로 했지만 걱정이 됩니다.
자신의 이름이 운명을 예시하는 경우가 많다 하여 성명학으로 운명을 점치기도 합니다. 저의 속명은 김원배(金元培)인데 은행에서 논현동, 여의도지점장으로 근무할 때입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나를 소개할 때 돈의 원금을 배로 불려주는 지점장 김원배입니다 하면 그 후 내 이름을 잘 기억해주고 해서 많은 실적을 올리기도 하고 했습니다. 원불교 법명은 근배-->근직(勤直)으로, 법호도 직산이아니라 근산 으로 나와 이생에는 으뜸이 못되고 부지런히 닦고 가라는 뜻이니 무위도식하지 말고 다시 회장을 맡아 부지런히 수양과 덕을 쌓아라는 진리의 뜻 같습니다.
요사이 종교인구가 점점 줄고 있다합니다. 무종교인이 56%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때가 미래의 종교인 원불교는 기회가 아닌가 합니다. 기성종교는 비과학적이고, 기복적, 비현실적인 요소가 많아 사람들의 인지가 발달하면서 과학적이고, 사실적이며, 실용적인 종교를 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종사님은 우리나라가 도덕의 부모국이 된다고 하셨고, 대산종사님은 금강산에 종교연합 UR 본부가 들어서야한다고 하셨고 전산 종법사님은 원불교는 이제 어린이에 불과하니 성인이 되어 가면서 무한이 발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고 그 시운을 따라 우리 각자가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건산 종사님께서 교화를 막연하게 안 될 비전만 말로만 하지 말고 실천 가능한 대책을 짜보라고 자주 말씀하시는데 쉽지 않은 문제지만 저의 경험과 경전에서 지혜를 찾을 수밖에 없는데 이에 비추어 몇 가지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교도회장은 교당을 쾌적하고 편리하며 자주 오고 싶은 마음 도량으로 잘 유지 관리하고 대종사님의 경륜이신 제생의세를 실천하기 위해 교화가 활성화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정원장실 조예현 교무님이 청소년교화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도 청소년 교화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교화는 교화의 못자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가 시골에서 초등학교 5학년 때 혼자 부산으로 전학 가서 큰집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큰집은 사촌형이 외동이었기 때문에 형제같이 지냈습니다. 형은 공부를 잘 해서 부산중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저는 시골에서도 공부를 못했는데 부산에서는 꽁지라서 중학교에 들어갈 때가지 고향집에도 가지 않고 형 따라 열심히 공부하여 제일 좋은 부산중학교는 못가고 2번째인 개성중학교에 들어갔고 형은 부산고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매산님이 중학교 3년 선배입니다.
큰집의 옆집에 부산상고를 다니는 형 친구가 부산진 교당에 다녔는데 우리 사촌형을 교화해서 동네 형 친구들이 교당 학생회에 나가게 되었고 저도 형 따라서 부산중학교 다니는 친구와 나가게 되었고 친구가 부산중학교 다니는 친구 한명을 데리고 오고 내가 개성중학교 다니는 친구 한명 데리고 가서 4명이 같이 늘 붙어 다녔는데 4총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새벽 기도도 나가고 교당을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때가 원기 46년으로 정산종사님 열반하신 해였고, 입교증은 원기 47년에 받았습니다. 사촌 형은 학생회 회장도 하면서 100명이 넘는 회원이 나오도록 했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서울공대에 합격했고 저는 친구들과 같이 부산고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합격을 하니까 시골에서 야단이 났습니다. 시골에서 공부 못하던 애가 부산고등학교에 들어갔다고 하니 동네에서 너도나도 애들을 대도시 학교로 보냈는데 나중에 거의 건달들이 되어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저가 원불교에 나간 줄을 몰랐던 것이지요. 원불교 교당에서 착한 친구를 사귀고 좋은 훈시를 듣고 성장했기에 그것이 가능했다고 생각됩니다. 저야 별로 교단에 기여을 못했지만 학생회를 같이 했던 친구들은 사회와 교단에 큰 일을 많이 했습니다. 교당에 나오는 어린이 청소년들이 앞으로 교단에 어떤 큰 기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어린이 청소년 한사람 한사람을 귀하게 생각하고 이끌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후 서울에 와서 원남교당에서 청년회를, 결혼 후에는 인천교당, 부산 남천교당, 구미교당을 거쳐, 원기73년 1988년에 신촌교당에 와서 30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저 하나로 인해서 아내, 아들이 교도가 되고 며느리를 보고 손자가 나니 가족 9명이 교도로 불어났습니다. 아들 둘이 신촌교당 어린이, 학생회, 청년회, 연원회를 거쳐 일반법회에 나오지만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같은데 가랑비에 옷 젖듯 법에 스며들었는지 자력으로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큰아들 김태우의 경우를 보면 학생회 당시 교당에서는 학생이 별로 없어 사귄 친구가 없지만 교구 학생연합회 활동을 하면서 6명의 친구를 사귀어 사회에 나와서도 지금까지 같이 만나고 있는데 친구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해서 지금은 22명이 모인답니다. 6명이 22명의 교도로 불어난 것이지요. 미래를 길게 보고 어린이, 청소년 교화와 가족교화에 심혈을 기우려야 한다는 것이 저의 경험적 증거입니다. 어린이 청소년 교화를 담당하는 최교무님을 많이 도와 드려야할 것 같습니다.
가족 모두와 함께 법회에 나오는 정형륜 교도님은 처녀시절부터 저와 수요공부방에서 같이 공부하고 했는데 병원 일을 마치고 피곤할 텐데도 공부하러 오는 신심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결혼 후 지금 어머니, 남편 윤지웅님, 아들 둘 온가족 5명이 출석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정형륜 교도 한사람이 5명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신앙에 젖어들고 훌륭한 인성을 가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들 성원이 성은이가 태성이, 진욱이, 진원이, 은조와 어린이, 학생회로 원불교 울타리에 있다면 앞으로 살아가는데 좋은 친구 또는 선후배가 될 것입니다.
남을 권유하는 것보다 가족교화가 더 쉽지 않을까요. 제 친구들 중에 어머니가 대호법인데도 친구가 교당에 나오지 않으니 돌아가시고 나면 인연이 끓어 지는 것을 봅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좋은 법이라고 생각하고 이대로 믿고 수행하면 행복하고 훌륭한 인격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가장 사랑하는 가족부터 교화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가족과 같이 하는 즐거운 법회 문화를 만들어 가도록 지혜를 모아 보겠습니다.
다음으로 일반교화는 대종사님이 일러주신 교화단 교화로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화단 7단은 단장이 상타원 배연정님이고 중앙이 김장은님이지요. 이 단은 가장 출석률이 좋고 공부도 열심히 합니다. 단장 중앙이 솔선수범하여 4종의무인 조석심고, 법회출석, 연원교화, 보은헌공을 실천하고 단원들에게도 이를 실천하도록 관심과 사랑과 감사를 다하는 것이 비결이 아닌가합니다. 상타원님은 매일 5시에 일어나서 기도를 하시고, 매년 법회 개근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 단원들이 이를 따르고 배우는 것 같습니다. 딴 단도 7단을 벤치마킹해서 열심히 한다면 법회 출석율이 올라 갈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정산 종사님께서 단이란 뭉쳐서 하나가된다는 말이니 단원들은 낱 없는 마음, 사 없는 마음으로 주인이 되라 하셨습니다. 다 같이 주인 역활을 하며 노력한다면 교화단이 활성화될 것입니다. 또 2단에 매산님과 4단에 서태영 청운회장이 신입교도를 잘 모시고 오는데 그 노하우를 다 같이 공유해서 교화 활성화를 기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신촌 교당은 희망이 있는 교당입니다. 젊음이 넘치는 대학가에 위치하고 있고, 법당 건물이 전국 어느 교당보다 안락하고 쾌적하며, 열정적으로 교화하시는 교감님과 교무님이 계시고, 언제든 자문 받을 수 있는 인자한 건산 종사님과 원로 교도님들이 계시고, 신심이 지극한 단장, 중앙, 단원님들로 구성되어 있어 조금만 합심하면 새롭게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것을 확신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청소년 교화로 교당의 미래를 열어가고, 가족교화로 훈훈하고 즐거운 법회 문화를 만들어 가며, 교화단 교화로 서로 만나고 오고 싶은 교당으로 만들어 가는데 임원들과 합심하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전 교도님들께서 협조와 독려로 흘러간 물을 끌어올리는 성능 좋은 모다가 되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50세부터 좋아하는 시가 있는데 퇴직 후에는 잊고 살았는데 다시 찾아서 되새겨 봤습니다. 이 시는 미국 시인 사무엘 울만이 쓴 시입니다. 사무엘 울만은 1924년 84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78세에 쓴 시입니다. 이 시가 알려지기시작한 것은 70세가 넘은 맥아드 장군이 2차대전 후 일본 점령군 사령관을 하고 있을 때 책상 앞에 적어놓고 매일 암송했다고 합니다. 기자가 이를 보고 기사화하여 그때부터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다 알고 계시는 시입니다.
청춘 (靑春)
사무엘 울만(1840~1924)
청춘은 인생의 나이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장밋빛 뺨, 붉은 입술, 하늘거리는 자태가 아니라,
강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말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물에서 솟아나오는 신선한 정신, 유약함을 물리 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이십의 청년보다 70이 된 사람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우리가 늙는 것이 아니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세월은 우리에게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는 하지 못한다.
............(중간 생략)
머리를 드높여 희망이란 파도를 탈 수 있는 한 그대는 팔십 세 일지라도
영원한 청춘의 소유자이다.
건산 종사님은 아직도 현역이시니 80대 청춘이시고 저는 회장하는 3년 동안 70대 청춘입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70대 청춘 근산 김근직 신촌교당 회장님
교화에 대한 절절함과 희망어린 긍정 마인드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