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찾아온 장마는 연일 불쾌지수를 끌어 올린다.
대간이 끝난지 1년. 동강난 국토의 허리춤에서 북녘땅 바라보며
그리움 곰삭이든, 그 날
백두의 그리움이 현실로 다가섰지만, 내가 빠진 슬럼프는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이다.
무박의 산행길에도, 맘 설레고 잠설치며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 고쳐보곤 했었는데,
덧없는 허탈함.
산행을 나서든 모습으로 집을 나선다.
보조가방과 카메라, 그리고 늘 메고 나서든 배낭. 꽤재재한 얼굴에 푹 눌러 쓴 모자.
질찔거리는 장마비가 구질스런 내 모습에 소품처럼, 함께 덧 붙는다.
이른8시 약속의 장소,
평소 산행에서 낯이 익은 옆지기의 직장동료들 그리고 그들의 짝지.
미소와, 눈마춤으로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잡는다.
가녀리게 뿌려지는 빗줄기, 조심스레이 미끄러지는 버스.
중년의 여인네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탈이지만,
정작 현실로 다가선 상황은 꿈만이 아니다.
떨쳐버린 것들에 대한 불안과 그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집착.
이 땅을 벗어나면,
내 무거운 가슴의 짐덩이도 훌훌 떨처 버리고 자유로와 질 수 있을까?
12시 20분 김해공항, 북경발 .
커다란 동체가 활주로를 벗어난다.
힘차게 치솟는 거대한 물체, 타원형의 작은 창으로 가녀린 빗방울이
작별의 인사를 하고, 두터운 대기층을 통과한 기체는 평화로운 날개 짓을 한다.
순백의 구름과 푸른하늘.
하얗게 일렁이는 작은 포말, 점점이 흩어진 자유와 평화. 꿈같은 세계.
이제 나는 4박5일의 여정으로 몰입되나 보다.
14시00
짧은 꿈길을 헤매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기체는 광활한 대륙의 하늘을 날고 있다. 희뿌연 가스 속에서 살째기 얼굴을 내미는 커다란 땅덩이.
국내선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든 아기자기한 우리의 산하가 그리움으로 다가선다.
30여분, 아무리 시선을 돌려 기웃거려도, 광활한 대륙은 거침없는 벌판 뿐,
산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한 반도를 희뿌연 황사로 매스껍게 하든,
그 황토의 땅이 이 곳이란 말인가?
45분 공항을 착륙한 비행기는 15분이 지나도 기내의 승객들을 내려주지 않는다.
지루하고 답답한 예감이 가슴을 짓누른다.
15시 30분,
긴 기다림 끝에 입국수속을 마치고, 17시 35분발
연길 행 비행기를 타기위해 발길을 옮긴다.
시간은 느긋하지만, 미리 준비하고 기다림이 편안함이기에.
국내선 청사도 많은 사람들로 빼곡하다.
엉덩이 하나 제대로 붙일 자리조차도 쟁탈이다.
지루하고 답답한 기다림의 시간,
우리가 기다리는 43GATE의 전광판은 탑승시간이 가까웠는데도 캄캄하다.
왜 이럴까? 다리가 무거워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청사구석에 퍼질고 앉는다,
북경가이드는 돌아가고, 연이어 방송되는 중국말은 도무지 한마디도 알 아 들을 수 가 없다.
청사 밖엔 정신없이 돌풍이 휘 몰아치고, 구슬만한 우박이 쏟아진다.
정신없는 회오리.
줄줄이 연착되는 국내선,
늦은 8시 20분(현지) 항공사측에서 제공된 도시락 하나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기약 없는 긴 기다림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배낭을 기대고 생거지 꼴로 웅크리고
눈을 붙이며 뒤척인지 . 8시간
23시 20분,
전광판에 불이 불어오고, 우리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연길 행 비행기에 오른다.
안도감, 무박의 산행이 희망으로 다가선다.
칠흑의 어둠을 뚫고 덜컹거리는 기체는 어제와 오늘을 가로질러
01시 20분 연길 땅에 닿는다.
공항청사를 나가자 첫 눈에 들어오는 한글 간판.
우리말의 젊은 가이드 둘. 일행 중 한 사람이 배낭을 잃어버려 언짢았지만,
무박의 여정이 차질 없음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이도백하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담고 또 5시간의 긴 여정으로 빠져든다.
04시 30분.
빗속을 뚫고 어둠을 뚫고, 우리가 멈춰 선 곳은
연길 땅 장백산 휴게소.
비에 걸러진 새벽공기가 상큼하고 우리의 시골에서 듣든 수탉의 울음이
한적한 시골의 아침을 연다.
기지개 켜며 맨 먼저 다가서는 화장실,
모두들 놀라 되돌아 나왔다가 다시 들어간다.
언젠가 들은 적 있었지만, 직접 보게 되는 화장실은 놀라움이다.
박장대소하며, 이쪽저쪽 화장실을 기웃거리며 볼일을 보고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사람들의 손길이 닳지 않은 자연의 원시림, 간간이 풀을 뜯는 황소,
연기가 모락모락 오르는 시골의 농가,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간간이 일궈진 구릉밭.
그러고 보니 우리가 달려가는 이 포장길은 사치가 아닌지?
05시30분
우리의 버스는 도심을 약간 벗어난 식당 앞에서 우리들을 하차시킨다.
“고려식당”
중국 땅에서의 첫 날밤은 하늘과 땅으로 이어진 rode hotel에서 보내고
어설픈 기대감으로 대륙의 만찬을 기다린다.
6인용 식탁 같은데, 원탁의 탁자에 촘촘이 10명. 이렇게 앉으라는 이윤뭔지?
석연찮을것 같은 밥상이 의외로 먹을만 하다.
입안이 까칠했었지만, 제법 촉촉하고 보드랍게 속을 채우고
간단히 산행준비를 한 뒤 도시락 하 나씩을 챙겨 차를 탄다.
07:00 장백산 매표소 입구.
잠시 차에서 내려 인원점검을 하고 다시 차에 오른다. 웬수같은 비.
지난밤의 고생을 오늘은 햇살로 돌려줘도 좋으련만. 하늘은 무심타.
대간 길 장대비속에 질척거렸든 열 두 세 시간의 긴 악몽을 생각하며,
바람 없는 이슬비쯤이야 손님 맞는 반가움의 인사로 여겨야지.
08시30분
천지 매표소를 지나 산행을 시작한다. 양 옆으론 운무에 쌓인 산 봉우리.
앞으론 가녀리고 뽀얀 물줄기. 느낌으로 전해지는 장백폭포.
급히 발걸음을 쫒는다.
온천지대임이 몸으로 느껴지는 곳, 땅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
관광객들의 구미를 돋구는 계란,
하나 먹어 보고픈 마음이 입 안에 군침을 돌게 하지만, 급한 마음은 갈 길을 재촉한다.
오른쪽으로 짧은 철다리를 건너 몇 발자국 산길을 지나니,
커다란 장백의 위용이 눈앞에 버틴다. 곳곳에서 셧터를 누르는 사람들, 찍고 또 찍고,
빨리 서둘러야 한다는 가이드의 다그침에 가픈 숨을 몰아쉬며
콩크리트 계단을 올라 달문으로 향한다.
비좁은 계단 컴컴한 동굴 속, 꽉 찬 인파, 빗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몸둥이.
09시30분.
장백의 긴 터널을 30여분 올랐을까? 천지로 향하는 길목, 달문이다.
간간이 이슬비가 부려지지만, 시계는 밝다.
천지를 흘러나와, 달문을 거쳐 장백의 높은 폭포를 타고 송화강으로 흘러드는 물길.
푸르고 밝은 소리로 까맣게 멍든 돌들을 어루만지며 흐르는
물소리는 지리의 물길만큼 큰 사랑으로 나를 부른다.
우리를 에워 싼 거대한 용암들의 봉우리,
눈 아래 펼쳐지는 야생화의 평원,
우리는 천상의 선녀와 나뭇꾼.
설레임과 흥분으로 맘조이며
천지입구로 발길을 옮기려는 순간, 나의 눈길을 멈추게 하는 것이 있다.
천지지킴이 누런 똥개 한 마리.
가까이 다가서는 나를 보며 어쩔 줄 몰라 동당거린다.
봄비 내리든 지난 3월, 우리 곁을 떠나간 사랑했든 나의 충견 봄,
아직도 내 맘 한구석을 서성이는 그 녀석을 생각하며 살포시 셔터를 누른다.
언제나 못다한 목마름은 이렇게 징한 아픔으로 가슴을 절이고......
첫댓글 음음 누렁이 저거, 쩝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