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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사진/음악 스크랩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外 9곡 / Simon & Garfunkel
tatata100 추천 0 조회 121 08.06.17 20:1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Simon & Garfunkel - Greatest Hits



    Bridge Over Troubled Water Mrs. Robinson The Boxer The Sound of Silence Scarborough Fair / Canticle El Condor Pasa (If I Could) For Emily Whenever I May Find Her The 59th Street Bridge Song (Feelin Groovy) I Am a Rock Homeward Bound * 클릭 ▶ 미디어로 연속듣기 * 080315씽크뱅크
    Bridge over troubled water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When you're weary (당신의 심신이 피로하고)
    feeling small (작게만 느껴져서)
    when tears are in your eyes (눈에 눈물이 고이면)
    I'll dry them all (내가 닦아 줄께요)
    I'm on your side (난 당신 편이에요)
    oh when times get rough (힘든 시기가 닥쳤올 때)
    And friend just can't be found (주위에 친구를 찾을 수 없을 때)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I'll lay me down. (내 몸을 뉘여드릴께요)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I'll lay me down. (내 몸을 뉘여드릴께요)

    When you're down and out (당신이 무일푼이 되어)
    when you're on the street (거리로 나앉게 되어)
    when evening falls so hard (견디기 어려운 밤이 찾아오면)
    I will comfort you (제가 당신을 위로해 드리고)
    I'll take your part (당신 편에 서드릴께요)
    oh when darkness comes (어둠이 몰려와)
    And pain is all around (주위에 온통 고통으로 가득찰 때)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I'll lay me down. (내 몸을 뉘여드릴께요)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I'll lay me down. (내 몸을 뉘여드릴께요)

    Sail on silver girl, (항해를 멈추지 말아요, 소중한 그대.)
    sail on by (계속 나아가세요)
    your time has come to shine (당신에게도 환하게 빛날 때가 찾아올 거에요)
    All your dreams are on their way (당신의 모든 꿈들이 지금 다가 오고 있다구요)
    See how they shine (그 꿈들이 빛나는 모습을 보세요)
    oh if you need a friend (만약 동행이 필요하면)
    I'm sailing right behind (내가 당신 바로 뒤에서 따라갈거에요)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I'll ease your mind. (당신의 마음을 편히 해드릴께요)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I'll ease your mind. (당신의 마음을 편히 해드릴께요)



1941년 10월 13일 뉴저지 주 뉴워크(Newark)에서 태어난 폴 프레데릭 사이먼(Paul Frederick Simon)과, 그보다 23일 늦게 뉴욕에서 태어난 아서 가펑클(Arthur Garfunkel)은 어릴 때부터 뉴욕의 포레스트 힐즈(Forest Hills)라는 동네에서 자라난 동년배의 친구였다. 포레스트 힐즈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듀오를 결성한 이 두 친구는 당시 유행하던 로큰롤과 두웝(Doo- wop; ’40년대에서 ’60년대 초에 걸쳐 유행한 장르로, 보컬 그룹들이 곡의 중간에서 악기 대신 입으로 부르던 소리. 뉴욕의 흑인 빈민 거주지역에서 등장하여 발전했음.) 히트곡들을 즐겨 불렀다. 1955년부터 함께 곡을 쓰기 시작하여 어느 정도의 자신이 생기자 1957년, [빅 레코드(Big Records)]를 통해 톰 앤 제리(Tom And Jerry)라는 이름으로 첫 싱글 Hey schoolgirl 을 발표한다. 에벌리 브라더스 스타일의 로큰롤인 이 곡은 이듬해에 미국 차트 49위에 올랐고 12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는 등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듀오는 지속되지 못했고 이들은 곧 해산한다. 콜럼비아 대학에 입학한 아트는 수학과 건축을 전공했으며 폴은 퀸스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지만 역시 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음악이었다. 가끔씩 연주를 하며 곡 쓰기에 열중했던 폴은 제리 랜디스(Jerry Landis)라는 이름으로 몇 장의 싱글을 발표했고, 아트는 아티 가(Artie Garr)라는 이름으로 싱글을 발표했다. '60년대 초반, 폴이 음악출판사에 팔았던 많은 곡들 중의 하나가 <콜럼비아 레코드(Columbia Records)>사의 프로듀서인 톰 윌슨(Tom Wilson)의 관심을 끌게 된다. 결국 새로이 팀을 이룬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은 콜럼비아 레코드와 계약을 이룬다. 당시 유행하던 포크 음악에 빠져 있던 이들의 데뷔 앨범 WEDNESDAY MORNING, 3 A.M.은 1964년 10월에 발매되었다.



앨범 발매 후 곧 폴은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에서 포크 순회 공연을 시작했으며, 영국 를 통해 발매된 솔로 앨범 THE PAUL SIMON SONGBOOK을 녹음한다. 하지만 이들의 이러한 위기는 프로 듀서인 톰 윌슨의 작은 아이디어로 인해 완벽한 반전을 이루게 된다. 폴이 영국에 가 있는 동안 그는 데뷔작의 The sound of silence를 새롭게 꾸밀 계획을 세운 것이다. 톰은 밥 딜런의 초기작들을 프로듀스 했으며 딜런이 BRINGING IT ALL BACK HOME ('65)으로 포크 록의 탄생을 이루는 데에도 자그마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그는 어쿠스틱 기타로만 이루어진 The sound of silence에 일렉트릭 기타와 베이스, 드럼 사운드를 입혔다. 그리고 얼마 후, 영국에 있던 폴은 완벽한 포크 록으로 탈바꿈한 이 싱글이 미국 차트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다. 폴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고 아트 가펑클과 다시 합쳤다. 폴 사이먼은 다작(多作)하는 작곡가가 아니었다. 이들의 첫 세 앨범들에 수록된 곡들은 모두 '62년에서 '65년 사이에 작곡된 작품 들이었고, 그에게는 새로운 앨범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67년에 그들은 At the zoo와 Fakin' it 단 두 장의 싱글만을 발표했을 뿐이다. 그 해 3월에는 런던의 로열 알버트 홀 (Royal Albert Hall)에서 공연을 가졌으며 여름에 개최된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Monterey International Pop Festival)에 참여한다. 이들이 마이크 니콜스(Mike Nichols) 감독의 영화 [졸업(The Graduate)]의 사운드트랙을 위해 녹음한 Mrs. Robinson은 최고의 히트를 기록한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작품 네 곡과 재즈 뮤지션 데이브 그루신(David Grusin)의 곡들이 수록된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68년 차트 1위를 기록했으며, '69년 3월에 있었던 11회 그래미 어워드 (Grammy Awards)에서 ‘최고의 영화음악(Best Original Score)’을 수상했다. 이들의 히트 싱글들과 새로운 곡들을 포함한 네 번째 앨범 BOOKENDS이 발표된 것은 '68년 4월의 일이다.



최상의 음악 동료로서 10년 이상을 함께 한 폴과 아트의 파트너십은 점차 약해져 갔다. 폴은 어슷비슷한 스타일의 지루한 반복에 한계를 느끼게 되었고, ‘목소리’를 제외한 곡 쓰기의 재능이 없는 아트는 폴의 그늘에 가리우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68년에 로열 알버트 홀과 헐리우드 보울(Hollywood Bowl)에서 가진 콘서트 이후 이 둘의 공연 모습은 거의 볼 수 없게 되었으며, 아트는 마이크 니콜스의 영화 의 출연을 시작으로 배우의 영역에 들어섰다. 하지만 '69년에 유일하게 발표된 싱글 The boxer는 차트 7위에 올랐고, 이듬해에는 이들 최고의 성공작이자 팝의 역사에 길이 남을 명반 BRIDGE OVER TROUBLED WATER가 발표된다. 마지막 앨범의 발표 이후 이들은 정식으로 그룹을 해체한다. 둘은 본격적인 솔로로서의 활동을 시작 했다. 물론 폴의 탁월한 재능과 실험성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두 재능이 결합이 이룬 것만큼의 대중적 사랑은 받을 수 없었다. 이들은 '72년에 대통령 후보인 조지 맥거번(George McGovern)을 위한 자선 콘서트에 모습을 드러냈고, '75년에는 폴이 아트를 위해 쓰고 함께 녹음한 싱글 My little town이 큰 히트를 기록했다. 이후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1981년 9월 19일, 뉴욕의 센트럴 파크(Central Park)에서 있었던 무료 콘서트이다. 약 50만 명의 관중이 모인 가운데 사이먼 앤 가펑클이 들려주는 옛 곡들은 그야말로 큰 감동을 주었고, 이듬해에 두 장으로 발매된 앨범 THE CONCERT IN CENTRAL PARK는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1990 년에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이름이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에 헌정 되었지만 팬들이 바라던 재결합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은 활발 하지는 않지만 아직까지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이름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생생히 남아 있음은 물론, 지속적으로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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