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와 이슬람국가는 막상막하로 못산다.
이슬람국가는 지역적, 민족적 감정을 뛰어넘어 이슬람교를 믿는 국가를 일컫는 개념이다. 즉 이슬람교가 대종을 이루는 국가로서 아랍국가 이외에 이란, 터키,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국가들과 아프리카 서부의 나이지리아, 감비아, 기니, 기니비사우, 니제르, 말디브, 말리, 모잠비크, 브루네이, 세네갈, 시에라리온, 알바니아, 에티오피아 등과 아프리카 중북부의 차드, 아프리카 동남쪽의 코모로, 탄자니아 등이 있다. 또한 중앙아시아의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도 이슬람국가에 포함된다.
▣불교는 왜 거짓종교(미신종교)인가?
1. 부처님은 신의 존재나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부정한 무신론주의 자였기때문입니다.
2. 부처님은 비유가아닌 방편으로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3. 불교의 극락설은 사후의 세계가 아니라 지상에서 80 ~ 90년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4. 불교의 윤회설, 극락설, 전생설, 환생설은 사실이 아니라 이솝우화처럼 꾸며놓은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5. 불교의 무신론사상이 범신론사상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6. 불교는 신앙을 하는 종교가 아니라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수행의 도장(집)이기 때문입니다.
관상, 사주, 궁합 믿을 수 있는가?
앞으로 닥칠 미래 약 20% ~ 30%맞춘다. 이것은 소가 뒷걸음(우연의 일치)치다가 쥐를 잡은 격이다. 맞추면 도사 못맞추면 그만이다. 경험으로, 눈치로, 속임수로 지나간 과거를 약 50%정도 맞춘다.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점을 보지 않으가? 이러한데 지나간 과거를 100%로 맞춘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젠 그만 속고 그만 속여라. 무당, 점쟁이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편이 죽는다, 사고가 나서 망한다. 전생의 업 때문에, 육살이 끼어서, 액운을 타고나서, 귀신이 붙어서 등을 이용 상습적으로 혹세무민 하고 있다. 밝고 건전한 사회에 불신감을 확산 시킨 사회 악이 바로 혹세무민 (사회악:상습사기, 성폭행 등)입니다.
위 내용은 이판사판의 책의 내용을 간단히 기록해 놓은 것이므로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시면 02ㅡ739ㅡ1773 016ㅡ218ㅡ1773으로 연락하셔서 주소를 말씀해 주시면 이 책을 무료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이판사판 책 편집인 : 전 동두천 성불암 건립 및 주지승
▣ 불교사상으로 약해진 베트남의 멸망
불교가 처음으로 베트남에 소개된 것은 기원전 4세기 이다. 불교가 최고의 중흥을 맞은 시기는 11세기의 리왕조 시대이다. 이 시기의 불교는 국가를 지배하는 공식적인 종교였다. 이때문에 불교는 국민들 사이에 널리 전파가 되었고, 사람들의 생활에 심오한 영향을 끼쳤다. 그 당시 불교의 영향은 다양한 지역에서 전통 문학과 건축물등에서 알 수 있다. 많은 절과 탑이 세워진 시기도 바로 이 시기이다
최근, 베트남 인구의 50%이상이 불교를 믿고 있고, 인구의 70%이상이 불교신자거나 불교적 관습을 따르고 있다.
▣왜 성철스님은 천추의 한을 안고 떠났나? ▣
류범상 지음 삶과 꿈 (4500)
초인적인 극기 수행과 용맹정진을 통해서 큰 깨달음을 얻어 성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성철 스님, 그러나 그는 마지막에 "한평생 남녀무리를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속인 죄가 너무 커 지옥에 떨어진다" 고 회한으로 몸부림치며 천추의 한을 토로했다. 과연 그가 도달한 깨달음의 실체는 무엇인가?)
성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성철스님
성철스님은 일찍이 불교가 최상의 진리라고 믿고 큰 깨달음을 얻어 해탈성불(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부처가 됨)하고자 1934년 23세 때에 부모, 형제, 처자 다 버리고 출가, 입산하여 1993년 81세로 타계하기까지 오직 참선과 학문으로 일관한 최고의 선승이요, 학승이다 그는 한때 8년간을 드러눕지 않고 장좌불와의 초인적인 극기수행을 하기도 하고, 또 한때는 10년간을 사람의 근접을 막기 위해 임자 주위에 철망을 쳐놓고 오직 홀로 용맹정진을 하기도 했다. 이는 참으로 세계 불교사에서도 보기 힘든,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극기수행과 용맹정진이다. 그리하여 그는 큰 깨우침을 얻어 견성성불(자기 본성을 깨달으면 부처가 됨)의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8백년간이나 이어져 오는 조계종의 선법의 법통인 "깨우침은 점진적으로 된다." 는 『돈오점수론』을 비판하고 "깨우침은 단번에 된다."고 『돈오돈수론』을 주장했다. 이는 그의 깨달음의 경지가 과연 어떤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성철스님은 불교사상 보기 힘든 학승중의 학승이다. 그는 불교의 교의학을 거의 통달하였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현대학문인 서양철학이나 심리학이나 종교학이나 문리학 등도 널리 섭렵하였으며, 또한 영어, 독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도 효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참으로 성철스님은 불교사에 보기 힘든 최고의 선승이요, 학승이다. 그러므로 성철스님은 한국불교계의 큰 보배요, 위대한 지도자이다. 그래서 그는 온 불자들의 존경과 선망을 한몸에 받았었다. 그러므로 지금도 불자들은 그를 "우리 곁에 왔던 부처" 라고 추앙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성철스님은 말년에 와서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내심 말못하는 갈등으로 괴로워하며 방황하다가 결국은 마지막에 회한으로 몸부림치며 천추의 한을 안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면 그가 말년에 무엇을 깨달았는지 , 왜 천추의 한을 안고 세상을 떠났는지, 그의 말을 들어 보자.
☞ 퇴옹당 성철 큰 스님 ☜
http://www.hallym.ac.kr/~sdjeong/성철.html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①. "내 말에 속지 마라" (성철스님의 말)
- 1993년 11월 4일 처음 출가한 그방 퇴설당에서 열반에 들다
그러나 큰 스님은 삼십 년 남짓 한결같이 다니던 가야산 포행길을 언제부터인지 힘겨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야산 호랑이도 한 자락 가사 밑에 어느덧 80대의 노구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스님, 한 말씀만 여쭈겠습니다." "뭐를?" "일천삼백만 불자가 있는데 그 불자들에게 한 말씀만." "한 말씀만?" "내말에 속지 마라." "자신의 말에 속지 마라." "내 말 . . . . ? " "내 말 말이여. 내 말한테 속지 말어. 나는 늘 거짓말만 하니까."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내 말에 속지 마라, 그 말이여." 1993년 9월에 당신의 저서인 '성철스님 법어집'11권과 선종의 종지를 담은 '선림고경총서' 37권이 완간되는 것을 보고나서 두 달만인 그 해 11월 4일 아침에 성철 큰 스님은 열반하였습니다. "내말에 속지마라" 는 말을 던져주고는 영영 우리 곁을 떠난 것입니다. 그날 새벽, 해인사 퇴설당에서 제자들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큰 스님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참선 잘하라 !" 그 한 말씀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제자 어깨에 몸을 기대었습니다. 처음 출가한 그 방에서 마지막 열반에 드니, 행운유수行雲遊水의 사문의 길에서 보기 드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법랍 59년, 세수 82세로 큰 스님은 열반 게송을 남기고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 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 지라 둥근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마침내 생사를 벗어나 적멸에 든 큰 스님은 입적한 지 이레째 날 평생을 주석한 해인사 퇴설당을 떠나서 일주문 밖에 마련된 연화대로 향하였습니다. 그날, 퇴설당 위로는 일시에 새떼가 날고, 다비장에서는 때늦은 낙엽들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스님 떠나던 그 날도 그러더니, 백련암 뒷산 하늘에서는 마치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환한 빛이 피어올랐습니다. 이는 드물게 보는 방광이었습니다. 그리고 서른 시간이 넘게 걸린 다비는 일백여 과에 이르는 영롱한 사리를 남겼습니다. 다비식에서 사십구재에 이르는 동안 큰 스님의 떠남을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뭇 대중의 발길은 해인사 앞뜰을 가득 메우며 끊일 줄 몰랐습니다.
②사탄이여 ! 어서오십시요. (성철스님의 글)
물속에서 물을 찾는다. 사탄이여 ! 어서오십시요.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 당신은 본래로 거룩한 부처님입니다. 사탄과 부처란 허망한 거짓 이름일 뿐 본모습은 추호도 다름이 없읍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미워하고 싫어하지만은 그것은 당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부처인줄 알 때에 착한생각 악한생각, 미운마음, 고운마음 모두 사라지고 거룩한 부처의 모습만 뚜렷이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악마와 성인을 다같이 부처로 스승으로 부처로 부모로 섬기게 됩니다. 여기에서는 모든 대립과 갈등은 다 없어지고 이 세계는 본래로 가장 안락하고 행복한 세계임을 알게됩니다. 일체의 불행과 불안은 본래 없으니 오로지 우리의 생각에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나아갈 가장 근본적인 길은 거룩한 부처인 당신의 본 모습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당신을 부처로 바로 볼때에 온 세계는 본래 부처로 충만해 있음을 알게됩니다. 더러운 뻘밭 속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가득피어 있으니 참으로 장관입니다. 아 ! 이 얼마나 거룩한 진리입니까 . 이 진리를 두고 어디에서 따로 진리를 구하겠습니까. 이 밖에서 진리를 찾으면 물속에서 불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을 부처로 바로볼때 인생의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됩니다. 선과 악으로 모든 것을 상대할 때 거기에서 지옥이 불타게 됩니다. 선.악의 대립이 사라지고 선.악이 융화상통할 때에 시방세계에 가득히 피어있는 연꽃을 바라보게 됩니다. 연꽃 마다 부처요 극락세계 아님이 없으니 이는 사탄의 거룩한 본 모습을 바로 볼 때입니다.
1987. 사월초파일
* 위 글에 당황한 불교측에서는 사탄이 아닌 적불을 성철이 잘못 말했다고 둘러대기 바쁘다. 사탄이 아닌 적불이었다면 왜 굳이 '적불'이라는 단어를 피하고 그 박식하신 분이 '사탄'이라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단어를 반복해서 썼겠는가? 악마라는 말도 나오는데 악마도 적불인가?
불교 신도 "성철스님 가장 존경"
[연예오락, 주요뉴스, 사회] 2001.01.04 (목) 19:06
한국 불교계에 뚜렷한 지도자가 없는 가운데 8년 전 열반한 성철 스님(사진)이 '가장 존경하는 스님' 으로 뽑혔다(10.2%). 다음은 백양사 방장인 서옹 스님(6.0%), 통일신라시대 원효(4.3%), 실상사 주지 도법 스님(4.3%)의 순이다.
▣ 주요 불교 국가는 주로 후진국이 많음 태국(95%), 미얀마(90%), 캄보디아(90%), 스리랑카(70%), 부탄(75%), 라오스(90%) 그밖에 일본(30%), 대만(70%), 중국(?) 등에도 불교 신자가 많음.
하여간 죽치고 앉아 국민 총생산을 떨어뜨리는 불교
출가 수행자는 모든 생산활동에 종사할 수 없다. 이것은 불교의 전 역사를 통하여(약간의 예외를 제외하고)실행되어 왔다. 교단이 스스로 영리활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생산활동은 금지되었다. 수행자의 일은 목탁 두드리기, 염불외기, 그리고 구걸입니다.
'불교에서 본 경제사상' 도서출판 여래, P54.
인도불교는 한국에 맞지 않는 종교(인도와 한국은 다르다)
철학은 부유한 국가에서 많이 발전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현재 출가보다는 생산성 향상에 힘을 써야 할 때다. 그러므로 불교는 인도의 먹을것이 많던 당시 상황에나 적합하지 먹고살기 바쁜 한국에는 독극물이 된다.
당시의 중인도는 식료(食料:먹을것)가 풍부했기 때문에 수 많은 유민과 출가자를 부양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종교에 뜻을 둔 사람은 집을 버리고 출가해서 보시(구걸)에 의해서 생활하면서 진리의 탐구에 부심했던 것이다. 더우기 식량이 풍부해져 생활이 안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락시설이 거의 없었던 고대에 있어서는 생명력 넘치는 젊은이들의 생활 속에서 더할 수 없는 불안과 권태가 싹트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현실을 도피하여 피안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풍조가 유행하게 되고, 양가의 자녀들이 앞을 다투어 출가하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인용:'인도불교의 역사 상',히라가와 아끼라 씀(동경대학교수), 출판사 : 민족사]
불교는 왜 생산에 관한 윤리를 그다지 설하고 있지 아니하는 것일까? 그것은 결코 인도 경제의 풍토적 성격으로부터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인도에서는 이런 풍토적인 면 때문에 의식주에 관해서는 그다지 마음을 쓰지 않고도 지낼 수 있었다. 인도인은 거의 의류를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또한 주거에 관해서도 대부분 조그만 가옥에서 지내고 있었다. 식량 생산에 인위적인 노력을 그렇게 필요로 하지 않는다. 벼를 일년에 두번 수확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인 메가스데네스에게는 경이적인 사실이었다. 이와같은 사회에서는 만들다는 도덕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종교와 사회윤리, 중촌원 박사, 1960, P 106 불교에서 본 경제사상, 미야사까 유쇼, 도서출판 여래, P 62
90%의 불교인을 자랑하는 몽골의 경제상황
에어컨은 커녕 창문도 제대로 열리지 않는 차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바라본 몽골의 판자촌들은 영락없이 60년대의 우리나라를 보는 듯했다.수도 울란바타르에 들어서자 비로소 공장과 사람들이 보였다.마침 도착한 시간이 점심 시간이어서 직원들이 밖에 나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그들의 얼굴은 지쳐 있었다.일을 열심히 해서라기 보다는 시간의 무게에 눌린 듯 생기가 없었다.도심의 거리에는 전통 의상을 입은 노인들과 한껏 멋을 부린 젊은 여성들이 섞여 있어 전통과 현대가 뒤섞인 혼란스러움을 엿볼 수 있었다. 거리에는 아이들이 유난히 많았다.방학을 맞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 같았다.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채 거리를 방황하고 있었다.몇몇은 외국인을 붙잡고 동냥을 했고 몇몇은 고급 승용차를 더러운 천으로 하릴 없이 닦고 있었다.승용차 주인이 나타나면 몇푼이라도 받아보겠다는 심산이었다. 90년 구소련이 해체되자 몽골은 70년 만에 자유를 되찾았다.자본주의가 막 들어선 지금 돈을 거머쥐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서민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두 손을 놓고 있었다.아직까지 공산주의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어서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열의도 없는 듯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다.하지만 생산 체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몽골에서는 돈을 벌기가 힘들다.돈을 벌고 싶은 사람들은 일주일에 세번 있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한국행 비행기 티켓은 언제나 동이 난다.불법 비자나 위조 여권도 판을 친다. 옛부터 유목생활을 해 육류를 많이 섭취한 몽골인들의 대부분이 심장병 고혈압 동맥경화 등의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또 겨울에 추위가 심해 노인들은 관절염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몽골의 병원은 의료 기구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치료는 엄두도 내지 못하며 단지 수용소의 역할만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약값마저도 너무 비싸 일반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불교의 운명론 캄보디아
캄보디아가 못사는 이유는 불교의 운명론 때문이다.캄보디아 국왕 시아누크는 국가의 행사 때마다 고승 앞에 엎드려 자문을 받는다.구걸하는 뼈만 남은 어린이들의 모습과는 달리 불교사원들은 웅장함을 뽐내지만 사람들은 모든것을 운명으로만 여긴다.
[대표적 불교국가 미얀마 소개]
미얀마는 탑의 나라입니다. 탑과 불상이 볼거리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양곤, 만달레이는 상상 이상의 대도시에 호화 현란한 탑이 많습니다. 사원의 불상은 모든 것이 금빛이지만 도금이 되어 전시되어 있고 불상 역시 화려하게 되어 있습니다. 미얀마는 이차 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풍부한 자연 자원으로 인해 부국이었지만 군부 정권이 들어서고 난 후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나라입니다. 미얀마는 정통 미얀마 인에 토착 부족민,중국계,인도계 등등 여러 민족이 어울려져 있는 나라입니다. 국가 경제와 부는 중국계가 잡고 있습니다.
[대표적 불교국가 캄보디아 소개]
[캄보디아 가다] 전국토가 지뢰밭… 하루 수십명 참변 잇단 참살로 30세이상 남자는 전국민의 15%에 불과
캄보디아 국경도시 시소폰에서 하루 밤을 머문 뒤 프놈펜 출발에 나 섰다. 이른 아침부터 호텔 앞에는 번호판조차 없는 낡은 픽업들이 이틀 전 프놈펜에서 온 뒤,다시 싣고 갈 손님을 찾고 있었다. 흥정 끝에 에어콘 이 가동된다는 운전사 옆자리를 500바트(2만원)를 주고 잡았다. 20대 초반의 픽업 운전사는 떠듬떠듬 영어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서울 사람은 처음 태운다. 평양 사람들은 많이 상대해 봤 지만….". 시소폰을 벗어나자말자 도로는 이내 붉은 비포장 도로로 변했다. 픽 업 뒤쪽의 승객들은 먼지와 바람 때문에 아예 고개를 납작 숙인 채 자 동차에 매달려 있었다. 도로 주변은 인도차이나의 전형적인 풍경인 울 창한 정글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킬링필드의 내륙인 것이다. "이곳은 불과 2개월 전만 해도 자동차 통행이 어려웠던 곳이다. 크메르루즈군과 지뢰 때문이다. 크메르루즈군은 최근 산으로 도망갔기 때문에 별 위협 이 없지만, 지뢰는 아직 우리같은 운전사에게 위협적인 존재이다.". 상수도 없어 비물 받아 식수로 바깥 쪽은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만 간간이 보일 뿐,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정글을 배경으로 늘어선 오 두막식 집들이 예외없이 황토빛 풀장(?)을 하나씩 갖고 있다는 점. 물 에서는 어린이들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풀장이 아니라 먹는 식수원"이라는 운전사의 설명을 듣고 현지의 참담한 실상을 알 수 있었 다. 캄보디아는 물론 인도차이나 대부분의 지역은 상하수도 시설이 전 혀 안돼있다. 집앞에 풀장식으로 드리워진 흙탕물은 캄보디아와 베트남 라오스 등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도차이나식 상수원인 것이다. 비가 오면 빗물로 해결하지만, 비가 오지 않을 경우에는 웅덩이의 흙탕물을 항아리에 넣어흙을 밑바닥에 가라앉힌 뒤 식수로 사용하는 것이다. 현 재 UN과 각종 NGO단체들이 벌이고 있는 인도차이나 지원사업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상하수도 사업이다. "저렇게 친절하고 순진한 사람들이 어떻게 킬링필드같은 끔찍한 일 들을 벌일 수가 있었을까?" 캄보디아인들을 처음 만날 때 누구나 느끼 는 일반적인 감정이다. 캄보디아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친 절하고 수줍음이 많은 사람들이다. 특히 외국인에 대한 그들의 자세는 마치 중요한 손님을 대하듯 진지하고도 친절하다. 말이라도 걸면 영어 가 가능한 사람을 불러와서 반드시 필요한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바로 캄보디아인들이다. 캄보디아인들은 하루 평균 임금 1달러에도 못미치는 돈으로 살아가 지만 거지나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들의 전재산을 내던지는 사람들이다. 폴포트는 이같은 사람들을 상대로 중국 문화혁명식 광기를 주입시켰던 것이다. 그같은 광기 덕분에 캄보디아는 현재 전례가 없는 기형적인 인 구분포를 가진 나라로 변해버렸다. 8백만 인구 가운데 '15세 미만이 전 체인구의 50% 이상,30세 이상의 성인 중 여성의 비율이 70%'. 75년부터 79년까지 총 2백만, 하루 평균 1천3백여명의 자국민을 살해하는 과정에 서 여자들과 어린이들만 남게 된 것이다. < 시소폰을 떠난지 3시간 뒤, 픽업은 캄보디아 내륙인 파탐방 지역 안 으로 속도를 더해갔다. 파탐방은 캄보디아에서 지뢰가 가장 많이 묻혀 있다는 곳이다. 파탐방은 1979년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략 때 정글 속으 로 도망갔던 크메르루즈군의 중심 거점. 크메르루즈군은 파탐방 정글 곳곳에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1개 5달러짜리 중국제 지뢰를 파묻었다. 현재 하루 평균 피해자 10여명에 이르는 지뢰 사고의 대부분은 파탐방 에서 발생한다. 전속력으로 달리던 픽업은 파탐방내 작은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갑자 기 멈춰섰다. "아까부터 사람들의 행렬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뭔가 사건이 벌어졌다. 식사도 할 겸 알아보고 가자.". 식사를 하는 동안 짐을 잔뜩 짊어진 사람들의 행렬은 점점 더 늘어 갔다. 그들과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눈 운전사는 낮은 목소리로 말 했다. "파탐방 내륙에서 크메르루즈군이 나타났다. 반격에 나선 정부군 이 정글쪽에다 무차별 포격을 가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전부 도로로 빠 져나오고 있다."아닌게 아니라 가까이서 '꽝'하는 포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운전사는 일상사로 여기는 듯, 덤덤한 표정으로 출발을 재촉했 다. 픽업 자동차는 출발 10여분만에 다시 멈춰서야만 했다. 프놈펜으로 향하는 도로 한복판에서 1백55mm 대포가 정글쪽을 향해 포격을 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격이 잠시 멈추자 길 반대편에 서 있던 사람들이 행렬을 지어 어 디론가 몰려가기 시작했다. 짐과 어린애를 동시에 안은 여인들, 항아리 냄비 가구 등 가족의 전 재산을 짊어진 인도차이나 특유의 물소, 사용 된지 10년은 넘어보이는 낡은 자전거… .웃음기를 잃은 채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표정. 평생을 화약 연기 속에서 보낸 캄보디아인들은 킬링필드의 역사 그 자체를 처참한 얼굴 속에 담고 있었다.
불교 일본이 잘사는 이유
이러면 또 나오는 말이 일본은 잘살지 않느냐? 하겠지만 다행히 불자가 30%밖에 안되니 잘사는 겁니다. 여기도 90% 넘어가면 남한에게 먹힙니다.
1) 일본만 잘사는 것은 우리나라를 침략, 빼앗아서 잘산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불교국가가 같은 불교 국가를 침략했습니다.
2) 또 하나의 이유는 일본은 우리과 같이 완벽한 유교정치로 쇄국 정치를 펴지 않아서 외국 문물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한국은 불교, 유교로 말미암아 완전히 더욱 망했으며
3) 일본이 잘사는 또 하나의 이유는 불교, 유교국가 한국이 너무 못살아서 일본을 침략하지 않아서 평안을 누렸기 때문입니다.
일본 외의 불교 국가는 모두 가난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일본은 한국을 침략했고 섹스에 미쳤다고 그러면" 불자들은 "일본이 무슨 불교국가냐? 잡신을 섬기는 국가지, 그러고요 내가 "불교 국가는 못산다" 그러면 "일본은 불교국가인데 왜 잘사냐? 이런다는겁니다. 재미있지 않나요? 호호호
그렇다면 이슬람교는?
이슬람교가 대종을 이루는 국가로서 아랍국가 이외에 이란, 터키,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국가들과 아프리카 서부의 나이지리아, 감비아, 기니, 기니비사우, 니제르, 말디브, 말리, 모잠비크, 브루네이, 세네갈, 시에라리온, 알바니아, 에티오피아 등과 아프리카 중북부의 차드, 아프리카 동남쪽의 코모로, 탄자니아 등이 있다. 또한 중앙아시아의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도 이슬람국가에 포함된다.
만만치 않죠?
불교 연예인 신도들 김흥국. 송해, 최영준 송대관, 최병서, 이승철, 현철, 현숙, 김태곤, 젝스키스의 은지원과 장수원. 오은주, 김민종, 조관우, 송춘희, 남광수, 김활선, 이선희, 정수라, 전원주, 김용림, 김뻑국, 남궁랑, 배재수, 김성은, 허준호, 한명숙, 남강수, 장미화, 조항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