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숙의 산문《독산동 세 여자》를 주목하는 이유
최 장 순
이혜숙의 산문, <독산동 세 여자>는 1990년대 독산동의 한 골목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서른 안팎인 세 여자(작가 자신을 포함, 영희, 지수)가 의기투합한 것은, 모두 처음 장사를 시작했다는 공통점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때로부터 강산이 두 번 넘게 변한, 2020년에 작가는 옛 기억을 ‘산문’이라는 문학적 장치 속으로 오롯이 불러냈다. 저마다 울고 웃는 사연을 달고 있는 골목 안 속사정들이 진솔하게 펼쳐진다.
<독산동 세 여자>는 이제껏 보아온 수필(좁은 의미에서)과는 달리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참신하게 다가온다. 왜 특별하게 읽히는가? 그 이유를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형식적으로는 소설적 수필이다. 소설적 구성요소인 배경과 인물 사건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물론 서사수필에서도 소설적 형식을 취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처럼 ‘완결된 서사’를 담아내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소설적 수필을 쓰는 작가를 보기가 드물다.
헤르타 뮐러의 소설<저지대>에서 보면, 외지고 황량한 삶의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각각 단편적인 제목을 달고(18편)루마니아의 독재치하에서 겪는 삶의 공포와 불안이라는 하나의 큰 주제를 관통한다. 공교롭게도 이혜숙의 글도 18개의 단편적인 이야기가 한 골목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1990년대, 서울의 한 골목에서 펼쳐지고 있는 삶이 손에 잡힐 듯, 소설처럼 풍성한 스토리에 빠져들게 한다. 굳이 ‘수필’이라 칭하지 않고 ‘산문집’이라 한 것도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큰 이야기로 이어지는 자전적 서사들로 구성되어 있어서이다. 소설적 기법에 맞는 적절한 의도를 담아낸 산문집, 그래서 그 타당성이 이해가 된다.
둘째- 수필의 분량(원고지 기준)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어 놓았다. 대략 수필 한 편의 분량을 원고지 15매 정도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15매 분량의 글 50여 편으로 묶어내는 일반적인 수준의 수필집에 안주해 왔다. 15매 분량이라는 것은 아마도 짧은 시적 함축으로는 아쉽고, 소설적으로 쓰기에는 작은 이야기들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혜숙의 글은 한 꼭지가 최소 30매 정도의 분량을 담고 있다. 한편의 스토리가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는 분량이다.
좋은 수필은 분량(길이)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흔히 바쁜 일상을 전제로 글은 짧을수록 좋다는 견해가 근간에 지배적인 생각들이다. 그러나 함축해서 울림을 주는 글도 있지만,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다면 분량이 많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수필의 매력은 시적이기도, 소설적이기도 한 자유로움에 있음을 감안할 때, 꼭 짧은 것 만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이혜숙은 보여주고 있다.
셋째- 내용면에서 ‘전통적인 답습’을 과감히 탈피했다. ‘전통은 궁극적으로 극복의 대상이지 답습의 대상이 아니다.’(오민석)‘수필은 청자연적이다.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피천득)물론 이 말은 수필의 정의 가 아닌, 수필을 비유와 은유로 표현한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수필을 온아우미溫雅優美, 고상함, 윤리 도덕적 품격, 엄숙함 같은 것이 필수적인양 전통처럼 이어져 왔다. 어떤 사건을 적나라하게 파헤쳐 실상을 드러내면 저급하다, 유치하다, 생각하고, 고상한 도덕적 인생관으로 포장하기에 급급했다.
이혜숙이 쓴 스토리는 어쩌면 지우고 싶은 삶의 자취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가감 없이 들춰냄으로써 오히려 ‘성찰’과 ‘위로’의 시간으로 만들어 냈다. 마치 놀이하듯 이야기를 다루고, 진지한 진술을 배제하는 듯해도, 그가 구사하는 언어들은 진지함을 뛰어넘는 매력이 있다. 페르소나가 필요 없는 자유로운 욕망이 ‘말을 가지고 노는 행위’를 통해 독자를 매혹시킨다.
네째- <독산동 세 여자>는 1990년대라는 시간의 선로와 연결되어있다. 90년대의 시대적 상황은 희망과 불안이 공존하던 시기였다. 80년대의 3저 호황에 이어 민주화는 성취되었지만, 어떠한 대처 방안도 확실하게 마련되지 않은 채 정보화시대로 진입하고 있었다. 낯설고 두려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어정쩡한 시대적 상황 속에 서른 무렵의 작가는 서울의 한 구석에서 새로운 삶을, 그의 말대로 계산보다는 감感에 의지해 시작했다.
‘비밀수업’이라는 간판을 걸고 연 작가의 첫 액사서리 가게도, 지수의 화장품가게도, 영희네 문방구도 희망과 불안이 혼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속에서 벌어지는 ‘웃프고도 짠내나는’ 이야기들이 하나의 골목을 무대로 당당하게 펼쳐진다. 이 책을 접한 사람들은 한 결 같이 읽기 시작하면 놓을 수 없다고 했다. 그것은 작가에 대한 최고의 찬사이다. 읽는 동안의 재미와 읽고 난 후에 느끼는 잔잔한 감동은, 우리 무두가 그 시대를 함께 겪어왔기 때문이 아닐까.
이혜숙 작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어떤 자리에서도 그의 재담才談은 모두를 즐겁게 했다. 그동안 3권의 책을 냈고, ‘글방’을 만들어 초·중학생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글을 가르쳤다. 타고난 성품이기도 하지만, 그에게서 어린아이들처럼 순수함이 엿보이는 것은 그래서 일지도 모른다. 작가가 공들인 20여년의 내공이 결코 만만치 않다. <독산동 세 여자>는 수필이 서정과 자전에 쏠린 지경地境에 던진 참신한 시도다. 이혜숙만의 빛깔과 향기를 담을 수 있는 알맞은 ‘그릇’을 찾고, 또 기어이 만들어 냈다.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첫댓글 꼼꼼히 잘 읽어주셨습니다. 최장순 선생님의 시선에도 박수 보냅니다.
최장순 선생님 반갑습니다.
저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독산동 세 여자'는 제 2의 '응답하라 1988 '같았습니다.
이혜숙은 대단한 작가 입니다.
짝짝짝
수필의 형식적면에서 '소설적 수필'은 드믄 경우여서 그 시도가 참신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집을 조명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 제 소견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읽어주신 노정숙 선생님, 늘 하루도 빠짐 없이 카페에 불 밝히시는 김산옥 선생님, 고맙습니다. 불안한 시기에 잘 버티시고 건강하시길요~~^^
최장순 선생님의 서평 너무 동감입니다 ^^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인듯 어쩜~~
권현옥 선생님, 공감하여 주시니 고맙습니다.
수필의 지경이 너무 한 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아, 이혜숙 선생의 글이 더 돋보이지 않나 싶었습니다.
구름카페문학상 행사하느라 수고 하셨어요.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조촐하게 잘 하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