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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TV를 보니 평양의 무슨 행사소식이 요란하다. 그런데 예전에 북한에 갔었던 임수경이라는 여자는 정말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었다. 서로 포옹하고 인사하는 것을 보니 아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아는 사람도 무지 많아 보인다. 임양은 좋겠다. 이렇게 우울한 나라에서 살기 싫으면 북한으로 가도 환영을 받을테니.. 아울러 소설가 황씨도 좋겠다. 반겨주는 곳이 있으니.. 나는 뭔가? 그 동안 뭐했나?>
형님이 김포를 떠나 서울에 자리를 잡으면서 형수님도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던 모양이다. 딸내미 넷을 건사하기가 쉬운 노릇이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시골보다는 일이 적었을 것이고 (시골은 정말 일이 많다), 또 워낙 부지런하신 분이라 능히 자기 시간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여간 사람은 부지런하고 볼일이다.
형수님께서 서예를 시작하셨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 그 때쯤이었다. 웬 서예? 예전에 그걸 전공한 것도 아니고? 나는 그냥 그 나이 아줌마들의 '우아하게 시간 보내기' 또는 '문화적 허영' 정도로 생각하고 그 열정도 곧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얼마 후, 어머니 말씀이 그 형수의 글씨가 아주 좋더라고 하신다. 그래서 재주가 있으신 모양이구나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서예전시회를 한다고 한다. 전시회? 같이 서예 하는 사람들끼리 그룹전을 열었는데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썩 괜찮은 글씨였다. (내가 괜찮다고 하면 오히려 믿음이 안 가겠지만..) 그리고 글씨와 함께 난(蘭)을 쳐 놓으신 솜씨가 그 방면에 재주 있음을 말해주었다. 아하~ 그런 재주가..
그 이후 나는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도미..귀국..정착.. 물론 나를 만들기 위한 시간이었을 텐데, 지금 돌아보면 깜깜하게만 느껴지는 몇 년. Dark Age?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나에게 날아든 초청장이 하나 있었다. 인사동의 어느 화랑에서 여는 동양화 전시회의 초청장이었다. 웬 동양화? 초청장을 유심히 보니 작가들의 이름 가운데 형수님의 이름이 있었다. 약간은 촌스런 우리 형수님의 이름..
아~ 형수님이 드디어 동양화까지 하시는구나.. 한편으로 반갑고 기쁘고, 다른 한편으론 여유 있는 아줌마들의 허영 전시회가 아닐까하는 조바심이 일었다. 그러나 전시회에서 형수님의 200호가 넘는 그림들, 그리고 다른 이들과의 연작(합작?)들을 보고는 너무나 기뻤다. 이럴 수가? 이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내 주위에도 있다니? 그 동안 주변에서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은 동생뿐이 없었는데..
(그나마 이 선수도 이제는 그림을 안 그리고 '독 짓는 젊은이'가 되었다. 요즘은 '도자기엑스포' 땜에 바쁘다)
그 뒤 집안 일이 있을 때나 가끔씩 형과 형수, 그리고 '공포의 4자매'들을 보곤 했었다.
첫째는 키가 나보다 더 커버렸다. 180에서 조금 빠진다나? 어휴..저리 커서 어쩌나? 속된 말로 '뭐에 쓰나?' "누가 데려가나?' 이런 나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 놈은 후딱 시집을 가버렸다. 서방이란 놈도 그리 커 보이지는 않던데.. 아마 잡혀 온 것 같다. 맞지는 않았는지..
둘째는 예쁘고 여우같다. 학교 다닐 때도 화장하고 치장하는데 시간을 다 보내더니, 졸업하고 금방 시집을 가버렸다. 그 서방을 보니 역시 잡혀온 모양이다. 맞지는 않은 것 같았다.
셋째는 어릴 때부터 태권도니 어쩌니 하면서 tough하게 굴더니, 결국 중3때 같은 학교 남학생 쌈장하고 1:1로 맞짱을 떠서 천하를 평정하였다. 그 후 학교의 추종녀들을 이끌고 다니는 바람에 그 놈은 학원비가 늘 공짜였단다. 최근에 보니 얌전하게 변해서 직장 다니고 있었다. 어느 놈이 또 속아서 장가와서는 매일 두드려 맞지나 않을지..
막내 기집애는 여자다. 제 언니들이 하도 꺽달지고 요란하니까 얘는 지레 겁을 먹었는지 순하고 여성스럽다. 아직 학교 다니고 있다. 이런 애를 데리고 가야 되는데..
위로 두 애를 시집 보내고 난 뒤, 형님 내외가 시골에 집 지을 곳을 물색하러 다닌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강원도를 뒤지고 다닌다는 것이다. 오잉? 웬 감자바위? 김포에 땅도, 집도 있으면서 왜 강원도를 헤집고 다닐까? 김포가 이제는 너무 번잡해서 그럴까? 이런 정도 생각만 하고 별로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횡성에 땅을 정했다는 소리, 집을 짓기 시작했다는 소리, 하도 깊숙한 산골이라 길을 새로 낸다는 소리, 시멘트 다리를 셋인가 새로 놓았다는 소리, 전봇대를 일곱인가 새로 놓았다는 소리 등등이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침 전원주택인가 하는 미명아래 도회 사람들이 어줍지 않은 '돈x랄'들을 해대는 통에 원주민(?)과 마찰이 많다는 소리도 들릴 때였다. 이 형님은 그럴 사람이 아닌데 하면서도 너무 요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집에 완성되었다는 소리를 들었고, 어머니도 한번 다녀오셨다. 잘 지었더라는 말씀에 그런가 보다 하면서 나도 조만간 한번 가 봐야지 하고 있었었다.
이번 여름에는 꼭 한번 가봐야지 하고 벼르다 드디어 그 주말에 시간을 짜내고 전화를 하였다. 전화로 형수님하고 이런 저런 수다를 떨다가 주말에 가겠다고 하니 형수님이 한숨부터 지으신다. 며칠 전의 집중호우로 길이 여기저기 망가져서 차가 못 올라온다는 것이다. 큰길에서부터 산으로 1 km를 걸어서 올라가야만 한단다. 게다가 차가 못 올라와서 집에 먹을 것도 별로 없는 수재민 신세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날도 병아리 사료 25 kg을 들고 산을 오르느라 죽을 뻔하셨단다.
(아마 병아리를 키우나 보다. 사람은 굶어도 갸들을 굶어 죽일 수 없어서 사료를 사왔는데 차는 못 올라가고.. 크.. 25 kg을 들고 산을 올랐다? 갑자기 슬퍼졌다)
형수님은 그래도 오라고 하셨다. 마침 그 주말에 큰누나네 식구들이 온다고 했는데 먹을 것을 다 들고 온다고 하였으니 어떻게든 될 거라고 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큰누나는 형님의 큰누나다. 나에겐 역시 이종사촌 누나이고. 그 누나는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는데 다 출가해서 애들이 득시글거린다. 그게 좀 걸리긴 하는데..)
토요일 아침. 이것저것 짐을 챙겼다. 둘리는 노트북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게임 하려고 그러겠지. 그래라) 짐을 들고 지고 나오면서 현관문을 잠그려다 보니 우리를 쳐다보는 독꾸의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였다. 좋다. 데리고 가자. 독꾸를 데리고 가려니 그놈 사료까지.. 에이.. 이상한 짐 꾸러미의 행렬이 되어버렸다. 배낭을 하나씩 메고 노트북에 돼지갈비 한 보따리 (아내가 수재민 도우라고 싸준 것이다), 그리고 개 사료통까지..
횡성으로 가는 길은 잘 뚫려있었다. 4차선의 자동차 전용도로로 새로 만든 곳이 많아서 아주 쾌적하였다. 지난 번 설악산 다녀올 때만 해도 안 이랬는데.. 나는 그 동안 국도변에서 장사 잘 되던 그 휴게소, 여관, 가든들이 걱정되었다. 휴머니스트는 어쩔 수 없나보다.
횡성 입구에서 좌회전해서 약 20분 정도 가니 그 집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나타났다. 찾기는 쉬웠다. 그런데 집 입구라는 샛길로 들어서니 어디가 길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길인지 뭔지 돌무더기 천지인데, 포크레인이 한 대 일을 하는 것으로 보아서 그 쪽이 길인 것 같았다. 전봇대 이어진 방향도 그쪽이었다. 차를 근처 안전해 보이는 곳에 주차해 놓고 짐을 챙겨서 내렸다. 휴.. 저 돌길을 올라가야 한다 말이지..
한심해서 돌무더기 길을 쳐다보기만 하는데, 포크레인 앞에서 뭐라고 손짓하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이 눈에 익다. 형님! 나의 소리에 돌아서는 그 사람은 분명 형님인데.. 컥!!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오는 할아버지가 아닌가?! 오죽하면 둘리가 '저 할아버지가 아빠 사촌형이야?' 할 정도였다. 언제 수염을 저렇게 기르셨누?
형님과 인사를 마치고 공사 감독해야 한다는 형님을 뒤로하고 우리는 산을 올랐다. 평소 같으면 차 한 대가 오를 수 있을 정도의 길이었다. 그것도 내 차 같이 바닥이 낮은 승용차는 문제가 있을 것 같았고 마주 오는 차라도 있으면 오르락내리락 해야하게 생겼다. 며칠 전에 비가 하룻밤에 360 미리가 내렸다던가? 평소에는 마른 내일 것 같은 곳이 깊이가 1 m이상으로 푹 파여 있었고 전화선을 연결하는 전봇대도 여럿이 쓰러져 있었다. 와.. 심했구나. 나와 둘리는 땀을 비오듯 흘리며 그 길을 따라 올랐다. 길이 끊어진 곳은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면서, 그런데 다리 긴 사람들은 그렇게 오르는데 독꾸는 뛰어 오르다 흙에 미끄러져 굴러 떨어지고.. 어휴.. 저거 개 맞나? 나중에 보니 독꾸의 배와 고추가 돌에 쓸려서 피가 나고 있었다. 배야 그렇지만 고추에 흉터 남겠네.. 같은 수컷으로 마음이 아팠다. 휴머니스트..
힘들게 산길을 오르는데 저 앞에서 남자 둘이 내려온다. 보니 조카사위들이었다. 한 놈은 형님 둘째딸의 (여우같은..앞으로 <여우>라고 칭하겠다) 남편이었고, 또 하나는 큰누나네 첫째 딸 <숙1>의 서방이었다. 반가웠다.
* 나: "어이구.. 오랜만들이구먼.."
* 조카사위들: "............."
(아니? 이 놈들이 나를 몰라보네. 나는 알겠는데..젊은 놈들이 이래 대가리가 나빠서야..)
* 숙1 서방: "저기 누구신지..." (와..미치겠네..)
* 여우 서방: "저 실례지만 어디 찾아오셨는지요?" (얼씨구? 이 놈은 내가 길을 잃은 줄 아나? 이야.. 이렇게 황당한 놈들이 있나?)
* 나: "나 조 위에 xxx씨 집에 다니러 온 사람이요. 첨 뵙겠시다. #$%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아직도 얼떨떨한 그들과 악수를 나누고 다시 길을 올라갔다. 이럴 수가.. 그 사이 내 모습이 변했나? 아니면 나 같이 바로크的으로 생긴 사람을 기억 못하다니? 하여간 이따 다시 만나면 가만두지 않으리라..암! 집안의 기강을 위해서도 용서할 수 없지..
집이 보였다. 깔끔하다. 집 바로 아래 축대 밑에는 수영장까지는 안되지만 물을 넣어놓고 분수를 틀어놓은 꽤 커다란 물놀이장이 있었다. 그곳에는 애들이 몇 놀고 있었는데 그 중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한 여자애는 한눈에 봐도 <숙1>이었다. 원..닮아도 어떻게 저렇게 닮나? 애 잃어버리진 않겠다..
집에 다가가자 거실에 앉아있던 식구들이 다 쏟아져 나온다. (역시 내 성질 더럽다는 소문은 다 알고 있구만..)
* 여우: 아이구~ 아저씨 오셨어요? 아줌마는? (이 자식은 꼭 아내만 찾어.. 나쁜 ㄴ. 아내는 이 집에서 인기가 좋다. 예전에도 그 집에 가면 조카딸 넷이 아내를 둘러싸고 앉아서 이쁘니 어쩌니 하면서 떨어지질 않았다. 이쁘긴 이쁘지..ㅎㅎ..)
* 숙1: (빙긋 웃으며) 철주 아저씨 왔구나.. 더운데 힘드시죠? (역시 네가 낫다)
* 형수님: 서방님 오셨어요?! 동서는? (아니? 형수님마저 아내만 찾네?)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닦을 새도 없이 얼음이 둥둥 뜬 식혜를 내온다. 여름에 웬 식혜를 다 담그셨을까? 이어서 샤워할 새도 없이 콩국수가 나온다. 기다리고 있었나? 먹고 씻고.. 마루에 앉으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 맛에 산에 사나보다.
우리 독꾸. 그 집의 일곱 마리 맹견들이 짖어대는 통에 기가 팍 죽었다. 자꾸 집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처마 밑에 매 놓았더니 나와 눈만 마주치면 낑낑댄다.
오후가 깊어지면서 다른 식구들이 속속 도착하였다.
큰누나와 매부. 곧 관절 수술 받으신다는 매부는 지팡이를 짚고 올라오셨다.
<숙2>네 식구. 어제나 살가운 이 놈. 나를 보더니 좋아 죽는다. 명품을 알아보는 놈.
<숙3>네 식구. 늘 조용한 막내. 남편은 더 말이 없다. 난 첨에 언어장애자인줄 알았다.
큰누나네 외아들 <조카놈>네 식구. 큰 아이가 자폐를 앓아 그렇게 고생을 했었는데 이제는 참 많이 좋아져있었다. 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씩~ 웃는다. 짜아식..어쩌다..
(대학교 3학년 때. 사교육에 큰 뜻을 두었던 나는 나의 높은 식견을 대량으로 설파하기 위해 학원 강사로 나섰었다. 그 학원 근처에 큰누나네 집이 있어서 아예 근 1년을 그 집에서 살았었다. 그때 고등학생이던 <조카놈>도 가르치면서. 그렇게 같이 살아서 그런지 나는 이 집 애들이 특별히 느껴진다. 그 놈들도 나를 아저씨가 아닌 형이나 오빠 같이 느끼고 있고.. 그리고 이렇게 전부 다 만나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그런데 집집마다 애들은 둘씩. 조카사위놈들.. 대가리는 나쁜 것들이 힘들은 좋아 가지고..
그런데 올라오는 식구마다 PET병에 든 1.8 리터들이 소주를 몇 병씩 가져오는 것이 아닌가? 형수님 이하 여자들은 질색을 하는데, 하나같이 한다는 소리가 병은 무거워서 PET병으로 사 왔다나.. 보기만 해도 끔찍한 저 댓병 소주. 아~ 난 왜 기쁘면서도 속이 미식거릴까?
아직 잔디가 덜 자란 마당에 평상을 펴고, 화덕을 준비하고.. 우리는 그렇게 광란의 만찬을 준비하였다. 독꾸는 아직도 묶여서 잉잉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