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백제 관련 동영상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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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월에 가기좋은 국내여행지 추천
충남부여
2●부여 백마강 물억새 공원
3●백제문화단지 홍보 영상
4●부여 궁남지 서동공원 연꽃
궁궐의 남쪽에 세운 연못이라 해서 궁남지라는
이름이 붙리어졌고, 궁남지라는 이름 대신
지금은 서동공원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부여는 백제 시대 최초의 인공 연못인 궁남지에서
해마다 열리는 연꽃 축제로 유명한 도시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다. 올해는 전염병으로 그 축제마저
전격 취소된 상황이었다. 백제 무왕인 서동의
탄생설화와 함께 서동‧선화공주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간직하고 전국 연꽃 제일의 생태자원을
자랑하는 곳이다. 서동공원 연꽃단지에는 1400년 깊은
잠에서 깨어난 전설의 오오가하스(대하연)와 멸종위기
식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가시연, 3m까지 자란다는
빅토리아 연, 홍련, 백련, 홍금연 등 50여종의 연꽃 등
천만송이 연꽃 장관을 이루고 있고, 중간중간 야생화단지도
조성돼 있어 창포, 원추리, 양미역취, 부처꽃, 백일홍 등
30여종이 번갈아 가며 궁남지 물빛을 거울삼아 화장을
고치고 있다.
5●백제여행길 04-700년 대 백제의 꿈/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6●백제여행길 05-백제 불교문화의 상징
정림사지
7●백제여행길 06-사비시대 백제왕릉군
능산리 고분군
8●백제여행길 07-나성,고대 동아시아 도성중
현존하는 유일한 외곽성
9●백제여행길 08-왕궁 구조의 모범을 보여준
왕궁리 유적
10●백제여행길 09-백제인의 염원이 담긴
미륵사지
11●백제여행길 10-백제인의 생활을 들여다보다
백제의 의식주
12●백제여행길 11-찬란한 문화와 예술의 나라
백제
13●백제여행길 12-백제의 정신이 깃든
불교
14●"세계유산, 백제 1부-검소하나 누추하지
않다" (KBS 2021.10.22 방송)
[백제 문화의 가치와 동아시아 교류사 속의
위상을 짚어본다.]
“백제는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문화적 허브 역할을
하던 핵심 국가” 지난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 이로써 백제 역사는 한반도를
넘어 인류의 문화 자산이 되었다.
대체 백제의 어떤 면이 세계인을 사로잡았을까?
백제 문화의 가치와 동아시아 교류사 속의 위상을
짚어본다.
▶ 위태로운 정세 속 국가의 터전을 닦은 공간,
공주 공산성
475년 개로왕 때에 고구려의 침공을 받은 백제.
급하게 피난처로 삼은 곳은 차령 너머 웅진(공주)이었다.
백제는 웅진을 도읍으로 삼고, 공산성을 쌓았다.
북쪽과 동서쪽은 금강을 자연방어선으로 삼고
산 능선을 따라 견고하게 성벽을 쌓아 천혜의 방어선을
구축했다. 한성기 몽촌토성과 사비기 부소산성과 동일한
입지, 2.4km의 동일한 규모를 보이고 있는 공산성.
한성 도읍 시기 백제의 문화적 기반은 위급한 정세
속에서도 그대로 웅진으로 옮겨졌다. 위기 속에서 새롭게
국가의 터전을 닦고, 백성들에게 안정감을 주려했던
당시의 상황이 공산성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백제 문화의 핵심을 알려주는 옛 기록이다.
‘검이불루 화이불치’에 걸맞은 아담한 규모의 공산성
내 왕궁 추정지. 이곳에선 여전히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공산성 내에서 발견된 연화문 와당을 비롯한 장식 기와들은
궁이나 사찰, 종묘에서만 사용되는 것으로 이 역시 이곳을
왕궁으로 추정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도시 전체를 성벽으로 두른 최초의 사례, 부여 나성
백제는 성왕 대에 이르러 또하나의 결단을 내린다.
바로 사비(부여)로 천도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아무런 기반 시설이 없던 이곳에 성왕이
천도를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비는 웅진에 비해 넓은 들판을 가지고 있었고
백마강이 있어 해외 진출과 교류에 유리했으며,
가야 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북방의 영토를
상실한 백제는 사비 천도를 통해 백제를 부흥시킬 원대한
꿈을 꾸었던 것이다.
부여의 관북리 유적은 왕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가장 강력한 증거는 동서 35m, 남북 18.5m의 대형 건물터.
정연한 직선 도로의 흔적과 수로, 나무와 돌로 된 대형
저장고 등도 발견되었다. 또한 저장고 안에서는 복숭아, 참외,
살구, 다래, 오이 등의 씨앗이 다량 출토되었다.
고구려 침입으로 급하게 천도했던 웅진과는 달리 사비도성은
철저한 계획도시로 각종 도시 기반시설이 체계적으로 건설되었다.
계획도시 사비의 방어시설도 완벽에 가까웠다. 왕궁 바로 뒤에
부소산성을 쌓아, 방어 기능을 하게 함과 동시에 유사시
대피장소로 삼았다. 사비도성의 방어 체계를 보여주는 특별한
유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나성’이다. 도시에 외곽에
또 하나의 성을 쌓아 2중의 방어선을 구축했던 것인데,
이는 한반도 역사에서 주민이 사는 전체 도시를 성벽으로
두른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된다.
▶뛰어난 금속 공예 기술과 사상의 극치, 금동대향로
1993년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금동대향로.
금동대향로는 당시 백제의 금속 공예 기술과 백제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사상이 어우러진 백제 시대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연꽃봉오리 형태로 위에는 봉황이
올라앉아 있고, 아래는 용이 받치고 있는 형태.
뚜껑에는 산봉우리가 층층이 겹쳐진 사이로 36마리의
상상의 동물, 악기를 연주하는 5명의 악사, 17명의 신선,
등이 변화무쌍하게 표현되어 있다.
백제문화의 절정, 금동대향로를 만나본다.
15●"세계유산, 백제 2부-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 (KBS 2021.10.22 방송)
[한반도를 넘어 인류의 문화 자산.
백제의 어떤 면이 세계인을 사로잡았을까?]
“백제는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문화적 허브 역할을
하던 핵심 국가”
지난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 이로써 백제 역사는 한반도를 넘어
인류의 문화 자산이 되었다.
대체 백제의 어떤 면이 세계인을 사로잡았을까?
백제 문화의 가치와 동아시아 교류사 속의 위상을
짚어본다.
▶동아시아 국가 교류 중심국 백제의 위상, 무령왕릉
지난 7월, 공주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무령왕릉 발굴 50주년 기념식이었다.
공주 송산리고분군의 7기의 무덤 중 유일하게 무덤의
주인이 알려진 무령왕릉. 1971년 6호분 배수로 공사
도중 단 한 번도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어
고고학계를 뒤흔들었다.
무령왕릉은 백제의 무덤 양식이 대부분 돌로 만든
석실무덤인 데 반해 벽돌 무덤 양식. 이는 당시 중국
남조에서 성행하던 무덤 양식으로, 백제가 중국과의
교류 속에서 새로운 문물을 과감하게 도입했던
결과물이자 문화적 자신감의 발로였다.
무령왕릉에서는 모두 108종 46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출토된 유물들 역시 백제의 교류사를
말해주고 있다. 동탁은잔은 중국 난징에서 출토된
잔과 흡사하며, 일본에서도 역시 동탁은잔과 같은
모양의 제품이 출토되었다. 또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동남 아시아산 유리 제품은 동서 교역의 중심지였던
푸난(캄보디아)과의 직간접적인 교역의 증거가 되고
있다. 또한 무령왕릉에서 왕과 왕비를 모셨던 목관의
목재 금송은 일본에서만 자생하는 고급 목재로 알려져
있다. 이는 백제 왕이 사망했을 때 일본 최고의 관재인
금송을 지속적으로 보내줬음을 보여주고 있다.
▶백제의 운명을 품은 가장 핵심적인 사찰,정림사지
538년 성왕 때 사비로 천도한 백제.
성왕은 부여의 한가운데 정림사를 건립했다.
이 사찰은 백제의 전형적인 1탑 1금당의 구조였다.
정림사지의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5층석탑은 기존의
목탑을 단순화시킨 모양새로 균형 있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정림사지에 처음 구현되었던
1탑 1금당의 가람배치는 이후 백제 전역에 확장되었고,
이는 신라와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백제사 연구의 일대 전기를 이룬 발견,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구
2009년, 미륵사지 서탑 해체 작업을 하던 중 서탑
심주석에서 미륵사의 비밀을 풀어줄 놀라운 유물이
발견되었다. 심주석 안에는 부처님의 사리를 담았던
그릇인 사리호와 미륵사 탄생의 기원이 기록된
금제사리봉영기를 포함한 사리장엄구가 오롯이
담겨있었다. 금제사리봉영기에는 무왕의 왕비인
사택적덕의 딸이 639년 사리를 모시고 절을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써 미륵사지의 정확한 탄생 배경이
밝혀졌으며, 이때 나온 유물들로 인해 백제사 연구에
있어 기준을 만들 수 있게 됐다.
▶백제 궁궐의 진수, 왕궁리 유적
7세기 무렵 고구려, 신라와 계속해서 영토 다툼을
벌이던 백제. 무왕은 새로운 왕궁을 익산에 건설하기
시작했다. 남북 490미터, 동서 240미터에 이르는 궁궐
담장 안에는 정사를 돌보는 정전과 부속 건물, 정원,
후원이 있었다. 또 관리나 궁인들이 사용하던 대형
화장실과, 왕실에서 사용하는 귀금속을 만들던 공방도
있었다. 왕궁리 유적은 7세기 백제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기술이 구사된 왕궁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16●"고대 왕국의 신비를 품다-충남 부여 2부" /
(연합뉴스TV 20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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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만수산 무량사,'무량'이라는 이름 뜻처럼
한없는 이야기를 품은 곳-천년의 여행
https://blog.naver.com/jydecor/222000607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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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부여1박2일 여행지=
궁남지,부소산성 등 꼭가봐야 하는 여행지
▣바로 보고 싶은 내용이 있으시면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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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궁남지 : 01:01
(2) 부소산성 : 04:29
황포 돛배 체험: 07:06
(3)백제문화단지와 백제역사 문화관 :08:37
(4) 사랑이 피어나는 성흥산 사랑나무 :09:47
- 가지 뻗음의 모양새가 하트모양을 닯아
사랑나무라고 불리움
(5)부여박물관 : 10:28
- 백제전문 박물관으로 백제금동대향로를
(국보 287호) 볼 수 있다
(Gilt-bronze Incense Burner of Baekje)
-봉황장식
-신산 모양 뚜껑
-연꽃 장식 몸체
-용 모양 받침
(6) 정림사지: 11:14
-5층석탑(국보 제9호)은 현존하는 석탑중
가장 오래된탑 부드럽고 온화한 백제의 미를
느낄수 있다
(7) 숙소: 부여 롯데 리조트 : 11:42
(8) 맛집: 장원 막국수 : 12:43
(9) 맛집: 백제궁 수라간: 13:10
(10) 카페: 하품 : 13:38
(11) 카페: 높은댕이 :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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