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선원 선원장 묘공당 대행 스님이 22일 자정 안양본원에서 원적에 들었다. 법랍 63세ㆍ세납 86세. 영결식과 다비식은 전국비구니회장으로 5월 26일 10시 안양 한마음선원에서 엄수될 예정이다.
한마음선원은 오후 3시께 대행스님의 법구를 입관하는 의식을 갖고, 오후 5시께 분향소를 마련하고 조문객을 받을 예정이다.
묘공당 대행 스님은 1927년 서울 이태원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산중에서 수행했다. 1950년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월정사에서 조계종 초대 종정인 한암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으며, 강원도, 경기도 일대의 산하를 유랑하며 10여 년간 수도 정진했다.
치악산 견성암에 머물며 중생구제의 원력을 실현하던 대행 스님은 강원도 월정사에서 탄허 스님을 계사로 1960년 사미니계를, 1961년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1950년대 말경부터 대행 스님은 치악산 상원사 근처에 있는 한 토굴에 머무르며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스런 호소를 듣고 그들을 도왔다. 1963년 상원사 중창불사를 도맡아 상원사의 면모를 일신했다.
대행 스님이 대중포교의 원력을 드러낸 것은 내면에 무한한 능력이 있는데도 근본 불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스스로를 아무런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자유인이 될 수 있도록 그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부터다.
대행 스님의 포교원력은 닥쳐 오는 모든 것을 근본 자리에 맡겨 놓고 지켜봄으로써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 할 수 있는 한마음 주인공을 드려다 볼 수 있는 관법(觀法)을 대중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1971년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에 한마음선원의 전신인 대한불교회관을 세우면서 가시화됐다.
대행 스님은 1982년 대한불교회관을 조계종 제1교구직할사암으로 등록하고 ‘대한불교조계종 한마음선원’으로 개칭하고 선원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30여년 넘게 한마음선원에 주석하며, 크고 작은 법회에서 질문을 해오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근기와 여건에 맞추어 답을 하는 등 불법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마음선원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에 첫 국내지원을 개원한 이후 2012년 현재 제주, 부산, 광주 등 15개 국내 지원을 차례로 개원했다.
국내에 지원을 확장한 대행 스님은 해외로도 지원을 늘려갔다. 1987년 미국 모건힐지원 개원을 시작으로 2012년 현재 뉴욕, L.A, 시카고, 워싱턴, 토론토, 부에노스 아이레스, 뚜꾸만, 독일, 태국, 브라질 등지에 국외지원을 설립했다.
대행 스님은 불교대중화를 위해 국내 최초의 영탑공원 조성, 한글 뜻풀이 경전의 보급, 법문의 영상 매체화, 한국 불교 사상 최초의 인터넷 포교, 선법가를 통한 음성 포교, 현대불교 신문 창간, 한마음과학원 설립 등 실천적이고 현대적인 다양한 포교 방편들을 실천했다.
▲ 불기 2556년 촛불재 정진법회(1월 23~25일)에 참석한 대행 스님. ⓒ한마음선원 제공
해외 지원을 설립한 스님은 4개 국어로 번역된 법문집 출간 등을 통해 전법의 발걸음을 세계로까지 넓혀 나갔다. 이 밖에 스님은 소년소녀가장돕기 법회, 중앙승가대학 발전기원 대법회, 팔만대장경 전산화를 위한 대법회 등 약 80여 회의 국내외 초청법회를 개최하고 불법의 홍포뿐만 아니라 교계 내의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부분을 널리 알리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변화를 통해 스스로의 본성을 발현하게 하는 스님의 가르침은 <한마음요전>, <허공을 걷는 길>, <삶은 고가 아니다> <생활 속의 불법수행> 등 다수의 저서로 출간됐으며, 산하단체인 한마음국제문화원의 번역 작업을 거쳐 수년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출품되고 있다. 스님은 쉽고 간결한 법문으로 수많은 출가 및 재가이 걸어야 할 길을 답하며, 역동적이고 실천적인 가르침을 전해왔다.
첫댓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백봉선생님과 비슷한 내용의 법문을 하신 것으로 아는데 참 아쉽습니다.
속환사바, 재명대사! 속환사바, 재명대사! 속환사바, 재명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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