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문 옆에 장대한 향나무가 서 있다. 휘어지거나 비틀림이 없는 줄기는 근육질의 남성미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향나무의 앞날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껍질이 벗겨져 심재(心材)가 드러난 지 오래다.
이미 변재와 심재의 틈새에 썩을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대로 두면 중심부가 썩는 심재부후(心材腐朽)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태극천은 멀리 국사봉 남사면에서 발원하여 상원골을 지나 태극 모양으로 돌아흐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예로부터 '산태극 물태극(山太極 水太極)'이라하여 '삼재팔난불입처(三災八難不入處)'로 여겼다.
그러나 북원의 서북쪽을 관통해온 태극천은 전체적으로 기운이 차기 때문에 마곡사는 스님들이나 백범 김구 같은 기가 센
이들이 들어와 살 곳이지, 속인들이 들어와 살 곳은 못 된다고 했다.
또한 태극천은 음냉하고 햇볕이 짧아서 버들치와 같은 1급수 어종이나 냉수어종들이나 살 곳이다.
절에서 풀어놓은 비단잉어는 수온이 낮은 계류에는 적합하지 않은 육종 관상어다. 팔고있는 물고기 사료 또한 수질저하를
가져오고, 사료 속에 든 방부제와 항생제 등은 태극천에 살고 있는 고유어종에게 유전자변형 현상을 불러올 위험이 크다.
절은 숲과 함께 있어야…
극락교의 물푸레나무는 마곡사의 산 증인이다.
절집에서 저렇게 밑둥치 굵게 자란 물푸레는 흔하지 않다. 왕년에 태극천 골짜기에서 큰소리깨나 쳤을 노거수다.
늙을대로 늙어서 심재는 부후 현상으로 비었고, 변재도 많이 상해서 이제 열반에 들 날이 멀지 않아보인다.
그러나, 용케 제 명을 다해 살아왔다니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몇 해 전, 이 골짜기에 있던 5~6백년 된 느티나무 2그루와 전나무 4그루가 불사하는 데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무단으로 베어진 적이 있었다.
인간의 공간에 들어선 나무들은 하루하루가 종말이다. 언제 갑자기 비명횡사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비록 한 그루 나무일지라도 그걸 베어버리면 그 숲은 이미 그 전날의 숲이 아니다. 절도 그 절이 아니다. 절은 숲과 함께 절이다.
극락교를 건너면 백범 김구가 심었다는 향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젊은 날에 일본 군인을 살해하고 이 절에 숨어들어와 행자를 살았다.
<백범일지>에 당시의 일들이 비교적 소상히 나타나 있는데, 특히, '승행에는 하심이 제일이라, 사람에게 대하여서만 아니
라 짐승과 벌레에 대해서까지도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대목은 그에게 심적으로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을 것으로 짐작
된다. 백범의 향나무가 앉은 자리는 조경상으로나 가람배치상으로나 제 자리가 아니다.
나무를 옮길 수 없다면 표지석만이라도 남쪽으로 돌려앉히면 좋을 듯하다. 그리고 너무 무거워서 뒤쪽에 있는 오층석탑의
경쾌한 상승감을 누르고 있다. 가까이에 큰 잣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높이 30m에 줄기 지름이 50cm에 가깝다.
지상 2.5미터에서 세 갈래로 갈라진 줄기가 다시 지상 6m 쯤에서 각각 두 줄기로 갈라져서 우람한 수형을 만들어내고 있다.
잣송아리도 실하게 달려 있다. 절집에 이렇게 잘 자란 잣나무는 그리 흔치 않다.
더 자라면 마곡사의 얼굴이 될 만하다.
소나무는 파격(破格)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 여느 소나무와는 달리 눈주목이나 눈향처럼 줄기와 가지가 땅과 수평을 이
루며 평복형(平伏型)으로 자랐다.
뿌리목 줄기의 지름이 40cm에 이른 것을 보면 나이를 꽤 먹은 소나무다. 좀더 세월이 지나면 마곡사의 명목이 될 터이다.
대웅보전 앞 화계에는 피라칸사스를 줄 지어 심었다. 빨간 열매가 정열적인 피라간사스는 따뜻한 기후를 좋아하는 외래남방식물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겨울나기가 무척이나 힘들어 보인다.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대웅보전 내부 기둥들은 손때가 묻어 유난히 반지르르하다.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마곡사 기둥을 몇 번이나 돌았느냐?"고 묻는다는 전설이 있어서 보살들이 기둥을 잡고 돌았기 때
문이다. 이 기둥들이 ‘천년 묵은 싸리나무’라지만, 사실은 느티나무다. 절집 기둥들이 느티나무로 많이 세워진 것은 재질도
뛰어나거니와 느티나무보다 더 굵게 나라는 나무가 없기 때문이다.
환경파괴되면 자연의 소리 다 변해
대웅전 서쪽숲에 쇠딱다구리가 맑은 쇳소리를 내며 짝을 부르고 있다. 쇠딱다구리는 덩치도 작거니와 몸색깔이 나무껍질
색깔과 흡사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소리로서 그 존재를 찾아낸다.
소리는 주위환경을 진단하는 중요한 매체요소이다. 귀가 열린 사람은 눈으로 보지 않고도 자연의 소리만으로도 고유 환경을 진단한다.
환경이 파괴되면 바람소리, 물소리, 벌레소리, 새소리와 나뭇잎소리… 오만가지 소리가 다 변한다. 산내암자인 영은암은
인공식재된 화백이 길을 안내하고 있다. 화백은 측백나무의 사촌이다. 측백은 회갈색 줄기를 갖고 있으나, 화백과 편백의
줄기는 붉은 색깔을 띠고 있다. 화백은 노폭이 좁은 암자 진입로에는 어울리지 않는 키 큰 상록교목이다.
더욱이 이곳의 화백들은 가지와 잎이 무성하여 진입로를 필요 이상으로 어둡게 긴장시키고 있다.
비구니 스님들의 처소일수록 진입로는 밝고 낮아야 좋다. 영은암 해우소는 경사지에 다락형으로 지은 전통해우소다. 너무
낡아서 곧 새로 지을 계획으로 있다. 행여나 시멘트를 써서 수세식으로 지을까 염려된다.
마곡사 주변은 우리 소나무들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수령은 30년에서 50년에 이르는 것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활인봉(423)~나발봉(417)을 돌아 큰 절에 이르는 4km 구간은 온통 솔밭이다.
‘개발’바람에 사라져가는 것들
은적암으로 가는 길은 얼마 전에 아스콘으로 새로 포장되었다.
그냥 내버려두어도 좋을 오솔길을 자동차를 위해 굳이 아스콘으로 덮어야 했을까 싶다.
지표면을 시멘트나 아스콘으로 덮으면 땅이 숨을 못 쉬게 될 뿐만 아니라, 지하수 체계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
멀리로는, 홍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아스콘은 몇 년 지나면 다 쓰레기가 될 반환경적 자재가 아닌가…
절에서 원치 않은 것을 당국에서 관광개발 차원에서 깔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은적암 숲길은 키 큰 노송들이 점하고 있다. 줄기가 이리저리 굽어서 씨 받을 나무는 별로 없지만, 숲은 그윽하기 그지없다.
인적 끊긴 숲에 박새들이 송피를 뜯고 있다. 그런데 은적암이 가까워지자 솔밭은 베어낸 듯 끊어지고 70~80년생 참나무숲
이 느닷없이 나타난다.
소나무가 한 그루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숲의 자연천이의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은 큰 절의 대웅전 서북쪽
숲에서도 일부분 발견된다.
인위적으로 소나무를 제거시키지 않고 이런 상황이 전개될 수 없다고 동행한 김병연 박사가 결론을 내린다.
어린 엄나무가 잔설 속에 발을 묻고 있다. 엄나무는 키가 20여m나 자라는 교목이다. 민가에서는 가시가 무성한 어린 엄나무를 꺾어다 벽사(?邪)의 의미로 대문칸에 걸어두는 풍습이 있다.
은적암에서도 그런 뜻으로 문 앞에 심어두었는지 모르겠다.
경상도에서는 엄나무를 개두릅나무라 한다. 봄에 새 순을 따다 삶아서 초장에 찍어먹는 맛이 일미이다.
두릅보다 쌉쌀하니 맛이 있어서 산간 절집에서는 두릅보다 더 알아준다.(부다피아)
첫댓글 마곡사 백련암 잘 다녀오셨군요 글씨와 주변 경관이 좋아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