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光化門 탄핵 반대 集會 參與後記
2019.10.3.일 문재인 집권 시절 조국 사태 때 후 두 번째로 참가한 光化門 集會 後記다.
2024, 12.3 윤석렬 대통령의 非常戒嚴令 以後 나라가 온통 난리가 났다.
數的으로 優位에 있는 野黨과 與黨의 일부 反亂 票가 참여 대통령은 국회에서 彈劾되어 業務가 停止 되었고 이후 大統領이 반란했다고 野黨이 점거하고 있는 국회가 工作으로 證據를 조작하여 헌법재판소에 소추하는 賊反荷杖의 되치기가 시작되었다.
搜査權 與否의 論難이 되는 공수처가 大統領을 사상 처음 反亂 首魁라는 어마어마한 罪名으로 수천 명 兵力이 동원되어 逮捕하여 拘禁하고 戒嚴軍의 將軍들이 反亂罪로 拘束 收監되는 사태가 발생, 그야말로 온 나라가 混亂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이번 계엄 발령 시 나는 과거 經驗한 5·16 쿠데타 때 나 유신 헌법 시절과 12.10 新軍部의 非常戒嚴 때 比較하면 그 規模나 時間이 너무나 허술하고 規模가 적어 무슨 이런 허술한 戒嚴이 다 있나 하고 의아하였다. 그때는 國會도 戒嚴軍이 占領했을 뿐 아니라 放送局도 장악하고 주요 시설이 계엄군이 駐屯하고 거리에도 탱크와 계엄군이 警備하던 모습에 比較하면 허술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느닷없는 비상계엄이 왜 무엇인가? 하는 의심이 들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후 탄핵과 憲法裁判所의 裁判 過程, 대통령의 談話 등으로 대통령의 眞正性이 밝혀지면서 비로소 理解가 되었다.
이번 비상계엄령의 발령은 즉 國民에게 呼訴하는 衝擊 療法이었던 것이다. 즉 국민 啓蒙令이었던 것이다.
즉 그 目的은
1, 국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다수 횡포, 독주로 국정 마비되고 있는 다음과 같은 현실을 國民에게 呼訴하고
1) 국무위원을 비롯 감사원장, 검찰등 23번의 줄이은 탄핵으로 국가 주요 책임자가 공석
2) 필요 주요국가 예산을 무차별 삭감하는 등 국정운영이 마비되는 현실과
3) 간첩 법 등의 제정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비협조와 입법 횡포
2. 반국가 세력의 발본색원하기 위함이었고
3, 부정선거 의심의 조사 필요성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부정 부당한 운영과 최근의 대선과 총선에 부정선거의 의심이 대두되어 그 규명 필요성이라고 밝혀지고 있었다.
大統領의 眞正性이 점점 밝혀지고 國家 非常 狀態가 알려지면서 全國 坊坊曲曲에서 탄핵 반대 운동이 遙遠의 불꽃처럼 대규모로 發生하면서 3.1절을 기하여 광화문과 여의도 등에서 大規模 탄핵 반대 운동이 벌어졌다.
1919년 3월 1일 기미년 만세운동의 독립운동에 버금가는
2025년 3월 1일 을사년 구국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즉 제 2의 삼일절 운동이 일어난 것이었다.
國家 곳곳에 스며든 反國家 勢力이 너무나 많이 자리 잡고 있는 현실이 점점 밝혀지고 있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을 만큼 세력을 뻗고 있는 現實에 非常戒嚴이 晩時之歎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 부부가 광화문 집회에 참여하려고 나선 것은 오전 10시 30분, 광화문으로 가는 버스에는 집회 참여하는 태극기를 든 남녀노소들이 탑승하고 있었고 버스는 도로가 막혀 중간에 경복궁역에서 회차하였다.
광화문 광장에는 그야말로 人山人海 였다.
2019년 10월 3일 조국 사태 때 보다 더 많았다.
그 당시 발 디딜 틈이 없었던 것의 기억보다 훨씬 더 많은 것 같았다.
太極旗와 星條旗를 흔드는 群衆의 喊聲은 하늘을 찌르고 地軸을 흔들었다.
集會가 한참 진행하던 중 1시간여 봄비가 내렸고 비를 맞으면서도 群衆은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비좁은 군중 틈을 헤집고 한참이나 간 교보문고 화장실에는 100여m 긴 줄이 서 있었다.
그야말로 熱氣가 대단하였다.
종로 거리에는 대학생들의 街頭 行進이 이어졌다. 전국 20여 개 대학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 지르는 喊聲에는 젊음이 느껴졌고 내가 중학교 3학년 시절, 4.19때 학생들의 義擧 모습이 떠올랐다.
세월의 흐름 속에 80대가 되어 가버린 내 젊음이 못내 안타까워지기도 하였다.
喊聲도, 動作도 작아지고 느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未來 後孫에 물려줄 祖國에 대한 걱정은 더 많아진 것 같다.
이번 탄핵사태에 대한 나의 所見을 적어 본다..
解放과 동시에 일어난 民族 相殘의 悲劇인 6.25 事變으로 세계 最貧國이었던 조국이 70여 년 만에 國民所得 년 40,000불을 바라보는 세계 10대 强國으로 奇蹟을 이룬 시절을 겪고 살아온 世代의 주인공 중 한 사람으로 風前燈火 같은 현 祖國의 事態에 걱정이 밤잠을 못 이루고 있다.
그렇다. 오늘의 豐饒가 이루어지기까지 배고픔과 家難 속에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어면서 지난, 고난한 시절이 너무 한순간에 잊어버리는 안타까움에 늙은 몸이 오늘도 광화문 광장에서 들리지 않는 함성을 지르고 있다.
政治 指導者 여러분!
野黨과 與黨도 다 祖國이 健在해야 그 알량한 자리의 權勢를 누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먼저 나라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나라를 위해 내가 진정하고 있는 자세가 과연 합당한지 묻기 바랍니다.
權力 싸움에 나라고 뭐고 국민이 眼中에 없을 때 차지한 그 자리는 南柯一夢이 아닐지요? 세상에 태어나 길지 않은 인생 살고 가는 것이 우리 모두 비슷한 처지 일진데 무엇을 위해 당신들은 그리 權謀術數나 工作이나 할 생각을 합니까?
나는 우리 현 나라에서 제일 발전하지 못한 것이 政治權이라고 판단합니다.
正義고 道德이고 法이고 우리가 權勢를 잡으면 무조건 옳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여러분은 後世 子孫들에게 尊敬 받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不正選擧에 대한 저의 所見은 證據는 제가 없지만, 분명히 存在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난 大選을 겪기 전부터 事前 選擧에 대한 疑問을 가지고 있었다.
5~6년 전부터 동네 산책길에 동년배 동료들에게 선거 때마다 事前 選擧 하지 말라고 主張하여 왔다.
그러나 동료들조차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았고 편하다는 핑계로 事前선거에 참여하곤 하였다.
요즈음 저명한 통계학자들이 말씀하는 대수의 법칙이라는 말이 그 당시는 무엇인지조차 몰랐고 전자개표기의 시스템 원리조차 몰랐지만, 選擧 結果 數値가 못내 의심스러운 부문이 많아 많은 疑問이 있었다.
수많은 犯法者나 道德的으로 缺陷이 많은 無資格 者들이 當選되는 것을 보고 무언가 석연치 않음을 感覺的으로 느꼈다. 그러나 證據나 사실을 몰라 때때로는 投票權者인 民草들의 어리석음을 怨望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번 대통령의 비상계엄사태로 많은 의심스러운 증거나 專門家들의 統計學的 說明에 제 過去 疑心에 대한 確信을 점점 가지게 되어 가고 있다.
여하튼 이번 계엄사태로 인한 탄핵정국이 安定되어 나라가 더욱 튼튼해지도록 政治指導者들을 비롯해서 모두 賢明하신 智慧를 모아 주시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
참여한 3.1 절 탄핵 반대 집회를 歷史에 남기기 위해 3.1절 노래에 다음과 같이 2절(기존 노래는 1절 밖에 없음)을 보태서 後世에 길이 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적어 본다.….
제2의 3.1절 노래(3.1절 노래 가사 2절로 제안)
1절 (기존) 2절 (추가)
기미년 삼월 일 일 정—오오 을사년 삼월 일 일 정-오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 만세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민국 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요 태극기 곳곳마다 오천만이 하나요
이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이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구국이다.
한강은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백성은 다시 일어났고 함성은 높았다.
선열하 이나라를 보소서 선열하 이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날을 길이 빛내자. 동포야 이날을 길이 빛내자.
2025.03.09.
파주 村老 김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