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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사서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三國志 魏志 東夷傳)>의 기록을 보건데 우리민족만큼 술 마시며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을 즐기는 민족도 흔치 않은 것 같다. 동이전에서는 우리나라 고대종족의 생활상을 소개하면서 ‘고구려(高句麗) 사람들은 술을 매우 잘 빚는다.’고 했으며 ‘예(濊)에서는 해마다 10월이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밤낮으로 술을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니 이를 무천(舞天)이라 한다.’고 적고 있다. 그 밖에도 추수감사제 성격이 짙은 영고(迎鼓)라든가 동맹(東盟)과 같은 제천의식이 있었으니 미뤄 짐작컨대 제사를 지낸 뒤 음주가무(飮酒歌舞)가 뒤따랐음은 불문가지이겠다. 그만큼 우리민족이 여느 민족에 비해 신명이 많았다는 얘기리라.
예전에 시골에서는 모내기철이 되면 일손이 딸려 집집마다 돌아가며 품앗이를 해야 했다. 그리고 품앗이로 들일을 할 때면 새참과 함께 빠지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막걸리였다. 사람들은 막걸리 한 잔으로 농사일의 고달픔을 풀어버리곤 했던 것이다. 그만큼 막걸리는 전통주로서 우리민족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술이라 할 수 있다. 막걸리는 만드는 방법이 간단하여 쌀, 보리, 밀과 같은 곡식과 누룩만 있으면 누구든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곡식을 시루에 찐 지에밥을 적당히 말린 뒤 누룩과 물을 섞어 항아리에 넣은 뒤 일정한 온도에서 발효시키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술은 관인양조장에서만 만들 수 있으며 일반가정에서 만드는 것을 법으로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그러나 예전에는 일반가정에서도 농번기철이나 경조사가 있을 때 종종 단속을 피해 몰래 술을 담그곤 했다. 밀조를 만들 땐 흔히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뒤꼍의 헛간이나 김장독을 묻었던 움을 주로 이용하곤 했다. 그러나 이따금 나오는 밀주단속원들은 누룩냄새를 기막히게 잘 맡아 어렵잖게 밀주항아리를 찾아내곤 했다. 밀주를 빚다가 적발되면 벌금이 만만치 않았기에 명절이나 농번기철을 앞두고 밀주단속반이 느닷없이 들이닥치면 온 동리가 밀주항아리를 감추기 위해 난리법석을 떨곤 했다.
나는 체질적으로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편이다. 한잔 술에 얼굴이 불콰해지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오래지 않아 호흡이 가빠지고 똑바로 걸으려 해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래서 술자리에서는 혹여 큰 실수나 하지 않을까 염려되어 지극히 몸을 사리곤 한다. 나는 평소 일과 관련하여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잦은 편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울리는데 어찌 술이 빠질 수 있겠는가. 하지만 체질상 몸이 술을 받지 못하기에 나에게 있어 술자리는 언제나 곤혹스럽다. 사람들은 내가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것을 두고 지극히 내성적인 성격 탓으로 돌린다. 그동안 술과 친해지려 무던히 애썼으나 술만 보면 지레 취해버리는 것은 아무래도 밀밭 옆을 스쳐 지나치기만 해도 취한다는 아버지의 유전적인 영향 때문이리라. 그런데 나는 이즈음에도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일 때마다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술지게미를 먹고 비틀거리던 어릴 때의 가난한 군상이 떠올라 마음이 시려온다.
우리민족이 음주가무를 즐긴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술을 거르고 남은 지게미에는 한때 고단했던 우리 삶의 애환이 짙게 배어 있다. 내가 어릴 때는 종전 직후라 무척 배고픈 시절이었다. 산촌에 사는 사람들은 보릿고개 때가 되면 끼니를 잇기 어려워 말 그대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을 하곤 했다. 그래서 양조장에서 술을 거르고 난 지게미는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양식으로 쓰였다. 읍내에 있는 양조장에서 술을 내릴 때가 되면 가난한 사람들이 술지게미를 얻어가기 위해 양동이를 들고 기다랗게 줄을 서곤 했다. 이를테면 술지게미는 당시 가난한 사람들에게 훌륭한 구휼식품(救恤食品)이었던 셈이다. 사람들은 술지게미에 당원이라는 인공감미료로 맛을 내어 허기를 메우곤 했다. 일부러 술을 마시는 어른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어린아이들에게 술지게미는 독주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못 되었다. 게다가 사카린의 달짝지근한 맛은 군것질거리가 없던 아이들의 입맛을 당기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술지게미를 배불리 먹고 학교에 등교한 아이들은 온종일 술에 취해 흔들거렸다. 또한 개중에 술에 약한 아이는 수업 중임에도 불구하고 책상 밑에 얼굴을 처박고 미처 소화되지 않은 술지게미를 꾸역꾸역 토해 놓기도 했다. 아, 그 술지게미의 시큼한 냄새여!
그래, 어릴 때 술지게미를 끼니 삼아 먹은 아이들은 본의 아니게 일찌감치 상습과음을 한 셈이다. 누가 술을 마시면 어깨를 들썩거릴 만큼 신명난다고 했는가? 이들이 술지게미를 먹고 취했을 때 노래하거나 춤 출 흥겨움이란 아예 있지도 않았다. 그들은 취하지 않으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절대가난의 굶주림 속에 놓여 있었다. 어릴 때의 슬픈 기억 때문일까? 나는 지금도 막걸리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막걸리를 마시면 은근히 속이 거북할 뿐만 아니라 목울대로 올라오는 트림 역시 역겹다. 나는 지금도 막걸리를 마실 때면 부황이 들어 누렇게 떴거나 버짐이 하얗게 앉은 가난했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술지게미로 배를 채우고 취한 채 비틀거리던 그들의 모습 또한 쉽게 잊지 못한다. 어쩌면 그들도 나처럼 막걸리를 마실 때마다 술지게미를 얻기 위해 양조장 문 앞에 양동이를 들고 기다랗게 줄 서서 기다리던 자신들의 아픈 초상을 떠올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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