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무와 동일한 극치에 정, 혜라는 두 법의 명칭이 있겠습니까
[여기서는 본론의 의미를 꺼냈다. 다음에서는 그가 의심을 간직하고 말했던 정혜가 이미 하나라면 무엇 때문에 논문에서 고요는 작용에 상즉했다고, 작용은 고요에 상즉했다고 말했는가 한 데 대해서 풀이하였다] ?
정과 혜라는 명칭이 무와 동일한 밖에서 이루어진 칭호가 아닙니다.
[고요와 관조가 동일한 근원이었다면 정, 혜도 본래 동일한 자체임을 알아야 한다. 어떻게 무와 동일한 밖에서 따로 정. 혜의 명칭을 호칭하였겠는가라고 말하였다]
정과 혜라는 명칭이 무와 동일한 내부에서 나왔다면 존재해 있는 명칭은 동일한 경지는 아니며 [만일 정. 혜라는 명칭이 동일한 내부에서 나왔다면 일반적으로 명언名言을 건너기만 하면 진실한 자체가 아님을 말하였다] , 정혜라는 명칭이 동일 밖에서 나왔다면 그 명칭은 나의 마음, 즉 반야의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동일 밖에서 억지로 정, 혜의 명칭을 호칭했다면 이는 미혹한 사람이 허망으로 집착하여 나에게 있다 한 것이지 반야의 자체 속에는 본래 정. 혜라는 두 가지 명칭이 없음을 말하였다
이상은 정. 혜가 둘이 아님을 답변하였고, 다음에서는 권지의 감응이 쉬지 않음을 답변하였다]
또 성인의 마음은 텅 비고 은미하여 일상적인 세계가 오묘하게 단절되었습니다.
[오묘하게 극진하고 그윽히 부합하였다. 여기서는 실지가 작위가 없음을 말하였고, 다음에서는 권지의 감응이 쉬지 않음을 말하였다]
느낌이 다가오면 감응하지 않음이 없고 회합하면 통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묘지妙智의 그윽한 기미가 가만히 운행하면서 그 작용이 인위적으로 수고롭지 않습니다.
[권지가 오묘하게 감응하면서 이처럼 작위하지 않음이 없다.]
속제인 뭇 상수에 대한 감응이 무엇 때문에 쉬겠습니까
[이상은 실지는 작위가 없고 권지의 감응은 쉬지 않음을 밝혔다. 다음에서는 이 두 지혜가 다르다 한 데 대해 답변하면서, 마음이 다르다 함에 정면으로 답변하였고, 겸하여 유지를 소통시켰다. 우선 허망한 정을 표시했다] ?
범부의 허망한 마음으로 있다 한 것은 있는 것 때문에 그것은 있다고들 합니다.
[이는 상대적인 인연의 의존관계가 있은 뒤에 있는 것이다.]
범부가 있다 한 것은 본래 실제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적인 인연의 의존관계로 있기 때문에 자체가 실제한 것은 아니다.]
그 때문에 성인의 마음은 자체가 실제 있지 않는 것으로써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진실을 나타냈다. 성인의 마음은 상대적인 인연을 떠났기 때문에 실유가 아닌 것으로써 있다 한다.]
실제 있지 않는 것으로써 있다 하기 때문에 있다 해도 실제의 자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연생을 빌리지 않기 때문에 있다 해도 실제 있는 것은 아니다.]
있다 해도 실제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실제 없는 것도 없습니다.
[이미 속제가 실유의 유가 아니라면 진제도 실무의 무는 아니다.]
실제 없는 것도 없기 때문에 성은 실유의 유도 아니고(不有) 실무의 무도 아닙니다.(不無) [유, 무가 쌍으로 단절하여 유, 무가 하나로 맞닿는 즈음에 마음이 그윽히 합하였다]
이처럼 불유불무의 중도라야만 그 신령한 권지의 자체인 실지가 텅 비게 되는 것입니다. [유, 무를 쌍으로 단절하였다면 텅 비고 신령하여 절대 홀로 관조하면서 중도에 오묘하게 일치한다]
무엇 때문에 그러할까요
[다음에서는 그가 따지는 문제에 나아가서 바로 소통을 시켰다. 즉, 성인의 마음은 다르다는 질문에 대해서 정면으로 답변함으로써 유. 무를 쌍으로 부정하였다]
유, 무는 마음의 영향이며 [영은 형상에 비유하였고, 향은 언어에 비유하였다], 언상言象은 영향이 반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량분별의 영향은 본래 실재한 법이 없다. 다음에서는 유. 무를 쌍으로 부정함을 보였다 ]
마음의 영향인 유. 무가 단절되었다면 마음에 영향이 없게 되고, 영향이 없어졌다면 언상으로 그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마음의 그림자인 상분을 반연하는 견분이 단절되었다면 언상으로는 그러한 마음에 도달하지 못한다 ]
언상으로 헤아릴 수가 없다면 절대의 도에는 상대적인 모든 방향이 단절됩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자체는 상대적인 인식의 한량이 끊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