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김인숙
병산서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 중의 하나다. 병산이란 이름은 병풍을 두른 모습이라 붙여졌다고 한다. 서원 맞은편 산자락이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감동적이다. 병산 아래쪽에는 낙동강이 유유히 흐른다. 어쩌면 이런 곳이 있을까.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해설사를 따라 병산서원 출입구 복례문이란 곳에 다다른다. 복례문은 첫 번째 대문이다. 가운데는 높고 양쪽은 낮은 모습이 무엇인가 예사롭지 않고 기품이 있어 보인다. 복례문은 자기 자신을 극복하여 예를 회복한다는 유교적인 상징이 있다고 해설사가 상세히 안내해준다.
병산서원에 매료되어 여기저기 곳곳을 누비다가 보호수로 지정된 배롱나무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수령이 무려 390여 년 정도이다. 또 한 번의 감탄사를 마스크 속 입에서 연발한다. 배롱나무 몸통이라 할 수 있는 줄기를 자세히 보면 껍질이 없고, 반들반들하다. 한마디로 겉과 속이 같다. 이래서 조선의 선비들은 집안 곳곳에 배롱나무를 심었나 보다. 배롱나무의 꼿꼿한 지조와 강직한 삶을 꿈꾼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배롱나무는 무덤가에도 많이 심는다고 전해진다.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후대의 번영을 바라는 마음이라고 한다. 병산서원의 배롱나무도 그런 의미에서 류성룡의 후세인 류진이 심지 않았을까.
지난해 봄 울타리 수를 정리할 때였다. 울타리 모퉁이에 심겨 있는 배롱나무를 죽은 줄 알고 몸통 윗부분을 잘랐다. 나무줄기는 흡사 말라 죽은 것처럼 보였다. 뭐가 그리도 바쁜지 배롱나무를 자세히 관찰한 적이 없었다. 무심히 지내다 보면 여름이 되고 여름이 되면 붉은 꽃이 피고 지기를 여름내 반복했다. 꽃이 필 때만 예쁘다고 감탄을 하고 꽃이 지고 나면 으레 무관심했다. 배롱나무가 껍질이 없다는 사실도 몰랐다. 봄에 윗부분을 잘린 배롱나무가 다른 해보다 더 진하고 화려한 꽃을 피웠다. 누가 또 자를까 싶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서일까? 그해 여름은 유난히 붉고 탐스러운 꽃을 볼 수 있었다.
병산서원에 있는 배롱나무 대여섯 그루를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나무줄기 여기저기 혹같이 생긴 것들이 울룩불룩하게 튀어나와 있다.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몸 안의 독소를 처절한 울음으로 토해내면서 몸부림친 흔적처럼 느껴진다. 한 자리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세찬 비바람과 천둥·번개 모두 이겨내고 단단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배롱나무가 존엄하고 경이롭다.
해설사에게 배롱나무의 울룩불룩한 혹에 관해 물어보니 사람으로 치면 암 같은 종양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사람에게 있어서 종양은 정말 큰 병이다. 그 큰 병을 이겨내기 위해 사람들은 지금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생존을 위한 전쟁처럼 투쟁한다. 암이란 단어를 들으니 불현듯 아버지가 떠오른다. 병산을 바라보면서 아버지의 마지막 여정을 더듬어 본다.
아버지는 점점 야위어갔다. 건장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앙상한 뼈와 기름기 없는 피부가 전부였다. 음식을 거부하고 고통만 호소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차마 볼 용기가 없어 몇 번이나 뛰쳐나오기도 했다. 온몸에 전이된 암과 투쟁이라도 하듯 하루하루 힘들게 버텨내시다가도 어머니를 붙잡고 제발 극약을 좀 구해서 당신을 좀 죽여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어느 날 다를 때 보다는 유독 평온한 얼굴로 미소를 띤다. 눈으로 인사도 주고받으며 자식들을 알아보길래 차도가 있는 줄 알았다. 바보스럽지만 또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 며칠 뒤 아버지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영원한 안식처로 떠나셨다.
배롱나무의 자가 치료 능력처럼 아버지도 암을 이겨내서 지금 내 곁에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완치되지 못하고 끝내 돌아가신 아버지를 향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가득하다.
390여 년간 변함없이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배롱나무의 의연함을 보고 자리를 뜨지 못한다. 한동안 배롱나무 주위를 서성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