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韓國)의 불교회화(佛敎繪畵)
김 미경(대구한의대학교 강사)
Ⅰ. 개요
불교회화는 불교 교리와 사상을 주제로 한 종교화로, 예배대상이 되는 존상, 또는 경전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말한다. 따라서 아름다움이나 자유로운 개성을 추구하는 일반회화와는 달리 중생교화를 목적으로 한 불교의 이념을 극적으로 부각시켜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불화 또는 탱화(幀畵)라고도 하는데 탱화라는 명칭은 서역(西域)에서 불화를 지칭하는 탕카(Thangka)라는 발음에서 유래된 것이다.
인도에서 시작된 불화는 서역과 중국을 거쳐 우리 나라로 전파되는 과정 속에서 그 용도와 재료, 주제, 기법 등이 다양하게 발전되어 왔다. 예배․교화․장엄 등 용도에 따라 내용을 달리하며, 바탕재료 역시 직물, 종이, 흙, 나무, 돌, 금속 등이 다양하게 사용된다.
우리 나라에서 불화가 처음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불교가 수용된 삼국시대부터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당시의 불화는 주로 벽화 형식으로 봉안되었기 때문에 사찰의 소멸로 인해 남아 있는 불화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삼국시대의 불화로는 절터의 발굴에 의하여 벽화 파편이 수습된 예가 있으며, 일부 고구려와 백제의 고분벽화에 그려진 연꽃, 당초문, 구름, 인동초 등 불교관련 장식문양과 예불장면 등이 남아 있어 삼국시대 불교회화의 자료가 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다양한 불화가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전하지만, 현재는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백지에 그린〈대방광불화엄경변상도大方廣佛華嚴經變相圖〉를 통해서 당시 수준 높은 불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을 정도이다.
고려시대는 국가 차원에서 불교가 열렬히 신앙되면서 불교회화 또한 성행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고려불화는 전 세계적으로 160여 점이 확인되고 있으며, 수월관음(水月觀音)을 비롯한 아미타(阿彌陀) 관계의 불화가 주류를 이루고 그 외 나한도, 제석탱 등이 있다. 전반적으로 단아한 형태, 금․은니(銀泥)를 사용한 화사한 색채, 섬세한 문양과 치밀한 선묘(線描)를 특징으로 하는 고려불화는 화려한 귀족적 취향을 반영하고 있다
조선시대는 불교를 억압하는 정책으로 불교가 쇠퇴하지만 일부 왕실․사대부층을 비롯한 서민들의 후원 아래 불화의 제작은 계속되었다. 조선 전기의 불화들은 120여 점이 확인되는데, 고려불화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으면서도 구도․형태․선․색채․문양에 있어서 조선적인 새로운 경향이 전반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조선적인 색채와 구도, 형태, 선, 문양을 확립하는 시기는 조선후기인 17세기이다.조선후기의 불화는 수천 점이 남아 있는데, 지금까지 전문 화가들에 의해 주도되어온 불화의 제작은 이때부터 금어(金魚) 또는 불모(佛母)라 불리는 승려화가들이 담당하게 되었다. 후기 불교는 축소된 불교의 지지기반을 넓히기 위해 토속신앙과 기복신앙을 폭넓게 수용하여 대중적이면서도 다양한 종류의 불화가 발달하게 된다.
1. 불교회화의 정의
불교회화는 불교의 교의(敎義)에 바탕을 둔 종교미술이다. 따라서 보수성이 강하며 지역이나 유파에 따라 양식이나 기법에는 다소간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지역마다 분포된 불화를 그리는 작가를 불모(佛母) 혹은 금어(金魚), 화사(畵師), 양공(良工), 화원(畵員)이라고 부른다.
2. 불교회화의 이해
순수 회화성에서 보다는 불교경전에 나타난 사상적 이해를 바탕으로한 종교적 장엄함과 예술적 사상성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3. 불화의 色
원색적이고 강렬한 색상이다. 색의 재료로 사용하는 안료로는 천연광물성 안료와 식물성 안료를 사용한다. 중국의 돈황벽화에서는 주로 황․적․청․백․흑․녹색이 주류를 이루는데 백색으로는 석고와 雲母․고령토와 활석을, 황색은 석황․황토를, 적색에는 대자․연단․주사를, 청색으로는 석청과 군청, 녹색은 석록을, 흑색으로는 먹이나 탄흑이 주로 쓰였다.
고려불화에는 주로 주사, 석록, 석청 등 이 삼색을 기본으로 혼합색을 쓰지 않는다. 즉 거의 모든 여래상에서 가사는 주사로 전면을 칠하고 대의에는 석록, 치마에는 석청을 사용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광물성과 더불어 식물성 안료가 고루 사용되었다. 식물성의 경우대부분 수입해 오는 광물성에 비한다면 저렴하고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이 쉽게 사용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4. 불교회화의 기능과 용도에 따른 명칭
1) 탱화(幀畵) : 천이나 종이에 불․보살을 그려 족자나 액자 형식으로 전각의 후
불벽에 걸게되는 그림
- 야외및 의식용 : 야외에 걸어 의식용 그림으로 괘불, 감로탱, 용선도
- 도량 장엄용 : 의식 때 도량을 장엄하는 번(幡)류로 사천왕도, 팔부신중도,
금강역사도, 십이지번, 사보살번 등
2) 벽화(壁畵) : 전각의 내외 벽면에 그리는 그림
3) 판화(版畵) : 목판의 첫머리에 경전의 내용을 압축하여 새겨 찍어내는 그림
4) 사경변상화(寫經變相畵) : 경전의 내용을 베껴 쓴 사경 첫머리에 그림으로 표현
5. 고려불화의 주제와 종류
고려불화는 현재 남아있는 작품은 대부분 13세기부터 14세기(1250~1400년)에 이르는 시기에 집중되어 있는데, 약 160여 점이 집계된다. 이중 대부분은 일본에 소재하는 사찰이나 박물관 그리고 개인에 의해 소장하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동경을 비롯하여 오사카(대판), 후쿠오카(복강), 대마도 등이다.
고려불화의 우수성은 국제성과 화려함에 있다. 따라서 일본 귀족들에게 어필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고려불화 중 벽화는 영주 부석사 조사당벽화 뿐이며, 그 외에는 모두 탱화로 남아 있다. 불화의 주제는 정토계와 선종계가 있으며 종류로는 아미타불화, 수월관음도, 비로자나불법계인중도, 제석도, 나한도 등이다.
6. 조선불화의 주제와 종류
조선불화는 고려불화보다 다양하고 세분화 된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즉 사찰 전각이 다양한 만큼 전각의 의미나 용도에 따른 일정한 불화가 걸려진다.
용도에 따라, 장엄용불화(후불탱, 단청, 벽화)와 교화용불화(본생도, 불전도, 팔상도, 지옥변상도, 아미타내영도, 영산회상도, 경전변상도), 예배용불화(후불탱, 괘불)로 나눌 수 있다.
조선시대 사찰은 대체로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여 상단-중단-하단의 삼단구성으로 전각이 전개된다. 이는 법화경의 유행에 힘입은 때문이며, 또한 후기에는 민간신앙의 흡수와 함께 재래신앙적인 요소들이 불교에 흡수되어 신앙의 분화현상이 더욱 폭넓어진다. 따라서 각 전각별로 봉안된 불상을 부수적으로 설명하는 불화가 걸괘그림으로 걸리는데 그 종류가 어느 시대보다 매우 다양하다.
7. 불화의 제작(佛畵의 製作)
불화는 불교의 예배 대상을 표현하는 성스러운 그림이기 때문에 매우 까다롭고 엄격한 절차와 법식에 따라 제작된다. 경전과 여러 의궤집(儀軌集)에 나오는 법식에 따르면 불화는 길일(吉日)을 택하여 그려진다. 그려지는 장소는 사방 백 걸음 내에 모든 더러운 물과 벌레를 없애고 청결하게 하며, 바닥에는 매일 향수를 뿌린다.
그리고 불화를 그리는 화사(畵師)는 매일 목욕과 함께 항상 깨끗한 새 옷을 입고 밤낮으로 1주일간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송주(誦呪)는 여러 가지 향료를 가지고 향을 피우고, 꽃을 뿌리며 다라니주문(陀羅尼呪文)을 염송 한다. 뿐만 아니라 불화의 바탕이 되는 직물(織物)을 제작할 때에도 꽃을 뿌리며 『대집회경』을 읽고, 부정을 멀리하는 등 엄격한 법식을 거쳐야만 비로소 불화가 완성된다고 한다.
불화에 사용되는 안료(顔料)는 색상이 선명하고 내구성이 강한 재료가 쓰인다. 전통 기법에서는 주로 천연 광물질에서 추출한 석채(石彩)나 자연산 색토분(色土紛)에서 얻어지는 니채(泥彩), 그리고 천연물질을 소성하거나 화학 처리하여 얻은 무기질(無機質) 안료가 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에도 당시의 색상과 형태가 잘 보존되고 있다.
불화가 완성 단계에 이르면, 부처님의 눈동자를 표현하는 점안의식(點眼儀式)과 복장의식(腹藏儀式)을 거행함으로써 비로소 불화는 생명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불화가 완성된 후에는 불화의 내용과 제작 연대, 참여한 인물 등을 하단에 있는 화기(畵記)에 기록한다. 그 중에 가장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시주자(施主者)와 화사․ 증명․ 송주 등 불화 조성에 중심 역할을 담당한 인물들로 그 역할은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