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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Stretching the Mind to the Impossible
20-1. we would open to the flow of experience
We usually limit ourselves in all we do by imagining that things are impossible or that we are limited in what we can accomplish. We do this in all spheres but especially in the spiritual life. If we could let go of the idea of the impossible and drop our petty consideration-our likes or dislikes, our worries and fears, our resistances-we would open up to the flow of experience.
우리는 보통 일이 불가능하다고 상상하거나 성취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상상함으로써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스스로 제한한다. 우리는 모든 영역에서, 특히 정신적인 삶에 이렇게 한다. 만일 우리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사소한 고려 즉, 좋고 싫음, 걱정과 두려움, 저항감 등을 버릴 수 있다면 우리는 경험의 흐름에 열려 있을 수 있다.
20-2. What we perceive though the senses is a fraction of the whole
We are aware of only a small percentage of all that exists in this universe. What we perceive though the senses is a fraction of the whole. Bees can see ultraviolet light, which we can't. Dog can hear sounds so high pitched that they are beyond our hearing range. These beings' reasoning processes are much less developed than ours, but their senses can pick up sight and sounds beyond our capacity. These are just a few examples of how full universe is of experience and possibilities, we limit ourselves greatly.
우리는 이 우주에 존재하는 것의 아주 일부분만 알 수 있다. 감각을 통해서 인지하는 것은 전체의 부분일 뿐이다. 벌은 우리가 볼 수 없는 자외선을 볼 수 있고 개는 우리의 청각범위를 넘어서는 높은 음을 들을 수 있다. 이것들의 추론 과정은 우리들보다 훨씬 덜 발달되어 있지만, 감각은 우리의 능력을 훨씬 넘어서는 것을 보고 들을 수 있다. 이것은 우주가 얼마나 완전한 경험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몇 가지 예에 불과하다. 우리는 스스로를 아주 제한한다.
20-3. A seemingly impossible proposal became actual
We are better acquainted with scientific technology than with spiritual development. Scientific technology is our birthright. Fifty years ago it was considered impossible to go to the moon, almost a joke. If the scientists who finally managed to build a rocket to reach the moon hadn't thought it possible, they could not have succeed. Now, not even a lifetime later, we accept space exploration as a matter of course. A seemingly impossible proposal became actual.
우리는 정신적인 발달보다 과학기술과 더 친숙하다. 과학기술은 우리의 타고난 권리다. 50년 전에는 달에 간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여겨졌고, 심지어 농담으로 들렸다. 마침내 가까스로 달에까지 가는 로켓을 만든 과학자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그들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한 평생의 시간이 지나지도 않아 우리는 우주탐험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불가능하게 보였던 계획이 사실이 된 것이다.
20-4. the impossible becomes possible
Something analogous happens in spiritual life and meditation. Nobody can place limits on our meditation, our spiritual cultivation, or our aspirations. Nothing is stopping us from achieving anything- nothing other than our belief that we face insurmountable obstacles. But if we turn that around and think of what we can do, the impossible becomes possible. Nothing is beyond our capacities in life, or in meditation. We can concentrate and become absorbed in other states of consciousness, once we let go of the barriers that keep us from flowing into each moment.
정신적인 생활과 명상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우리의 명상, 정신적인 계발, 열망에 아무도 제한을 둘 수 없다. 우리의 성취를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자신이 극복할 수 없는 장애에 직면해 있다는 믿음 이외는. 하지만 돌려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불가는 한 것이 가능하게 된다. 삶과 명상에서 우리의 능력 밖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로 하여금 매순간 흘러가지 못하게 하는 장벽을 일단 놓기만 한다면 다른 의식상태에 집중할 수 있고 몰입할 수 있다.
20-5. We need to give up habitual reactions
We need to give in to the unknown and give up old, habitual reactions. Giving in and giving up are the most essential parts of making meditation work. We give in the breath and give up the whole conglomeration of thoughts, which have no factual basis anyway. The only facts are impermanence(anicca), nonfulfillment(dukkha), and corelessness(anattā). Everything else is ideation, personal opinion. If the mind is full of the ideas that one has elaborated and verbalized during the day, how can there be room for concentration, for blissfulness, peace, and insight? If we allow the mind to spout ideas constantly, how can it stop suddenly when we sit down for meditation?
우리는 미지의 것에 응하고 오래되고 습관적인 반응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 받아들이고 포기하는 것은 명상하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숨을 받아들이고 사실적인 기초가 없는 생각의 덩어리를 포기한다. 유일한 사실은 변하고, 헛되고, 고갱이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관념화 작용이고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마음이 낮에는 꾸며서 표현하고 언어화해서 표현한 걸로 가득차 있다면 어떻게 집중과 행복, 평화, 통찰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는가? 만일 우리가 마음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생각을 내뱉게 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명상하려고 앉아 있을 때 갑자기 멈출 수 있겠는가?
20-6. There is something far beyond what we know
There is something far beyond what we know. Our longing for fulfillment directs our search for transcendence. If we did not have this longing, we would never able to endure our physical discomforts and continue our practice. Nobody needs to tell us more to human life than what we have experienced. We know there is more, because deep, inner contentment has escaped us so far.
우리가 알고 있는 훨씬 더 이상의 것이 있다. 수행을 완수하겠다는 열망이 해탈을 찾도록 방향을 제시한다. 만일 이러한 열망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육체적인 불편함을 견디지 못할 것이고 수행을 계속 해나가지 못할 것이다. 누구도 인간의 삶에는 우리가 경험하는 것 이상의 것이 있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더 이상의 것이 있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깊고 내면적인 만족이 여태까지 우리를 멀리까지 벗어나게 했기 때문이다.
20-7. the mind stays free and clear
We need to give the mind a good, solid stretch. We need to reach an entirely different realm, one in which worldly concerns are left behind. We do not abandon our everyday duties, responsibilities, and activities, but we are unaffected by their results. We can still water flowers, cook meals, type letters, or sew robes. These are worldly actions, done as a matter of course, but the mind stays free and clear. It remains sorrowless, stainless, and secure.
우리는 마음을 선하고 단단하게 펴야 한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영역에 도달해야 하는데, 이곳에 이를지라도 세속적인 일은 여전히 남아있다. 매일 해야 되는 일이나 책임감, 활동을 버리지는 않으나 그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꽃에 물을 주고 요리를 하고 옷을 꿰맨다. 이러한 세속적인 일은 당연히 해야 하지만 마음은 자유롭고 맑게 유지된다. 마음은 슬픔 없고, 오염 없이, 안전하게 머문다.
20-8. unless devotion and love for our practice
In the Great blessings Discourse the arahants are described in this way: "Though touched by worldly circumstance, never are their minds are wavering. Stainless, sorrowless, and secure, there is the highest blessing." This doesn't mean that one can't look after worldly things, but an expanded, unobstructed mind has a different inner vision. Attaining this vision requires much resolution, for we need to be able to drop everything. We hear the sound of a firecracker, but we drop the idea that it is a firecracker. Much strength of mind and sustained determination are needed for that. But unless we arouse such strength-and devotion and love for our practice-we are wasting valuable time, and meditation will be only a hope and a prayer.
축복경에는 다음과 같이 아라한에 대해서 묘사되어 있다. “비록 세상사에 접해도 결코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오염이 없고 슬픔이 없고 안전하다. 이것이 최고의 축복이다.” 이것은 세상의 일을 돌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고 넓고 걸림이 없는 마음은 다른 내적인 견해가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견해는 많은 것들을 해결해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놓아 버려야 한다. 푹죽 소리를 듣지만 그것이 푹죽이라는 관념을 놓아 버린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강한 마음의 힘과 지속적인 결단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러한 힘이 일어나지 않고 수행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없다면 아까운 시간만 낭비할 것이다. 그리고 명상이란 게 한낱 희망이나 기도가 되어 버릴 것이다.
20-9. Secluding the mind means protecting it...
In the description of the meditative absorptions(jhāna) that the Buddha gives in his discourses, the first word always is "secluded." Secluding the mind means protecting it, watching it, giving it a place where it can expand and unfold. Nothing unfolds to its advantage unless it is sheltered, so it can grow and mature.
붓다가 법문에서 선정에 대한 설명을 할 때 첫마디가 항상 “고립 혹은 분리”라는 말이었다. 마음을 분리한다는 말은 마음을 보호한다는 뜻이며, 마음을 지켜보고 마음이 넓어지고 펼쳐질 수 있는 공간을 주는 것을 뜻한다. 보호되지 않으면 그 장점이 펼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은 성장하고 성숙할 수 없다.
**맨 끝 문장 so it can grow and mature--->so it can't grow and mature 로 고쳐야 뜻이 통할 것 같습니다.
20-10. The mind is a jewel, beautiful in its purity
We need to be caring and considerate of our inner being, watch it carefully protect it like a precious jewel, so that it does not get battered and scratched. A mind with scratches can't meditate. When we protect our minds from unwholesome and unnecessary activity, meditation becomes much easier. We protect our bodies, as best we can, from getting burned, scratched, hit, or hurt. When an accident happens, we enlist the helps a first aid kit, a doctor, a hospital. Yet we let the mind get burned, scratched, and abraded by its ego assertions and reactions, and afflicted with worldly considerations of like and dislike, anger and rejection. These ideas scratch at the pure texture of the mind. If we wound the mind often enough-and nobody's immune from that- scratches become deep scars, difficult to heal. These scars are our limitations. The mind is a jewel, beautiful in its purity. Scaring and scratching it brings unhappiness.
우리는 내면을 보살피고 배려해야 한다. 주의 깊게 살피고 값비싼 보석처럼 보호해서 두들겨 맞거나 긁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상처 받은 마음으로는 명상할 수 없다. 우리가 불선심과 불필요한 행동으로부터 마음을 보호하면 명상하는 것이 쉬워진다. 우리는 화상이나 긁히거나 맞거나 상처 입는 것으로부터 몸을 최대한 보호한다. 사고가 나면 응급처치 세트나 의사나 병원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을 자기주장이나 반응으로 화상을 입고 긁히며 마모되도록 방치하고 호불호나 분노, 거부반응이라는 세속적인 이유로 괴롭힌다. 이러한 관념은 마음이라는 순수한 결에 흠집을 낸다. 만일 우리가 자주 마음을 아프게 하고 -누구도 그것으로부터 면역되지 않는다.-긁어댄다면 흉터는 더욱 깊어지고 치유하기 어렵게 된다. 이 상처가 우리의 한계다. 마음은 그 순수한 면으로 봤을 때는 보석이며 아름답다. 그것에 상처를 내고 긁으면 불행이 온다.
20-11. We are the guardians and cultivators of the mind
Only we can protect our mind. Only we can prevent the negative thoughts that scratch the jewel of mind. When we truly work for our inner purification, we need no longer blame outside conditions for our reactions. We are the guardians and cultivators of the mind. We can compare our mind to a wide open field to which little has been done except some planting of seeds and some scratching here and there, which has left scarring. As we become aware of good seeds, we can cultivate them.
우리자신만이 우리의 마음을 보호할 수 있다. 오직 우리만이 마음의 보석을 긁는 부정적인 생각을 막을 수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내면의 정화를 위해서 일할 때 우리의 반응에 대해 더 이상 바깥에 있는 조건을 탓하지 않는다. 우리는 마음을 보호하는 자이며 계발하는 자다. 씨앗을 몇 개 심어 놓고 여기저기 긁혀서 상처를 남겨놓은 것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행해지지 않는 넓은 들판에 우리의 마음을 비유할 수 있다. 좋은 씨앗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그것들을 경작할 것이다.
20-12. Cultivating the mind takes time, patience...
Cultivating the mind takes time, patience, good will and determination. If we fail to cultivate the mind we find ourselves in the same situation over and over again, thinking instead of concentrating. We continue to get upset about all sorts of matters that are, when looked at dispassionately, quite petty. We completely overlook the totality of existence, the imminence of death, the attainment of a consciousness that goes beyond all duality, and the possibility of attaining freedom beyond grief and suffering.
마음을 계발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인내심, 선의 그리고 결단력이 필요하다. 만일 우리가 마음을 계발하지 못하면 집중을 하지 않고 (습관적으로)생각을 하면서 같은 상황에 되풀이해서 놓이게 된다. 우리는 (냉정하게 본다면) 아주 사소한 온갖 문제들에 대해서 계속해서 짜증을 낸다. 우리는 존재의 전체성, 즉 죽음이라는 절박한 문제와 모든 이중성을 뛰어넘는 의식의 성취와 슬픔과 고통을 넘어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간과하고 있다.
20-13. wisdom arises and peace settles in
A mind concerned only with worldly matters is a shrunken mind, with limited horizons. We need a flexible and malleable mind, one that encompasses all that exist. We have been cultivating worldly mental processes for lifetimes, year after year, day in and day out-we need not continue. We are perfectly capable of feeding, dressing, washing ourselves, and working at our jobs. We don't have to develop these abilities any further. We're very fortunate to have done all that already. Now the time has come to cultivate an expanded mind, to let go obstructions, to stretch the mind toward impeccable peace. The key is letting go. When all other thoughts have been released, wisdom arises and peace settles in the heart and mind.
세속적인 일에만 관심이 있는 마음은 제한된 한계를 지니고 있는 위축된 마음이다. 우리는 모든 존재하는 것을 포괄하는 유연하고 순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평생을-해마다, 날마다- 세속적인 정신적 과정을 일구어왔고 이것을 계속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일에 종사하면서 우리자신을 완벽히 먹이고 입히고 씻길 능력이 있다. 이런 능력을 더 이상 발달시킬 필요가 없다. 우리가 이것들을 잘 해왔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 확장된 마음을 일구고 장애를 내려놓고 깨끗한 평화를 향해 마음을 펼 때가 왔다. 핵심은 내려놓는 것이다. 온갖 생각이 풀려 나갈 때, 지혜는 일어나고 평화는 우리 가슴에 자리 잡는다.
20-14. All you have to do is practice with diligence
Sorrow, pain, grief, and lamentation are all defilements. There is no rationale behind any of them. When the Buddha was dying, Ānanda, his attendant, was only a stream-enterer, the lowest of the four types of noble disciples. Ānanda was grieving. Other monks, all arahants, were sitting quitely, awaiting the event. The Buddha called Ānanda over and asked him, "What are you crying about? Are you crying over this old body that is being discarded?" Ānanda said, "I am crying about losing my teacher, who was compassionately showing me the way." The Buddha replied, "I have told you everything that is necessary to attain enlightenment. There is nothing hidden. All you have to do is practice with diligence."
슬픔, 고통, 시름 그리고 비탄은 모두 번뇌다. 이것들에 어떤 합리적인 근거도 없다. 붓다가 돌아가셨을 때, 시자인 아난다는 네 가지 종류의 성인 중 가장 낮은 수다원에 불과했다. 아난다는 슬픔에 잠겼다. 아라한인 다른 비구들은 조용히 앉아서 장례절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붓다께서 아난다야, 아난다야 하시면서 물으셨다. “너는 왜 우느냐? 버려질 이 늙은 몸 때문에 우는 게냐?” 아난다가 대답했다. “저는 언제나 정답게 길을 알려주시던 스승을 잃는 것이 슬퍼서 울고 있습니다.”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깨달음을 얻는 데 필요한 것을 다 말해 주었다. 숨겨 놓은 것은 하나도 없다.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은 오직 열심히 수행하는 것이다.”
20-15. we don't have to worry about choices
The whole of the teaching goes in one direction only, which means we don't have to worry about choices. We often spend time trying to figure out the best way to practice. This can give rise to debate, argument, and doubt, all of which waste energy that we could use more profitably for spiritual endeavors.
모든 가르침은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데, 이 말은 선택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종종 가장 좋은 수행방법이 뭘까 궁리하면서 시간을 낭비한다. 이렇게 되면 논의를 하고 언쟁하며 의심을 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정신적인 노력에 유익하게 사용해야 할 힘을 낭비하는 것이다.
20-16. Only wisdom will work
If we come to the meditation pillow with childlike mind, we will find it easier to forget the world. We need childlike trust in the impossible. Children believe in Santa Claus, in fairies, little gnomes, and all sorts of impossible things. That's the kind of trust we need to get anywhere with our meditation. We need freedom from skepticism, from trying to find rational answers, from wanting to be clever. Only wisdom will work, and that arises out of a pure heart. There is truly nothing important to keep in mind. If we find something worth remembering, we can write it down so we won't forget it and then come back to paying attention to each moment.
만일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명상할 수 있다면 잡다한 세상사를 잊기가 더 쉽다는 것을 알 것이다. 아이들은 산타클로스, 요정과 땅속 작은 요정들과 온갖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믿는다. 명상해서 깨달음을 성취하고자 하면 그런 종류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회의적 의심과 합리적인 해답을 찾고자 하는 마음과 좀 더 똑똑해지려고 하는 것들로부터 놓여나야 한다. (그러면) 오로지 지혜만이 작동할 것이고, 그것은 순수한 마음에서부터 나온다. 마음 깊이 간직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만일 기억해야 할 만한 것이 있으면 잊지 않도록 적어 두고 다시 매순간에 주의를 기울이면 된다.
20-17. We must trust our own purity
When we begin meditation unaffected by external conditions, completely open, with the conviction that we can do it, then the mind will respond favorably. We can enter a different realm of understanding and awareness and develop the mental capacity needed for the spiritual life. We must trust our own purity without niggling self-doubts or exaggerated expectations.
우리가 바깥 조건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완전히 열려 있으면, 그때는 마음도 그에 순응해서 반응할 것이다. 우리는 이해와 알아차림의 다른 영역으로 들어가서 정신적인 삶에 필요한 능력을 계발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 의심이 생겨 자꾸 트집 잡거나 터무니없는 기대를 하지 말고 자신의 순수함을 믿어야 한다.
20-18. Trust yourself and love your efforts
Sometimes we may be suspicious of our own and other people's abilities, about the teacher, the teaching, or the daily program. Subconsciously there's disturbance that says, "I think I could do it better." By all means do it better. Trust yourself and love your efforts.
때때로 우리는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능력을 의심할지도 모른다. 스승이나 스승의 가르침 혹은 수행프로그램을 미심쩍어 하기도 한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더 잘할 수 있는데...라는 혼란이 있다. 물론 더 잘 해야 한다. 너 자신을 믿고 너의 노력을 믿어라.
20-19. Unless the mind becomes extraordinary through meditation
Meditation can be our most wonderful experience, but we have to make it so. The Buddha's teaching goes into human psychology in extraordinary depth; the ordinary mind cannot grasp its full impact. Unless the mind becomes extraordinary through meditation, we cannot possibly gain the understanding that the Buddha expounded. The ordinary does not have the depth, lucidity, and expansion necessary for such transcendental wisdom.
명상은 가장 멋진 경험이 될 수 있지만 (또)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붓다의 가르침은 인간 심리의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이에까지 들어간다. 보통 사람들은 그 강력한 충격을 다 이해할 수 없다. 명상을 해서 마음이 비범해지지 않으면 우리는 붓다가 설명한 지혜를 얻을 수 없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러한 초월적 지혜에 필요한 깊이, 명료성, 확장성을 가지지 못한다.
20-20. become an inner reality
Full meditative absorptions are the means to an end, namely insight. If the mind cannot become one- pointed, insight will not arise. The mind will remain contracted, dull, hampered by obstructions. Our full potential arises when we can direct our minds at all times to wherever we wish. Only then does the totality of anicca, dukkha, and anattā become an inner reality.
완벽한 명상의 집중은 목적, 즉 통찰력을 위한 수단이다. 마음이 하나로 모이지 않으면 통찰력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면) 마음은 위축되고 장애로 인해서 방해 받는다. 완전한 잠재력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어디로든 방향을 틀 수 있을 때 일어난다. 그럴 때만 무상, 고, 무아의 총체성이 내면의 현실이 된다.
***Our full potential arises when we can direct our minds at all times to wherever we wish.
이 문장은 지혜가 완벽해져서 마음을 자유자재로 지배할 수 있는 상황을 묘사하는 듯합니다.
20-21. Meditation removes the limitations
Until the reactions and obstructions have been removed from the mind, there will be no room for new realizations. Our understanding of Buddha's teaching will be limited by the boundaries we have erected. Meditation removes the limitations, widens our horizons, and deepens our perspective. We can believe in the impossible just as children do and trust in the seed of enlightenment in our hearts.
반응과 장애물을 마음에서 제거할 때까지는 새로운 깨달음이 들어설 여지는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우리가 세운 경계에 의해서 제한될 것이다. 명상은 한계를 없애고 지평을 넓히고 전망을 깊게 한다. 우리는 아이들이 그런 것처럼 불가능한 것을 믿고 우리들 가슴 속에 있는 깨달음의 씨앗을 믿는다.
(끝)
20 Stretching the mind to the impossible.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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