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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상)
<책소개>
시오노의 필력이 탄생시킨 또 하나의 역사 대작
지중해 세계가 ‘이슬람 해적’의 침입으로 충격에 빠지다
팍스 로마나가 무너지고 군웅할거의 시대에 들어간 지중해. 로마제국에 의해 '평화'롭기만 하던 바다가 로마 멸망 이후 치열한 세력다툼의 현장이 된다.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는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 이후 지중해 세계를 다룬 역사교양서이다.
로마가 유지해 온 '평화'가 깨지고 난 후 지중해 세계는 '이슬람 해적'의 침입으로 충격에 빠진다. 사라센의 해적들이 활개치는 지중해의 모습은 서양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리하여 결국 기독교 국가들이 일어나 지중해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격전장이 되고야 만다. 기독교 국가들은 종교적인 동기부여로 '십자군'을 일으켰고 수도회와 기사단이 맹렬한 공방을 전개한다. 한편 바다를 장악한 이슬람 세력은 자연스럽게 바다 너머까지 진출하고자 하였고, 지중해 바다의 격전은 지중해 주변 영토로 확대된다.
로마 이후 새로운 대립의 장場이 된 지중해. 이를 둘러싸고 다분히 '종교적'인 이유를 내세워 대립한 이슬람과 기독교 세계의 세력 다툼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로마 역사를 고스란히 우리에게 펼쳐낸 시오노 나나미의 목소리로 지중해 세계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듣는다.
<저자: 시오노 나나미>
<목차>
해적
머리말
제1장 내해에서 경계의 바다로
이슬람의 대두
사라센인
해적
납치
새로운 진출
신성로마제국
표적이 된 수도원
‘성전’(지하드)
스키피오를 꿈꾸며
로마로
팔레르모 함락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사회
가에타·나폴리·아말피
다시 로마로
‘성전’(구에라 산타)
‘바다의 공화국’
‘사라센의 탑’
시라쿠사 함락
‘십자군 시대’ 이전의 십자군
간주곡―일종의 공생
‘이슬람의 관용’
이슬람―시칠리아
지중해의 기적
제2장‘성전’(지하드)과 ‘성전’(구에라 산타)의 시대
계속되는 해적질
이탈리아, 일어나다
노르만인이 왔다
이탈리아의 해양도시국가
아말피·피사·제노바
베네치아의 해적 대책
‘십자군’ 시대
‘맞기 전에 때린다’
마지막 십자군
이탈리아의 경제인들
교역 상품
사라센의 황금
제3장 두 개의 국경 없는 단체
‘구출수도회’
‘구출기사단’
연표
그림 출전 일람
권말부록―사라센의 탑
리구리아 지방
토스카나 지방
라치오 지방
아브루초 몰리세 지방
풀리아 바실리카타 지방
캄파니아 지방
칼라브리아 지방
시칠리아 지방
사르데냐 지방
몰타
<관련 자료>
작가 인터뷰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세계』의 큰 주제가 된 ‘해적’에 대해서 여쭙겠습니다. 현재, 소말리아 바다에 출몰하는 해적이 엄청난 문제가 되고 있지만, 그러한 국제 정세를 의식해서 집필에 임하게 되셨나요?
이탈리아에 살고 있으면 소말리아나 말라카 해협의 해적에 관한 보도를 접할 기회는 일본에 있을 때보다 많습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해적을 택한 것은 아닙니다. 우선, 로마제국이 멸망한 것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거기서부터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요약하자면 법의 정신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럼, 법이란 무엇인가.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 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서 최소한 필요한 규칙을 모두가 지키자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든가 “맘에 안 든다고 해서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든가, 라는 내용을 누군가가 정치 의지를 가지고 언명하는 것을 말하지요. 그런데 로마제국이 붕괴하고 난 뒤에는 그런 분위기가 사회 전체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법도, 윤리도 없어졌습니다. 그런 시대가 중세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시대에는 무엇이 일어날까? 이것이 지중해에서는...『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세계』의 큰 주제가 된 ‘해적’에 대해서 여쭙겠습니다. 현재, 소말리아 바다에 출몰하는 해적이 엄청난 문제가 되고 있지만, 그러한 국제 정세를 의식해서 집필에 임하게 되셨나요?
이탈리아에 살고 있으면 소말리아나 말라카 해협의 해적에 관한 보도를 접할 기회는 일본에 있을 때보다 많습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해적을 택한 것은 아닙니다.
우선, 로마제국이 멸망한 것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거기서부터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요약하자면 법의 정신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럼, 법이란 무엇인가.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 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서 최소한 필요한 규칙을 모두가 지키자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든가 “맘에 안 든다고 해서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든가, 라는 내용을 누군가가 정치 의지를 가지고 언명하는 것을 말하지요. 그런데 로마제국이 붕괴하고 난 뒤에는 그런 분위기가 사회 전체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법도, 윤리도 없어졌습니다. 그런 시대가 중세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시대에는 무엇이 일어날까? 이것이 지중해에서는 해적이 움직이기 시작한 원인이 되었고, 따라서 이번 작품의 화두도 해적이 된 것입니다.
평화와 안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평화와 안전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예전에 어딘가에도 기고했습니다만, 평화란 매우 중대한 문제로, 평화주의자의 손에는 맡길 수 없을 정도라고 생각할 정도 (웃음). 인간이란, 자기 주변의 일이라면, 대개는 혼자서 해결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안전보장, 결국 공동체가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공동체 지도자의 인식이나 각오와 의지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로마인이란, 멋진 미술이나 철학은 남기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안전은 보장했습니다. 고상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만, 더 중요한 것을 사람에게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교 세계의 대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본은 기독교 국가도 이슬람교 국가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나라는, 어느 쪽으로든 나뉘어 있고, 툭하면 충돌하고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알기 어렵지만, 그들 사이에는 거의 천 년 이상이나 걸친 싸움의 역사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합니다. 제일 무서운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 일본인은 주변을 물리치고 발언하는 타입이 아닐뿐더러, 그것은 그것으로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모르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과, 알고 있는데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출판사 리뷰>
팍스 로마나가 무너지고 지중해는 군웅할거의 시대에 들어간다. 질서 없는 지중해를 지배한 것은 ‘이슬람 해적’이었다. ‘오른손에는 칼, 왼손에는 코란’을 외치며, 납치와 약탈을 일삼는 사라센 해적들. 그 만행에 기독교 국가는 마침내 들고 일어났다. 납치된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수도회와 기사단이 살아나 맹렬한 공방을 전개한다.
‘로마인 이야기’ 완간 후에도 시오노는 결코 쉬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의 집필 여정은 과연 어디가 끝일까. 냉철하고 통쾌하게 역사를 추적해가는 그 놀라운 필력의 원천은 어디서 비롯될까. 2006년 말, 일흔의 나이에 이르러 15년에 걸친 『로마인 이야기』(전15권)의 집필 대장정을 마침내 끝냈을 때, 시오노에게 더 이상 본격적인 주제의 후속 작품은 생각할 수 없었다. 있어도 가벼운 역사에세이나 작가로서의 자신을 삶을 돌아보는 글 정도였다. 그 스스로 완간의 소회를 밝힌바, 한 해 한 권을 반드시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한 번도 갖지 못했던 긴 ‘여름방학’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 말과는 반대로 그는 지난 2년간 조금도 쉬지 않았다. 짧은 휴식 뒤에, 쓰지 않으면 안 되는 무언가에 사로잡혀 다시 글 감옥에 자신을 가두었다. 예상도 못했던 두툼한 두 권의 책,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상·하)를 들고 다시 독자들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로마제국의 멸망이 안타까웠을까? 아니, 열여섯 살 학창시절부터 자신을 매료시켰던 『일리아스』의 무대, 문명의 바다 지중해가 아니었던가. 탁월한 역사 저술가로서 지중해의 푸른 물결 위에 아로새겨진 찬란한 문명의 무늬, 인간의 드라마를 그려보고 싶은 유혹은 뿌리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로마는 지중해가 ‘내해’가 아니게 되었을 때 소멸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 제15권 『로마 세계의 종언』에서 ‘포스트 임페리움’(post imperium)라는 마지막 장을 할애하여 로마제국의 종언을, 흔히 말하는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에서 더 나아가 설명하고 있다. 즉 ‘제국 이후’의 7세기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이는 시오노가 궁극적으로 문명의 종말이라는 관점에서 로마제국의 종말을 보려 했기 때문이다. 또 그런 관점의 중요한 잣대가 되는 것이 지중해 세계의 변화였다. 시오노는 지중해가 로마제국의 ‘내해’(mare interunm)가 아니게 되었을 때 소멸했다고 보았다.
유럽과 중·근동과 북아프리카를 망라하는 대제국을 창설하고 계속 기능을 발휘하게 한 시대의 로마인에게, ‘우리 바다’라고 불린 지중해를 둘러싼 모든 지역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자기네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 자기들밖에 해결할 수 없는 ‘우리 문제’였다. 즉 지중해 북쪽과 남쪽이 같은 로마 문명권이었다. 그러나 7세 이후 지중해는 양쪽을 서로 연결하는 길이 아니라 양쪽을 갈라놓는 경계선으로 변했고, 그때 로마 세계는 사라졌다. 그렇다면 그 지중해 세계에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지중해의 운명을 건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대격돌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는 ‘로마인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는 약 1천 년의 역사시기를 다루며, ‘팍스 로마나’(로마에 의한 평화)가 무너진 이후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지중해 세계에 새로운 문명인 이슬람 세력(사라센 해적/오스만투르크제국)의 거대한 그림자를 조명하고 있다.
상권에서는 8~10세기에 걸쳐 주인 없는 바다에 쉴새없이 불어 닥치는 사라센 해적의 유례없는 유린상과 기독교 세계의 힘겨운 반격상을 그린다.
특히 이탈리아 4대 해양도시국가들의 활약과 십자군 원정에 대해 약술하고, 해적에 납치되어 북아프리카에서 노예 신세가 된 수많은 기독교도의 구출을 목표로 결성된 ‘구출수도회’와 ‘구출기사단’의 순교적 활동도 다룬다.
하권에서는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뒤 해적들을 앞세워 서구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시도하는 오스만투르크제국과 이에 맞서는 기독교 연합세력 간의 치열한 공방전을 그린다.
술레이만 1세, 메메드 2세, 프랑수아 1세, 카를로스 1세(카를 5세), 교황 레오 10세, 해적 바르바로사, 안드레아 도리아 등 영명한 역사적 군주들과 걸출한 지도자들의 힘겨루기와 두뇌전략이 흥미롭게 펼쳐지며, 프레베자 해전, 제르바 해전, 키프로스 공방전, 레판토 해전 등 지중해의 운명을 건 문명 간의 전쟁을 그린다.
단순히 개인의 이익을 얻으려는 목적의 비공인 해적 ‘피라타’(이탈리아어 pirata)와 달리 그 배후에 공인이든 묵인이든 국가나 종교가 버티고 있었던 자들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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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도가 북아프리카를 제압하자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그들과 마주보게 된 기독교 세계의 주민들은 이슬람교를 믿는 그 아랍인들을 ‘사라센인’이라고 불렀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뒤 평화와 안전은 사라져버렸고, 파도가 잔잔하고 햇빛이 아낌없이 쏟아지는 지중해 남쪽의 주인이 된 이슬람교도들은 손쉽게 이익을 취할 수 있는 해적질에 몰입했다.
더구나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종교(이슬람)는 이교도들을 해치는 행위를 정당화했다. ‘오른손에는 칼, 왼손에는 코란’을 외치며 납치와 약탈을 일삼는 사라센 해적들은 그야말로 기독교 세계를 전율케 했다. 지중해의 파도가 밀려오는 거의 모든 지방이 피해를 보면서도 로마 교황은 속수무책이었고, 안전보장의 의무가 있는 비잔티움제국도 고작 입막음하듯 명색뿐인 선단을 보낼 뿐이었다. 오로지 바닷가 높은 지형에 수없이 망루(‘사라센의 탑’)를 설치하여 침입하는 해적을 조금이라도 빨리 발견하고 도망가는 방법밖에는 다른 대비책이 없었다. 한마디로 중세 지중해의 서민들은 참으로 살기 어려운 시대였다.
“팍스(평화)를 확립하는 것은 군사가 아니라 정치적 의지다”
해적의 등장은 로마라는 질서가 무너지고 로마인이 가장 높게 추구했던 법의 정신이 사라졌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로마제국이 건재했던 시대에 제위에 오른 황제들이 하나같이 명심했던 것은 자국민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면 통치자로서 실격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스처럼 높은 예술문화나 심원한 사상을 꽃피우지는 못했지만 로마는 적어도 안전을 책임지는 제도를 구현했다. 그것이 고상한 가치는 아닐지 몰라도 로마인들은 인간사회의 더 중요한 실질적 기반을 만들어냈다. 해적에 초점을 맞춰 역사를 읽어내는 시오노의 현실주의적이고 냉철한 관점은 ‘팍스’(평화)에 대한 다음 설명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평화는 간절히 바라는 것만으로는 실현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누군가가 평화를 어지럽히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분명히 언명하고 실행해야만 비로소 평화가 현실화되는 법이다. 따라서 평화를 확립하는 것은 군사가 아니라 정치 의지였다.”
“현실에 절망한 인간들은 신神에게 쉽게 의지하는 법이다”
문화와 문명이라는 면에서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논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자기가 가진 힘을 최대한 활용하여 더욱 높이 향상하겠다는 의욕은 ‘중세 전기’에는 적어도 이슬람 쪽이 우월했다. 그 의욕을 해적질에 쏟아부은 것이 기독교 세계의 주민에게는 불행이었지만. 어쨌든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공인 종교가 되는데 300년이 걸린 반면, 지중해 전역에 이슬람의 그림자가 짙게 물든 데 걸린 시간은 100년에 불과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신흥종교가 항상 갖는 돌파력과 아랍 민족의 정복욕이 합해진 결과라 흔히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동로마제국이라고도 불리는 비잔티움제국은 기독교 교리논쟁으로 다시 분열하고, 관리들은 부정부패를 일삼고, 서민들에겐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었다. 이렇게 악정이 겹치면 민중은 괴로운 법이다. 현실에 절망한 인간은 쉽게 의지할 수 있는 상대를 찾는 법이다.
중세 사람들은 신앙심이 깊었다. 비참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이 암흑시대에 믿고 의지할 것은 신밖에 없었던 것이다. 노예로 붙잡힌 무고한 기독교 시민들은 살기 위해 개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시오노는 종교에 대해서도 현실주의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심원한 가르침은 마음속을 깨끗하게 해주고 죽은 뒤의 평온을 베풀어줄지 모르지만,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행동으로 몰고가는 힘은 주지 않는다. 구체적이고 현세적인 이점이 인간에게 결정적인 일보를 내딛게 하는 계기가 된다.”
오늘날 지중해 연안지방들은 모두 매력적인 관광지다. 그런 곳들이 과거에는 해적에게 분탕질을 당하고 사람도 살지 않는 땅이었다고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어쨌든 7세기부터 18세기까지 1천 년 넘는 세월 동안, 북아프리카에서 습격해오는 이슬람 해적을 빼고는 지중해 세계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 책을 마치며 시오노는 ‘평화’에 대한 인상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해상에서 이들 관광지를 바라볼 때마다, 그리고 지금은 레스토랑이나 나이트클럽으로 쓰이고 있는 ‘사라센의 탑’을 만날 때마다 ‘팍스’(평화)란 결국 일반 서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치밀어오르는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한다. 인간이란 안전만 보장되면 자기들끼리 그런대로 잘 해나갈 수 있는 존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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