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07/ 28. 2.
그리스도인의 이혼과 재혼
(교회에서 오히려 간통[간음]하는 재혼을 권장?)
아바의 집에서 인용
들어가는 말
최근 프랑스 출신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74)는 "세속 법에서 '결혼'이란 단어를 없애고 '시민결합'(civil union)이라는 말로 대체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은 동성애자들과 자유연애 사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환영받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든 것 가운데 존귀한 결혼"(히13:4)에 대한 모독이며 "다산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뜻(창1:28)을 거역하는 분명한 죄입니다. 가정은 서로를 신뢰하는 두 이성간의 연합을 통해서 자녀를 생산하고 양육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데 가치가 있습니다. 가정을 통해 나타나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남편과 아내와의 관게는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형제들이 어울리는 관계는 거듭난 성도들이 어떻게 형제우애를 드러내며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런 많은 질서들이 숨어있는데도 단순히 시민 결합을 운운하며 결혼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온 가르침이 아닙니다.
건강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부부의 온전한 연합은 기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도 이런 기본이 지켜지지 못합니다. 이로 인해 교회 안에도 깨진 가정들이 많으며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길로 가는 가정들이 있습니다. 혹시 이혼을 생각해보신 적이 있다면, 아니 벌써 이혼을 해서 재혼을 생각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하는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스도인 부부간에 이혼은 가능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마19:6)
한참을 살아보고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내 베필이 아니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이 구절에서 "짝지어 주셨다"라는 말을 미리 "정해놓으셨다"라고 해석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정하신 짝을 잘못 만나 살아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정하신 베필을 찾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이혼을 감행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결혼이 존귀한 것이기 때문에 결혼관계라는 틀 안에서 만난 사람들을 함부로 나누어지게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그 당사자들이건, 아니면 주변인이든 간에 그 두 사람의 관계를 나누려고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눈에 악한 것으로 판단되어지는 것입니다. 강간이든, 간음이든, 가정을 파괴하려는 모든 주변인들, 곧 남의 아내나 남편을 탐내는 모든 것들도 다 죄입니다. 또한 자기의 아내나 남편에게 불성실한 모든 행동들도 짝지음을 받은 사람으로서 온당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더더욱 "하나님께서 정하신 베필을 찾아 새롭게 시작 하겠다"고 이혼하는 것은 하나님의 눈에 가증한 일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이혼 증서를 써주어서 아내를 버리라고 한 것에 대해 "너희 마음이 완악한" 증거라고 했습니다(마19:8). 신실한 그리스도인 부부는 끝까지 가정을 지키며 자기들의 부부관계를 순결하게 지켜갑니다. 그런 부부의 모습은 그들이 믿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삶을 몸소 실천하며 사는 것입니다(엡5:22-32).
그리스도인의 배우자가 음행한 경우는 이혼이 가능합니까? 대부분의 건전한 그리스도인들은 이혼을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한 번은 이런 상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 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했습니다. 결혼을 계획하고 사귀었습니다. 그런데 형제가 고민을 털어 놓았습니다. 사귀던 자매가 "살아가는 중에 일치되지 않는다면 이혼할 수도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이혼이 가능한 결혼이라면 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온전한 연합을 위해 절대 이혼은 생각할 수 없다고 할 때, 배우자로서 서로를 받아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배우자가 음행을 했을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되지만 예외적으로 음행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전제되어 있습니다. 배우자의 음행은 이혼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마19:9, 마5:32). 그러나 이혼이 능사는 아닙니다. 진실한 회개를 통해 음행한 반려자가 돌이킬 기회를 갖고 가정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 쪽을 택해야만 합니다. 마치 음행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무런 재고도 없이 반려자를 다루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맛본 성도로서도 온당치 않습니다. 만일 참되게 회개하는 자라면 품어줄 수 있어야만 합니다(눅17:3,4). 하지만 회개하지 않는 자를 무조건 받아들이며 함께 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모든 것 가운데 존귀한 것이요, 잠자리는 더럽히지 말아야 하거니와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히13:4)
음행을 일삼는 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은 반려자의 회개하지 않는 음행을 그대로 용납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음행하면서도 결혼생활을 지속해 갈 수 있다고 배워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음행을 회개하지 않을 경우는 이혼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음탕한 고멜을 아내로 맞이한 호세아를 예로 들어 이내해야 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 요셉(마1:19)은 의로운 사람이었는데 정혼한 마리아의 임신소식(부정한 소식)을 들었을 때 버리려고(이혼하려고) 했습니다. 시끄럽게 굴지 않고 조용히 헤어지려 했습니다. 남편의 음행이 일시적인 범죄가 아니라 나를 떠나거나 버리기로 한 태도가 분명하다면 이혼할 수 있습니다. 이 남편은 분명히 하나님 앞에 심각한 죄를 지은 것입니다. 분명히 성경은 "네가 아내에게 매여 있느냐? 벗어나려 하지 말라. 네가 아내에게서 놓여 있느냐? 아내(다른 아내)를 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고전7:27).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같은 음행이 결혼한 부부사이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서로에게 계속 신실한 태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재혼할 수 있습니까? "누구든지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자는 아내에게 대하여 간음하는 것이요"(막10:11).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몇 가지 있습니다. 반려자가 음행을 했든지(마19:9), 상대가 헤어지기를 원했든지(고전7:15), 생존권을 위협받을 만큼 구타당하면서 살아야 했든지… 이혼한 사람은 혼자 살아야 하는 괴로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이혼을 했다면 다시 재혼하는 일은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헤어진 반려자와 다시 화해할 수 있는 기회가 올 수 있기 때문이고, 만일 반려자가 다시 합치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고전7:11). 전남편이 살아있는데 헤어졌다는 이유로 다른 남자에게 간다면 그녀는 간부(姦婦)가 되는 것입니다(롬7:3). 만일 반려자가 이미 죽었다면 재혼할 수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부라는 법에서 풀려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성경은 맨 처음 맺어진 관계에 매우 중요성을 둡니다. 결혼을 얼마나 신중하게 해야 하는 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해방되나니 다른 남자와 결혼할지라도 간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롬7:3)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젊은 과부나 아내의 죽음으로 혼자된 남자는 얼마든지 재혼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주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아내는 자기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법으로 매여 있으되 남편이 죽으면 자유롭게 되어 자기가 원하는 자에게 시집 갈 수 있거니와 오직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고전7:39). 이혼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교회 안에서 가장 무시되고 있는 것이 이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성가대 석에 앉아 찬양하는 어떤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최근에 남편과의 잦은 불화로 이혼을 했습니다. 전 남편과는 별거 중이며 자녀들은 모두 시부모가 키우게 되었습니다. 그때 주변에 있는 교인들은 자유로워진 젊은 여자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합니다. 때문에 서둘러 그녀를 재혼시키려 합니다. 교회 안에 새로운 신랑감이 있는 지 찾아보고 전 남편을 대신할 만한 좋은 사람이 있는지 물색합니다. 마침내 그런 사람이 눈에 띄었습니다. 드디어 중매를 시도했습니다. 그녀는 그같은 재혼이 교회에서 일어난 일이며 교인들의 도움 속에 일어난 일이며 교인들의 도움 속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 없이 새 남편을 맞이합니다. 재혼을 통해 행복한 결혼을 꿈꿉니다. 다시는 전남편과의 관계 속에서 있었던 일들이 재현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목사님은 새 가정의 결혼식을 집례하며 이전보다 더 잘 살기를 축복합니다. 교회소식으로 알려지고 그 새로운 부부는 많은 성도들의 축하를 받게 됩니다. 이런 일들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온 교회가 이 간음에 가담했습니다. 그 목사도, 그 주변 성도들도, 그 여자도, 그 새 남편도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서 사별의 경우가 아닌 이혼녀나 이혼남을 재혼시키는 것은 간음을 권장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이혼녀나 이혼남과는 결혼(재혼)할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만일 당신이 그런 사람을 반려자로 맞아들인다면 그 사람은 원래의 짝에게 돌아갈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래서 여러 곳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하게 간음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의 이유 외에 다른 이유로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녀로 하여금 간음하게 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이혼당한 여자와 결혼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니라"(마5: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 외에 다른 이유로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 당한 여자와 결혼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니라"(마19:9). 개역성경은 마태복음 19장 9절에서 이혼당한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간음이라고 말하는 구절이 삭제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이혼 당한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가볍게 생각한 사람들이 이 성경구절을 난도질 한 것처럼 보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니라"(눅16:18). 이혼한 가정을 지켜보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은 그들이 다시 화합하여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맺는말
2003년 3월 7일자 한국일보는 우리나라의 이혼률이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 중에 2위를 차지한다고 했습니다. 2002년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루 평균 840쌍이 결혼을 했는데, 이에 반해 하루 평균 398쌍이 이혼을 했다고 통계청이 보고했습니다. 가정이 와해되고 있습니다. 결손가정, 모자 가정, 부자 가정이 생기고 있습니다. 재혼을 알선하는 중계업체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무엇보다도 결혼에 임하는 자세부터 신중해야만 합니다. 모든 것보다도 가장 존귀한 결혼을 귀중히 여기고 평생 서로에게 신실하기로 한 약속들을 끝까지 지켜 아름다운 가정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만 하겠습니다.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면 한 번 더 신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결혼이라는 관계로 짝지어주셨는데 갈라서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입니다. 또 혹시 만일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이혼한 사람이라면 원래의 반려자와 합쳐지기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재혼을 계획하고 있거든 당장에 중지하십시오. 건강한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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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교회에서는 불신자인 배우자와 문제가 있으면, 이혼을 허락해서 빨리 재혼을 권장하고 부추키는 곳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벗어난 일입니다. 성경에서는 상대방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기다리든지, 이혼을 하였더라도 가능한 한 기다리라고 권고하십니다. 이혼했다고 해서, 성경 말씀에서 벗어나 재혼을 하는 것은 엄연한 간통, 곧 간음입니다. 물론 지옥 심판의 죄는 아니지만, 성경에서 금하는 간음의 죄인 것입니다. 재혼할 당사자는 이혼한 배우자의 상태를 살펴야 하며, 불가불 재혼을 할 경우에는, 양쪽 다 전혀 성경에 걸리지 않아야 하므로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배우자가 살아 있으면 재혼을 하지 아니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재혼을 핑계로 평생 간음 죄의 바위에 눌리지 않도록 세심한 성경적 검토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