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은 예루살렘 교회에 닥친 위기로 시작합니다. 1~5절을 보겠습니다.
1 이 무렵에 헤롯왕이 손을 뻗쳐서, 교회에 속한 몇몇 사람을 해하였다.
2 그는 먼저 요한의 형 야고보를 칼로 죽였다.
3 그는 유대 사람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이제는 베드로까지 잡으려고 하였다. 때는 무교절 기간이었다.
4 그는 베드로도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사인조 경비병 네 패에게 맡겨서 지키게 하였다. 유월절이 지나면, 백성 앞에 그를 끌어낼 속셈이었다.
5 이렇게 되어서,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헤롯왕이 교회에 속한 몇몇 사람을 해쳤답니다. 이 헤롯은 예수께서 태어나실 때 팔레스틴 전 지역을 다스렸던 헤롯대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입니다. 서기 37~41년까지 유대 북쪽 지역을 다스렸고, 41년부터는 할아버지 헤롯대왕이 다스렸던 팔레스틴 전 지역의 통합 군주가 되어 서기 44년까지 다스렸습니다. 물론 독립국가는 아니었고,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 자치권을 인정받은 상태였습니다.
그가 다스리는 동안에 사도 야고보가 순교했고 베드로도 체포되었지만 천사의 도움으로 위기를 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야고보의 순교는 역사적 사실일 수 있겠으나, 이후 베드로에게 일어났다는 기적적인 일은 실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이때를 배경으로 하는 설화로 이해해야 합니다.
어쨌든 본문에 의하면, 베드로는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빠져나왔지만 더 이상 예루살렘에서는 활동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이후의 베드로의 활동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13장부터는 바울을 중심으로 사도행전을 이어갑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이후 활동에 대해서는 기독교의 다른 전승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베드로는 그 일을 계기로 유대를 떠나 디아스포라, 그러니까 외국에 사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하며 로마까지 가게 되었고, 서기 64년 네로 황제 때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2장의 종반부는, 헤롯 아그립바의 죽음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20~23절을 보겠습니다.
20 그런데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헤롯에게 몹시 노여움을 사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뜻을 모아서, 왕을 찾아갔다. 그들은 왕의 침실 시종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그를 통해서 헤롯에게 화평을 청하였다. 그들의 지방이 왕의 영토에서 식량을 공급받고 있었으므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21 지정된 날에, 헤롯이 용포를 걸쳐 입고, 왕좌에 좌정하여 그들에게 연설하였다.
22 그 때에 군중이 "신의 소리다.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 하고 외쳤다.
23 그러자 즉시로 주의 천사가 헤롯을 내리쳤다. 그것은, 헤롯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벌레에게 먹혀서, 죽고 말았다.
두로와 시돈은 페니키아인의 도시로 무역을 통해 먹고사는 항구도시였습니다. 솔로몬 시대에는 솔로몬과의 무역을 통해 상호 이익을 얻은 동반자 관계이기도 했고 국제적인 무역항으로서 부와 명성을 함께 얻은 도시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둘 다 로마의 지배를 받는 처지가 되었고 둘의 위상도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헤롯대왕 때부터 로마 황실과 유대관계를 잘 맺은 헤롯 가문은 팔레스틴 전역을 다스리게 되었지만, 항구도시인 두로와 시돈은 유대 땅에서 공급되는 곡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본문의 이야기는 이런 배경에서 시작됩니다. 헤롯의 노여움을 사게 되자 두 도시의 지도자들은 특사를 파견하여 헤롯에게 화평을 요청합니다. 아마도 무슨 조약식을 갖기로 했던 것 같습니다. 헤롯이 자신의 위상을 과시하려 했던 것인지 용포를 입고 왕좌에 좌정하여 그들에게 연설을 했답니다. 그런데 군중 속에서 “신의 소리다.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 라는 외침이 들렸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그리스 로마 문화가 지배하던 당시에, 왕이나 위대한 인물이 연설할 때, 군중들이 신의 목소리라고 외치는 건 하나의 관례였습니다. 위대한 인물을 신과 동일시하거나 신의 아들로 여기는 것은 당대의 문화였으니까요. 그런데 이 일로 주의 천사가 헤롯을 쳐서 죽였답니다. 이유는 헤롯이 그런 말을 듣고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누가가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요세푸스도 그리스 로마의 관습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유대인의 왕이라면 유대의 율법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헤롯 아그립바의 죽음을 하나님의 징벌로 해석해서 자신의 역사서에 기록했는데, 그것을 누가가 기독교인에 대한 핍박과 연결지어 재해석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