陰曆 7월 3일.
어제는 제 先親의 기일이었습니다.
저녁에는 가을비가 주루룩 주루룩 내렸습니다.
스마트폰, 자동차, PC 등 개인이 첨단장비를 휴대하는 세상이 되었는데도 어찌보면 골동품같은 제사가 그 명맥을 유지한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저녁 9시 30분에 큰 형님 집에서 부친의 제사를 모시면서 和睦, 안식, 영혼이라는 세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역시 제사의 현대적 의미는 ‘和睦’에 있는 것 같습니다.
4형제가 모여 어머님의 건강을 살피고, 집안의 대소사를 모니터링하고 논의하는 자리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사에 가보면, 歲月가는 것이 아이들 키가 자라는 것으로 보입니다. 4명의 며느리들이 제사에 쓰이는 음식을 나눠서, 제사 음식을 차렸습니다. 음식을 준비하는데도 정성이 느껴졌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진주에서 함께 할아버지 제사를 지냈던 생각이 났습니다. 아버지는 꼭 12시가 되어야 제사를 모셨습니다.
고모가 8명이라, 제사 때는 모두 새우잠을 자야 했습니다. 아버지 사촌 분들도 14명이였습니다.
교사인 작은 형은 제사상에 조기, 과일, 고사리나물 등 음식 놓는 위치가 지낼 때마다 다르다며, 이번에는 자료를 찾아 스마트폰에 찍어왔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아버지의 기일은 삶의 安息을 제공하는 자리였습니다.
경쟁하지 않고 나눈다. 祭祀는 한 집안의 작은 의식이다. 뭐 이런 것이죠.
70년대 고향 진양에서, 밤 12시에 제사가 끝나면 어머니는 두와 오징어를 넣어 끊인 국물, 조기, 전 등을 저에게 옆집에 가져다 주라고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제사 마친 할아버지는 밭두둑 길에서(老翁祭罷田間道)
저물녘에 손주의 부축받고 취해서 돌아온다.(日暮醉歸扶小兒)”
사람은 육체에 靈魂이 있다. 이 말을 음미해 보았습니다.
제사를 지내면서 20년 전 진주에서, 아버지 손을 잡고 산책하던 큰 조카가 벌써 대학 3학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어느 듯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큰 도시 서울에서도 여전히 제사는 아버지와 손자를 정신적으로 연결해 주는 의식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도 검소한 성격이었습니다.
큰 형도 소박한 성격이라 집에 에어콘도 없습니다.
아들과 손자들이 먼저 절을 올리고, 며느리들이 나중에 절을 올리는 모습..
원래 제사는 중국 ‘주공’이 만든 관습이라고 합니다.
그는 부모님 생전에 대표적인 불효자였다고.
그래서 1년 식량으로 돌아가신 부모님께 제사를 지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에는 현재 조상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父母을 생각하면 왜 우리들은 다 不孝子로 느껴질까요?
한 없이 받았는데 제대로 해 드리지 못해서 그런건 아닐련지...
글 작성
백철우 베드로
첫댓글 제사라면 마음이 숙연해 지는 모습이어야 할진데, 왜 저는 님의 제사 지내는 가족들의 모습이 화목해 보일까요? 가족이라는 끈끈한 울타리가 둘러쳐진 가족들.... 화목, 평화, 사랑, 그기에 孝心까지 느껴지는 훈훈한 느낌이 너무 좋습니다. 그렇게 지낼수 있다는것이 얼마나 좋을까요?
다미님. 가정에 화목과 사랑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벼 꽃이 피었어요 화금으로 들판 하얀 쌀알 상차림 가족 모임 나에게도 ,,,!?
월촌 선생님. 횡성에서 벼 꽃이 피었나요?
그리고 황금들판으로 변했다는 말씀이시죠?
하얀 쌀알을 부모님 제삿상에 올리는 것은, 미풍양속이 아닐련지요?
늘 건강하십시요.
공기좋은 횡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