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아버지, 저를 가엾게 여기신다면 제발 저의 아버지를 죽여 주세요. 저의 아버지 시체를 저의 눈앞에서 보게 해주세요.”
한 가련한 영혼이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를 올린다면, 우리는 이것을 처연하다 할 것인가 끔찍하다 할 것인가.
이 순수하고 무력한 어린 양을 구원한 것은 그러나 신이 아니라, 고무장갑이었다. 속옷만 걸친 몸에 피 칠갑을 하고 구토를 하면서 이 메마르고 헐벗은 영혼이 의지한 것은 분홍색 고무장갑. 그 고무장갑으로 그녀는 누군가를 세상에서 지워 버렸고, 그녀의 과거가 들통 날 위기에 처했을 때 그녀 자신의 흔적을 지운다. 겨우 고무장갑 하나로 자신의 비루한 인생을 설거지하려 들다니, 얼마나 무모하고 가당찮은 계획인가. 그녀의 진흙탕 같은 삶은 결코 깨끗해질 수 없었다.
평소 고무장갑이 거추장스러워 사용하지 않는 내가 어쩔 수 없이 고무장갑을 쓰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욕실 청소를 할 때와 바퀴벌레의 사체를 처리할 때다. 변기와 세면대의 지저분한 오물들을 닦아 내기에 아무래도 맨손은 소심해지기 일쑤이다. 또 심약한 내가 대항하기에는 너무 빠르고 징그러운 바퀴벌레는 가급적 원거리에서 살충제를 살포한 다음 죽은 것이 확인될 때까지 방치해 두는데, 결국 마지막에는 손으로 처리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휴지를 두텁게 마련해도 예민한 손가락의 감각으로 전해 오는 불쾌한 느낌이 공포스러워 나는 고무장갑으로 방어막을 친다. 그녀, 차경선 역시 그랬을 것이다.
영화는 흥미롭다. ‘그녀는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과정의 긴장감과, 그녀의 실체가 양파처럼 한 꺼풀씩 드러날 때의 놀라움은 잘 짜인 추리극으로서 손색이 없다. 그러나 퍼즐 조각을 맞추듯 그녀의 인생 궤적이 꿰맞춰지면서 드러나는 진실은 슬프고, 고통스럽다. 차경선은, 무섭고, 안쓰럽다. 그녀를 동정하기에는 그녀는 너무 용의주도하고 지능적인 싸이코패스이고, 그녀를 비난하기에는 그녀를 지옥의 불구덩이에 방치한 우리 사회의 책임이 너무 크다. 여리고 순수한 한 여자가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인생의 나락으로 떠밀렸을 때, 그리고 그 누구 하나 그녀의 곁에 남아 있지 않았을 때, 그녀를 지옥에서 꺼내 줄 손은 그녀 자신뿐이었다, 스스로 죽거나, 아니면 죽이거나.
그녀에게 일말의 진실이 있었을까. 영화는 냉정하다. “날 사랑은 했니?” 문호는 묻는다. 안전하게 성장해 온 남자, 안정된 직장과 따뜻한 마음을 지닌 한 남자의 인생에 닥친 이 악몽은 아마 그의 모든 것을 바꿔 놓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그가 엿보게 된 지옥도를 부정하고 싶다. 우리 역시 한 가닥 연민을 예비해 두고 그녀의 대답을 기다린다. 그녀 경선이 고개를 흔든다……. “니가 사람이니!” “나, 사람 아니야, 쓰레기야.”
뇌물 사건에 연루되어 불명예 퇴직한 전직 형사 종근은 인생의 바닥을 헤매고 있다는 점에서 경선과 닮았다. 그는 돈 때문에 사건에 개입하지만 곧 형사의 직감으로 사건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고 지옥문을 열려는 사촌 동생 문호를 만류한다. 본능적인 수사 의지가 발동하고 명예 회복과 전직 복귀의 호기라는 욕심이 나면서도 문호가 입을 타격을 염려하는 것은 그 자신 지옥 가까이 가 본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끝까지 그녀를 믿어 보려 하고 그녀의 도주를 방조하려 하는 문호는 안쓰럽지만, 오히려 인간적인 얼굴을 느끼는 것은 그녀를 추적하는 이 냉철한 전직 형사 종근에게서이다.
영화가 주목하는 현실은 IMF 이후 한국 경제의 붕괴와 불법 사금융의 창궐이다. 양적 팽창에만 골몰해 온 한국 경제가 만들어낸 거품이 꺼지는 순간, 중소기업은 몰락하고 중산층은 해체된다. 그 한가운데 그녀의 가족이 있었다. 가구업을 하던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사채에 손을 대게 되었고, 눈덩이처럼 불어난 사채는 그녀의 가정을 붕괴시켰다. 아버지는 잠적했지만, 죽은 것이 확인되지 않으면 상속 포기가 안 된다. 아버지의 실종이 죽음으로 처리되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끔찍한 시간 동안, 그녀는 어머니의 비참한 죽음과 자신의 불행한 성장기를 신앙에 의지하며 버텨 왔다. 그러나 그녀가 가까스로 꾸린 가정마저 파괴되고 그녀 자신이 제물이 되었을 때, 법도 국가도 그녀를 보호해 주지 않았으며, 신조차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그녀는 비로소 깨닫는다, 죽지 않으면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제물로 삼은 것은 자기처럼 외로운 존재들이다. 그 외로움에 덫을 놓고 그녀는 고치를 벗고 찬란한 나비가 되기를 꿈꾸었다.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나는 단언하건대, 없었다.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무너진 사람들의 삶은 재건되지 않으며 양극화는 가속화되고 있고 계층 이동의 가능성은 닫혀 있다. 국가는 책임을 방기하고 법은 최소한의 정의를 수호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무슨 다른 길이 있었을까. 탈피(脫皮)를 향한 간절한 염원은 환상이 되고, 그녀는 나비 대신 쓰레기가 되었다.
김민희는 지옥의 불수레에 몸을 실은 악녀의 천 가지 얼굴을 보여준다. 아직 나어린 여배우가 이런 감정을 소화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믿기지 않는 사실 앞에 공황 상태에 빠진 남자의 불안한 감정을 표현하는 로맨틱 가이 이선균의 연기도 좋지만, 더욱 눈을 사로잡는 것은 진짜 형사보다 더 형사 같아 보이는 조성하이다. 목적도 의미도 없이 쓰레기처럼 살아가는 퇴물 형사이자, 매의 눈을 가지고 동물적 감각으로 사건을 파고드는 차가운 사냥꾼이면서, 경선과 문호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세상 쓴맛을 본 자의 깊이가 배어 있다.
사채 지옥을 벗어나 행복해지고 싶었지만, 공교롭게도 그녀 경선이 훔친 인생의 주인공 역시 사채로 인해 신용 불량자가 되고 개인 파산까지 겪은 인물. 그 과거에 경선은 발목이 잡히고 마니, 결국 사채와 그녀와의 악연은 끝까지 그녀를 놓아 주지 않는 셈이다. 그리고 말한다.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 좀 보내주세요.” 자본이 만들어 낸 지옥에서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이 이제 우리를 놓아 주지 않을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