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산의 야생화를 떠올리며...
1999년도 토요일 오후
김장 준비를 뒤로 미루고 시청에서 주관하는 임오산 가꾸기 일환으로 (5급이상)등반 계획 있어 참석하기로 했다.
1972년도 나는 율면사무소에 근무하면서 임오산을 오른 적이 없었다.
요즈음 사람들은 건강,여가,질 높은 삶을 위하여 산행을 많이 하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 등반은 전문가만 하는 스포츠로 여기던 때였다.
처녀시절 근무하던 율면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추억들이 있다.
보건소에 근무하는 박00과 큰 박양 작은 박양으로 불리면서 한방에서 자취 생활 할 때, 우리 주변에는 B중학교에 근무하는 총각선생님 두 분이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한분은 강선생님(강똥),황선생님(황누루개)로 별명으로 붙여 불렀다.
우리는 거의 매일 같이 우리 자취집에 모여 팔뚝 맞기 화투(나이롱뻥)놀이를 하였던 기억들이 새삼 떠오른다.
어느 날 안성으로 외출 길에 소재지는 버스가 없어 반월성까지 가야만 버스를 탈수 있었다. 시골에서 보는 눈이 무서워 남,여 각자 반월성에서 만나기로 하고 털털거리는 비포장 도로에 영화 한편을 보고 맥주 한 잔 마시고 홍당무 같이 달아오른 얼굴이 민망스럽고 부끄러워 어찌 할 줄 모르던 소박한 처녀시절을 떠올려 본다
지금은 주량이 많이 늘었지만..
또 하나의 추억 그 당시 공의로 근무하시던 김00소장님을 무척이나 따랐던 기억들 아마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짝사랑 이였지 싶다
이십칠년전 아름답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기어 있노라니,
어느덧 임오산에 다 달았다.
우거진 왜 소나무 밑으로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보니
떨어진 솔잎 노란양탄자를 깔아 놓은 것 같아 함부로 밟고 지나기가 아까웠다.
소복 소복 쌓인 솔잎을 밟으니 어릴적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시절 나무하러 갔다가 산주인 할머니에 들켜서 나무도 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 오시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오금아 나 살려라” 헐레벌떡 뛰어서 집에 와 방문을 잠그고 가슴이 두근 두근 달달 떨던 생각이 난다.
그때는 이렇게 노랗게 깔리기는 커녕 땅바닥이 갈퀴자국으로 파헤쳐져 있었을 터인데, 정말 많은 세월도 지났지만 우리 생활도 많이 좋아졌고 많은 사회변화도 가져온 것 같다.
평소 산을 무척 사랑하고 좋아 산행을 자주 갔는데..
산은 바위와 숲이 특별한 부분들로 제 모습을 들어 내고 있어 오르는 사람마다 다른 느낌을 받게 하여 매력이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에서 진작 인간들은 보물을 자칫 아무렇게나 보고 무관심일수도 있는 것이다.
전 임지(마장면)에서 도드람산에 야생화 단지 조성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했었고 가꾸다 매듭을 짓지 못하고 이동 되어서 아쉬움이 있었다.
꽃 중에 꽃은 야생화라고 생각한다.
제각기 향기가 독특하고 수천종이 넘는 아름답고 소박한 야생화를 산책로 주변에 종류별로 조성하여 산을 찾는 모든 이들이 즐길뿐만 아니라, 미래에 주인이 될 어린이들의 자연학습장으로도 만들어 온천 관광과 연계하여 야생화 단지 조성으로 특징 있는 아름다운 산과 고장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구상을 해보며, 같이한 동료들과 물들어 딩구는 낙엽,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아래 맑은 공기를 마시며 모두가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오르지 못했는데 산행을 자주하여야 하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