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31편 1–24절
[서론] 깨어진 그릇의 자리에서 시작되는 은혜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내가 구축해 놓은 삶의 기반, 건강, 그리고 소중했던 꿈과 기대가 한순간에 산산조각 나는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은 유능하고 쓸모 있는 것을 추구하지만, 감당하기 힘든 고난은 우리를 아무런 가치도 남지 않은 ‘쓰레기’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찬송가 작사가 파니 크로스비(Fanny Crosby, 1820-1915)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그녀는 생후 단 6개월 만에 의사의 잘못된 처방으로 시력을 완전히 잃고 평생을 어둠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갓난아기 때 시력을 잃은 여성의 삶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이자 사회적 소외 그 자체였습니다. 어둠에 갇힌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삶 속에서 크로스비 역시 본문의 다윗과 같은 깊은 수치와 고립감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본문 12절에서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내가 잊은 바 됨이 죽은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깨진 그릇과 같으니이다.” 여기서 ‘깨진 그릇’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는 ‘클리 오베드(כְּלִי אֹבֵד)’입니다. 이는 고대 동양에서 쓸모가 완전히 사라져 쓰레기장에 던져진 ‘소멸되고 파괴된 토기 조각’을 뜻합니다.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가 말한 인간의 ‘한계상황(Grenzsituation)’, 즉 인간의 자율성이나 힘으로는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절망의 수렁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는 복음의 역설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과 은혜는 우리가 스스로 완벽하다고 믿을 때가 아니라, ‘클리 오베드’—내 삶이 깨진 그릇처럼 파쇄된 그 자리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의 이 탄식은 어떻게 찬양으로 바뀌었습니까? 본문을 중심으로, 신약의 복음과 성도의 삶에 적용할 은혜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첫째, 내 삶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의 주권에 맡겨라
본문 15절은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라고 합니다. 다윗은 절망의 한복판에서 시선의 대전환을 이룹니다. 자신을 해하려는 원수들의 손을 바라보던 눈을 올려 하나님의 손을 바라봅니다. “나의 앞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에토트(עִתֹּתָי)’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한 시계의 시간(크로노스)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기쁨, 슬픔, 성공, 실패, 그리고 생사화복의 모든 마디와 계절들(카이로스)을 의미합니다.
근대 철학이 시간을 인간이 주도적으로 통제하고 계획해야 할 영역으로 바라보았다면, 성경은 시간의 주권에 대한 철학적 탈창작을 선언합니다. 인간은 자기 시간의 주인이 아닙니다. 장래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단 일초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에토트', 삶의 모든 순간과 운명이 원수의 손이나 시련의 환경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손’ 안에 있음을 선포합니다.
파니 크로스비는 어릴 적 자신의 눈을 어둡게 만든 환경과 불운을 원망하며 세월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훗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만약 내가 태어날 때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면, 나는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천국에 이르렀을 때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보게 될 얼굴이 바로 내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어둠이라는 계절까지 포함한 모든 '에토트(시간들)'가 하나님의 신실하신 손 안에 있음을 고백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란 내 삶의 기쁜 계절도, 슬프고 어두운 계절도 모두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인정하며 내일의 두려움을 그분의 손에 내어맡기는 사람입니다.
둘째, 십자가에서 완성된 전적 의탁으로 나아가라
본문 5절은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속량하셨나이다"라고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영혼과 생명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부탁하나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파카드(פָּקַד)’의 미완료형인 ‘아프키드(אַפְקִיד)입니다. 이는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보물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수호자에게 완벽하게 법적으로 맡겨 지키게 하는 ‘전적 위탁’을 뜻합니다.
철학적으로 볼 때 인간은 끝없이 자아를 증명하려 애쓰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존재의 위기가 찾아왔을 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신(Absolute Other)에게 자기 존재를 내어던지는 ‘존재론적 의탁(Existential Surrender)’을 통해서만 인간은 비로소 자유와 안식을 얻습니다.
이 고백은 신약 성경에서 가장 찬란하게 완성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숨을 거두시기 직전, 성부 하나님을 향해 던지신 마지막 유언의 말씀이 바로 이 구절이었습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누가복음 23:46)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극심한 수치와 하나님으로부터조차 버림받는 깊은 고통 속에서, 본문 5절의 고백으로 자신의 영혼을 아버님의 손에 완벽히 ‘파카드(위탁)’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순종과 의탁이 있었기에 사흘 만에 부활의 영광이 열렸습니다.
파니 크로스비 역시 육신의 한계와 평생의 무기력함을 스스로 해결하려 애쓰는 대신, 자신의 영혼과 삶 전체를 주님의 십자가 앞에 전적으로 ‘파카드(위탁)’했습니다. 그 결과, 육신의 눈은 감겼으나 영의 눈이 활짝 열려 평생 8,000곡이 넘는 위대한 찬송시를 써 내려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내 삶을 붙들려 하는 조바심을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내 영혼을 내어맡기는 것이 참된 신앙의 도약입니다.
셋째, 변함없는 사랑하심을 의지하며 담대히 선포하라
본문 16절과 24절은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고 합니다. 다윗이 ‘클리 오베드(깨진 그릇)’의 상태에서 ‘에토트(모든 시 간)’를 주님께 맡기고 ‘파카드(위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헤세드(חֶסֶד)’, 즉 ‘조건 없는 언약적 사랑과 신실하심’(16절, 21절)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깊은 언어철학 및 현상학적 반전이 들어있습니다. 11~13절에서 다윗을 괴롭힌 것은 원수의 칼보다 타인들의 ‘비방과 수군거림’이라는 언어적 폭력이었습니다. 타인의 칼날 같은 언어에 의해 사회적 사형선고를 받았던 시인은, 이제 인간의 왜곡된 언어의 감옥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비밀한 장막’(20절)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존재 가치를 재발견합니다. 본문의 위대한 서사적 반전은 19절 이후에 일어납니다. 외부의 객관적 환경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으나, 바라보는 시선의 지향성(Intentionality)이 고난에서 하나님으로 전환되자 탄식이 찬양으로 바뀝니다. 다윗은 마침내 개인의 골방에서 나와 세상과 성도들을 향해 담대히 선포합니다.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24절) 개인의 탄원이 공동체를 향한 희망의 선포로 확장된 것입니다.
파니 크로스비가 쓴 찬송가〈오 예수 아침 해 비출 때〉,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등은 오늘날까지 시련을 당한 수억 명의 크리스천을 일으켜 세우는 '쌓아 두신 은혜(19절)'가 되었습니다. 타인의 왜곡된 시선과 사회적 한계라는 어둠 속에 갇혔던 한 여인의 내면적 고백이, 세대를 넘어 온 교회를 향해 "여호와를 바라라, 강하고 담대하라!"고 외치는 소망의 선포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고난과 기도 역시 주님의 ‘헤세드’ 안에서 많은 이들을 살리는 소망의 노래가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 하나님이라는 견고한 산성으로 나아가라
오늘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이 자리에 서 계십니까? 감당하기 힘든 건강의 문제, 경제적 시련, 혹은 타인의 무정한 말에 상처받아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깨진 그릇(클리 오베드)"이라며 홀로 탄식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세상은 깨진 그릇을 쓸모없다며 쓰레기장에 버리지만, 우리 하나님은 깨진 그릇의 조각들을 당신의 신실한 손으로 모으사 더 찬란한 은혜의 그릇으로 재창조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맞이할 내일이 어떠할지 우리는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ㆍ나의 모든 시간(에토트, עִתֹּתָי)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ㆍ우리의 아픔과 불확실한 미래를 주님의 손에 위탁(파카드, פָּקַד)합시다.
ㆍ견고한 성에서 놀라운 사랑(헤세드, חֶסֶד)으로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이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 세상 속에서 위축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게 승리하는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